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우려고만 하면 울고불고, 안 자려고 하는 대한이를 보며, 친정 엄마가 기가 차서 나에게 한말이다.
정확히 엄마한테서 저 말을 두 번 들었다.
안 자는 아이.
좀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잠을 안 좋아하는 아이, 안 자고 싶은 아이가 맞겠다.
대한이는 정말 지독히도 잠을 안 자려고 했다. 지독하다는 표현이 딱 맞는 표현이었다.
나는 잠이 많고, 많이 자고, 또 잠이 인생에서 중요한 사람인데, 대한이는 아주 아주 아기 때부터 안 자려고 했다. 잠이 아예 없는 건 아닌 것 같은데, 이상하게도 자려고 하지 않았다. 신생아 때를 제외하고는 거의 그랬던 것 같다.
대한이가 생후 68일 즈음, 고열로 응급실에 달려간 적이 있다. 요로감염이 급성 신우신염으로 진행되어 일주일을 병원에 입원했었다. 그때 병실이 다인실이어서 우리말고도 대여섯 명의 아기와 엄마들이 있었다. 모두 다른 상황으로 입원했지만 이상하게 나 빼고는 다들 자연스럽고 여유로워 보였다. 아기를 낳은 지 70일도 안된 어리바리 생초보 엄마의 눈엔 적어도 그렇게 보였다.
대한이가 가장 어리긴 했어도 다른 아기들도 비슷비슷했던 걸로 기억하는데, 아픈 아기들이어서 그런 건지, 아니면 원래 기질이 순한 아기들이어서 그런 건지, 그 병실에서 대한이를 제외한 다른 아기들은 하루종일 조용히 잠만 잤다. 우는 소리 한번 들리지 않는 병실이라, 나는 이게 정상인 건지, 아니면 비정상적인 건지 구분이 안되었다.
반면에, 우리 대한이는 그 병실에서 요즘말로 빌런이었다. 낮에도 울고, 밤에도 울고, 쉬지 않고 계속해서 울었다. 잠도 누워서 자는 법이 없었고, 품에서 재웠다가 침대에 내려놓음 그 즉시 깨서는 그렇게도 울어댔다. 누워서는 일절 안 자려고 하니, 낮에도 계속 안고 재워야 했다. 그나마 낮에는 울어도 사람들이 활동하는 시간이니까 이해해 줘서 나도 눈치가 덜 보이는데, 문제는 밤이 되면 모든 병실이, 병원이 조용해지니 대한이가 울기라도 할까 봐 눈치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게다가 침대에 등을 대고 누워서 안 자려고 하니 밤에도 계속 안고 재워야 했다. 안고 있음 그나마 덜 울어서 다행이지만, 나도 아직 몸조리가 필요한 몸인 데다 잠을 자야 하는데 제대로 못 자니 정말 죽을 맛이었다.
나는 그렇게 병원에서의 일주일을 밤만 되면, 조용한 병실에서 나와, 한 손은 대한이 손등에 놓은 주사랑 연결된 링거 스탠드를 끌고, 다른 한 손은 대한이를 안고 사람들이 없는 구석지고 어두운 곳으로 가야 했다.
나는 병원에서의 일주일을 지옥이라고 표현했다. 그냥 몸과 마음이 너무 힘드니 저절로 입에서 나왔다. 지금 생각해 보면 왜 1인실로 옮기지 않았는지, 지옥이라고 할 정도로 힘들었으면서 돈 때문에, 돈이 아까워서 다인실 병실을 고집했던 내가 한심스럽기까지 하다.
병원에서의 지옥 같은 일주일을 보내고 퇴원하는 날, 난 속으로 환호했다. 이제 살 것 같았다. 아이가 울어도, 안 자도 내 집에서는 다 괜찮을 것 같았다.
집으로 와서 며칠은 좋았다. 병원에서의 힘들었던 기억 때문인지, 대한이가 안 자려고 해도 나름 견딜만했고, 안아서 재웠다가 바닥에 눕히면 곧바로 깰지라도 병원 때보다는 나았다.
하지만 그런 생활이 계속해서 반복되면서 내 몸과 마음은 많이 지쳐갔다. 피폐해졌다는 표현이 맞을 것 같다.
아기한테는 잠이 가장 중요할 텐데, 그 중요한 잠을 대한이는 못 자고, 안 자니, 모든 게 다 내 탓 같았다. 내가 아기를 잘 돌보지 못해서 그런 것 같아 스스로 많이 자책했다. 내 아이하나 제대로 컨트롤 못하는 엄마인 것 같아 엄마로서 자질이 없는 것 같은 느낌까지 들었다. 자괴감에 빠졌고, 그런 나날들이 꽤 오래 지속되었다.
그러다가 대한이의 잠 부분에 대해서는 나도 어느 정도 포기하게 되었다. 주변에서는 울어도 그냥 누워서 자게 내버려 둬야 한다고 하지만, 그때 나는 생초보 엄마이기도 했고, 그래서 육아가 서툴렀고, 아이를 그냥 울게 내버려 두기에는 내 마음이 그다지 모질지 못했다. 그래서 나는 그냥 내 방식대로 육아하기로 마음먹었고, 내 스타일대로 아기 대한이를 재우기 시작했다.
