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케이팝소설 별이 잠드는 바다 17- 미안해 너무 미안해

2

by 권재원

“블루밍 데이즈?”

“네네. 쌤 처럼 클래식만 듣는 분도 다 아는 노래.”

“모를 수 없잖아? 지금도 4월만 되면 곳곳에서 들리는데? 그 노래 안 들리는데 찾기가 어려울 걸? 명곡이야.”

“네 명곡이죠.”

“그런데 이걸 그 경희대 간 그 친구들이 작사, 작곡, 프로듀싱까지 다 했다고? 열 아홉 살 짜리 친구들이?”

“쌤. 그건 편견이에요. 왜 천재는 꼭 클래식에만 있다고 생각하세요?”

대답할 말이 없었다.

“세이 언니는 천재에요.”

사실 예진이 이야기를 통해 간접적으로 들었지만 나도 그런 느낌을 받기는 했다.

“세이 언니 천재성과 하린 언니의 넘치는 감성이 만나면 이건 뭐 말이 필요 없는 거에요. 그 노래, 뮤비가 아니라 음원으로 떴잖아요? 춤 없이 소리만으로. 결국 곡이 좋았고, 하린 언니 보컬이 너무 호소력 있고 거기서 결정 났죠.

이주란 이사가 ‘엘리트 청순’이라는 컨셉 이거 생각해 낸 것도 두 언니가 회사 장비들 엿가락처럼 주무르면서 곡 만드는 거 봤기 때문이래요. 송라이팅 천재, 보컬 천재, 그럼 남은 건 댄스 천재, 이러다가 마지막 퍼즐로 절 만난 거죠.”

나는 두 언니를 천재라 추켜 세우면서 실제로는 자신이 댄스 천재라고 어필하는 예진의 화법에 그만 웃음을 터뜨렸다. 한참 웃다 보니 샤오룽바오가 한 덩이 나타났다.

“너무하세요. 그렇게 웃으시면 내가 이상한 애 되잖아요?”

“아이고, 미안. 미안.”

“중요한 이야기 하려 했다고요. 진짜 중요한 이야기.”

“블루밍 데이즈 완전 떳고, 그래서?”

“정산이죠.”

“그래. 안 그래도 그게 궁금했어. 정산이란게 대체 뭐야?”

“쌤, 작가시니까 책에 비유하죠. 교보문고나 예스 24에서 책 한권 팔릴 때 마다 바로바로 돈 받아요?”

“일단 출판사가 받았다가 다음 쇄 찍을 때나 아니면 일년에 두 번 이런 식으로 날짜 정해두고 모아서 주지.”

“그럼 그 책 값 다 받아요?”

“당연히 아니지. 출판사에서 계약할 때 정해진 금액이나 비율만큼 계산해서 소득세 원천징수 한 다음 보내줘.”

“그게 정산이에요. 차이가 있다면 작가들은 매출의 몇 퍼센트 이렇게 정해 놓고 받는데, 아이돌들은 번 돈에서 교육비, 사전제작비를 공제하고 나서 받아요.”

“잠깐만, 좀 이상하다. 이야기가. 내가 이해가 잘 안가는데, 그게 무슨 소리야?”

“계약할 때 아이돌 2, 회사 8이렇게 했다고 쳐요. 저희 회사는 4: 6이었지만 이건 이주란 그 분이 경영진과 싸워가며 얻어낸 아주 예외적인 케이스죠. 다른 회사는 잘해야 2:8 심하면 1:9였어요. 그런데 이 아이돌 그룹이 방송, 행사, 광고, 음원 등등 해서 매출이 총 20억원라고 해요. 2011년 기준으로는 이 정도면 중위권이에요. 출판사라면 여기서 2억을 작가에게 주겠죠? 그런데 이 바닥은 이 20억에서 비용을 빼고 순수익을 계산해요. 수익율이 30%라고 쳐 봐요. 그래서 6억에서 1억 2천을 그룹이 4억 8천을 회사가 가져가죠. 우리 회사 같으면 2억 4천을 유노이아가 3억 6천을 뤼미에르가 가져가고.”

“이상한 공식이야. 매출에서 무조건 몇 퍼센트는 아티스트에게 지급하고 그걸 비용으로 처리해야지? 무슨 순이익에서 다시 퍼센트로 나눠? 아무리 책을 많이 쓰고 팔아도 출판사에서 ‘적자입니다’ 그러면 한 푼도 못 받는다는 거잖아?”

