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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밝을 여름 Oct 14. 2024

승부욕이 강한 아이


승부욕이야, 웬만하면 다 있겠지만, 우리 대한이는 정말이지 대단한 승부욕의 소유자다.


아기 때부터 그랬다. 무슨 놀이를 하든 무조건 이겨야 했다.

지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이기지 않으면 이길 때까지 해야 직성이 풀리는 아이였다. 지면 눈물 한 바가지는 기본이고 성난 마음이 풀리지 않아 바닥에 뒹굴며 포효했다. 다행히 떼쓰며 버릇없이 구는 아이는 아니어서 내가 단호하게 한 마디 하면 멈추었다.


그 당시 초보엄마인 나는 그런 대한이가 조금 걱정이 되었다.

나중에 어린이집에 다니게 되었을 때 지나친 승부욕이 친구들과의 관계와 생활에 지장이 있을 것 같아서였다.


그래서 나는 대한이와 같이 놀 때도 무조건 이기게 해주지 않았다. 지는 상황도 받아들였으면 했다. 그래서 엄마 아들사이라도 놀이를 할 때나 게임을 할 땐, 정정당당하게를 늘 강조했다.

그렇다 보니, 나는 대한이와 놀 때 당연히 내가 이길 때가 많았고, 우리의 놀이 결말은 늘 새드 엔딩이었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니, 나 또한 승부욕이 있는 사람이라는 걸 인정하게 된다. 표면적으로는 대한이의 앞으로의 사회생활을 염려했다 하지만, 사실상 나도 지고 싶지 않았던 마음이 더 컸던 것이다. 지금 돌이켜 보면 나도 참 못났었다. 어린 아들 이겨보려고 악착같이 한 걸 보면.


3~4살 정도였을 땐, 대한이가 학습놀이를 좋아해서, 공룡카드, 나라수도카드로 많이 놀았다. 처음에는 카드 하나하나에 적힌 이름과 설명에 대해 얘기해 주며 놀았는데, 하도 많이 보다 보니 어느새 대한이는 그 카드에 나오는 공룡이름이며 나라수도 이름을 술술 다 외우고 있었다.


다 외우는 대한이와는 다르게 (내가 읽어줌에도 불구하고) 나는 다 외우지 못했기에 나는 계속 반복해서 카드 하나하나에 적힌 설명을 읽고 특징 얘기하는 게 좋았다.


하지만 대한이는 시시해하고 재미없어했다. 그러더니 대뜸 대결을 하자고 했다. 뭐든지 주도적으로 자기 의견을 내세우는 아이라 게임방법도 아주 적극적으로 설명했다.


카드를 우선 반반 나눈 다음, 본인 기준으로 센 (?) 카드를 한 장씩 내서 왜 강한 지, 왜 센지 설명하는 게임이었는데, 예를 들어, 나라수도카드로 이 게임을 할 때, 대한이는 아이슬란드를 내고, 내가 대한민국을 냈으면 센(강한) 이유를 설명해서 상대방을 설득시켜야 했다. 대한이는 아이슬란드는 여전히 화산이 폭발하는 곳이니 이 카드가 세다고 했고, 나는 대한민국이 센 이유를 대한이의 눈높이에 맞게 설명을 하지 못했다. 이렇게 되면 대한이가 이기게 되고, 상대방의 카드를 가져가 최종적으로 가진 카드가 많은 사람이 이기게 되는 게임이었다.


이 게임은 공룡카드, 한자카드 등 웬만한 카드놀이에는 전부 다 적용가능해 우리는 꽤 오랫동안 이렇게 놀았다.


대한이가 점점 크면서부터는 몸으로 놀기를 좋아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대한이의 놀이상대는 남편한테로 바통터치가 되었다.


남편은 대한이와 주로 공놀이와 씨름, 팔씨름을 많이 했다.

남편도 승부욕이 대단한 사람이라, 대한이와 몸으로 하는 놀이에서는 두 사람 사이에 늘 보이지 않는 불꽃이 튀었다.

 

승부욕이 강한 아빠와 승부욕이 더 더 강한 아들.

두 사람이 몸으로 노는 놀이는 안 보는 편이 낫다 싶을 정도로 늘 불안 불안했다.


첫 시작은 늘 웃음꽃이 피었지만, 시간이 가면 갈수록, 그리고 놀이의 끝이 보이지 않을수록 두 사람 사이는 씩씩대는 거친 숨소리와 미묘한 분위기만 흐를 뿐이었다.


늘 중재는 나의 몫이었다. 내가 중간에서 커트를 해줘야 놀이는 겨우 끝이 났다.


