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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장편소설 디누 1부 12화

어린이 디누 3

by 권재원

3

나는 틈만 나면 흘끔거리며 정우를 관찰했다. 수업 시간에 선생님보다 정우를 훔쳐보는 시간이 더 많을 때도 있었다. 핑계는 있었다. 지피지기를 해야 백 번을 싸워도 위태롭지 않으니까.

때때로 적의를 담은 날카로운 눈 빛으로 째려 보기도 했다. 하지만 정우는 그 눈총을 전혀 알아채지 못했다. 정우는 자신이 누군가의 적의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생각 자체를 못하는 아이였다. 오히려 노려보는 나에게 활짝 웃는 얼굴로 화답하곤 했다.

웃는 낯에 침 못 뱉는다는 속담이 그냥 나온 게 아니었다. 그 웃음 앞에 나는 서서히 무장해제 되었다. 무엇보다 정우의 모습이 내가 상상하고 있었던 것과 전혀 달랐다. 어머니로부터 주입된 정우의 이미지는 안하무인의 거만하고 이기적이고 공격적인 그런 모습이었는데, 실제 내 앞에 나타난 정우는 도저히 적의를 느끼기 어려운, 아니 사랑하고 싶게 만드는 그런 모습을 하고 있었다.

첫 인상을 결정짓는다는 눈에서 이미 승부가 났다. 정우의 두 눈은 짙은 눈썹과 길고 가지런한 속눈썹 아래 자리잡았는데, 티끌 하나 안 보이는 순수한 검은색과 투명한 흰색으로 마치 목성처럼 반짝이고 있었다. 그 사이를 살짝 가르며 갸름한 코가 수줍은 듯 봉긋하게 솟아 있었고, 그 아래에는 그렇게 크지 않은 입이 발그레한 색깔의 윤기 있는 입술에 감싸여 있었다. 더구나 피부가 하얗고 곱고 매끈했다. 한번 쓰다듬어보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였다.

차츰차츰 정우를 보는 내 눈 빛은 경계와 적의 대신 호기심을 담게 되었다. 적의라고 하는 것이 그렇다. 우리가 뭔가를 적대하는 것은 두렵기 때문이며, 두려워 하는 까닭은 모르기 때문이다. 정우도 마찬가지였다. 정우에 대해 아는 것이 하나 둘 늘어날 때 마다 두려움이 점점 사라졌고, 아는 것이 늘어날 때 마다 모르는 것이 꼬리를 물며 나타나 호기심도 점점 커졌다.

그 중 나의 호기심을 가장 강하게 자극한 것은 정우의 책가방이었다. 국민학생 가방 치고는 너무 컸고, 늘 무언가로 꽉 차 있었다. 직접 들어보지는 못했지만 한 눈에도 엄청 무거워 보였다. 너무 궁금해서 머리 속이 간지러울 정도였다. 도대체 저 안에는 뭐가 들어 있는 것일까?

그러던 어느 날 마침 정우 가방이 책상 위에 입을 절반쯤 벌리고 있었다. 가방 주인은 어디 갔는지 보이지 않았고, 가방의 벌린 입 사이로 살짝 드러난 내용물들이 나를 향해 살랑살랑 눈웃음 쳤다.

이런 말을 스스로 하자니 민망하지만, 머리 좋은 어린이의 가장 큰본능은 호기심이다. 식욕보다 더 강한 호기심의 힘에 저항할 수 없었던 나는 유혹을 견디지 못하고 정우 가방의 내용물을 슬그머니 끄집어 내어 보았다. 남의 가방을 뒤지고 남의 물건을 함부로 꺼내 본다는 생각만으로도 엄한 가정 교육을 받은 나의 비대한 초자아가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지만 늘 궁금해 하던 수수께끼의 열쇠를 돌린다는 본능적 기쁨에 묻혀 버렸다.

그것은 악보 책이었다. 다른 내용물을 꺼내 봐도 역시 악보 책, 혹은 악보 공책이었다. 그냥 가방 전체가 악보였다.

심장이 프레스토로 달리기 시작했다. 피아노 잘 친다고 소문난 정우는 대체 어떤 곡을 연주하고 있을까? 덜덜 떨리는 손가락으로 악보를 넘겨 보았다.

순간 프레스토로 질주하던 심장이 악보에 표시된 안단테 수준으로 가라앉았다. 처음 보는 곡이었지만 악보만으로도 너무 아름다운 곡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나는 넋을 잃고 악보를 따라 머리 속으로 음악을 그려 보고, 책상 위에 손을 얹고 어떻게 연주해야 할지 손가락을 놀려 보기도 했다.

그렇게 한참을 악보를 노려보고 있는데, 갑자기 등 뒤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거 재밌겠지?”

“아, 응?”

나는 화들짝 놀라면서 그만 손에 들고 있던 악보를 떨어뜨리고 말았다.

“쇼팽 왈츠야.”

목소리의 주인공은 정우였다.

“미, 미안.”

“괜찮아.”

떨어진 악보를 다시 주워 담으며 정우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어려워 보여.”

하는 수 없이 대답 한 마디를 얹었다. 그러자 정우가 하얀 이를 드러내며 씨익 웃었다.

“그렇게 어렵진 않아. 조금 연습하면 국민 학생도 얼마든지 연주할 수 있는 곡이야. 열 네 곡 다. 뭐 곡에 따라 조금 편차는 있지만 그래도 쇼팽 처음 친다면 왈츠가 딱 좋아.”

“곡이 너무 좋아. 꼭 연습해서 쳐 보고 싶어.”

“음. 그렇다면 이건 어때?”

정우가 부드러운 손동작으로 악보를 잘 포개어 가방에 집어넣더니 공책 하나를 꺼내어 내 눈 앞에 펼쳐 보였다.

오선지가 인쇄된 공책에는 비뚤비뚤한 필적으로 음표들이 잔뜩 그려져 있었다.

