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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비로우신 천주 성부님. 세상에서 불러 가신 최나경 마리아를 받아들이시어 영원한 행복을 누리게 하시며 성인들과 함께 주님을 찬미하게 하소서. 또한 저희도 주님의 뜻 안에서 서로 화목하며 사랑할 수 있게 해 주소서.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자비로우신 천주 성부여, 여기 누워 있는 최나경 마리아의 영혼을 구해 주시고, 항상 천주 곁에 있도록 은총의 빛을 내려 주소서. 최나경 마리아와 다른 모든 영혼들을 죄에서 구해주시고 축복을 내려 주소서.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신의 이름으로 어제와 같이 항상 영원히. 아멘.”
오석의 기도 소리가 산들바람을 타고 흘러왔다.
수현은 오석이 혼자 기도할 수 있게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섰지만 교외라 공기가 맑아서 그런지, 소음이 없어서 그런디 한 마디 한 마디가 선명하게 들렸다. 어쩌면 기도문 특유의 성조와 리듬이 그렇게 만든 것인지도 모르겠다.
수현은 그 어느 신도 믿지 않지만 가톨릭 신자들의 기도나 성가 소리는 좋아했다. 내용은 관심 없고 그 분위기가 좋았다.
기도하는 오석 앞에는 껍질을 깐 콜롬방 초콜렛이 놓여 있고, 다시 그 앞에는 ‘최나경 마리아 1968. 05. 13- 1985. 10. 17’ 이라고 새겨져 있는 비석이 있었다.
수현은 최나경 마리아라는 여성을 알지 못한다. 만나 보기는 커녕 그 이름도 여기 와서 처음 봤다. 무덤에 이렇게 누워 있으니 앞으로도 계속 모를 사람이기도 했다.
그래도 수현은 자기 나름대로 조용히 명복을 빌어 주었다. 비석의 숫자를 보니 꽃다운 나이 고등학교 2학년 때 세상을 떠났다. 오석의 친구였다고 하니 살아 있다면 수현의 친구가 되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기도를 마친 오석이 성호를 그으며 일어섰다. 수현은 남자가 성호 긋는 동작을 볼 때 마다 섹시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월드컵 축구 경기 때 섹시한 이탈리아, 스페인 선수들이 경기 시작할 때나 골을 넣을 때 성호 긋는 모습을 봤기 때문이리라. 소년 느낌 나는 오석 조차 성호를 그으면 비장한 결심을 하는 전사 같아 보였다.
하지만 아무리 기도 소리가 듣기 좋고 성호 긋는 모습이 섹시해도 알지도 못하는 여자 아이 무덤 앞에 남자 친구와 머물러 있는 일은 그리 달가운 일이 아니다. 더구나 뜨거운 초여름 햇살 아래서라면 더욱 그렇다. 공원 묘지라 그늘도 없다. 슬슬 떠나야 할 시간이다.
수현이 목소리를 최대한 가라 앉히며 오석을 불렀다.
“다 끝났니?”
“응.”
오석이 여느 때처럼 간단히 대답하더니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수현도 뭐가 있나 싶어 덩달아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찬란해야 할 계절인 6월의 한 낮이라고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우중충했다. 손을 뻗어 하늘을 잡아 당기면 물방울이 뚝뚝 떨어질 것 같은 축축하고 꿉꿉한 그런 느낌의 하늘이다.
오석이 수현에게 가까이 오더니 살짝 눈을 숙여 보였다.
“같이 와 줘서. 고마워.”
수현은 그럼 당연히 고마워 해야지라고 생각했다. 두번 세번생각해도 황당하다. 친구 무덤에 그것도 여자인 친구 무덤에 여자친구 데려오는 남자라니? 그렇다고 정말 그걸 따라오는 여자친구는 또 뭘까? 수현은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다. 자기 마음이 너무 넓은 건지 아니면 뭘 모르는 건지 이도 저도 아니면 완전히 사차원, 오차원인 건지.
하지만 오석을 비난 할 수는 없었다. 같이 가자고 먼저 말한 쪽은 오석이 아니라 수현이었으니 말이다.
발단은 박종철이었다. 사람들은 경찰의 잔인함, 정권의 혹독함을 비난했지만 수현은 다른 쪽을 보고 치를 떨었다. 박종철이 고문 받다 목숨을 잃어가면서까지 지키려 했던 바로 그 선배 말이다. 그 선배는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누구는 그럴 것이다. 박종철이 목숨 바쳐 지키려 한 만큼 나타나서 경찰에 붙잡힌다면 그 죽음을 헛되게 하는 것이라고.
하지만 수현은 고문 경관 못지 않게 그 선배가 미웠다. 후배의 목숨과 바꿔 가며 지킬만한 대의명분이라는 것이 과연 무엇일까? 그런 것이 있기나 했을까?
