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과 책의 세계에 파고들면서 정우와 가까워졌다. 아니 가까워졌다는 말로는 우리 사이를 충분히 설명할 수 없다. 정우 이외의 아이들과 어울릴 수 없게 되었다. 지루하고 유치하고, 공유할 화제도 없었기 때문이다.
정우와는 나눌 수 있는 재미난 이야기 거리들이 무궁무진했다. 우리는 서로 자기가 가지고 있은 레코드 판을 카셋트 테이프에 녹음해 들려주기로 했다. 물론 우리 집 판 보다는 정우네 판을 녹음하는 경우가 훨씬 더 많았다.
학교가 끝나면 나는 정해진 코스처럼 일단 정우네부터 들렸다. 그곳은 음반만 우리 집 열 배가 넘는 것이 아니라 책도 열 배가 넘었다. 나는 어린이 책으로야 누구에게도 꿀리지 않을 정도의 장서를 자랑했지만, 정우네는 세로줄로 인쇄되고 한글과 한문이 절반씩인 어른 책이 많았다. 대학시절 낭만적이고 진취적인 지식인으로 살았던 정우 아버지 때문이다. 은행원에게 어울리지 않는 각종 인문·교양서적을 꽤 많이 보유하고 있었는데, 이게 오직 학교 공부만 열심히 해서 서울대학 간 우리 아버지와 다른 점이었다.
삼중당 문고, 삼성문화문고가 있었고, 유명한 정치가들의 회고록들도 있었다. 내 기억에 처칠, 이든, 드골, 루즈벨트, 아이젠하워, 아데나워, 장개석, 맥아더, 트루만, 후루시초프 이렇게 구성되어 있었다. 뭣도 모르고 니체를 집어 보기도 하고, 파우스트를 집어 보기도 했지만 다 집어 던졌다. 그러다 마침내 주황색 하드커버로 제본된 현대단편문학선집에 빠져들었다.
헤밍웨이, 오헨리, 하디, 모옴, 지이드, 사르트르, 까뮈, 톨스토이, 투르게네프, 체호프, 고골리, 헤세, 토마스 만, 루쉰, 모파상 등 작가 별로 그들의 대표적인 단편 소설들이 알차게 수록되어 있었다. 세로로 인쇄된 한글 반 한문 반은 기본에 심지어 2단으로 인쇄된 빽빽한 책들이었지만 우리는 그 책들을 정신없이 읽었다.
삼중당 문고도 두께가 얇아 자주 간택되었다. 이광수의‘무정’, 김동인의 ‘감자’, ‘배따라기’, ‘광염 소나타’, 김동리의 ‘무녀도’, ‘사반의 십자가’, 현진건의 ‘운수좋은 날’, ‘B사감과 러브레터’, 하근찬의 ‘흰 종이 수염’ 등 근현대 한국 문학 작품도 즐겨 읽었다. 그 시절 고등학생들의 추억 거리인 삼중당 문고를 국민학교 4학년 때 탐독했던 것을 보면 나나 정우나 어지간히 조숙했다.
특히 ‘광염 소나타’를 몇 번씩 다시 읽었다. 다만 정우는 “베토벤 이후 음악이 꽃이나 노래하고 계집이나 찬미한다”는 작품 속 음악평론가의 말에 동의할 수 없다며 펄펄 뛰었고, 그 펄펄 뛰는 마음을 악보로 옮긴다며 괴상한 연주를 하기도 했다.
책을 읽은 뒤끝은 작렬하는 창작욕이었다. 그래서 정우와 공동으로 소설을 썼다. 200자 원고지를 뭉터기로 사다 놓고 꽤 많이 썼는데, 작품 내용은 이제 기억 나지 않고 제목만 생각나는데, ‘2달러짜리 인간들’인가 그랬다. 사람은 단백질로 이루어졌는데, 그 단백질을 가격으로 환산하면 2달러 어치에 불과하다 이런 뜻을 가진 제목이다.
책을 읽거나 쓰다 보면 미우가 학교를 마치고 왔다. 그러면 피아노 방으로 장소를 옮겨 남매가 연습하는 것을 들었다. 하지만 내가 누릴 수 있는 시간의 한계가 있었기 때문에 나는 그들의 연습을 조금 밖에 즐기지 못했다.
정우는 내가 조금 밖에 못 있다 가는 걸 서운해 했다. 하지만 어머니의 매를 정우가 대신 맞아 줄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나는 반드시 정해진 시간 안에 집에 들어가야만 했다.
그러다 정우가 묘안을 생각했는데, 내가 다니는 피아노 학원에 자기도 등록하는 것이었다. 나는 정우가 피아노 학원에서 도대체 무엇을 더 배울 게 있을지 궁금했다.