이게 뭔가 싶어 공책과 정우 얼굴을 번갈아 보았다. 정우가 뭔가 자랑스러운 반응을 기대하는 표정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이런 상황에서 무슨 말을 해야 하는지 전혀 감을 잡을 수 없었다. 그저 아무 말 없이 공책만 뚫어지게 바라볼 뿐이었다.

정우가 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자문자답했다.

“쇼팽 왈츠 치다 너무 좋아서 나도 왈츠를 몇 개 만들어 봤어. 신나는 곡이랑 슬픈 곡이랑.”

나는 깜짝 놀랐다.

“너 작곡했어?”

“응. 내가 작곡 했어.” 정우가 자랑스럽게 자기 가슴을 두드리며 말했다. “자. 내 곡들, 어떤 지 말해줘.”

나는 놀란 눈을 토끼처럼 동그랗게 뜰 수 밖에 없었다. 위인전에서 모차르트나 슈베르트 같은 사람들이 몇 살 때 뭘 작곡하고, 몇 살 때 뭘 작곡했다 하는 일화를 보며 신기하게 생각했었는데, 지금 내 눈앞에서 실제 상황이 일어나고 있었다.

하지만 정우가 들이민 악보는 너무 어려웠다. 내 능력으로는 연주는 커녕 어떤 곡인지 짐작하기도 어려웠다. 그러니 좋다 나쁘다 말할 수 없었다.

“너무 어려워.”

이게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대답이었다.

정우가 재미있다는 듯이 소리내어 웃었다.

“하하. 좀 어렵긴 해. 쇼팽 비슷하게 만들어 보려고 했는데, 달라. 전혀 달라.”

“어떤 곡일지 궁금하다.”

순간 나는 왜 이런 말을 던졌는지 후회해야 했다. 이 말을 듣기가 무섭게 정우가 내 팔꿈치를 탁 치며 이렇게 말했기 때문이다.

“궁금해? 그럼 우리 집에 가자. 내가 직접 연주해서 들려줄 게. 어때? 재밌겠지? 내가 초대하는 거야.”

“그게...”

나는 우물쭈물 했다. 어릴 때 부터 정우에 대해 학습된 적개심과경계심이 되살아났다. 하지만 사실대로 말할 수 없어서 “엄마가 일찍 들어오라고 해서.”라고 대충 얼버무렸다.

아주 거짓말은 아니었다. 어머니는 귀가 시간을 엄격하게 정해놓고 있었기 떄문이다 . 밀리그램 단위로 숫자를 세는 약사 답게 정확하게 시간을 계산했다. 종례 10분, 청소 20분, 집에 오는 시간 20분, 여기에 방과후에 친구들하고 어울려 노는 시간까지 40분을 허용해 주었다. 따라서 나는 마지막 교시 수업이 끝난 뒤 90분 뒤에는 집에 와 있어야 했다.

요일별로 수업 끝나는 시간이 다르기 때문에 귀가 시간도 달랐다. 어머니는 수업 준비물 체크를 위해 학교 수업 시간표를 집에 붙여 놓고 있었기 때문에 요일별로 정확한 귀가시간을 지정해 주었다. 어림잡아 몇시쯤 이런 건 일체 없었다.

당시 국민 학교 4학년 시간표는 이랬다.

월요일, 화요일은 6교시, 수요일, 목요일, 금요일은 5교시, 토요일은 4교시 수업을 했다. 여기에 따라 나의 귀가시간은 월화요일에는 오후 네 시, 수목금요일에는 오후 세시, 토요일에는 오후 한시로 정확하게 지정되었다.

더 무서운 것은 귀가 시간이 나한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었다는것이었다. 어머니는 이 시간을 본인에게도 적용시켰다. 약국이 아무리 바빠도 반드시 그 시간에는 집에 들어왔고, 내가 귀가하는 것을 확인 하고, 그날 공부한 내용을 잘 받아 적었는지 공책을 검사했고, 그날 해야 할 숙제가 무엇인지, 또 내일 준비물이 무엇인지 다 체크 했으며, 나를 피아노 학원에 데려다 주고 난 다음에야 약국에 돌아갔다.

물론 피아노 학원 핑계로 시간 끄는 것은 불가능했다. 피아노 학원에서 집에 돌아오는 시간도 여섯 시가 마감이었다. 일단 집에 들어오면 여섯 시부터 30분간 진행하는 어린이 TV프로를 딱 30분간 시청할 수 있었다.

다른 프로그램은 시청할 수 없었다. ‘마징가Z’ 같이 싸우고 파괴하는 만화영화는 비교육적이라는 이유로 시간대와 관계 없이 절대 볼 수 없었다. 프라모델 같은 장난감도 무기나 전투용 로봇이 많다는 이유로 금지되었다. 다만 ‘부리부리 박사님’ 같이 교육적인 프로그램은 얼마든지 봐도 좋았다.

저녁 식사 시간은 일곱 시였다. 이 시간은 아버지에게도 예외 없이 적용되었다. 만약 아버지가 은행 일 등으로 일곱 시에 집에 오지 못할 사정이 생기면 밖에서 식사를 하고 와야 했고, 따로 상을 차려 준다거나 하는 일은 절대 없었다.

저녁 식사를 마치면 아홉시까지 학교 숙제를 해야 했고, 숙제가 없으면 복습을 하거나 세계 명작 문고를 읽어야 했다. 아홉시에는 숙제와 복습 검사를 받았다. 그리고 양치질 등 청결 활동을 한 뒤 아홉시 반에 잠자리에 들어야 했다.

두 살 아래인 동생과 잠들기 전에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열 시까지 허용되었고, 열 시가 넘어가면 절대 취침시간이 적용되었다.

누구나 이런 일과표를 보면 마음이 묵직해질 정도로 답답할 것이다. 당연히 나도 답답했다. 아직 학교에 들어가지 않아 마음껏 뛰어 놀고 다녔던 여동생이 세상에서 제일 부러웠을 정도였다.