“그렇죠? 그런데 그 1억 2천을 다 주느냐 그게 또 아니고요, 여기서 또 개인 비용을 빼요. 아까 말한 숙소 월세, 관리비, 밥값, 헤메코 비용, 차량 이동비 이런 것들이요. 그럼 한 6천 남나?”

“매출이 20억인데 남은 몫이 6천이라고?”

“아직 안 끝났어요. 이걸로 먼저 빚부터 갚아야 해요.”

“빚이라니?”

“데뷔 전에 그룹에 투입된 비용이 멤버들 빚으로 남아요. 댄스, 보컬 등등 레슨비, 연습생 시절 식비, 합숙소 비용, 앨범 제작비, 프로필 촬영비, 인이어 같은 장비 구입비 등등. 이게 또 빈익빈 부익부에요.

저희 회사는 웬만한 비용은 회사 부담으로 처리해요. 그렇게 해서 법인세 줄이는 게 더 이익이거든요. 하지만 중소사는 이걸 아티스트한테 뒤집어 씌워요. 심지어 작사작곡비, 안무비까지 뒤집어 씌우는 경우도 많아요. 그럼 데뷔할 때 통장에 2억에서 3억 정도 마이너스 찍고 출발이죠.

적게 마이너스 2억이라 쳐요. 그럼 남은 몫 6천만원을 다섯 멤버가 1200만원씩 받으면 정산표에는 -18, 800만원이 찍혀요. 다음 분기 때 더 많이 활동해서 5,000만원 받게 되면 정산표에는 -13,800만원이 찍히고. 이러다 이게 0이되면 그 다음 분기부터 비로소 통장에 돈이 꽂히는 거에요.”

“이래서 2억을 언제 채워?”

“그렇죠? 어지간히 인기 많아도 3년 안에 갚기 어려워요. 그런데 저거 다 갚고 나면 인기 떨어지고, 회사는 자기들이 벌어준 돈으로 더 젊은 애들 데려다 연습 시키고있죠. 인기 제대로 못 끌면 한 3년 지나 팀 깨지고, 남는 건 빚이죠.

이름 좀 들어본 그룹들 대부분은 해체 될 때까지 받은 돈 다 해 봐야 직장인 연봉 정도가 전부였을 거에요. 나머지는 다 0원 혹은 빚만 남았다고 보면 틀림없어요. 심지어 칸나도 일본 아니었으면 거의 못 벌었을 거에요.”

나는 그만 화를 내고 말았다.

“아니, 무슨 이 따위 계산법이 다 있어? 출판사가 종이 값, 잉크 값까지 작가한테 떠 넘기는 걸로 들려.”

“그보다 더해요. 책 안 팔리면 절판하고 안 팔린 책 값도 작가 빚이 되는 거니까.”

나는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예진이 도리어 물었다.

“안 궁금하세요? 저는 어떻게 그렇게 많이 벌었을까?”

“궁금하지. 그런데 설마 그 정산이란 거 될 때까지 한 푼도 못 벌면서 노래하고 춤추는 거야?”

“설마가 아니라 진짜 한 푼도 못 받아요. 유노이아는이주란 이사의 개혁, 뤼미에르가 마인 계열사라는 덕을 봤어요. 이주란 이사는 아티스트를 쥐어 짜서 돈을 버는 것이 아니라 아티스트를 더 활개치게 해서 브랜드 가치를 높여 파이를 키우자, 이런 철학을 가지고 있었어요. 미성년자 아이돌을 완성된 상품처럼 팔아 치울 것이 아니라 팬들과 함께 성장 서사를 공유하는 감정 공동체로 키우자고 주장했고요.

이게 아이티 기업 경영 방식과 통해요. 뤼미에르는 아티스트를 후배나 아랫 사람으로 보는 다른 엔터사와 달리 IP로 봤어요. 아이돌을 사람으로 본 다른 엔터사보다 자산으로 본 우리 회사가 결과적으로 훨씬 인간적인 대우를 한 셈이 되었어요.

수익 분배율 자체도 높고, 데뷔전 비용, 그러니까 빚도 훨씬 적게 잡았어요. 회사 판관비로 처리한 내역이 많거든요. 숙소에서 먹는 밥값도 우리한테 청구 안하고 회사 복리후생비로 처리했더라고요.”