어느 날은 대한이가 잠자기 전, 남편에게 침대에서 격투기를 하자고 했다. 어디서 본 건지, 격투기 경기처럼 남편이 자신을 못 움직이게 하면 자기가 어떻게는 빠져나오겠다는 것이었다.


대한이의 말에 남편은 수긍을 했고, 어두운 방 침대에서 두 사람만의 격투기가 시작되었다.

시작은 늘 그렇듯, 장난스러운 말들과 웃음으로 시작되었다. 그러다 점점 강도가 세지고, 대한이가 힘을 쓰면 쓸수록 남편도 지지 않겠다는 신념으로 대한이를 놓아주지 않았다.


잘 보이지는 않지만, 두 사람의 격렬한 대결이 피부로 느껴졌다.

잘 시간이라, 남편도 눈치껏 하면 될 텐데, 내가 생각했을 때 대한이가 생각보다 힘이 셌나 보다. 아빠로서의 권위(?)를 지키고 싶었는지, 남편은 자신의 모든 에너지와 힘을 써서 대한이와의 대결에서 지지 않으려고 애쓴 것 같다. 대단한 승부욕의 소유자인 대한이는 절대로 질 생각이 없었고, 두 사람은 한참 동안 그렇게 보이지 않는 힘의 대결을 했다.


씩씩대는 거친 숨소리와 진지해진 분위기에, 난 심상찮은 느낌이 들어, 팔을 펼쳐 대한이의 몸을 만지니 온몸이 땀에 절여있었다. 비유하자면 밖에 소나기를 맞은 것 같았다.

이 정도면 심각하다는 생각이 들어, 나는 중재에 나섰고, 남편한테 이제 그만하라고 했다.


남편도 그제야 정신이 드는지, 대한이가 이겼다는 말로 마무리를 지으려고 했다.

그러자 느닷없는 대한이의 울먹임이 시작되었다.


"이렇게 일부러 져주는 게 더 싫어! 내가 이길 수 있는데!"


대한이의 말에 난 또 한 번 놀랐다.

승부욕이 강한 건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그날 이후 난 남편한테 조용히 부탁했다.

대한이랑 놀 때, 제발 승부욕을 자극하는 말은 하지 말아 달라고.


승부욕이 강한 아들과 놀 때면 몸도 몸이지만, 멘털 쪽으로 지칠 때가 많다. 승부욕이 강한 걸 알기도 하고, 아들이니까 져줄 때가 많지만, 나도 사람인지라 매번 그렇게 져주면 재미가 없고, 게임을 할 때, 놀이를 할 때 진심으로 하지 못하게 된다. 부모가 영혼 없이 하는지, 아니면 엄마아빠도 재미있어서 하는지를 아이들은 희한하게 잘 알아차리니, 승부욕이 강한 아들과 놀 때는 이런 부분이 특히 어렵다.


승부욕이 아주 강한 아들을 키우면서 느낀 게 있다.

놀이를 할 때, 무조건 일부러 져주면 안 된다는 것을.

진심으로 하다가 적당한 때에 져줘야 하는 것을. (적당한 때가 가장 어렵긴 하지만)

명심해야 할 것은 놀이의 결과는 꼭 아들이 이기게 해야 한다는 것을.

괜히 부모가 이겼다간, "다시! 다시!" 무한반복해야 될 수도 있다는 것을.

그렇게 되면 결론은 늘 새드 엔딩이 된다는 것을.


승부욕이 강한 아들을 키우면서 내가 성장한 부분이 있다면 몰랐던 나 자신에 대해 알게 되었다는 점이다. 난 운동신경도 없고 운동을 해본 적도 없어서 승부욕이라는 말은 나와는 어울리지 않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누구를 이겨보려는 생각조차 해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인지, 뭘 해도 잘하고 싶은 마음도 없었던 것 같다. 하지만 승부욕이 강한 아들을 키우면서, 또 아들과 같이 놀면서 나도 승부욕이 있다는 걸 알게 되고, 그래서 나도 어느새 아들처럼(물론 아들만큼은 아니지만) 승부욕이 강해지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어렸을 땐 엄마한테서 애살스럽지 못하다는 말을 늘 듣고 자랐는데, 지금의 나는 무슨 일이든 잘하려고 굉장히 최선을 다해 노력하는 모습이라 예전과는 많이 달라졌다는 걸 스스로도 느낄 수 있다.


승부욕이 상대방과 경쟁해서 이기려고 하는 욕심이라는 뜻이라, 어떻게 보면 조금은 부정적인 의미일 수 있는데, 아들을 키우면서 나는 승부욕의 의미를 좀 다르게 받아들이게 되었다. 승부욕=잘하려는 마음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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