이런 상황에서 정우의 느닷 없는 초대라니. 이건 어머니의 추상같은 규칙을 무려 두 가지나 어기는 것이었다.


1. 집에 빨리 와라

2. 정우랑 어울리지 마라. (이건 어머니가 직접 말했다기 보다는 나 혼자 그렇게 생각한 것에 가깝다)

순간 머리 속에서 엄하게 추궁하는 어머니가 떠오른 것은 당연한 조건 반사였다.

“왜 이렇게 늦었어?”

어머니가 눈을 부릅뜨고 있다. 손에는 회초리가 들려있다.

“친구 집에서 놀다 왔어요.”

“친구 누구?”

“저, 정우요.”

“뭐라고? 정우라고?”

당연하게 이어지는 대폭발. 상상만으로도 끔찍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내가 정우를 따라 간 것이다. 어머니의 호통보다 이름만 들으며 경쟁심을 키워 왔던 정우에 대한 호기심, 무엇보다 그 악보가 도대체 어떤 음악일지 알고 싶은 호기심이 무한한 용기의 원천이 되었다.

프레이리는 말했다. 호기심이 두려움을 이기게 하는 것, 그게 바로 교육이라고. 그런 의미에서라면 나는 초등학교4학년때 이미 나를 교육시킨 셈이었다.

정우네 집에 들어서자마자 느낀 것은 향기였다. 그 향기는 우리 집에서는 느끼지 못했던 문화의 향기였다.

무엇보다 눈에 확 들어오는 것은 거실 벽면을 가득 채운 수백 장이 넘는 레코드 판들, 그리고 내 키 만큼 큰 스피커와 마치 고려 석탑처럼 층층으로 포개어진 하이파이 오디오 시스템이었다. 그 때는 본체가 2층이면 전축, 3층 이상이면 오디오라고 불렀다.

5층탑 ‘오디오’를 신기하게 보고 있노라니 정우 어머니의 놀란 목소리가 들렸다.

“정우가 친구를 다 데리고 왔네? 별일이네, 별일이야.”

“엄마, 오석이가 왔어요.”

“머라꼬? 오석이라고?”

정우 어머니가 눈을 번쩍 뜨고 내 어깨를 잡으며 말했다.

“아이고, 니가 오석이구나? 잘 왔대이. 잘 왔어.”

정우 어머니는 여러 모로 어머니와 인상이 달랐다. 어머니는 덩치가 크고 키도 큰 편인데, 정우 어머니는 날씬하고 키가 작았다. 어머니 눈은 날카롭게 째진 모양인데 정우 어머니는 초승달처럼 웃는 모양의 쌍 꺼풀 진 눈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나의 모든 감각기관은 정우 어머니가 아니라 오디오에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정우 어머니가 뭐라뭐라 인사치레를 했지만 귀에 들어오는 말은 한 마디도 없었다. 다만 오디오를 켜보고 싶을 뿐이었다.

하지만 무수히 많은 버튼과 다이얼, 레버들 중 무엇을 어떻게 만져야 할지 도무지 알 수 없어 그냥 침을 꼴깍 삼키며 바라볼 뿐이었다.

하는 수 없이 정우를 빤히 쳐다보았다. 정우가 오디오 앞에서 쩔쩔매고 있는 내 모습을 보더니 빙긋이 웃는 얼굴로 다가왔다.

“기다려. 내가 해 줄게.”

정우가 5층 탑의 세 번째 층에 있는 작은 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5층 탑 전체가 기지개를 켜면서 이런저런 계기와 바늘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뭘 들으면 좋을까?”

정우가 콧노래를 흥얼 거리면서 레코드판들을 뒤적뒤적했다. 좁은 레코드판 재킷 모서리에 그것도 세로로 깨알같이 적혀 있는 글자들, 한글은 하나도 보이지 않고, 심지어 영어도 아닌 것 같은데, 어떻게 그걸 읽고 레코드를 고를 수 있는지 마냥 신기했다.

그렇게 한참을 레코드 판들을 뒤적이던 정우가 손가락을 탁 하고 튀겼다.

“그래. 이게 좋겠다.”

그렇게 정우가 레코드 판 하나를 조심스럽게 끄집어 내었다. 굼실굼실한 고수머리 아래 갸름한 얼굴을 파묻고 있는 남자가 심각한 표정으로 피아노 앞에 고개를 숙이고 있는 사진이 눈에 들어왔다.

정우가 판을 꺼내 턴테이블에 올리자, 약간의 지지지 하는 소리가 나더니 곧 이어서 깨끗한 피아노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는 이내 집안의 공기를 가득 채우면서 작은 떨림을 만들어 내었고, 그 떨림이 그대로 내 귀를 가득 채우며 밀려 들어왔다. 그 소리는 허공에 수를 놓는 것 같았고, 구름 속에서 헤엄 치는 것 같았고, 진부한 표현이지만 귀 끝을 간지럽히는 것 같았다. 숙제하듯 피아노 연습을 하고, 체르니 번호 하나씩 늘려 나가면서 실력이 향상된다고 여겼던 나는 피아노가 이런 소리를 낼 수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나는 어느새 소파에 깊이 나를 묻어 두고, 귀 이외의 감각기관을 모두 정지시킨 채 음악에 몰두했다.

“쇼팽 연습곡이야.”

어느새 정우가 내 옆에 와서 앉으며 말했다.

“마우리치오 폴리니가 연주한 건데, 정말 최고야. 루빈슈타인 보다도 호르비츠 보다도 더 멋져.”

들으나 마나 한 이야기였다. 폴리니도 루빈슈타인도 호르비츠도 처음 들어보는 이름들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알아 들을 수 있었던 이름은 오직 쇼팽 뿐이었다.

