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 장편소설 디누2부 1권 6화 만남들 3

by 권재원

3

정우가 시끄러운 자명종을 걷어차며 벌떡 일어섰다. 도대체 여섯시 미사 이야기는 왜 꺼냈는지 모르겠다. 사실 여섯 시 미사는 커녕 미사 자체를 안 나간 지 여러 달 지났다. 그런데 나경이 성당에서 보자고 하니 그게 싫어서 절대 오지 않을 것 같은 시간인 새벽 미사를 들먹였던 것이다. 그런데 진짜 온다는 할 줄이야.

정우가 미사에 나가지 않게 된 까닭은 누나 때문이었다. 누나는 정우보다 훨씬 신심이 깊었다. 정우에게 예수는 믿음의 대상이었지만 누나에게 예수는 사랑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예수는 그 사랑에 잔인하게 보답했다. 누나에게 가장 소중한 손가락을 앗아갔으니.

온 가족이 기적을 바랬지만 예수는 아무 쓸모 없는 사람들에게는 그렇게 쉽게 베풀었던 기적을 누나에게는 단 한 조각도 베풀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나는 예수에 대한 사랑을 버리지 않았지만 정우는 그럴 수 없었다. 그 배신감을 떨치기가 너무 어려웠다. 평생 독실한 신자로 살아온 부모님도 미사에 빠지는 정우를 나무라지 않을 정도였다.

그런데 정우는 거짓말을 한 덕분에 어쩔 수 없이 황금 같은 일요일 새벽에 일어나야 했다. 후다닥 세수를 하고 대충 옷을 차려 입은 정우는 몇달간 방치되어 두터운 먼지에 덮여 있던 성가책과 기도책을 탈탈 털고 휴지로 닦은 뒤 옆구리에 끼고 집을 나섰다.

12월 첫 주의 다섯 시 반이라는 시간은 여명의 낌새조차 보이지 않는 암흑 천지였다. 정우는 어둠에 지지 않으려 콧노래로 피가로의 아리아를 흥얼거렸다. 그 장단에 맞추어 걷다 보니 걸음이 거의 경보선수처럼 움직이며 거의 절반쯤 달리는 스텝이 되었다. 덕분에 시간은 많이 단축되었다.

성당에 도착해 시계를 보니 여섯 시 까지 조금 남아 있었다. 새벽 미사, 그것도 추운 겨울의 새벽 미사라 나온 사람은 많지 않았다. 너무 썰렁하다고 여겨지지는 않을 정도로 여기 저기 듬성듬성 보일 뿐이었다.

이때 누군가가 정우의 어깨를 살짝 두드렸다. 고개를 돌리니 생글생글 웃고 있는 나경의 얼굴이 눈에 가득 들어왔다.

“너 정말 새벽에 나오는구나! 난 그냥 빈말로 여섯 시라 그러는 줄 알았어. 그런데 왜 그렇게 놀래?”

하얀 미사포를 쓰고 있는 나경이 재잘거렸다. 그 모습은 마치 봄이 찾아올 무렵 삭막한 아파트 콘크리트 숲에 엑센트를 살짝 찍어주는 목련 같았다. 그 동안 화려하고, 조금 야하게 차려 입은 모습만 보아왔던 탓일까? 단정한 차림에 미사포까지 쓰고 있는 모습이 너무 낯설었다.

“전혀 못 알아 봤어. 완전 딴 사람인 줄 알았거든.”

“정말?”

“너무 맑고 순수해 보여. 뭐랄까? 파우스트에 나오는 마르가리타 같아.”

“자꾸 그런 말 좀 쓰지 마. 난 못 알아듣걸랑.”

“구원의 여인, 뭐 그런 거야.”

“구원의 여인? 정말? 뭔지 모르겠지만 웬지 거룩하게 들려. 그럼 일찍 일어난 보람이 있네? 너한테 범생이 모드로 변신한 내 모습 보여주고 싶었거든.”

나경이 옆자리에 살포시 앉았다.

“범생이 모드?”

“네 기억 속에 날라리로 남기 싫거든. 날 단정한 모습으로 기억해 주었으면 해. 너만은.”

정우는 그 말의 뉘앙스가 뭔가 수상해서 뭔가 물어 보려고 했는데하필 그 순간 사회자의 목소리가 텅 빈 본당을 울렸다.

