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 POP장편소설 별이 잠드는 바다 14화 핵심자산
2
2
“막상 프리뷰 하고 나니 쇼케이스 당일은 쉽게 지나갔어요. 어차피 프리뷰랑 같은 형식이고, 사람만 더 많이 왔다 뿐이니까.”
“쇼 케이스라니? 진열대란 뜻이잖아?”
“맞아요. 프리뷰가 투자자, 광고주들 앞에 비공식적으로 진열한 거라면 쇼 케이스는 기자들, 피디들 앞에 공식적으로 진열하는 거죠. 공연에 조금이라도 가까워 편했어요. 기자분, 피디분들은 실제로 저희 춤과 노래에 관심이 많았어요. 제 학업에 대해 걱정하는 분도 계셨고. 그런데 그 표정들이 뭐랄까 ‘너 같은 애까지 여기에 나오면 어떻게 하니? 얼른 네 자리로 돌아가.’ 이런 말을 하고 싶은 분위기였어요. 이해해요. 아직까지도 저 같은 케이스 없잖아요? 아 나중에 데뷔한 메모리아의 아라, 그런데, 걔도 국제중 나오긴 했지만 데뷔하면서 서공예 갔죠.”
“네가 얼마나 절박한 상황인지 모르셨을거니까. 그때 자꾸 걸그룹 연령 내려가는 거 사회문제라고 걱정하는 여론이 있었는데 외고생까지 등장하니 얼마나 충격이었겠어? 듣고 보니 나도 걱정된다. 그 일정이라면 학교는 못 가는 거잖아?”
“일단 11월은 문화체험 이러면서 체험학습 20일 신청해서 처리했고요, 하필 쇼케이스 일주일 전이 기말고사 기간이라 문제였는데 이주란 이사가 고등학생 멤버 네 사람은 무조건 시험 쳐야 한다고 내보냈어요. 오전에 시험 치고, 점심때 들어와서 코끝에서 단내가 나도록 연습하고.
쇼케이스 마쳤는데, 다음날 등교해서 오전수업 받고 오라는 거에요. 시커멓게 썬팅된 카니발 타고 아침 일찍 학교 가서 오전 수업 마치면 바로 교문 앞에서 기다리는 회사 차 타고 숙소 오고. 오후와 저녁에 방송 데뷔 준비하고, 티저 영상 찍고. 하루 1600 칼로리 먹고 버티기엔 너무 힘든 일정이었죠. 이럴때 음악 방송이 아니라 콘서트라도 잡혔다면 -뭐 신인이 그런거 없겠지만- 아마 실신했을거에요.”
듣기만 해도 살벌한 일정이었다. 하지만 회사 입장에서 그럴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당시 예진이가 데뷔한 것은 교육계에 큰 충격이었다. 10대 소녀들 걸그룹 데뷔에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은 판에 모범생의 상징 외고생이 걸그룹이라니?
언론사 논조도 갈렸다. 한 편에서는 ‘세상의 고정관념을 깬 김예진, 21세기는 문화예술의 시대이며....’ 서사가 나왔고, 다른 한편에서는 ‘이런 아이까지 여기 끌어들여야 했나? 이건 도가 지나치다.’ 식의 비판이 쏟아졌다.
예진이는 유노이아의 핵심 자산이자 치명적인 약점이 되었다. 외고생 센터로 세상의 주목을 받고 그냥 청순이 아니라 엘리트 청순이라는 브랜드를 선점했지만, 학업을 포기한다거나 성적이 엉망이 되면 집중 포화를 맞는 상황이었다.
“기말고사 성적 제대로 나오긴 했어?”
“에이, 쌤. 그럴 리 없잖아요? 쌤 저한테 판타지 가지신 것 같아요. 저도 사람인걸요? 많이 떨어졌어요. 그나마 중간 정도는 지켰죠. 그 정도 까지는 용서가 되는 분위기였어요.