그나마 쇼팽이라는 이름도 음악을 들어서 아는 것이 아니었다. 쇼팽이라는 이름은 피아노 교재 뒤에 나와 있는 진도표에 체르니 50번을 끝내고 난 뒤에야 배울 수 있는 것으로 표기된 ‘쇼팽 연습곡’을 통해 위엄을 얻었다. 피아노 진도의 제일 마지막 단원, 끝판왕이었던 셈이다.

그 밖에 쇼팽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것이라고는 조국 폴란드를 사랑한 애국자, 조국이 패망하자 ‘혁명’이라는 곡을 써서 그 울분을 표현했고, 조국의 흙을 한 줌 퍼 가지고 가서 평생 간직 했다는 등, 낭만적이라기 보다는 국수주의적으로 포장된 위인전 –그 시대는 유신 시대였다. 뭘 기대하는가?- 에서 읽었던 내용이 전부였다.

“쇼팽=피아노의 시인” 이라는 이상한 등식도 어디선가 주워 들었지만, 시인이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시라고 하는 것이 도대체 무엇인지, 쇼팽의 음악과 시가 무슨 상관이 있는지 등등 전혀 감을 잡을 수 없었다. 나는 쇼팽을 귀가 아니라 눈으로, 음악이 아니라 텍스트로만 익혔던 것이다.

첫 경험. 눈이 아니라 귀를 통한 쇼팽 첫 경험은 황홀했다. 연습곡 작품10의 열두 곡을 다 들었을 때 시간이 30분이나 흘렀을 거라곤 생각도 하지 못했을 정도였다. 그야말로 잠깐만에 열 두곡과 삼십분이 후르륵 흘러갔다.

“이게 절반이야. 뒷 면에 열 두 곡 더 있어. 계속 들을래?”

나는 뭘 그런 걸 물어보냐는듯 고개를 위아래로 힘껏 흔들었다.

그런데 정우가 레코드 판을 뒷면으로 돌리려다 갑자기 멈추었다.

“음. 이건 그만 듣자.”

“왜? 더 듣고 싶어.”

“응. 더 들려줄게. 그런데 레코드 말고 내가 직접 들려줄 게. 어때?”

“뭐? 너, 이거 칠 수 있다고?”

“응.”

정우가 그게 뭐 그리 신기할 게 있냐는 표정으로 고개를 까딱 했다.

“좋아.”

도저히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이었다.

“그럼, 이리 와.”

정우가 나를 피아노가 있는 방으로 이끌었다. 이렇게 나는 또 다른 미지의 세계에 들어서게 되었다.

하지만 막상 정우 방에 들어갔을 때 내가 느낀 첫 감정은 실망이었다. 정우의 피아노가 우리 집에 있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른 점이 있다면 우리 집 피아노에는 영창이라고 되어 있다면, 정우네 것은 삼익 호루겔이라고 되어 있다 정도였다.

그렇다고 요즘 생각하고 쉽게 여기면 안된다. 1978년이었다. 집에 그랜드 피아노는 커녕 업라이트 피아노를 두고 있는 가정도 많지 않았다.

“흐음.”

정우가 마치 제사 지내는 신관처럼 피아노 뚜껑을 조심스럽게 열었다. 그리고 잠시 호흡을 가다듬더니 손가락을 무슨 내공 연마하는 도사처럼 부드럽게 건반에 올리고 연주를 시작했다.

맙소사. 눈앞에서 직접 연주하는 쇼팽은 아까 오디오에서 들었던 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흔히 피아노를 ‘친다’ 라고 말하지만 그게 전혀 틀린 말이라는 것을 그때 처음 알았다. 정우는 절대 피아노를 치지 않았다. 정우는 피아노를 어루만졌다. 때로는 쓰다듬는 것 같아 보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리는 우렁차게 울려 퍼졌다. 신기한 경험이었다. 손가락은 조용히 가만가만 움직이고 있는데 소리는 요란했다. 때로는 정우의 손가락이 건반 위를 달리기도 했고 춤을 추기도 했다.

그럴 때면 내 귀에서는 마치 음표들이 춤을 추는 것 같았다. 그 작은 음표들의 앙증맞은 발끝이 귀를 간지럽히는 것 같았다.

다음 곡은 더 대단했다. 먼저 정우의 오른손이 건반 위를 달렸다. 왼손은 마치 오른손을 따라가고는 싶으나 몸이 무거워서 그러지 못하기라도 하는 양 비틀거렸다. 쫓기는 것 같기도 하고 애원하는 것 같기도 하고 혹은 약 올리는 것 같기도 한 음악이 이어졌다.

그런 불안한 마음을 진정시키기라도 하려는 듯 바로 다음 곡으로 넘어가면서 정우는 피아노 위에서 사분의 삼박자로 춤을 추었다. 거기 따라 방 안의 공기도 춤을 추었다. 나도 어깨를 들썩이며 춤을 추고 싶은 욕망을 억지로 눌러야 했다.

그런 식으로 정우는 여섯 번째 곡까지 끊지 않고 마치 흘러가듯 연주했다. 평소 버릇대로 정우 얼굴을 흘끔 훔쳐 보았다.

깜짝 놀랐다. 정우는 웃고 있었다. 나는 이 어려운 곡들을 치면서 저렇게 웃을 수 있다는 것이 너무 신기했다. 정우는 마치 이 모든 것을 놀이처럼 느끼는 것 같았다. 피아노가 살아 움직이고 있는 반려 동물이라도 되는 양 그렇게 웃으며 어루만지며 어울려 놀고 있었다.

그 느낌은 나한테도 고스란히 전염되었다. 어느새 나도 정우와 함께 피아노를 치고 있는, 아니 피아노와 놀고 있는 것 같은 착각에 빠졌다. 정우가 내리치면 나도 내리쳤고, 정우가 어루만지면 나도 어루만졌다. 정우가 울리면 나도 울렸고, 정우가 끊어 치면 나도 끊어 쳤다. 그건 태어나서 처음 느껴보는 황홀한 기쁨이었다.