“형제자매 여러분. 오늘의 미사를 거룩하게 하기 위하여 다 같이 삼종 기도를 드립시다.”

삼종기도와 함께 사제가 들어오고 미사가 시작되었다.

그런데 오르간 자리가 비어 있었다. 오르간 주자가 무슨 일이 있어 오지 못한 모양이다. 오르간 소리 없이 진행되는 미사는 몹시 삭막하게 느껴졌다. 더구나 사람들이 반주 없이 성가를 부르기 시작하자, 수십 명의 목소리가 이리저리 흩어져 마침내 수십 중 카논이 되고 말았다.

이런 부조화라니. 정우에게 지옥이 펼쳐졌다. 소리의 무질서와 부조화 때문에 고통으로 몸부림치던 정우는 견디지 못하고 오르간 앞으로 가서 반주를 시작했다. 성당 사람들이나 신도들은 이내 디누를 알아 보고 이를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눈치였다.

디누라는 이름 값을 증명이라도 하듯 정우가 반주하는 성가는 같은 곡임에도 불구하고 여느 때 보다 더욱 더 거룩하고 숭고하게 울렸다. 나경은 자기도 모르게 눈을 감고, 심지어 기도마저 잊어버린 체, 정우가 연주하는 오르간 소리에만 귀를 기울였다.

오르간 소리가 멈추자 나경의 마음도 같이 멈추었다.

멈춘 마음에 무엇인가 담고 싶다는 느낌이 드는데 때 맞추어 신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정우의 연주가 강론듣기 딱 좋은 상태로 만들어 준 것이다.

“형제, 자매 여러분. 그리스도는 저마다의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오라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이 짊어져야 할 십자가는 무엇이겠습니까? 여러분은 얼마나 무거운 십자가를 지셨습니까? 혹은 그 십자가를 팽개치지나 않았습니까?”

하지만 신부의 말이 길어질수록 정우 오르간의 효과가 점점 희미해졌다. 오히려 들으면 들을수록 나경의 마음에는 냉소가 스며들기 시작했다.

‘저마다의 십자가?’

나경의 마음속에서 비웃는 목소리가 들렸다.

‘그럼 네 십자가는 뭔데? 대학입학 시험? 지겨운 바하의 무반주 소나타?’

미사 중 이런 생각이나 하는 것이 찜찜하여 고개를 들어 보니 오르간 앞에서 고개를 숙이고 있는 정우의 두터운 등판이 눈에 들어왔다. 웬지 등판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나경이 생각했다.

‘저 아이의 십자가는 뭘까? 저런 아이는 나보다 더 무거운 십자가를 지고 태어나는 것일까? 아니 반드시 더 무거운 십자가를 지고 태어나야만 해. 아니라면 너무 불공평하니까.’

신부의 강론이 나경의 상념을 무시하고 계속되었다.

“바로 이웃의 고통을 함께 지는 것. 바로 그것이 여러분의 십자가입니다. 이웃의 고통에 눈 감고, 가난하고 박해받는 이들을 외면할 때, 그것은 바로 여러분의 십자가를 팽개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자신의 십자가를 팽개치는 것은 바로 주 예수 그리스도를 팽개치는 것입니다. 불의에 눈감고 부유함을 추구할 때 그것이 십자가의 길을 거슬러 가는 것이며, 그리스도를 배신하는 것입니다. 자, 다 함께 묵상합시다.”

신부의 강론이 끝나자 정우가 천천히 건반 위에 손을 올린 뒤 묵상 분위기를 한껏 돋울 만한 즉흥연주를 시작했다.

나경은 눈을 감고 성당을 감미롭게 휘감는 오르간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오르간 소리와 함께 나경의 머릿속에서 신부의 강론 내용도, 기도 내용도, 심지어는 성서에 적혀있던 그리스도의 말씀까지 씻겨 나갔다. 그 빈자리를 맑고 투명한 음악이 채웠다. 음악이 머리를 채우고 가슴을 채웠다. 채우고 채워 마침내 더 들어설 자리가 없게 되자 눈물이 되어 흘러나왔다.

엉망진창인 성적표, 엄마의 잔인한 잔소리와 비난, 날마다 불려 내려가는 학생부, 지겨운 바흐의 무반주 소나타도 눈물과 함께 씻겨 나갔다. 평화의 바다가 둥그런 눈망울 앞에 넘실거리며 펼쳐졌다.