후배가 아무 잘못도 없이 죽었다. 단지 자기를 만났고 약간의 노잣돈을 마련해 주었다는 것 때문에. 그렇다면 체포를 각오 하고서라도 그 부모와 유가족 앞에 나와 깊이 사죄하고 같이 통곡 했어야 사람의 탈을 쓰고 있는 도리가 아니었을까? 아무리 혁명투사라 할지라도 – 그 선배가 그리 대단한 혁명투사일 것 같지는 않지만 – 먼저 사람인 것이다. 사람의 도덕이 혁명의 도덕에 우선해야 하는 것이다. 적어도 수현의 생각에는 그랬다. 수현은 경찰의 정권의 잔혹함보다 정의와 민주를 외치는 사람들의 냉혹함에 치를 떨었다.
수현은 이런 생각을 오석에게 하나도 보태거나 덜지 않고 고스란히 털어놓았다. 그러자 오석이 이렇게 말했다.
“설마. 그 선배가 그렇게 까지 냉혹한 사람은 아닐 거야.”
“정말?”
“이제 박종철의 죽음은 그 선배의 남은 인생 내내 따라다니는 원죄가 되었을 거야. 보이지 않는 곳에 숨어 있다고 도망가거나 피할 수 없는. 그 선배는 남은 인생을 박종철이라는 이름을 걸고 살아야 해.”
“그걸 어떻게 알아?”
“나한테도 그렇게 원죄가 되어버린 죽음이 있으니까.”
그래서 수현은 그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스스로 꽃다운 목숨을 버린, 그러나 공식적으로는 심장마비로 사망한 것으로 되어 있는 오석의 친구 이야기.
그 친구는 안타까운 선택을 하기 전에 작은 동아 줄이라도 잡아 볼 생각으로 오석을 찾았다. 그런데 오석은 그 조짐을 알아채지 못하고 여느 때와 별로 다르지 않게 대했다. 어쩌면 낌새를 눈치 챘음에도 대수롭지 않게 여기거나 좋은 쪽으로 왜곡해서 해석했을 수도 있다. 그리고 그 다음 날 그 친구는 안타까운 선택을 했다.
“그 친구 말을 진지하게 들어야 했어. 적극적으로 붙잡아야 했어. 이 생각이 그날 이후 절대 떠나지 않았어. 고등학교 3학년 내내 죄책감이 날 붙잡았고, 결국 학력고사 망쳤어. 체력장 빼고 친 모의고사 점수를 체력장 넣고 받았으니 완전 망했지. 그래서 하향지원해서 우리 과에 왔어. 덕분에 수현이 널 만났지만. 그런데 대입 끝나면 그 친구 무덤에 가서라도 미안하다고 말하고 싶었는데, 어찌 하다 보니 아직도 못 갔어.”
“그럼 가. 가서 미안하다고 하고 명복을 빌어 줘. 그 어두운 감정을 언제까지 매달고 살수는 없잖아?”
“정우랑 같이 갈 생각이었는데, 사이가 이렇게 되고 보니.”
이 말이 수현의 원죄(?) 의식을 자극했다. 이유야 뭐가 되었건, 수현이 디누를 소개시켜 달라 하지 않았으면 싸울 일도 없었을 것이고, 오석은 10년 우정을 지금도 유지하고 있을 것이고, 둘이 그 친구 무덤에 가서 씻김을 했을 것이니 말이다.
물론 수현은 그 우정이 깨진 가장 큰 책임은 디누의 오만함에 있다 생각했다. 그래도 그런 이성적인 판단이 오석을 볼 때 마다 생기는 미안한 마음을 막지는 못했다.
“나랑 같이 가.”
결국 이렇게 말하고 말았다. 생전에 만난 적도 없고, 서로의 존재도 몰랐을 친구지만 어쨌든 오석이 마음의 짐을 털고 밝은 모습을 찾을 수 있다면 아무래도 좋았다. 마침 무덤이 있는 원당은 불광동에서 가깝기도 했다.
오석은 선릉역에서 원당까지 거리를 생각하고 너무 먼 곳까지 같이 가주는 것을 미안하고 부담스럽게 생각했다. 하지만, 구태여 “우리 집 거기서 그렇게 멀지 않아.”라고 말할 이유는 없었다. 오석이 계속 미안해 하도록 두는 편이 좋으니까.
그런데 그 친구가 여자일 줄은 몰랐다. 그건 무덤 앞에 와서 비석을 보고서야 알았다. 순간 정체를 알 수 없는 배신감이 느껴졌다. 죽은 소녀를 두고 질투? 어이없는 상황이지만 이 어이없는 상황 때문에 화가 났다.
수현은 일단 성묘는 마치도록 하고, 그 다음에 따지기로 했다. 오석이 이 죄책감을 털지 않으면 계속 응어리가 되어 남을 것이고, 그건 정말 싫었다.
성묘를 다 마친 것을 확인한 수현이 즉각 속마음을 털어냈다.