문득 나를 황홀한 기쁨이 젖어들게 하고 있는 이 연주를 하고 있는 존재가 나와 같은 국민 학교 4학년 어린이라는 사실을 떠올렸다. 나를 촉촉하게 적시고 있던 황홀이 소스라치는 두려움으로 바뀌었다.

너무 탁월하거나 너무 모자라거나, 어쨌든 자신과 너무 다른 사람을 마주쳤을 때 가장 먼저 느끼는 감정, 인간의 유전자가 가지고 있는 반사작용이 발동한 것이다. 그러나 그런 두려운 느낌은 음악 소리와 함께 입안에 들어온 솜사탕 녹듯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때 정우가 마치 내 기분을 느끼기라도 한 양, 나를 향해 웃음을 던졌다. 그 웃음 몇 가닥에 지난 8년간 어머니로부터 주입된 질투와 경쟁심이 단숨에 솜사탕이 되어버렸다.

이것이 바로 웃음의 힘이다. 그 웃음은 그저 낄낄거리기만 하는 그저 웃기 위한 그런 웃음이 아니었다. 한 아이가 웃는다. 그럼 다른 아이는 그 웃음 거리가 무엇인지 호기심이 생긴다. 그럼 웃던 아이는 자신의 웃음거리를 보여준다.

아이가 두 명 이상 모여 있는 곳이라면 어디서나 이런 풍경을 찾아볼 수 있다. 이것은 탐구의 신호이며 구도의 초대다. 이렇게 함께 웃으면 그때부터는 두 아이는 동지가 되며 친구가 된다.

그런 아이들을 서로 질투하게 하고 서로 경쟁하게 만드는 것은 어른들이다. 하지만 아이들은 결코 경쟁하지 않는다. 그들은 서로 웃음으로 동지를 맺는다.

나의 느낌과 정우의 웃음이 만나는 순간 내 안에서부터 이끌어져 올라온 것은 호기심이었고, 탐구에의 욕구였다. 저 황홀하고 아름다운 소리의 세계를 함께 탐구하고 싶은 그런 욕구였다.

그때부터 나는 정우의 영혼에 접속할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영혼을 접속시킴으로써 나는 정우는 하나가 되었고, 피아노와 하나가 되었고,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대기와 더불어 한 몸이 되었다.

그렇게 하나가 되면서 피아노 소리는 더 이상 귀에 들리는 소리가 아니게 되었다. 눈으로 보이고 피부로 느껴지는 그런 것이 되었다.

이때 방 문이 슬그머니 열리더니 정우 어머니가 조슴스럽게 모습을 드러내었다. 하지만 이럴 때 정우의 시간을 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는지 주스와 과자를 담은 쟁반을 조용히 근처에 내려놓고 소리 없이 사라졌다.

정우는 눈을 지그시 감은 채 피아노를 마치 달래기라도 하듯 슬슬 쓰다듬었다. 손가락이 거의 움직이지 않는 것 같은데도 피아노가 마치 스스로 흐느끼듯 구슬픈 곡조를 둥둥 울려 내었다. 갑자기 내 머리 속에서 소리가 아니라 영상이 떠올랐다.

그 영상은 회색 무늬가 빙글빙글 박혀 있는 차가운 벽의 모습이었다. 그 벽은 내 공부가, 아니 나의 시험 등수가 성에 차지 않을 때 부모님이 어마어마한 과제와 함께 방으로 몰아넣었을 때 멀뚱히 쳐다보고 있던 벽, 군데군데 도배지가 주름 잡혀 있던 벽이었다.

나는 그 주름을 보면서 집이 눈물을 흘리고 있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지곤 했다. 그 접혀진 주름을 잡아 비틀면 그 속에서 멀컹멀컹한 시멘트 반죽 같은 집의 눈물이 흘러내릴 것 같았다. 그러나 집은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 어쩌면 울고 싶은 것은 나였는데, 명색이 사내 아이라고 꾹 참고 집 더러 대신 울어달라 보챘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 주름진 벽은 번번이 나를 외면했고, 그 때 마다 나는 벽을 마구 파헤쳐버리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혔다.

그런데 정우의 연주가 하필 그 느낌을 되살리고 말았다. 마치 곁에서 누군가가 나의 답답함과 억울함을 같이 느끼고, 나를 대신해서 흐느껴 주고 있는 것 같은 그런 느낌이었다.

그 답답함과 억울함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면 국민 학교 4학년짜리 어린이가 중학교 영어, 수학 문제집 90점을 넘기지 못했다고 ‘바보, 천치’ 소리를 들어가며 매를 맞고 “그거 다 풀 때까지 저녁도 없는 줄 알아라.” 라는 말과 함께 방에 감금되다시피 한 상황을 떠올려보기 바란다. 그렇게 홀로 방에서 물끄러미 벽만 바라보다가 가슴 깊은 곳이 녹아서 흘러내리는 것처럼 쏟아져 나오던 하염 없는 눈물을 느껴보기 바란다.

“누나가 있으면 좋겠어.”

그때마다 떠올랐던 생각이다. 외롭고 지치고 상처받은 나를 쓰다듬어주고 눈물도 닦아주고, 어머니 몰래 밥도 갖다 주는 누나.

어찌나 그 생각이 간절했던지 나는 풀어야 하는 문제집은 저쪽에 젖혀두고 열심히 상상 속의 누나를 그렸다. 처음에는 연필로 슬슬 그리다 나중에는 도화지에 수채화로 그렸다. 어떤 누나는 피아노, 어떤 누나는 바이올린을 연주했고, 어떤 누나는 발레 댄서였다.

그렇게 몇 시간 동안 방에 쳐 박혀서 정말로 저녁도 안 먹고 그림을 그렸는데, 그러다가 뭔가 수상하다고 여긴 부모님에게 그림을 들키고 말았다. 그 결과는 거의 변태 취급을 받으며 매를 맞는 것이었다.

