나만의 '현자'인 엄마와의 대화

일상의 깨달음

by 밝을 여름

어느 날 오전, 나는 마치 이 시간만 기다렸다는 듯이 다급하게 엄마께 전화를 걸어서는 다짜고짜 내 얘기만 쏟아내었다.


"아니, 엄마~ 내 얘기 좀 들어볼래요? 너무 답답해서 엄마한테 전화했어요~오늘 아침에 어머니 아침 식사 챙겨 드리고는 서로 이런저런 얘기 주고받는데, 어머님이 DH(글쓴이의 아들) 얘기하면서 갑자기 너무나도 서글프게 우시는 거예요? 그 모습에 나는 너무 당혹스러워서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는데, 어머님이 말씀하시길, DH가 어젯밤에 같이 잘 때 너무 감동적인 말을 해서 눈물이 나왔다는 거예요? 아무튼 DH에 대한 집착이 지나치신 것 같고 또 자꾸만 DH앞에서 자주 눈물 보이시는 것도 좀 싫고 또 그 일이 있고 나니 어머님 대하기가 좀 껄끄러워졌는데, 내가 이상하고 못된 거예요?"


나는 마치 래퍼가 된 것처럼 속사포로 내 속마음과 고민거리를 엄마께 쏟아내었다.

나의 마지막 물음에 엄마는 아~~~ 주 단호하게


"네가 이상하네~ 참 못됐네~"


라고 말씀하셨다.


엄마의 단호함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나는 또다시 엄마의 공감을 얻고야 말겠다는 굳은 의지로 내 얘기를 이어갔다.


"아니~ 엄마! 지금 아빠는 심장판막 수술하셔서 입원 중이시지. 작년에는 폐 기흉 수술하셔서 고생하셨지. 엄마도 허리 수술이며, 자궁수술이며, 생사를 오가는 수술도 여러 번 하셨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프다는 소리 한번 안 하시고 긍정적으로 밝게 사시는데, 왜 어머니는 어디 한 군데 수술하나 한 곳 없고 그 연세에도 챙겨 드시는 약하나 없는데도 매일 아프다느니, 고생을 많이 해서 건강하지 않다느니 그런 얘기만 하시는 걸까요? 매번 자기 자신을 가장 아프고 불행한 사람처럼 얘기하니까 그것도 좀 듣기 싫어요."


나의 얘기를 찬찬히 듣고는 아까 하고는 다르게 차분한 목소리로 엄마가 얘기했다.


"나는 니 얘기 듣고 나니, 사돈이 너무 안됐다는 생각이 드는구만. 옛날부터 몸은 아프면 칼로 째고 수술해서 나을 수 있다지만, 마음의 병은 수술로도 못 고친단 다이가~ 그만큼 어렵고 외로운 병 인기라. 남편 하고도 이혼하고 혼자 외로운 처지가 되었는데 네가 시어머니를 가엾게 생각하고 더 챙겨드려야지~ 그런 못된 생각을 하고 있노!"


아이러니하게도 엄마의 말씀에 내 가슴에 있던 돌덩어리가 쑥 내려가는 느낌이 들었다. 참으로 명쾌한 답변이었고 어쩌면 내가 마음속으로는 듣고 싶었던 말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사실, 나는 석 달 전부터 어머님이랑 우리 집에서 같이 살고 있다. 어머님이 기존에 살던 집을 팔고 우리가 사는 동네로 이사오시게 되었는데 새로 산 집에 아직 사람이 살고 있어서 석 달 간만 우리 집에서 살게 된 것이다.

처음에는 석 달 동안 같이 살게 될지도 모른다는 남편의 갑작스러운 통보에 나 혼자 며칠을 시름시름 앓았다. 이유인 즉 신혼 초에 어머님 댁에서 1년 넘게 산적이 있었는데 그때 고부갈등을 심하게 겪었던 적이 있어서다. 막장드라마로 이어질 뻔한 상황도 있었고 천만다행하게도 그 위기를 잘 넘기게 되긴 했지만...

그래도 그때 일이 나에게는 뭔가 트라우마로 남아있어, 다시 문제가 생길 수 있겠다는 불안감이 엄습해왔다.


어머니에 대한 나의 불안감은 대충 이러하다.


첫째, 손주를 너무 아낀다.

설명을 보충하자면, 다른 집은 아들(남편) 하나 두고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다툰다는 데, 우리 집은 글쓴이의 아들(어머니한테는 손주)때문에 어머님과 부딪힐 일이 많다. 예전 고부갈등의 거의 100%가 이 문제 때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 지나간 과거라 더 이상 부연설명은 하지 않겠으나 아무튼 엄마인 나를 뛰어넘어 할맘(엄마 역할을 하는 할머니 )이 되고자 하는 듯하여 사이가 틀어졌었다.


둘째, 당신의 아들(글쓴이의 남편)을 너무 아낀다.

이 또한 예전에 같이 살면서 문제가 생겼던 부분인데, 평소에도 두 사람(어머님과 남편)의 사이가 좋고 대화가 자주 오가는 사이면 별 이상하게 생각 안 할 텐데, 내가 바라봐온 바로는 두 사람은 서로 간의 어색한 기류만 흐르고 가끔씩 오가는 대화는 대체적으로 투덜대는 내용뿐이라 같이 있는 공간에서는 늘 침묵과 무표정, 그리고 째깍째깍 시계 소리뿐이다.