나만 그렇게 생각한 게 아니었다. 원장 선생님까지 깜짝 놀랐으니 말이다.
“너 정말 여기 다닐 거니?”
이게 정우 이름을 듣고 원장 선생님이 던진 첫 마디였다.
“네.”
정우는 너무도 쉽게 대답했다.
“너 누나 이름이 권미우 맞지?”
“네.”
원장 선생님은 이 정우가 그 정우 맞는지 두번 세번 학인 했다.
나는 정우가 그렇게 유명한 아이인지 처음 알았다. 콩쿠르란 콩쿠르는 다 휩쓸고 다녔던 모양이다. 나이를 속이고 중·고등 부에 참가해 다른 학생들을 모두 꿀 먹은 벙어리로 만들었지만 부정 출전으로 실격 당한 적도 있었다고 한다.
“일반부에 나갔어도 아무도 당해내지 못했을 걸?”
이게 원장 선생님의 말이었다.
정우가 이 학원에 다닌다는 게 원장 입장에서는 무척 도움이 되었다. 덕분에 건방진 눈빛을 하고 있는 계집 아이들을 데리고 온 아줌마들이 줄을 이어 학원으로 찾아왔으니 말이다.
정우는 실제로 원장님의 레슨을 열심히 받았다.
“그때 이미 디누 실력이 나보다 나았어.”
그 시절을 회상하며 원장님이 한 말이다.
“다만 아직 어려서 나보다 손이 작았을 뿐이야. 디누는 그 차이를 실력 차이로 착각했어. 그래서 나한테 조금이라도 배울 게 있다고 생각했던 거지. 그렇게 생각해 줬다니 참 고맙지 뭐야.”
그런데 당시 정우의 말은 달랐다.
“나 혼자 연주하면 잘한 건지 못한 건지 분간이 안 돼. 내가 하는 건 다 잘하는 것처럼 들리거든. 그래서 피아노 잘 아는 사람한테 들려줘야 해. 그래야 제대로 하는지 알 수 있거든.”
“더 배울 것도 없는 것 같은데 왜 학원에 다니고 레슨을 받느냐?” 라고 물어봤을 때 정우가 했던 도저히 국민 학생 같지 않았던 대답이었다.
그러더니 정우는 갑자기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보며 말했다. 눈망울에서 찰랑찰랑 하는 물방울 소리가 당장이라도 울려 퍼질 것 같았다.
“오석아. 부탁 하나.”
나는 어깨를 으쓱하면서 긍정적인 의사표시를 했다.
“앞으로 내 귀가 되어 줘.”
“뭐라고?”
나는 즉시 긍정적인 의사표시를 취소하고 손을 내 저었다.
“내가 어떻게? 난 겨우 체르니 40번 치는데?”
“그딴 거 상관없어.” 정우가 가볍게 입 꼬리를 위로 치켜 올리며 말했다. “넌 좋은 음악을 들으면 얼굴에 바로 티가 나거든.”
“정말?”
“응. 저번에 네가 크로이처 소나타 듣고 막 우는 거 보고 엄청 놀랬어. 기분 좋았어. 아프거나 화가 나서가 아니고 너무 좋아서 울었던 거잖아?”
“챙피하게.”
“앞으로 공연하기 전에 너한테 먼저 들려 줄 거야. 뭐 엉엉 울 필요는 없어. 그냥 듣고 생각나는 대로 말해줘.”
내 가슴의 솜털 하나하나까지 일어나 바르르 떠는 느낌이었다. 그 동안 내가 너무도 목말랐던 것. 그것은 바로 소중한 사람에게 인정받는 것이었다. 어머니한테 인정받고 아버지한테 인정받고 싶었다. “와. 우리 아들이 아주 잘했네.” 이 한 마디 듣고 싶어 공부했다.
그러나 어머니는 얼마나 잘했다 보다는 몇 등 했느냐를 더 중요하게 여겼다. 더구나 어머니의 등수는 1등, 2등만 존재했다. 그 이하로는 3등도 100등도 꼴등도 다 마찬가지로 꼴등에 불과했다.
1등을 해봐야 너무 당연하다는 듯이 “좋아.” 한 마디 들을 뿐이고, 2등을 하면 간신히 기준 선상, 꼴등에서 두 번째에 불과했다. 만약 3등이라도 하면 집에 들어가기가 두려웠다.
마침내 나를 인정해 주는 사람을 만났다. 그게 어머니가 아니라 하필이면 어릴 때부터 악의 축으로 각인되었던 정우였다는 것이 아이러니였다. 인생의 쓰디쓴 패러덕스라고 할까?