정우의 피아노 소리는 계속해서 내 마음 속 깊이 감춰두었던 이런 종류의 기억들을 후벼 내었다. 밝은 느낌의 곡으로 바뀌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아픔은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나는 눈물 흘렸던 기억을 잠시 소환하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대놓고 눈물을 주루룩 흘리는 지경이 되었다.

제대로 앉아있기 힘들어진 나는 몸을 옆으로 뉘어서 엎드리려 했다. 그렇게 몸을 서서히 옆으로 누였는데, 10도도 기울어지기 전에 침대가 아니라 누군가의 몸에 얼굴이 닿았다.

너무 놀라 화들짝 몸을 들어 올리려는데, “괜찮아. 그냥 있어.” 라는 차분하고 다정한 여자 목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내 등을 토닥토닥 두드려주는 기분 좋은 느낌이 이어졌다.

순간 피아노 소리가 멈추었다.

“어, 누나? 언제 왔어?”

정우의 입에서 나오는 ‘누나’라는 단어에 나는 깜짝 놀라 고개를 쳐들었다.

누나? 진짜 누나?

진짜 누나 목소리가 들렸다.

“한참 전에.”

“에이, 왔으면 왔다고 하지.”

“너 피아노 치는 거 끊기 싫어서 그냥 듣고 있었어. 설마 쇼팽 연습곡을 한꺼번에 다 칠 거라고는 생각 못 했어. 웬일이야? 무슨 공연하는 것처럼? 참, 그런데 넌? 정우 친구?”

그제서야 누나가 일어서며 나를 향해 얼굴을 돌렸다.

“네.”

얼떨결에 존대말로 대답했다. 그럴 수밖에, 국민학교 4학년에게 중학생은 완전히 어른이다. 형이 아니라 누나라면 더 그렇다.

“얘가 바로 권오석이야.”

정우가 자기 나름의 방식으로 소개를 했다.

“어머, 네가 오석이야?”

누나가 손뼉을 쳤다. 누나가 생각 밖으로 너무 반가워하는 모습을 보고 나는 침대 밑으로 기어 들어가고 싶을 정도로 부끄럽고 당황스러웠다.

“이름 정말 많이 들었는데, 직접 만난 건 처음이네? 반갑다 얘. 생각했던 것 보다 참, 자알 생겼네?”

하지만 누나는 내가 침대 밑으로 들어갈 틈을 주지 않았다. 물론 진짜 기어들어갈 것은 아니었지만.

“난 미우라고 해. 정우 누나.”

마침내 누나의 이름을 들었다. 미우. 예쁜 이름이었다.

누나 이름을 알게 된 나의 첫 느낌은 걱정이었다. 정우한테 이야기 많이 들어 알고 있었다고 하니 도무지 그 이야기가 좋은 이야기일 것 같지 않았다. 내가 정우를 무시무시한 모습으로 상상하고 있었던 것에 대한 벌을 받은 셈이다.

“누나, 오늘도 연습할 거야?”

정우가 피아노에서 쇼팽 연습곡 악보를 치우고 다른 악보를 올리며 말했다.

“당연한 거 아니니?”

대답하기도 전에 미우는 이미 보면대를 다 세워놓고 있었다. 손 놀림도 목소리도 쾌활하고 날렵했다.

“일단 9번 확실하게 해 놓고, 10번 연습 시작하자.”

“좋아.”

정우가 악보 넘기는 소리가 후두두둑 들렸고 미우의 악기 케이스 열리는 소리가 따각하고 들렸다. 그리고 모습을 드러낸 악기는 다름아닌 바이올린.

“와아! 바이올린!”

마음 속으로 탄성을 질렀다.

바이올린은 나에게 선망의 대상이었고, 신비의 대상이었다. 국민학교 1학년 때 읽었던 아그네스 자퍼의 소설 ‘사랑의 집’ 때문이다.

당시 그 책은 계몽사 ‘소년소녀 세계문학 전집’이라는 자주색 양장 문고 중 하나였는데, 나는 이 소설을 양장본의 딱딱한 표지가 닳고 닳아 흐느적거릴 때까지 읽었다.

표지를 넘기면 주인공 플리더가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삽화가 나오는데, 그 그림이 너무 좋았다. 그래서 어머니한테 생일선물로 바이올린을 사달라고 졸랐지만, 돌아온 답은 “피아노나 제대로 해.” 였다.

그때 내 마음 속에 심어진 바이올린은 고급스럽고 고상한 악기, 일반인과는 거리가 먼 그런 악기였다. 소설에서 플리더가 아코디언을 능숙하게 연주하다 바이올린으로 악기를 바꾼 것이 승격한 것처럼 느껴진 것도 한 몫 했다.

“오석아, 너도 들어볼래?”

미우가 별안간 나를 보았다. 별빛처럼 반짝이는 눈동자가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당연히 듣고 싶었다. 그토록 선망하던 악기 바이올린 연주를 바로 옆에서 듣는데 왜 마다하겠는가? 하지만 속마음과 달리 내 입에서 튀어나온 말은 엉뚱한 것이었다.

“저, 지금 몇 시죠?”

나는 이런 한심하고, 찌질한 말을 하고 말았다.

어쩔 수 없었다. 어머니가 정해놓은 귀가 시간은 진즉 넘어가고도 남았을 것인데 시계가 없어서 확인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 불안한 마음은 당사자가 아니면 아무도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어머니의 추궁하는 목소리가 벌써부터 귓가에서 쟁쟁거렸다.

“시간? 음, 세시 반. 왜 늦었니?”

맙소사. 이미 귀가 시간을30분이나 넘겼다. 이제 와서 전력 질주해 본들 40분 지각이다. 이를 어쩌나?

그 때 마음 속에서 “에라 기왕 이렇게 된 거.” 라는 말이 저절로 떠올랐다. 바이올린 연주를 들을 수 있는 기회인데, 게다가 내가 그토록 선망했던 누나가 연주하는데, 이 둘을 동시에 놓칠 수는 없었다.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용감해졌다.