아! 이런 것이 해방인가 봐! 이런 것이 영적인 기쁨인가 봐. 나경은 가없는 행복감에 겨워 찬란하게 펼쳐진 해탈의 바다를 헤엄쳤다. 그렇게 한 20여분이나 지났을까? 눈을 뜨자 어느 겨를인지 모르게 미사가 모두 끝났다.

미사가 끝나기가 무섭게, 숙연한 척, 엄숙하기 그지없는 반성의 표정을 짓고 있던 역삼동 성당의 부유한 신도들이 순식간에 다시 일상적인 모습으로 돌변했다.

나경은 조금이라도 빨리 사바세계로 나가고 싶다는 듯, 우르르 긴 줄을 이루며 밖으로 몰려 나가는 그들의 뒷모습이 역겹다 못해 우스웠다.

성당 입구에는 웬 거지가 가련한 표정을 지으며 기다리고 있었다. 한시바삐 사바세계로 가고싶은 신도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주머니를 뒤적여 그 거지에게 500원짜리 동전을 던져주며 면죄부를 구입했다. 면죄부를 구입한 이들은 이제 마음 속 작은 가책의 부담을 털어버린 체, 홀가분한 마음으로 조금의 잉여가치라도 더 획득하기 위해 자본의 전쟁터로 달려갈 것이다.

그러나 가벼워진 나경의 가슴은 그들의 알량한 면죄부와는 비교도 안 되는 선물을 받았다. 나경은 정우의 연주를 듣고 한바탕 눈물을 털어낸 만큼 가벼워진 몸을 가뿐하게 일으켜 공기를 마셔 보았다. 늘 마시던 공기와 달랐다. 공기에서 달콤한 바닐라 향이 났다.

기쁘다. 살아있는 것이 이렇게 기쁘다니. 살아 있다는 것만으로 이렇게 기쁘다니. 그 기쁨을 만끽하며 걸음을 옮기자 성당 입구에서 기다리는 정우의 모습이 보였다.

“오르간 연주 정말 좋더라. 뭐 예상은 했지만. 세계 무대라는 거, 확실히 아무나 서는 게 아니라는 건 알겠더라.”

나경이 놀라움과 약간의 부러움을 담아 말했다. 하지만 정우의 반응은 그닥 신통치 않았다.

“그래 봐야 지금은 요 모양 요 꼴인데? 세계는 커녕 국내에서도 나 찾는 놈 없더라. 뭐라더라? 신동이라기엔 너무 나이가 많고, 대가라기엔 아직 여물지 않았다던가? 하여간 난 요새 상품성 꽝이야.”

순간 나경의 마음이 흐느끼기 시작했다.

‘그러지 마. 디누. 나를 웃게 해줘, 디누! 제발 나를 웃게 해줘.’

나경은 흐느끼는 마음을 주저 앉히느라 얼굴을 잠깐 찡긋 하며 억지로 장난기 어린 표정을 만들었다.

“나, 배고파. 너 보려고 꼭두새벽에 아침도 안 먹고 나왔거든. 나 뭐 좀 사줘라.”

“그러고 보니 나도 배고프다. 그런데, 나 돈 한 푼도 안 가지고 나왔는데? 돈 있어 봐야 이 시간에 문 연 식당도 없고.”

“나도 차비 밖에 없어.”

“그럼 우리 집 갈래? 내가 아침밥 해줄게.”

“엥? 너희 집에? 부모님 계실텐데? 아침부터 과년한 처녀를 데리고 들어가겠다고?”

“괜찮아.”

정우가 웃으며 집게 손가락을 까딱까닥 흔들었다.

“부모님 두 분 다 지금 집에 없어.”

“설마, 고아야?”

“그건 아니고, 아버지가 속초에서 일하는데, 주말마다 한번은 아버지가 서울 오고, 한번은 어머니가 속초 가고 그래. 어머니가 어제 속초 갔어. 오늘 저녁때나 되어야 올 거야.”

집에 아무도 없다는 말을 듣고 나경이 오히려 펄쩍 뛰었다.

“아무도 없는 남자애 집에 어떻게 졸래졸래 따라가냐? 내가 아무리 날라리라도 그 정도는 아니다.”

“하하. 이건 뭐. 내가 생각해도, 좀 그러네. 아, 오해는 하지 마. 그냥 네가 배고프다고 하길래.”