하지만 내가 아무리 다정다감하게 어머니를 대하고 챙겨드려도 맛있는 음식은 항상 당신 아들 입에 먼저고, 당신 아들이 최고이며 잘난 아들과 사는 나(글쓴이)는 행복하게 생각해야 된다는 뉘앙스로 늘 말씀하신다.


셋째, 며느리도 어느 누구 집의 소중한 딸이라는 사실을 망각하신다.

평소에는 개방적이시고 생각이 트이신 것처럼 말씀하시다가도 당신의 며느리에 대해서 만큼은 아직 조선시대에 머물러 계신다. 며느리는 당연히 이래야 된다, 저래야 된다라는 마인드를 가지고 계신 걸 발견할 때 씁쓸함이 밀려온다.


고부갈등에서 벗어나게 된 것도, 물론 서로 간의 대화로 오해를 푼 것도 있지만, 나 스스로 마음을 고쳐먹은 게 가장 핵심이었다. 어머님이 손주와 아들을 사랑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라고 받아들였고, 며느리는 절대 딸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시작된 시어머님과의 동거는 단 몇 달 뿐일지라도 불편하고 걱정이 많이 되었던 건 어쩔 수 없었다.




우리 집으로 이사한 첫날부터 '우리'사이는 삐걱거렸다. 상황은 대충 이러하였다. 내가 저녁식사 준비로 한창 부산할 때 아이들이 느닷없이 유산균 음료를 달라며 떼쓰는 것이었다. 평소 잘 떼쓰지 않는 아이들이기도 하고 저녁 먹기 전이라 눈치껏 음료수를 달라고 하지 않는 아이들인데 유독 그날따라, '하필이면' 할머니가 계실 때 떼를 쓰니 순간 나도 모르게 욱하면서 목소리가 커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은 내 말엔 아랑곳하지 않고 할머니 손을 잡고는 냉장고 문을 열어 기어코 유산균 음료를 꺼내 달라고 했다. 어머님은 내 기분은 헤아리지 않고 아이들이 원하는 대로 유산균 음료를 하나씩 꺼내어 손수 빨대도 꽂아 주셨다. 그 순간 어머님 뒤통수에 대고 나도 모르게 세상에서 제일 못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나의 악마 같은 그 표정을 남편이 보고는 흠칫 놀라면서 어색해했지만, 나는 남편에게 속마음을 들켰다는 부끄러움과 창피함보다는 그 순간 남편이고 시어머님이고 자식들이고 할 것 없이 다 꼴 보기 싫었고 다들 너무나 미웠다.


그렇게 울며 겨자 먹기로 시작된 시어머니와의 동거는 겉으로는 평온해 보이나 내 마음속은 태풍이 불어오고 비바람이 몰아치듯 위태로웠다.

어찌어찌 뒤죽박죽 정신없이 저녁을 보내고 어머님이 우리 집으로 이사 온 첫날 하루를 마무리하며 잠자리에 들려는 데, 문득 저녁식사 전 어머님 뒤통수에 대고 악마 표정을 지은 내 얼굴을 본 남편의 난감한 모습이 떠올라 내 마음이 너무나도 불편해졌다.


'그때 내가 심했었나? 그냥 저녁 먹기 전이라도 유산균 음료를 줬으면 아무 문제없었는데, 그게 무슨 큰 문제라고... 이제는 어머님이 무슨 말을 해도 너그럽게 받아들이고 이해해야지. 같이 사는 몇 달 동안 마음 편히 지내시게 해 드려야겠다.'


라고 속으로 생각했다.

예전에 고부갈등을 겪고 화해한 경험이 있기에 금방 마음을 고쳐먹을 수 있었다.


하지만 위와 같이 마음을 굳게 먹어도 나 역시 평범한 사람인지라 매일매일 똑같은 마음을 가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리하여, 이번에도 나만의 현자인 엄마께 고민상담을 하고 조언을 듣고자 그렇게 부랴부랴 전화를 했던 것이었다. 엄마는 내 마음속 깊은 곳에서 진정으로 듣고 싶어 했던 말을 명쾌하게 해 주셨고, 나는 그날 이후로 다시 마음을 고쳐먹고 더더욱 마음 수양을 하여 어머님을 진심으로 대하게 되었다.

물론 이따금씩 내 마음속 악마들이 스멀스멀 기어 나오려고 할 때도 있지만, 그럴 때마다 어머님에 대한 '감사'했던 일들에 대해서만 집중하려고 노력한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이제 2주 뒤면 어머님은 새 집으로 이사를 가신다.

남은 2주 동안 어머님께 좋은 추억, 좋은 기억만 안겨 드릴 수 있도록 더 노력해야겠다 생각이 든다.


나는 오늘도 어머님께 해드릴 새로운 반찬 재료를 사러 집을 나선다. 그리고 엄마께 전화드려 안부인사를 전하면서 나는 속으로 생각한다.


'나만의 '현자'인 울 엄마의 말은 항상 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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