“아뇨. 괜찮아요.”

“그래? 너무 잘됐다. 자, 오늘은 청중도 있으니까 콘서트 하는 느낌으로 제대로 해 볼까?"

남매는 자기들끼리만 통하는 농담을 주고받으며 낄낄거리더니 갑자기 입을 꾹 다물고 엄숙한 모습으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이윽고 미우가 어깨 위에 바이올린을 얹더니 60그램 정도밖에 되지 않을 활을 수십 킬로그램이라도 되는 것처럼 아주 조심스럽게 현 위에 얹었다.

“아!”

첫 몇 음 만에 내 입에서 긴 한 숨이 터져 나왔다. 바이올린이 동시에 두개의 현을 마찰 시키며 시작된 첫 몇 마디가 그렇게 만들었다. 잔뜩 화가 치밀어 올라 들썩이는 어깨 위에 슬며시 얹히는 따스한 손길 같았다.

곧 이어 같은 주제를 피아노가 받는가 싶더니 바이올린과 피아노가 대화하듯 이 주제를 주고받았다. 바이올린은 따스하게 어루만졌고, 피아노는 잔뜩 골이 나서 항의했다.

그러다 바이올린의 목소리가 단호하게 힐난하는 소리로 바뀌면서 두 악기는 대화가 아니라 다툼을 하듯 격렬하게 부딪쳤다. 바이올린은 계속해서 빠르게 뭔가를 이야기했지만, 피아노는 계속 거부의 몸부림을 쳤다. 그러면서도 두 악기가 내는 소리는 서로 잘 어울렸다. 하지만 끝내 두 악기는 서로의 차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마음을 가라앉히려는 듯 숨을 죽이더니 평행선을 그리는 불안정한 외침으로 끝을 맺었다.

나는 혈관이 얼어붙는 느낌, 머리가 일어서는 느낌을 받으며 벌떡 일어섰다. 도저히 이 음악을 앉은 자세로 들을 수는 없었다.

그런데 아직 곡이 끝난 게 아닌 모양, 남매는 여전히 긴장된 자세로 서로를 응시하고 있었다. 이윽고 정우가 몸을 앞으로 숙이며 조용히 건반을 눌렀다.

아까와는 너무도 다른 피아노 소리가 조심스럽게 퍼져 나왔다. 이는 마치 사과의 소리 참회의 소리처럼 들렸다. 피아노는 참회하고 바이올린은 위로했다.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은 아름다운 멜로디를 통해 이루어졌다. 아, 그때 정우가 연주하던 그 트릴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내 평생 그렇게 아름다운 트릴은 지금까지, 심지어 어른이 된 정우의 연주로도 들어보지 못했다.

이윽고 피아노가 조금씩 분위기를 밝게 가져가기 시작했다. 바이올린은 기분이 점점 좋아지는 피아노의 유쾌한 이야기에 너무 많이 끼어들지 않으려고 조심하면서 가끔씩 “맞아, 맞아.” 이렇게 추임새만 넣어 주는 것 같았다. 그런데 피아노의 이야기가 끝나기가 바이올린이 그동안 한참 참았다는 듯이 마구 수다를 풀어놓기 시작했다. 그 경쾌하고 흥겨운 수다.

어머니를 떠올렸다. 어머니도 이 음악의 피아노처럼 내가 먼저 조용히 사과와 화해의 말을 던져주면 이렇게 유쾌하게 수다도 떨고 그럴까? 그 동안 내가 어머니를 너무 무서워하기만 했던 것일까? 아까 까지는 그렇게 찢어지듯이 고함치던 바이올린이 이렇게 예쁘게 속삭이고 있는 걸?

이번에는 바이올린이 미안하다고 말하는 듯 흐느끼는 듯한 트릴을 연주했다. 그리고 이어지는 멜로디는 이 보다 더 아름다울 수 없었다. 이날 아름다움이 최고에 이르면 마치 슬플 때처럼 눈물이 흐른다는 것을 처음 경험했다.

내가 그 깊은 아름다운 슬픔에 잠겨 있는 동안 어느새 음악은 아주 빠른 템포로 바뀌었다. 두 악기가 서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달려가면서 뛰어 놀고 있는 것 같았다.

바이올린이 달리면 피아노가 따라가고 피아노가 따라가면 바이올린이 달려갔다. 나도 함께 달리고 싶었고, 그들 남매를 부둥켜안고 펄쩍펄쩍 뛰며 춤이라도 추고 싶었다. 그리고 마침내 음악이 끝났을 때 나는 소리를 내어 엉엉 울고 있었다.

남매는 나의 이런 반응이 너무 뜻밖이었는지 연주를 마치고도 한동안 악기에서 손을 떼지 못한 채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기만 했다. 한 5분은 그냥 그러고 멍하니 있었던 것 같다. 그러더니 정우가 천천히 피아노에서 일어서더니 내 귀에 속삭였다.

“베토벤 바이올린 소나타 9번이야. ‘크로이처 소나타’라고도 불러.”

이때부터 베토벤의 크로이쳐 소나타는 내가 바이올리니스트나 피아니스트를 판단하는 기준이 되었다. 다른 곡을 아무리 훌륭하게 연주해도 크로이쳐를 제대로 하지 못하면 내 기준에서는 과락이었다.

지금도 나의 CD장에는 크로이쳐 소나타 음반들이 가득하다.‘미우& 디누’, ‘지네트& 디누’, ‘오이스트라흐&오보린’ , ‘셰링&루빈슈타인’, ‘셰링&헤블러’, ‘그뤼미오&하스킬’, ‘그뤼미오&아라우’ ‘프란체스카티&카자드슈’, ‘슈나이더한&켐프’, ‘뒤메이&피르스’ 등 명반이란 명반은 다 모아 놓았다. 그리고 기억도 나지 않는 수많은 음반들이 더 있다.