그런데 내가 용서를 못했어요. ‘중간?’ 너무 충격이었거든요. 선택과 집중, 그딴 거 생각 안 나고 그냥 너무 화나고 분했어요. 그래서 어떻게든 ‘중상’은 유지하려고 정말 기를 썼죠. 다시 하라면 절대 못할 거에요.
쇼케이스 끝나고 3일 안에 네 군데 방송국에서 모두 출연 요청 들어왔어요. KBS 뮤직뱅크, MBC 쇼! 음악중심, SBS 인기가요, 그리고 엠넷 엠카운트다운까지.”
“그게 중요해?”
“쇼케이스 하고 3일 안에 연락 없으면 그 팀은 끝이에요. 하나 들어오면 ‘한번 굴려보자’, 두 군데 이상이면 ‘어? 얘네 뜰 수도 있겠는데?, 세 군데 이상이면 ‘뜬다.’에요. 그런데 네 군데?
피디들은 퍼포먼스 안되면 절대 안 불러요. 얼굴 예뻐도 무대 망치면 방송 망치고 욕은 그 분들이 다 뒤집어 쓰죠.
그래서 정말 기뻤어요. 프리뷰때 받았던 상처는 깨끗이 날아가고 방송, 정말 잘해야지 하는 의욕이 불타 올랐죠. 자, 이 다음 부터는 생략. 재미 없는 얘기라서.”
“아니, 이제 슬슬 재미 있어지는데, 무슨 소리야?”
“그래서 방송 나갔다. 완전 떴다. 팬덤 폭발했다. 와와, 박수, 박수, 돈도 꽤 벌고. 뻔하잖아요?”
“너 지금 백설공주, 신데렐라 이야기에서 왕자만 쏙 빼고 얘기한 거 알아?”
예진이가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지니의 흔적이 사라진 그야말로 김예진의 목소리였다.
“정말 더 듣고 싶으세요?”
“그럼.”
“왕자는 안 나와요. 지니 세계에 페어리 테일은 없으니까.
쇼케이스 다음날 신문 기사 타이틀도 온통 김예진 타령이었어요. 몇 개만 기억 나는 대로 꼽아 볼게요.
외고 1학년 걸그룹 데뷔, 꿈과 현실 사이, 공부 포기? 외고생 김예진 양, 연예계 진출 논란, 10대 걸그룹, 점점 어려지는 멤버들, 외고생 걸그룹 데뷔, 상업주의의 선 넘기인가 등등.
제 루머도 돌아다녔어요. 부잣집 딸이겠거니 하고 ‘아빠 찬스’ 계통의 이야기. 아빠 빽으로 바로 대형사 데뷔조 낙하산, 아빠 빽으로 방송사 네 군데 다 출연 등등. 이 루머를 오직 실력으로 돌파하는 수 밖에 없었어요.
금요일에 하는 KBS 뮤직 뱅크가 제일 먼저고, 제일 중요했어요. 하필 생방송이에요. 녹화 방송은 두 번 찍어서 편집해 주거든요. 생방은, 음, 한 번 망치면 그냥 끝이죠.
새벽 네시에 일어나 헤어, 메이크업, 코디, 앞으로 헤메코라고 할게요, 세팅 완료하고, 일곱 시에 출발해 여덟 시 KBS 들어가 바로 리허설 했어요. 본 방은 오후 네 시지만 방송 가까운 시간은 탑급이나 중견 이상 팀들이 쓰기 때문에 신인은 아침 일찍 가서 리허설 하고 긴 시간 대기해야 했어요.
그런데 대기실도 안 줘요. 탑급은 팀별 전용 대기실 있고, 중견들은 두 세 팀이 같이 쓰는 대기실이 있는데, 신인들은 그냥 복도 대기. 리허설 끝나니까 아홉시. 본방까지는 일곱시간이나 남아있었죠.”