“이거야 원 뒤웅박 팔자네.”

“맞아요. 실력 외모가 비슷비슷한 그룹도 어느 회사 소속이냐, 디렉터가 누구냐 따라 누구는 몇 억 벌고, 누구는 빚만 남고, 그런 식이죠. 저는 운이 좋았어요.”

“그런데 난 자본가 착한 거 안 믿어. 그만큼 회수할 자신이 있단 뜻이었을거야.”

“그 말도 맞아요. 이주란 이사가 딱 이렇게 말하더라고요. ‘야구팀 하나 굴리는데 수백억 들어. 그런데 맨날 적자잖아? 그런데 유노이아에 몇 십억 쓰는 게 뭐가 아까워?’

또 다른 동기도 있었어요. 유노이아가 좋은 조건으로 정산 받는거 알려지면서 연습생 퀄리티가 다른 회사를 압도했어요. 장기적으로 이익이죠. 그만큼 인적자원을 확보했으니까. 뤼미에르 최강국 대표, 인간적으로는 좀 그럴 때가 많지만 사업가로서는 인정 안 할 수가 없어요.”

하지만 나는 그 말에 동의할 수 없었다. 뤼미에르의 모기업 마인이 플랫폼 강자로 성장한 과정을 알기 때문이다. 마인에서 만든 중독성 강한 사행성 게임 때문에 폐인이 되다시피한 학생들 지도하느라 애먹었던 것 생각하면, 자다가도 이를 갈며 벌떡 일어날 판이다.

그 밖에도 마인은 법의 구멍을 교묘히 빠져다니며 온갖 더러운 방법으로 사업을 확장했고, 최강국은 그 선봉장이었다. 뤼미에르는 마인이 그 동안 궂은 일 하느라 고생했다고 최강국에게 하사한 일종의 트로피였다. 예쁜 아이돌들하고 여생 행복하게 보내라고. 하지만 제 버릇 게 못 준다고 최강국은 뤼미에르를 바탕으로 여러 중소 엔터사들을 합병하여 빠르게 세를 불렸는데, 그 방법이 거의 금융범죄에 가까웠다. 용케 법망은 피해 다녔지만.

예진이에게 차마 이런 말 까지는 할 수 없었다. 어쨌든 예진이의 말은 요약하면 이거였으니까.

“대기업 입사해서 다행이에요.”

젊은이들이 중소기업 외면하고 대기업 들어가려고 기를 쓰는 것 나무랄 일이 아님이 심지어 엔터판에서도 구현되고 있었다. 마인 그룹은 대학생들이 가장 가고 싶어하는 회사로 손꼽히는데 아이돌도 마찬가지라니. 그냥 웃을 수 밖에.

예진이 내 웃음을 끊고 말했다.

“2013년 6월에 첫 정산이 나왔어요. 블루밍 데이즈 터지면서 곧 되겠다 싶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6월에 1500만원 이 꽂혔어요. 신기했어요. 우리 가족 1년 생활비를 그 어린 나이에 번 거에요. 그때 처음 느꼈어요. 이거 돈이 된다.”

“고등학생이 천만원 넘는 돈을 손에 쥐었으니 정신 없었겠다. 그래서 어떻게 했어? 저축 좀 했어?”

“그거 일 주일 만에 다 썼어요.”

깜짝 놀라는 정도가 아니라 많이 실망하고 살짝 화도 났다. 뭔가 공감 갈만하면 자꾸 거리감을 느끼게 만드는 헤픈 씀씀이가 뿌리가 아주 깊다는 생각이 들었다.

애써 감정을 숨기며 억지로 물었다.

“그래, 뭐에 썼는데?”

“일단 부모님한테 500만원 드렸어요.”

“아.”

마음이 일단 누그러졌다.

“나머지는 인이어하고 메이크업 세트 장만했어요.”

“그게 그렇게 비싸?”

“인이어는 아이돌에게 생명이나 다름없어요. 그 동안 회사 거 빌려 썼는데 제 귀하고 모양이 안 맞아 꽉 끼우면 아팠어요. 그래서 커스텀으로 맞추고 지니 로고까지 새겨서 두 세트 장만했어요. 그럼 400만원 나가요. 기왕 하는 거 제일 좋은 거 했거든요. 그리고 메이크 업 풀세트, 장비, 보관함, 전용 캐리어까지 500만원. 남은 100만원은 옷이랑 운동화 샀어요. 연습 때 쓰게.”

