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는 대호 엄마로 딱 안성맞춤이다! 일상이 코미디네~ 글 한번 써봐라. 크크.”
나를 항상 지지해 주고, 응원해 주고, 늘 내 편이 되어주는 나의 가장 친한 친구들이자 친언니들이 나에게 자주 하는 말이다.
대호와의 여러 에피소드를 언니들에게 이야기할 때마다 언니들은 깔깔깔 웃는다.
대호의 성향도, 나의 성향도 너무나 잘 알기에, 우리 둘의 상황이 그림 그려지듯 눈에 선해서 더 우스운가 보다.
나는 10년째 대호 엄마로 살고 있다.
참으로 행복하고, 매일매일이 감사하다.
대호를 키우며 조금씩 성장하는 나의 모습을 발견한다. 내 인생은 대호를 낳기 전과 낳은 후로 나눌 수 있을 정도로, 좋은 방향으로 많이 변했고, 성장했다.
“아이 키우기 힘들지 않냐”는 질문을 받으면,
나는 1초도 망설이지 않고 대답할 수 있다.
“아니요! 전혀요. 힘들지 않아요. 오히려 감사하죠.”
많은 엄마들의 공감을 받기 어려운 말일지 몰라도, 내 생각은 확고하다. 나는 진심으로, 대호 엄마여서 행복하다.
사실 나도 육아가 힘들었던 시절이 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대호가 3살이 될 때까지가 힘들었다.
뭐가 힘들었냐고 묻는다면, 이 역시 주저 없이 말할 수 있다.
“아기가 잠을 안 자려고 해서요.”
나는 원래 잠도 많고, 또 잘 자고, 게다가 자는 걸 좋아한다.
오죽하면 학창 시절, 아침마다 나를 깨우기 힘들어한 엄마가 신경질 내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잠 못 자서 죽은 귀신이 들러붙었나? 무슨 잠을 저렇게나 잘꼬!”
잠이 없는 엄마는 잠이 많은 나를 이해하지 못하셨다.
잠이 많은 사람은 게으르고 부지런하지 않다고 늘 말씀하셨고, “잠 많은 아빠를 닮아서 그렇다”는 말도 빠지지 않으셨다.
엄마의 그 소리를 들으면, 그땐 상황이 심각하다는 뜻이었기에 즉시 일어나야 했다. 아니, 저절로 눈이 번쩍 떠졌다.
결혼 전, 일을 할 때도 새벽에 일어나 출근하는 게 너무 괴롭고 끔찍해서 조금이라도 더 자려고 전날 저녁 7시부터 잠들곤 했던 사람이 바로 나다. 그만큼 나에게 잠은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그래서 잠을 안 자려는 아기 대호를 키우는 일이 정말 힘들었다. 그땐 나도 초보 엄마라 모든 게 어설프고 서툴렀다. 내 아기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었기에 더더욱 힘들었다.
아기가 우는 이유는 기저귀, 배고픔, 졸림, 아픔이라고는 하지만 막상 우리 아기가 울면 그 이유를 전혀 알 수 없었다.
분유나 모유를 정량만큼 다 먹었는데도 입맛을 다시는 이유도 몰랐다. 다른 아기들은 깃털처럼 가볍다는데, 왜 우리 아기는 100일도 안 돼서 돌덩이처럼 무거운지 그 이유도 알 수 없었다.
무엇보다 아기가 왜 그렇게 안 자려고 하는지를 도무지 몰랐다. 아기 등에는 센서가 있다는 말도 있지만, 우리 대호는 정말 심했다. 내려놓는 순간 바로 깨어버리니,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었다.
아기가 너무 어릴 땐 아기띠도 못 하니, 돌덩이처럼 무거운 아기를 하루 종일 안고 있어야 했다. (정확히 내 기억으로는, 대호가 생후 68일쯤에 이미 체중이 7kg이 넘었었다.)
내 몸도 연체동물처럼 흐물흐물했는데, 그런 몸으로 무거운 아기를 계속 안고 있으니 정말 힘들고 괴로웠다.
주변에서는 유모차에 태우면 잘 있을 거라며, 100일도 안 된 아기니까 그냥 눕히면 되지 않겠냐고 말했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우리 대호는 유모차에 태우기만 하면 고래고래 울었다. 한번 울음이 시작되면 멈출 줄을 몰랐고, 엄마인 내가 달래도 소용이 없었다. 스스로 울음을 멈춰야 하는 그런 아기였다.
시간이 지나면서 알게 된 사실이 있다. 우리 대호는 순한 기질이 아니었고, 민감한 기질의 아이였다는 것. 그리고 더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대호 아빠가 아기 때 엄청 예민했다고 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엉켜 있던 실타래가 풀리는 기분이 들었다. 마지막 한 조각의 퍼즐이 맞춰진 느낌이었다.
그리고 ‘유전자의 힘은 정말 크구나’ 하는 생각도 함께 들었다.
내 아이의 기질을 몰랐을 때는 늘 다른 아이들과 비교하며 왜 우리 아이만 이럴까 고민이 많았다. 다른 아이들은 잘 자고, 순하고, 쉽게 진정된다는데 왜 내 아이만 이렇게 지독하게 안 자려하는지 신세 한탄도 많이 했었다.
아이를 안 사랑하는 건 아니었다. 그 누구보다 사랑했지만, 힘들어하는 내 모습이 처량했고, 아무 죄 없는 아기에게 이런 감정을 느끼는 게 미안해 잠든 아이 머리를 쓰다듬으며 울기도 참 많이 울었다.
아이 나이 네 살. 낮잠에서 해방되고, 말귀도 알아듣게 되니 편해졌다. 무엇보다 밤잠을 규칙적으로 자주니 천국이 따로 없었다.
그리고 아이의 민감한 기질을 인정하고 받아들이자
모든 것이 훨씬 편해졌고, 평화로워졌다. 입버릇처럼 늘 하던 “별나다”라는 말 대신 “특별하다”라는 표현으로 바꿔 쓰기 시작했다.
보통 결혼·출산 후 전업주부로 살면 경력 단절이나 우울감, 상실감에 시달린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생각이 조금 다르다.
아이를 키우며 우여곡절도 많았지만, 그럼에도 나는 아이로 인해 매일매일 성장하고 있다. 아이에게서 많은 것을 배운다. 때 묻지 않은 순수한 아이의 말은 그 어떤 영화나 음악보다도 감동적이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만화에 나오는 그런 완벽한 엄마는 아니다. 우리 대호는 "페파피그 엄마처럼 화 안 내고 웃기만 했으면 좋겠다"며 말하지만, 현실 속 대호 엄마는 여느 엄마들과 다르지 않다. 화도 내고, 짜증도 낸다.
하지만 아이의 잘못이 아닌, 나의 감정으로 화를 냈을 땐 꼭 사과하고 반성한다. (사람은 망각의 동물이라, 매일 마음공부가 필요한 존재인 듯하다.)
나는 가끔 어떤 전문가들을 보면 참 대단하다고 느낀다. 그리고 나도 어떤 분야의 전문가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 ‘이 분야’만큼은 내가 전문가가 맞는 것 같다. 그건 바로 ‘대호’에 대한 전문가.
그 누구보다 우리 아들 대호를 잘 알고, 잘 이해한다고 자부한다. 그래서 민감한 기질의 아이와 예민함과는 거리가 먼 무딘 엄마의 웃프고 따뜻한 일상 에피소드들을 글로 써보려 한다.
대호와 나의 이야기.
우리의 기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