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는 대한이가 3살 때인가, 한창 궁금한 게 많아 말이 많던 그즈음 책의 내용을 술술 얘기하는 거 보고 엄마가 한 말이다.
후자는 최근에 시어머니와 차 타고 어디 가다가 대한이가 어떤 내용에 대해 모르는 거 없이 어른스럽게 술술 얘기하는 걸 보고 나에게 한 말이다.
대한이에 대한 주변 반응에 대해 난 늘 이런 식으로 대응한다.
"에이~ 영재, 천재 그 정도는 아니고, 똑똑한 편이죠."
모든 부모가 자기 자식은 천재라고 생각하듯, 나에게도 그런 시절이 있었다.
말로 설명하기는 힘들지만, 분명 아기인데, 눈빛을 보면 뭔가 다 아는 그런 아기가 바로 대한이었다.
말 문이 트이기 시작한 두 돌 무렵부터, 정말 대한이의 입은 쉬지 않았다. 끊임없이 묻고, 쉴 새 없이 말을 했다.
자식들은 부모보다 진화된 버전이니, 나보다는 대한이가 100배 말이 많아서 피곤하거나 지칠 데도 많았지만, 나도 어렸을 때 말이 많은 편이어서 그런 대한이를 이해했다.
3살 때, 웬만한 동요는 다 외웠고, 그러다가 '아빠 힘내세요'라는 동요에 아빠라는 단어대신 다른 단어로 바꿔 직접 개사까지 하며 불러댔다. 말을 하지 않으면 동요라도 불러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었다.
동화책을 읽어주면, 그새 책 내용을 모조리 다 외워 나에게 다시 설명해주곤 했다.
남자아이들은 보통 로봇, 자동차, 공룡 중에서 하나를 좋아한다고 하는데, 대한이는 셋 다 좋아했다.
모르는 자동차 이름이 없을 정도였고, 그 어려운 공룡이름도 척척 외워댔다. 마트에 가면 샘플로 만지고 놀 수 있게 해 놓은 로봇도 처음이지만 한 번에 변신시키고 완성시켰다.
퍼즐도 순식간에 다 완성해, 난 거의 매일 다이소에 가서 새로운 퍼즐을 사줘야 했다.
4살, 5살 때 즈음엔, 내가 어렸을 때 큰언니한테서 배웠던 나라수도 노래를 대한이한테 알려줬는데, 단숨에 다 외우는 바람에 나는 다른 나라수도 노래를 만들어야 했다.
내가 만들면 대한이는 곧바로 또 외우고, 그러면 나는 또다시 노래를 만들고, 이렇게 계속 반복하다 보니, 웬만한 나라 수도는 다 외우고 알게 되었다.
5살 때 한글도 무난하게 읽기 시작하니, 아이들 보는 책도 혼자 스스로 읽을 수 있게 되었다.
아이들은 보통 책을 읽으면 로봇처럼 어색하게 더듬더듬 읽게 마련인데, 대한이는 그러지 않았다. 단어 하나하나씩 끊어 읽지 않고, 한 문장을 자연스레 읽어 내려갔다. 나는 다른 무엇보다 책을 그렇게 읽는 게 참 신기했다.
그리고 어린이집을 시작으로 대한이가 본격적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한 5살 때부터 대한이를 만나본 사람들은 다들 하나같이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대한이 똑똑한 편이죠? 다 잘하던데요?"
그 당시 그 어떤 누구보다 대한이를 잘 파악하고 있다고 자부하던 나였기에, 사람들의 평가는 대한이에 대한 나의 기대치를 더 높이 올려줬다.
그렇게 나 역시 다른 부모들과 마찬가지로 내 자식은 천재라고 믿고 살았는데, 나의 아이 대한이를 객관화하게 된 순간이 어느 날 나에게 찾아왔다.
대한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집에서 부수적으로 학습할 수 있는 학습기를 하게 되었는데, 관리해 주던 대한이 담당 선생님이 대한이가 똑똑하고 잘한다며, 더 심화학습을 할 수 있는 그룹에 대한이를 초대해 주겠다고 했다. 선생님의 제안에 나는 당연히 수긍했고, 그렇게 잘하는 대한이 또래 애들끼리 화상수업을 하게 되었다.