정우가 몸을 좌우로 흔들흔들 거리면서 손을 내저었다.

“아니, 갈래.”

나경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정우의 애매하게 흔들거리던 몸을 멈춰 세웠다.

“온다고?”

정작 오라고 한 정우가 더 정색했다.

나경이 고개를 단단하게 끄덕였다.

“정말?”

“뭐, 어때? 잠깐 들렀다가 먹고 가는 건데. 설마 사회적 지위와 명성이 있는 디누가 무슨 짓 하겠어? 그렇게라도 다시 신문에 나고 싶을 정도로 절박해? 설마 그건 아니지?”

“아, 참, 뭐라 말을 못하겠네.”

“그럼 그냥 예스로 들을게. 그런데 너희 집이 어딘 데? 멀어?”

“음. 멀다면 멀지. 서초동 레인보우 아파트니까.”

“잘 됐다. 나 그 옆 우성아파트 살거든.”

“그래? 잘 됐네. 그럼 일단 같이 걸어가자.”

“일단? 그럼 이단은 뭔데?”

“정말 우리 집에 따라 오나 안 오나 보기.”

“네가 뭐 남자로 보이는 줄이나 알아?”

나경이 정우의 등판을 가볍게 내리쳤지만, 공기를 잔뜩 머금은 패딩 때문에 퍽 하는 요란한 소리가 날 뿐이었다.

그들은 삼십센티 정도의 거리를 두고 나란히 마악 밝아오는 겨울의 아침 공기를 가르며 걸었다.

어색한 분위기를 흔들며 나경이 먼저 말문을 열었다.

“디누, 아니 정우야. 난 이렇게 부를래.”

“좋을대로.”

“네 본명 테오필루스 말이야. 애들이 그러는데, 거기는 무슨 깊은 뜻이 있다고 하던데? 그게 뭐니?”

“간단해. 테오는 신, 필루스는 사랑! 그러니까 하느님이 사랑하는 아이.”

“멋지다. 그런데 그 이름 딱 맞지 않아? 널 보면 정말 하느님의 사랑을 받는 아이 같으니까.”

“사랑? 뭐, 그럴지도. 그것도 사랑이라면. 그럼, 네 본명은 뭐야?”

“그냥 평범해. 마리아.”

“마리아, 마리아, 하하하. 우리 고모도 마리아, 이모도 마리아야.”

“너희 고모 까지 갈 것도 없이, 우리 본당에도 서른 명 넘을 걸?”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며 걷다 보니, 그리 긴 시간이 느껴지기 전에 서초동에 도착했다. 우성아파트 쪽으로 가지 않고 레인보우 아파트쪽으로 따라오는 나경을 보고 정우가 어깨를 으쓱했다.

결국 그들은 정우 집 현관 까지 함께 오고 말았다. 정우가 열쇠를 비틀어 문을 열었다.

“자. 들어와.”

정우가 신발을 차듯이 벗어 던지며 손짓한다.

“우와!”

정우 집에 들어서자 마자 나경이 탄성을 질렀다.

“뭐가 그렇게 와야?”

“판이 정말 많다. 전부 클래식이야?”

“응.”

“좀 봐도 돼?”

“얼마든지.”

나경이 천천히 다가가 천장까지 그득하게 쌓여있는 음반들을 훑어보았다.

“웬 모차르트가 이렇게 많아? 다른 음악은 안 들어?”

“아, 거실에 있는 판들은 거의 다 모차르트야. 다른 판들은 내 방에 있어.”

“다른 판들이라고? 아, 쇼팽!”

“눈썰미가 제법인데? 어떻게 알았어?”

“명색이 피아니스트 거실인데 쇼팽 판이 하나도 안 보이잖아?”

“맞아. 쇼팽은 지금 따로 빼서 방에 갖다 놨어. 연구 중이라.”

“연구?”

“내년, 쇼팽 콩쿠르에 나가게.”

“아, 그렇구나. 어, 그런데, 이건?”

나경이 피아노 위에 다소곳이 놓여 있는 바이올린 케이스에 눈을 돌렸다. 엄청나게 견고해 보이는 케이스였다.

조용히 다가가 케이스를 열자 육중한 뚜껑이 열리면서 범상치 않은 우아한 색깔과 기품을 가진 낡은 바이올린이 모습을 드러냈다. 17세기 후반이나 18세기 초반 이탈리아에서 만들어진 명품이 분명했다. 이런 악기가 왜 여기에?