“이주란이 그 상태로 두진 않았을 것 같은데?”
“맞아요. 근처 렉싱턴인가 뭔가 하는 호텔 방 여러 개를 잡았어요. 무려 3주나.”
“3주나?”
“음악방송 나가면 3주차 까지 출연하는 게 원칙이거든요. 앞으로 3주는 여의도에서 살아라, 이 뜻이죠. 대기업의 특권이죠. 중소사 소속 아이돌들은 방송사 복도, 로비, 근처 카페 배회하며 여섯 시간 씩 기다려야 했어요.”
“예상대로야. 그 사람 소재로 소설을 쓰고 싶다니까.”
“그렇죠? 어쨌든 덕분에 저희는 신인답지 않게 편안하게 기다릴 수 있었어요. 거기서 쉬다 한시에 다시 헤메코 손 보고 세시부터 복도에 가서 나란히 섰어요.”
“한 시간 전에?”
“신인이 시간 맞춰 가면 보기 안 좋다고. 복도에 선배 연예인들 들락날락 거리는 데 동선 방해 안되게 벽에 딱 붙어 서 있는거죠. 벽마다 순서 기다리는 걸 그룹, 보이 그룹이 다닥 다닥 붙어 있고, 선배 그룹이나 가수 지나가면 그때마다 90도로 인사하고. 그게 일이었죠.
‘안녕하십니까, 유노이아입니다.’ 이러면서 계속 꾸벅 꾸벅 했죠. 그래도 프리뷰때 그 투자자, 광고주들한테 꾸벅 꾸벅 하는 것 보다는 훨씬 편했어요.
그런데 복도 끝에서부터 빛이 났어요. 진짜 빛이 나는 건 아니고, 그 정도 포스의 언니들이 오고 있었단 뜻이에요. 저희 멤버도 벌써 누가 오는지 알아보고 막 술렁거리기 시작했어요. 칸나 였거든요.”
“아, 그 일본에서 여신 대접 받았다던 그?”
“네. 바로 그 칸나요. 거의 쫄아서 일단 허리 숙이고, 좀 훔쳐보고 싶어도 고개도 못 들고, 그런 상태로 ‘안녕하십니까? 유노이아입니다.’만 외쳤어요. 그러고 있는데 엉뚱한 소리가 들리는 거에요.
‘어, 예진아. 너 김예진 맞지?’
깜짝 놀랐어요. 여기서 저를 예진이라고 부를 사람이 없거든요. 다들 지니라고 불렀지.
맙소사 루미 언니였어요. 칸나의 비주얼 센터 루미 언니가 저를 지니가 아니라 예진이라고 불렀어요.”
“루미라면, 그.”
나는 칸나라는 그룹도, 루미라는 이름도 잘 알고 있었다. 비록 음악이 아니라 안타까운 뉴스를 통해 알게되었지만.
“네…그 루미….”
예진이의 얼굴 빛이 어두워졌다.
나는 예진이가 스스로 마음을 추스리게 말없이 기다렸다. 그 시간은 생각보다 훨씬 길어서 거의 10분간 물끄러미 창 밖으로 흘러가는 강물만 보고 있어야 했다.
“쌤, 쌤? 어디 불편하세요?”
예진이가 오히려 나를 걱정했다. 나는 얼른 질문으로 분위기를 반전시켰다.
“그런데 루미가 널 어떻게 알아? 그것도 본명으로?”
“바우쳐 긁어 모아 춤 배우던 시절에 잠깐 만났어요. 루미 언니는 칸나 데뷔조 훈련 받고 있었는데, 제가 그 기획사 연습실에 잠시 다녔어요. 중 1때요. 언니는 고 2. 한 달 정도 같이 있었어요. 그리고 칸나 멤버가 되어 데뷔했죠. 그런데 그걸 기억하고 있을 줄이야.