나는 인이어에 큰 돈 쓴 것 까지는 투자 개념으로 충분히 이해가 되었지만 메이크업에 단숨에 500만원을 쏟아 붓는 건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아무리 아이돌이라지만 고등학생인데 도대체 이건 무슨 배짱일까? 하지만 예진이의 대답은 이런 내 생각을 완전히 뒤집어 버렸다.

“인이어는 무기, 메이크 업은 갑옷이에요. 전 무기만 들고 전장에 달려드는 그런 무모한 짓은 안 해요. 먼저 갑옷부터 챙겨 입고 무기를 들죠.”

“하지만 넌 청순돌이라고 하지 않았어? 그 시절 화면 보면 메이크 업 별로 안한 것 같던데?”

“청순돌이 메이크 업 훨씬 더 많이 해요. 메이크 업 안한듯 보이면서 투명하고 깨끗해 보여야 하는데 말이 쉽지 정말 어려워요. 일단 평소 피부관리 중요하기 때문에 스킨케어, 프랩, 미스트 이런 데 돈을 아낌없이 태워야 해요. 색조도 안 하는 게 아니라 저채도 위주로 하는 거고요. 저채도만 사용해서 입체감 내려면 정말 섬세하게 터치해야 해요. 레이어 아주 얇게, 얇게 입혀가면서. 그래서 베이스도 색조도 굉장히 다양하게 써요. 틴트, 립밤, 블러셔는 무조건 제일 좋은 걸로 여러 개 준비해야 하고. 브러시, 뷰러 같은 장비도 엄청 다양하게 필요해요. 거기에 캐리어까지 장만하고 그러면 500 우습게 녹아요.”

그래도 너무 비싼 게 아닌가 생각하는데 예진이 확인 사살까지 했다.

“이게 오히려 절약돼요. 평소 관리를 직접 하니까 전문가 안 불러도 되고. 두 달이면 본전 다 뽑아요. 주구장창 전문가한테 다 맡기잖아요? 그럼 정산할 때 진짜 남는 거 없어요. 9월 정산 때는요, 3천 넘게 들어왔어요. 150만 원만 남기고, 나머지 몽땅 저축했어요.”

“부모님 안 드리고?”

“500 드렸을 때 아빠 얼굴이 실망한 표정이더라고요. 맘 상했어요. 난 1년 반 만에 받은 거 1/3을 드린 건데, 아마 세리 팍 이펙트 같은 거 기대하셨나 봐요. ‘고작 500?’ 이런 표정이 느껴졌거든요.

어차피 숙소 생활이니까 얼굴 볼 일도 없고, 드려 봐야 엉뚱한 데 쓰일 게 뻔해서 차라리 악착같이 모아서, 나중에 빌라 한 칸 사드리자 그런 생각했어요.”

“고등학생이 그런 생각을 했다고?”

“저 중학교 때부터 어른 노릇했잖아요. 조숙하지 않으면 버틸 수 없는 신세였어요. 부디 조로는 하지 말기를.”

가슴이 쓰라렸다. 고작 열일곱의 아이가 했다는 생각들이 나로선 쉰이 훌쩍 넘은 지금까지도 해본 적 없는 것들이었다. 나는 점점 예진이에게, 제자가 아니라 인생의 선배 같은 기분이 들기 시작했다.

살아남기 위해, 너무 일찍 어른이 되어야 했던 아이. 다행히 지금 예진이는 서른이 아니라, 스물넷 정도로 보였다. 본인 말대로 최고급 스킨케어, 프렙, 미스트를 대량 살포한 덕분인지 모르지만.

하지만 이야기 하는 예진이의 얼굴에는 최고급 메이크업으로도 연출할 수 없는 기쁨의 빛이 느껴지고 있었다.

“2013년 여름에 마침내 제가 가장 바라던 것을 하게 되었어요. 맞춰보세요.”

나는 쉽게 답을 맞출 수 있었다.

“콘서트! 인이어를 그렇게 비싸게 샀는데 서너 곡 부르고 물러나는 음악방송이나 행사용으로 사진 않았을 거잖아?”