이때부터 정우는 나에게 가장 중요한 존재가 되었다. 정우 덕분에 음악과 사귀게 되었다. 정우 덕분에 즐겁게 피아노 연주하는 법을 알게 되었다. 정우 덕분에 체르니 몇 번 몇 번 하는 진도표가 아니라 좋은 작품들을 듣고 직접 연주해보는 기쁨을 누리게 되었다. 정우 덕분에 내가 음악을 사랑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정우의 귀가 되어주려면 그만한 실력을 쌓아 훌륭한 감식안을 키워야 했다. 하지만 우리 집에 있는 100장도 안 되는 음반으로는 어림 없는 일이었다.
마침 정우네 집에서 세광출판사에서 나온 ‘명곡 해설사전’이란 두툼한 책을 발견했다. 팔레스트리나의 ‘교황 마르첼로의 미사’를 필두로 슈톡하우젠의 ‘10개의 악기를 위한 대위법’에 이르기까지 시대별로 작곡가 별로 유명한 음악들에 대한 해설이 깨알보다 작은 글씨들로, 그것도 2단으로 빽빽하게 적혀있었다.
그게 왜 그렇게 재미있었는지 지금도 이해할 수 없지만 –하긴 그때 나는 백과사전을 ㄱ 항목부터 순서대로 읽는 도저히 이해하기 어려운 취미를 가지고 있기도 했다. 그때 제일 첫 항목이 가가린이었고 끝 항목이 히야신스였다- 그 책을 시대 순으로 몇 번을 반복해 가면서 읽었다.
다음은 그 책을 시험공부 하듯 체계적으로 정리했다. 16세기부터 20세기까지 서양 음악의 역사와 계보가 머리에 차곡차곡 쌓였다. 안톤 베베른이 2차 세계 대전 중 연합국의 오인사격으로 사망했다거나, 벨라 바르톡이 뉴욕 암센터에서 사망했다거나 등등, 국민학교 4학년하고는 영 어울리지 않는 시시콜콜한 음악사 뒷이야기까지 덩달아 들어갔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데, 단지 음악에 대한 해설만 읽는 것이 이렇게 즐거울 줄 몰랐다. 여행보다 여행 가이드북 읽는 것이 더 즐겁고 설레는 것과 비슷한 현상일 것이다.
나는 단지 해설만으로 들어 본적도 없던 그 곡들을 상상력을 발휘해 마음의 귀로 들었으며 실제 그 곡을 들을 수 있게 되기를 갈망했다. 그 곡들 중에는 정우네 집에 늘어선 수백 장의 레코드판에 없는 곡들도 수두룩했다.
우리는 서로 들어본 적 없는 명곡들을 표시하면서 이 곡이 어떤 종류의 음악일지 서로 생각을 교환했다. 하지만 아무리 상상하고 또 그 상상을 교환해도 직접 들어보지 않은 음악에 대해 말하는 것은 공허했다.
“좋은 생각이 있어.” 이 공허함이 채워지기 갈망하던 어느 날 정우가 잔뜩 상기된 얼굴로 말했다. “93.1 FM 라디오를 들어봤는데, 의외로 좋은 프로그램이 많아. 처음 들어보는 곡들도 많이 틀어주고, 또 악장 단위로 끊지 않고 전곡을 틀어 주기도 하고.”
“와, 그래? 그거 재미있겠다. 날마다 들어야겠다.”
“그래서 말인데, 그냥 듣고 지나가면 아까우니까, 이 책에는 나오는 데 우리한테는 없는 곡을 틀어주면 공테이프에 녹음하자. 어때? 녹음 성공할 때 마다 목차에 녹음했다고 표시하고. 이런 식으로 하면 언젠가는 여기 나온 모든 곡들을 다 들을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정말?”
“당장 오늘 밤부터 시작하자. 해설자 아는 척하면서 주절주절 거리는 건 짜증나지만 감수 해야지 뭐. 공짜로 음악 듣게 해 주는데.”
“난 좋아. 그런데 우리 집엔 공테이프 몇 개 없는데.”
“걱정 마. 우리 집에 많아.”
정우가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남매가 모두 음악을 공부하고 있는 집이라 공테이프가 마치 생필품처럼 잔뜩 준비되어 있었다.
음악 사냥이 시작되었다. 카셋트에 공 테이프를 꽂고 라디오에서 ‘명곡 해설 사전’에 나오는 곡이 나오면 재빨리 녹음을 시작했다. 그 책 덕분에 머리털을 곤두 세우며 라디오에 귀를 기울였다.
당디, 오네거, 레스피기 같은 작곡가 이름을 국민 학교 4학년 짜리가 이 책이 아니면 어디서 들어 봤겠는가? ‘프랑스 산 사나이의 노래’, ‘로마의 분수’ 같은 곡들이 명곡인지 어떻게 알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