그러나 내가 가장 아끼는 음반은 여전히 ‘미우 & 디누’다. 이 곡을 이들 남매처럼 감동적으로 연주한 커플은 이전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비록 그날 어머니가 지정한 귀가시간보다 한 시간 반이나 늦게 들어가서 크로이쳐 소나타의 1악장 같은 격렬한 꾸지람을 들었지만, 그 한 시간 반은 내 인생에서 가장 황홀한 시간이었다.

게다가 나는 어머니의 꾸지람을 멈출 수 있는 마법의 주문을 알고 있었다. 그것은 정우네와 우리 집을 비교하여 어머니의 자존심을 자극하는 것이었다.

나는 매를 맞아가면서도 울먹이며 투정을 부렸다.

“하지만 정우네 집은 오디오도 있고, 우리 집에 없는 클래식 레코드 판도 많이 있었다고요! 그래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있었다고요.”

이 주문은 적중했다. 순간 어머니는 꾸지람을 멈추고 망치로 정수리를 맞은 것 같은 표정으로 거실을 둘러보았다.

TV 하나 달랑 있을 뿐인 텅 비어 있는 거실. 오히려 주문의 효과가 너무 세서 부작용이 날까 두려울 정도였다. 어머니는 늘 저렇게 멍하니 있다가 대 폭발을 하곤 했기 때문이다.

“정우네 집에 판이 그렇게 많아?”

그런데 뜻밖에도 어머니는 대폭발 대신 낮지만 조금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나는 아직까지는 안심하기 이르고, 그 다음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몰랐기 때문에 두려운 눈빛으로 조용히 고개만 끄덕였다.

“그리고, 또, 또 뭐가 많았는데?”

“채, 책이요.”

“책도 많다고?”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다.”

어머니는 간단하게 대답했고, 쏟아져 내리던 날카로운 눈총이 거둬들여졌다.

“들어가서 공부하고 있어. 엄만 좀 나갔다 올게.”

어머니의 그 모습에는 어딘가 결연함과 비장함이 있어서 나는 감히 어디 가느냐고 물어볼 수 없었다.

어머니의 그 비장한 외출은 그 날로 그치지 않았다. 다음날, 그 다음날, 또 다음날까지도 비장한 외출이 계속되었다. 나는 어머니가 대체 어딜 그렇게 다니는지 몹시 궁금했지만 꾹 참고 버텼다. 일주일 뒤 인내의 달콤한 열매가 열렸다.

정우와 시간을 보내다 귀가 시간에 빠듯하게 맞춰 집에 들어갔더니 어머니가 초조한 모습으로 기다리고 있었다. 어머니가 나를 긍정적인 의미에서의 초조한 모습으로 기다리고 있는 모습은 처음이었다. 어머니 얼굴에는 자신만만하고 의기양양한 미소마저 가득 담겨 있었다.

“이리 와 봐!”

어머니가 나를 확 잡아 끌었다.

이럴 수가! 거실 풍경이 확 바뀌었다. 텔레비젼은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고 그 자리에는 오디오가 제왕처럼 드러누워 있는데, 그 좌우로 레코드 판 수십 장이 마치 신하들이 사열이라도 하듯 늘어서 있었다.

“어, 이건?”

나는 부리나케 달려가서 레코드 판들을 하나 하나 열어 보았다. 열한 장 짜리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전집(빌헬름 켐프), 아홉 장 짜리 베토벤 교향곡 전집(요제프 크립스가 지휘하는 런던 심포니), 여섯 장 자리 모차르트 후기 교향곡 전집(카를 뵘이 지휘하는 베를린 필하모닉), 열 두 장 짜리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전집(게자 안다가 연주하고 지휘), 일곱 장짜리 모차르트 피아노 소나타 전집(크리스토프 에센바흐)를 확인했다. 어머니는 클래식이라고 하면 모차르트와 베토벤만 있으면 된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비록 크로이처 소나타는 없었지만, 뭐 아무래도 좋았다. 어차피 그건 미우, 정우 남매의 연주를 직접 들으면 되니까.

내 평생 어머니를 가장 사랑했던 순간이었다. 어머니가 크로이처 소나타 1악장에서 2악장으로 넘어간 것과 다름없지 않은가? 이런 게 기적이 아니면 뭐가 기적이겠는가?

“자, 이만하면 되겠니?”

이토록 자신만만해 하는 어머니에게 나는 차마 “정우네 집에는 이거 열 배나 되는 판들이 있어요.”라고는 말 할 수 없었다. 나는 2악장을 즐기고 싶었고, 어머니를 어머니로 느끼고 싶었다. 그냥 힘차게 고개를 위아래로 끄덕이는 수밖에.

나는 아직도 그 레코드 판들을 보유하고 있다. 비록 LP 플레이어가 없어 들을 수도 없지만 말이다. 보존 상태도 아주 좋다. 행여 그 판들에 흠집이라도 날까 두려워 원판으로는 감히 듣지 못하고 카세트 테이프에 녹음해서 들었기 때문이다.

레코드 판뿐 아니었다. 다음 날 부터 하루가 멀다 하고 책이 들어왔고, 한 달 정도 지나자 우리 집이 계몽사 물류창고처럼 되어버렸다.

원래부터 집에 있었던 컬러학습대백과 열 세 권, 소년소녀 세계문학전집 50권, 소년소녀 한국 전기전집 20권, 소년소녀 세계위인전집 20권에 더하여 소년소녀 현대세계명작전집 20권, 소년소녀 한국문학전집 30권, 과학백과 11권, 과목별 학습백과사전 16권, 계몽사 문고 100권 등이 추가되었다. 여기에 계림문고 등의 다른 책들까지 들어서면서 내 방의 벽이란 벽은 모두 책으로 뒤덮이게 되었고, 나는 음악과 책이라는 평생 배신하지 않는 두 친구를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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