“와, 이제 쌤도 우리 세계 읽으시네요? 맞아요. 단독 콘서트. 줄여서 단콘. 그것도 첫 방에 올림픽 핸드볼 경기장 2회. 몽땅 매진되고 3회차 공연 열어달라는 요구가 많았는데, 경기장 일정이 꽉차서 못했어요.”

나는 얼른 아이폰을 들어 검색했다. 아이돌한테 ‘단콘’이란 게 얼마나 큰 의미인지, 그리고 그 단콘을 ‘올림픽 핸드볼 경기장’에서 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궁금했다.

검색한 정보를 바탕으로 알은척을 했다.

“핸드볼 2회 매진될 정도면 체조에서 한방에 끝낼 수도 있는 거잖아?”

“그쵸? 그런데 이주란 이사 생각에 그건 좀 이르다, 쉽게 말하면 너무 나대면 정 맞는다 그랬던 것 같아요. 그때는 여돌은 단콘 잘 안 시켜 주고, 시켜 줘도 2천석 이내로 안전하게 갔어요. 핸드볼도 어렵다고 봤어요. 5천석이에요. 2년차 여돌이 단독으로 5천석? 어림없다, 이런 인식이 박혀 있던 시절이죠.

그런데 이주란 이사는 그걸 2회나 꽂았어요. 굉장한 배짱이죠. 무모한 건 아니었어요. 칸나가 도쿄돔에서 수만 명 단콘 했거든요. 소녀시대가 체조에서 1만명 단콘도 했고. 그 분 생각에 유노이아 레벨이 칸나, 소녀시대 절반은 안되겠냐? 이거였죠. 계속 팬덤 유입 모니터하기 때문에 충분히 계산 다 했을 거에요. 이게 마인 계열사의 무서움이죠. 플랫폼을 통해 실시간으로 다 체크되니까.

‘어, 걸그룹인데 남자팬 보다 여자팬이 많네?’ 이럼 바로 고고 하는 거죠.”

“기분 좋았겠다.”

“그럼요. 너무 행복했어요. 그동안 팬들한테 미안했거든요. 팬 사인회, 팬 미팅은 여러 번 했는데, 단독 콘서트는 한 번도 못 보여드렸으니까요.”

“팬 사인회는 어떻게 하는지 예니한테 들었어. 거기 가려고 CD 수십 장씩 산다며? 솔직히 제정신인가 싶더라.”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근데 그게 회사 수익이랑 바로 연결되는 거라 함부로 뭐라 하긴 어렵죠. 내가 고작 30초, 1분 마주 앉아 사인하고 얘기 좀 해주는 댓가로 수십만 원 요구한 셈이잖아요. 그래서 늘 미안했어요. 다른 멤버들은 이런 마음 잘 몰라요. 돈 없어서 힘들었던 건 저 뿐이라.”

“다른 멤버들은 부잣집 딸들인가 보지?”

“부모님 이야기는 잘 안 꺼내는 편인데, 그래도 얼핏 들어서 짐작은 해요. 소이는 아빠가 의사고, 세이 언니는 부모님 두분 다 하이닉스 엔지니어고 대충 그런 식이죠. 그런데 진짜 미안한 건 팬미팅이었어요.”

“안 그래도 그게 궁금했어. 너희 사진 보니까 블루스퀘어에서 하던데, 그 정도면 미팅이 아니라 공연 아닌가?”

예진은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숙였다. 입가에 떠오른 웃음은 밝지 않았다.

“그거요? 극장에 팬들 모아 놓고 한 시간 반 정도 놀아주는 거예요. 공연도 하긴 해요. 20분? 30분? 나머지는 저희 브이로그 틀고, 영상 편지 보여드리고, 토크쇼 하고, Q&A 하고, 단체 사진 찍고. 그런 식이에요.”

“그걸 돈 내고 간다고?”

“그럼요. 그때 티켓 값 2만 원이었는데요. 금방 매진되었어요. 저희를 직접 볼 수 있는데 콘서트보다는 훨씬 싸니까. 그게 너무 미안했어요. 과분한 사랑을 보내주시는데, 회사가 그 사랑을 묶어서 상품으로 내놓는 거예요. 사랑이 클수록 더 비싸게 파는 구조랄까요.”

나는 그 말을 듣고 뭐라 말해야 할지 몰랐다. 예진은 그 틈을 타듯 말을 이어갔다.