‘네 얘기 많이 들었어. 데뷔도 전에 신문에 이렇게 많이 나온 건 첨 봤어. 어쨌든 축하해. 잘 될 거야. 너희는.’
‘고맙습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이 말 밖에 못했죠. 그리고 칸나가 공개홀로 들어간 다음에야 고개를 들었어요. 고개 들어보니 복도 벽에 붙어있는 눈들이 온통 저를 향하고 있었어요. 심지어 우리 멤버들 조차.
그러다 다엘 언니랑 눈이 마주쳤어요. 다엘 언니한테도 90도로 허리 숙여서 인사했어요.
‘열심히 하겠습니다.’ 이러면서.
다엘 언니가 너무 어색해 했어요. 아무리 리더라도 어디까지나 동기거든요. 이 세계 룰로는 말은 못 놓지만 90도로 인사하진 않아요. 다엘 언니가 당황할 수 밖에요.
‘예진아, 갑자기 왜 이래?’
‘그냥, 언니한테 너무 고맙고, 또 미안해서요.’
‘괜찮아. 내가 선택한 거야.’
다엘 언니가 나를 꼬옥 안아주는 시늉을 했어요. 헤메코 망가지면 안되니까. ”
“그러게? 나도 궁금하다. 왜 그랬어?”
“동갑이거든요. 다엘 언니랑 루미 언니. 그런데 다엘 언니가 고등학생 신인들하고 복도 벽에 붙어서 루미 언니한테 90도로 인사할 때 너무 미안했어요.”
“친구였던 걸로 아는데? 두 사람?”
“네. 유노이아가 칸나와 어울려도 되는 레벨 되었을 때요.”
“아, 끕이 맞는다 이런거군. 그걸 언제 알아?”
“음악 방송 나갈 때 전용 대기실이 있는 그룹인가 아닌가. 유노이아는 첫방 나가고 여섯 달만에 단독 대기실 받았어요. 그때는 칸나 멤버들이랑 어울려도 건방지다, 묻어가려 한다 등등 뒷말이 안 나오죠. 오히려 우정, 친목 이런 코드로 소비되죠. 다엘 언니도 그때는 루미 언니랑 절친이 되었고요. 저도 그게 좋았고요. 미성년자라고 안 끼워주고 둘만 종종 만나던데, 아마 술 마셨겠죠.
다시 그날 얘기로 돌아가서. 루미 언니가 알은척 해 준 덕분에 저에 대해 이러쿵 저러쿵 하던 루머가 사라졌어요. 정말 여러 모로 고마운 선배였어요. 아, 과거형 쓰고 싶지 않았는데. 쌤, 저 화장실 좀 다녀 올게요.”
나는 이미 예진이 눈이 넘치기 직전까지 젖어든 것을 봤기 때문에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보다 오래 걸렸다. 내가 2018년 겨울에 전화번호 바꿨다고 할 때 예진이가 “왜 하필 그때.” 라고 한 말의 의미가 뭔지 깨달았다.
2018년 가을부터 2019년 가을까지 그 1년.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여성 아이돌이, 심지어 한국, 일본 두 나라의 최고 탑 스타라 할지라도 얼마나 취약한 존재인지 보여주며 무너져 내린 루미. 그 몰락과 불행한 소식으로 온 국민의 관심사가 되어버려 마지막 순간까지, 심지어 그 이후에도 자신만의 시간을 끝내 갖지 못했던 루미.
예진이가 루미와 가깝게 지냈을 거란 생각을 왜 못했을까? 그 불행한 사건이 일어났을 때, 하필 나는 전화번호를 바꿔 연락을 끊어버린 셈이 되었다.
동아줄이라도 잡는 기분으로 전화 했다 ‘없는 번호’ 사인 듣거나 전혀 엉뚱한 사람이랑 연결되었을 때 예진이는 어떤 기분이었을까? 보낸 문자가 반송되거나 ‘누구시죠? ’라는 답장이 왔을때 어떤 기분이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