대략 열댓 명은 되었던 것 같은데, 수업이 진행되는 동안 다른 아이들은 아주 적극적이었고, 선생님의 어려운 질문에도 척척 대답했다. 반면에 우리 대한이는 수업 내내 꿀 먹은 벙어리였다. 평소에는 그렇게 말 많은 아들이 거기에서는 말 한번 제대로 못하고 기죽고 풀 죽은 모습을 보니, 짠한 마음까지 들었다.
화상수업이 끝나고 방에서 나온 대한이는 너무 어렵다고 도저히 못하겠다고 했다.
그런 대한이를 보며, 그리고 화상수업에 참여했던 다른 아이들을 보며, 그날 나는 많은 생각을 했다.
'정말 똑똑한 아이들은 많구나.'
'대한이는 영재, 천재, 신동까지는 아니고, 똑똑한 편이구나.'
라고 말이다.
왜 그렇게 지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대한이 태명이 '똑똑이'였다.
태명대로 가는 것 같아 신기할 때가 많다.
아이가 똑똑하면 부모로서는 당연히 흐뭇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똑똑하면 좋고 유리한 점이 많다.
일단 한 번 들은 내용은 잘 잊어버리지 않고, 오래 기억하며, 하나를 알려주면 둘 아니 그 이상을 안다. 습득력도 뛰어나고 집중력 또한 좋다.
하지만 지금 현재 똑똑하다고 해서 나중에도 계속 똑똑하다는 법은 없고, 똑똑하다고 해서 반드시 공부를 잘한다는 보장도 없으며, 똑똑하다고 해서 대한이가 나중에 잘 먹고 잘 산다는 보장도 없다.
자식이 똑똑하면 그에 따른 부모의 기대치도 높아지기에 중심을 잡고 균형을 잡으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아이의 똑똑한 머리를 꾸준히 잘 계발할 수 있도록 옆에서 지지하고 도와줘야 되는 것도 부모의 역할인 것 같다.
주변에서 사람들이 자주 말하니, 대한이도 자신이 똑똑하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어느 날은 나를 보며 이렇게 말했다.
"선생님이 나보고 똑똑하다고 칭찬해 줬어."
대한이의 말에, 기분 너무 좋았겠다며 대답하니, 대한이는 아니라고 했다.
"그 말이 더 부담스러워. 더 잘해야 되잖아."
마냥 어린아이인 줄 알았는데, 대한이는 생각했던 것보다 많이 성숙해져 있었다.
앞으로는 더 해야 할 공부도 많을 것이고, 잘하면 잘할수록 주변 사람들의 기대감도 높아질 테니, 그 기대감이 어쩌면 대한이한테는 부담으로 다가올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인 나라도 대한이한테 부담을 덜 줘야겠다고 생각했다.
아들이 똑똑해서 내가 성장한 점이 있다면, 나 역시 똑똑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똑똑한 아들은 질문이 많다. 아기 때부터 그랬다. 아들의 질문에 성의 없이 "몰라!" 또는 "네가 알아서 찾아봐."라고 대답하는 부모는 되고 싶지 않아서, 대한이가 질문할 때마다 나는 늘 최선을 다해 대답해 줬다. 내가 모르는 내용이면 찾아서라도 알려줬다. 그렇다 보니, 나도 점점 똑똑해지고, 상식이 풍부해졌다. 스스로도 느낄 만큼.
어쩔 땐 학창 시절에 이렇게 공부했음 서울대도 갔겠다며 우스갯소리도 하게 된다. 그만큼 스스로에게 자신감이 생겼다는 말이다.
얼마 전, 딸아이가 나에게 준 스케치북에는 예쁘게 그려진 나의 모습과 이런 글이 적혀있었다.
"엄마는 예쁘고 똑똑해요! 아는 게 많아요!"
그 말에 난 속으로 엄청 감동받았다. 살다 살다 똑똑하다는 말은 내 평생 처음이었다. 그것도 아들과 딸에게서 이런 말을 듣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그 어떤 말보다 나는 똑똑하다는 이 말이 참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