“이기적인 마음으로 보면, 팬미팅은 콘서트보다 훨씬 편하게 돈 벌 수 있는 방식이에요. 그나마 이주란 이사님이 반대해서 ‘하이터치’ 안 한 건 정말 다행이었고요.”

“하이터치?”

“쭉 줄서서 하이파이브 하는 거에요. 그런데 그걸 또 돈 받고 팔아요. 일반석 2만원, 하이터치석 3만원 이런 식으로. 손바닥 터치하는 값이 만원이죠.”

“나, 기분 나빠진다.”

“저도 그거 굉장히 기분 나빴어요.

‘우리 애들, 몸은 안 팔아요.’

이주란 이사는 이렇게 말하고 하이터치는 프로그램에서 지우더라고요. 그땐 아니 무슨 말을 저렇게 하나 싶었어요. 몸을 팔다뇨?”

“난 무슨 뜻인지 알겠는데?”

“그때 저희는 애들이었잖아요. 저도 지금은 그게 무슨 뜻인지 알아요. 손바닥이든 아주 민망한 부위든 어쨌든 돈 내고 터치할 권리가 생긴다면 본질적으로 같죠. 그래도 그 분, 좀 다르게 말씀해 주셨다면 좋았을 것을.”

“그래도 네가 그런 거 안했다고 하니 난 그 분이 너무 고맙게 느껴지는 걸?”

“알아요. 그 분이 저희 지키는 거 진심이었던 것. 그런데 팬들에게는 악착같았죠. 가두리처럼 가둬두고 굿즈 한 점이라도 더 팔아치우려고 작정했다니까요.”

나는 깜짝 놀랐다.

“아니 굿즈가 그렇게 많이 팔려?”

예진이 씁쓸하게 웃었다.

“얼마나 팔기 쉬운 상황인지 아세요? 무대 오르기 전, 팬들 설레서 가슴 두근거리죠. 그래서 사요. 무대 끝나면, 아쉬움에 마음이 허하죠. 딱 그 타이밍에, 또 굿즈가 나와요. 포토카드, 브로마이드, 키링, 티셔츠, 가방, 텀블러, 팔찌, 한정판 CD패키지. 전부 ‘이번 팬미팅 한정’이라는 딱지 붙여서. 안 살 수 없어요. 마지막 기회처럼 느껴지니까요. 바리바리 들고 가시더라고요.

티켓 값이 2만 원이면, 굿즈는 보통 4, 5만원 어치. ‘사랑한다며? 그럼 증명해봐.’ 이러면서 탈탈 털어가는 구조에요. 저희 입장에서는 회사가 마치 ‘사랑 받고 있으니 그 사랑을 현금으로 바꿔와.’ 하고 요구하는 것 같았어요.

더구나 저는 소이와 함께 유노이아 입덕 통로였거든요. 자꾸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결국 내가 꼬셔서, 털리게 만드는 건가?’

소이는 뭐, 자기가 사랑받는다는 느낌에 마냥 행복했겠죠.

2012년에 이걸 투어처럼 돌았어요. 부산, 대구, 광주, 대전. 마지막엔 블루 스퀘어에서 이틀.

이게 콘서트였으면 이렇게 미안해 할 이유도 없죠. 제가 가진 것들을 아낌없이 보여 드렸으니 티켓 값이 비싸든 굿즈를 얼마나 팔든 정당한 거래라고 생각했겠죠.”

“그런데 이주란은 왜 이런 행사를 전국으로 돌렸을까?”

“지금 생각해 보면. 회사에 수익 빨리 채워 넣으려 했던 것 같아요. 그럼 ‘투자금 회수’가 빨리 끝나고 정산이 빨리 시작되니까. 팬미팅은 극장만 빌리면 되고, 굿즈만 잘 팔아도 수익이 짭짤해서 콘서트보다 리스크가 훨씬 작거든요.

저희야 고맙죠. 그런데 그게 팬들을 그렇게 쥐어짜면서까지 해야 할 일이었는지는 모르겠어요. 그 분. 분명 저희를 사랑했구나 싶은데 때로는 그 사랑이 너무 지독하고 무섭단 생각도 들고, 그게 사랑이라고 할 수 있나 싶기도 하고.