“내가 먼저 친구 성묘 같이 가자고 말하긴 했는데, 네가 말한 그 친구가 여자친구인 건 몰랐어. 화난 건 아닌데, 기분이 좋지 않아. 무슨 교대식이라도 하자는 거야?”
그런데 오석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기분 나빴구나? 하긴 나 같아도 그랬겠다. 미안해. 하지만 이 친구가 여자인 건 맞지만 여자친구는 절대 아니야. 사실은 친구도 아니야. 그냥 얼굴만 알던 사이에 가까워.”
“얼굴만 알던 사이라고? 그런데 그렇게 마음의 짐이 될 정도였어? 너 혹시 얘 좋아했었니? 혼자?”
오석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런데 왜 네 마음을 말 안했어?”
물론 수현은 오석이 어떤 여자 애를 좋아 하더라도 고백하거나 사귀자고 할 깜냥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 고백은 커녕 말도 먼저 못 붙였을 거다.
그런데 오석의 대답이 뜻밖이었다.
“나경이는 그때 정우랑 사귀고 있었어.”
정말 엉뚱한데서 등장하는 디누다. 수현은 이 무덤 속의 아이가 오석과 열렬한 사랑을 주고받은 사이였다고 생각했을 때 보다 두배, 세배 더 기분이 나빠졌다.
“디누. 어디 가나 디누야. 대단해. 완전 페로몬 덩어리네.”
수현은 오석이 디누에 대해 부정적으로 말하는 것을 싫어하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만 빈정거리는 투로 말하고 말았다. 하지만 수현은 그 책임을 디누에게 돌렸다. 이 모든 것은 오랜 팬심을 배신하는 디누의 얄팍하고 옹졸한 인품 탓이다.
수현은 디누가 자신을 싫어하는 것 까지는 이해했다. 그렇게까지 막말을 주고 받았으니 당연하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기로 어릴 적부터 친구인 오석과도 연락도 끊어버린 것은 너무 옹졸하다. 그런 옹졸한 녀석에게는 빈정거림도 과분하다. 그냥 욕을 퍼부어야 했는데 수현이 많이 참은 것이다.
“내려가자.”
오석이 오른 팔을 내밀었다.
마음에서 털어야 할 것은 다 털었으니 더 있고 싶지 않아졌나 보다. 수현이야 당연히 무덤 주인이 여자애라는 것을 알았을 때부터 내려가고 싶었으니 얼른 오석이 내민 팔에 왼 손을 끼워 넣었다.
그렇게 그들은 팔짱을 낀 상태로 비탈길을 걸어 내려갔다. 무덤 수십개와 성자, 천사, 성모 조각들을 지나 보냈다. ‘천주교 율법묘지’라고 적힌 커다란 입간판을 지났다. 한 낯의 햇빛을 받아 짤막해진 그들의 그림자가 따라왔다.
그림자를 보니 갑자기 오석이 불쌍하게 느껴졌다. 수현은 오른 손으로 왼손을 감싸며 더 깊게 팔짱을 꼈다. 순간 돌발 상황이 일어났다. 오석의 팔이 그만 수현의 가슴에 닿아버린 것이다. 닿았다기 보다는 차라리 푹 하고 눌린 쪽에 가까웠다. 오석도 팔 뒤에서 뭔가 푹신한 느낌을 받았는지 움찔했다. 하지만 수현은 잡은 손을 놓지 않고 그 자세를 유지했다.
그 상태로 ‘천주교 율법묘지’라는 간판이 달려 있는 아치를통과하자 산모퉁이를 돌아가는 시골길이 펼쳐졌고, 다시 시골길을 30분 가량 걸어가자 그제서야 집이며 가게가 옹기종기 모여 있는 사람사는 풍경이 나타났다.
원당읍이다. 수현에게는 시골길과 읍내의 경계가 마치 저세상과 이세상의 경계처럼 보였다.
수현은 세속에 들어가기 전, 아직은 영혼과 소통이 가능할 것 같은 세상에 있을 때 조용히 마음속으로 한 번도 본 적 없는 최나경 마리아라는 아이에게 자신의 마음을 전했다.
“아무 걱정 말고 하늘 나라 가. 오석이는 내가 챙겨 줄게.”
그리고 팔짱 끼고 있던 손을 빼서 오석의 손을 잡았다. 식은 땀을 흘렸는지 조금 축축했다.
시계를 보니 정오를 조금 넘긴 시간이었다.
수현이 잡고 있던 오석의 손을 앞 뒤로 흔들었다. 오석이 놀라며 오른쪽으로 돌아보았다.
“왜?”
“배고파.”
“점심 먹을까?”
“사 줘.”
“알았어.”
오석은 이럴 때 마다 참 대답을 쉽게 한다고 수현이 생각했다. 있는 집 자식이라 그런 것인지 마음이 너그러워서 그런 것인지 모르겠다. 아마 둘 다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