내가 이용한 방법은 바로 아기띠였다. 대한이가 목을 가누기 시작하고부터 아기띠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남들보다는 꽤 일찍 아기띠를 시작한 편이었다. 그냥 안고 있기에는 대한이가 너무 돌덩이(대한이한테는 미안하지만)처럼 무거워서 아기띠를 할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대한이는 아기띠에는 잘 있었다. 아기띠를 하면 곧잘 잤고, 낮잠도 제때제때 잘 자 줬다. 그렇게 나는 대한이를 낳았지만, 뱃속에 있을 때랑 다름없이 대한이와 아기띠와 한 몸이 되어 생활했다.
두 돌이 지났을 무렵부터는 아기띠에서도 해방되었다. 더 무거워져서 아기띠를 할 수도 없었기도 하지만, 말귀를 알아듣고, 한창 말문이 트여 조잘조잘거리니 뭔가 이제야 소통이 되는 그런 느낌이 들어 육아가 한결 편해졌다.
하지만, 대한이의 잠 부분은 해결이 안 된 채 그대로였다. 아기 때처럼 더 이상 막무가내로 울지는 않게 되어 다행이었지만, 밤만 되면 안 자려고 하니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었다. 그래서 나는 밤만 되면 예민모드가 되었다.
대한이 기분 상하지 않게 비위도 맞춰보고, 또 성질도 내보고, 내 능력 안에서 할 수 있는 건 다 해보았지만, 아무 소용없었다. 그리고 여담이지만, 어머님 말씀으로 대한이 아빠가 어렸을 때 그렇게도 안 자려고 했었다고, 그래서 대한이 아빠 이모들이 왜 그렇게 안 자냐고 혼을 다 냈다고 한 적이 있다.
아무튼 말귀는 하나둘 알아듣기 시작하니, 밤이 되면 자야 되는 건 대한이 스스로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잠은 자기 싫으니 대한이는 최대한 잠을 늦출 수 있는 방법을 어떻게든 스스로 찾아야 했다. 그렇게 대한이는 잠을 안 자기 위해 책을 선택했다. 밤마다 안 자려고 책을 한 보따리 들고 와서는 읽어달라고 했다. 낮에 책 읽어준다고 하면 그렇게도 싫다고 난리 치면서, 모두 다 잠이 든 밤에는 책 읽어달라고 난리 쳤다. 딱 한 권만 읽고 자자고 하면, 꼭 두세 권은 더 읽어달라고 보채곤 했다. 나로서는 이렇게라도 책을 읽으면 좋으니 대한이가 원하는 대로 해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책을 다 읽고 나면 대한이는 약속한 대로 꿈나라로 여행을 떠났다.
이렇게라도 스스로 알아서 자주니 그것만이라도 다행이고 감사하다고 생각했다.
대한이가 안 자기 위해, 아니 조금이라도 더 늦게 자기 위해 선택한 '밤에 책 읽기'는 결과적으로 우리 두 사람에게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다주었다.
남들 다 자는 시간에 읽은 책들 덕분에 대한이와 나는 야금야금 지식이 쌓였고 우리 두 사람 머릿속에 차곡차곡 저장되었다. 안 자는 대한이덕분에 생긴 좋은 점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그때부터 하던 습관이 꽤 오랫동안 잠자기 전 책 읽기로 이어졌고, 자연스럽게 독서습관을 기를 수 있게 되었다. 다른 사람들은 일부러 독서습관을 기르기 위해 잠자기 전 독서를 한다고 하지만, 나의 경우는 어쩔 수 없이 시작된 계기가 결과적으로는 좋은 결과를 낳게 된 것이다.
나의 육아의 힘든 점 100프로가 대한이의 잠 때문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참 아이러니하게도 대한이의 잠 덕분에 엄마로서 많이 성장할 수 있었다. 안 자려고 하는 대한이 덕분에, 또 호기심이 많은 대한이 덕분에 여러 분야의 다양한 책들을 읽을 수 있었다. 동물이면 동물, 식물이면 식물, 사람이면 사람 등등 내가 몰랐던 부분들에 대해 많이 알게 되었고, 세상을 보는 눈도 넓어졌다.
그래서 난 대한이한테 많이 감사하고 고맙다. 대한이로 인해, 엄마로서 뿐만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 많이 성장하고 배우고 있기에 대한이한테 늘 고마운 마음이다.
마지막으로 웃긴 얘기 하나만 하고 마무리하려고 한다.
얼마 전, 엄마한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동서네 애들은 둘 다 누워서 자더라고요."
아기 때부터 누워서 그것도 혼자서 자는 동서네 연년생 아들 둘이 너무 신기해서, 연년생 둘과 쌍둥이까지 총 사 남매를 키운 엄마한테 얘기했더니, 엄마의 대답은 이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