팬 미팅이 한 긍정적인 기능이 또 있었어요. 회사에 저희 단독 콘서트 관철시킬 근거가 되었으니까. 일종의 위력 과시죠. ‘신인 걸그룹도 단콘 된다니까 이 사람들아.’ 이러면서.

그분의 페미니즘은 늘 한 문장이었어요. ‘남자한테 지지 마.’ 그게 고스란히 우리한테 이렇게 전달됐죠. ‘남자 경영진에게 당하지 마. 남자 아이돌한테 실적으로 이겨.’

하지만 이렇게 말씀 하셨어야죠.

‘회사가 리스크 큰 콘서트를 주저해. 그러니까 이번 팬미팅, 남돌 못지않은 파워로 밀어붙이자.’

우리는 아무것도 모른 채 그냥 또 하나의 일정처럼, ‘하라니까 하는’ 팬미팅을 돌았고, 그게 뭘 의미하는지는 나중에야 알았어요.”

하지만 나는 그 말에 회의적이었다.

“먼저 알았다고 달라졌을까? 그럼 팬들에게 ‘여러분 속는 셈 치고 굿즈 많이 사주세요. 그러지 않으면 여러분이 기다리는 콘서트 못해요.’ 이러는 셈인데?”

“듣고 보니 그것도 그러네요. 아이, 참, 쌤도. 뭐, 어쨌든 그래서 단콘 일정 나왔을 때 너무 좋았다고욧! 단콘 일정 나왔을 때 우리 엄청 쫄았어요. 5천명. 블루스퀘어 두 배. 그런데 이걸 두 번.”

“블루스퀘어 네 번 매진?”

“그쵸. 블루스퀘어 만석 만큼 관객 들어와도 절반이 텅 빈 그림 나와요. 이거 사진 찍혀 돌아다니면 우리 이미지는 그냥 망한팀으로 찍히는 거고.”

“오픈 당일 매진 되었잖아?”

“어떻게 아세요?”

“내가 예매 실패했으니까.”

“제가 세 장 보내 드렸잖아요?”

“예니가 퍽도 엄마 아빠랑 갔겠다. 티켓 세 장 보자 바로 트리오 멤버한테 전화 돌리더라. 엄마 아빠는 같이 가자는 말 꺼낼 틈도 없었어.”

나는 쓸쓸해지는 마음을 감추려고 슬쩍 농담을 던졌다.

“기왕 보내는 거 여섯 장 보내지 그랬어?”

예진이가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이러다 ‘우리반 애들 단체 관람시켜주지 그랬어?’ 까지 나오겠다.”

그 웃음은 이내 실망스러운 얼굴로 바뀌었다.

“결국 제 첫 콘서트 못 보신거에요?”

나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봤어. 아내가 하도 졸라서 중고나라에서 9만원 짜리 16만원 씩이나 주고. 그나마 20만원 부르는 거 깎았어. 내 평생 처음 암표를 다 샀네.”

예진이의 눈빛이 반짝였다.

“어땠어요?”

“노래 좋더라. 흔한 걸그룹 노래가 아니었어. 프로그램도 다양하고. 하린이 피아노 독주, 세이 힙합, 그리고 하이라이트는 역시 너였어. 리리컬 드레스 입고 컨템포러리 댄스라니. 너무 아름다웠어. 누가 무대 중심인지 확실히 알겠더라.

네 노래도 예쁘더라. 가성으로 부드럽게 고음 올리는 거 보고 립싱크 아니란 거 알았지. 진성 쓰는 걸로 들렸으면 오히려 의심했을 거야. 가성 안쓰고 부르는 멤버는 하린이 딱 한 명인데 스탠딩 상태에서 불렀거든. 나, 이 정도로 상세하게 봤다.

아, 그리고 네 바로 옆에서 특수효과 폭죽 터질 때 난 깜짝 놀랐는데, 넌 아무렇지도 않게 춤추더라. 그래서 네가 무대 동선 거의 10센티 단위까지 계산해서 움직이는 거 알았어.”

예진이 고개를 숙이더니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고마워요.”

“너 지금… 우는 거야?”

“네.”

“자리 옮길까?”

“네.”

“힘들면, 내가 운전할까?”

“그래 주실래요?”

“내가 사고 싶었던 차라 시승해 보는거야.”

“어차피 시승차 빌려온 거에요.”

예진이 다시 웃었다.


keyword
이전 16화케이팝 장편소설 별이 잠드는 바다 16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