“아, 잠깐, 그건. 안되는데. 에이, 뭐, 벌써 열어버렸네. 어쩔수 없지.”

깜짝놀라 제지하려던 정우가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며 들었던 손을 내려 놓았다.

“어머, 미안해. 명색이 전공이다 보니, 나도 모르게 손이 갔어. 그런데, 이거.”

“비싸 보이지?”

“응. 이탈리아 올드 아니면 그 레플리카 같은데?”

“레플리카 아니고 진품이야. 도메니코 몬타냐나 1725.”

“어머, 미안해. 정말 미안해.”

나경이 깜짝 놀라며 바이올린 케이스를 덮었다. 도메니코 몬타냐나. 미우가 아끼던 악기. 바이올린 공부하던 청소년들에게 너무 큰 충격을 주었던 미우의 불행한 은퇴가 떠올랐다.

하지만 정우는 미안하다는 말에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고 바이올린 앞으로 다가와 건조한 한 마디를 던졌다.

“바이올린 좋아해?”

“실력은 없어도 명색이 전공이라. 더구나 진짜 명품 악기가 눈앞에 있으니까 눈이 막 어지러워. 이런 악기 잡아 본적 없거든.”

“한 번 해 봐.”

“그래도. 미우 언니….”

“악기는 연주하는 거야. 연주하지 않으면 명을 다하는 거지. 더구나 이런 고악기는 누구라도 종종 연주해 주지 않으면 정말로 박물관 행이야. 너, 모차르트 G장조 콘체르토 연습 했지? 입시곡이니까?”

“맨날 연습하긴 하는데 잘 하진 못해.”

“그건 들어 봐야 아는 거고. 이럴 때 아니면 언제 명품 잡아 볼래? 내가 반주 해 줄테니 한 번 해 봐.”

정우는 나경의 대답도 기다리지 않고 피아노 앞에 앉았다. 그리고 손가락을 몇번 접었다 폈다 한 뒤 피아노로 편곡된 모차르트 바이올린 협주곡의 오케스트라 파트를 연주했다.

나경은 할 수 없이 새벽부터 밥도 안 먹고 이게 무슨 청승이냐는 표정으로 미우가 쓰던 그 유명한 악기를 집어 들었다.

예상대로 연주는 엉망진창이었다. 손가락도 몇 군데 틀렸고, 활 질도 엉켰다. 그럭저럭 1악장을 마치기는 했지만 나경은 도메니코 몬타나냐에게 무엇보다 미우에게 너무 미안해 어딘가로 뛰어들고 었다. 자신이 케이스 안에 들어가고 싶은 마음을 누르며 쫓기듯이 바이올린을 케이스에 담고 뚜껑을 덮었다.

“잘했어. 생각보다 훨씬 괜찮은데?”

정우가 손뼉을 쳤다.

“그러지 마. 부끄러워 죽겠어.”

“처음 잡아 본 악기니 좀 실수도 하고 그러는 거지 뭐.”

“아니, 그나마 이게 요 근래 들어 제일 잘한 거야. 악깃빨로. 내 실력이 그래. 미안해 실망시켜서. 그런데 네 피아노 너무 좋다. 디누, 디누 이름만 들었지, 바로 앞에서 연주하는 거 들어 볼 줄 몰랐네. 와, 너 처럼 피아노 잘 치는 애는 한 번도 못 봤어. 맨날 건방 떠는 동생도 네 앞에서는 깨갱 할 거야.”

“동생이 있었어? 그리고 동생도 피아노 쳐?”

“응. 내 동생, 나름 유명한 앤데. 혹시 최유선이라고 알아?”

그 말에 정우가 깜짝 놀란듯 목소리가 커졌다.

“최유선? 당연히 알지. 아니, 그럼 네가 최유선 언니야?”

나경의 귀에는 이 말이 이렇게 들리는 것 같았다.

“아니, 최유선 언니가 왜 이렇게 연주가 형편없어? 언니 맞아?”

나경이 공연히 아무 까닭 없는 항변을 했다.

“그래. 내가 유선이 언니야. 가문의 수치. 나, 너나 유선이 같은 애들 너무 부러워.”

“부럽긴 뭐.”

“대학 같은 건 신경도 안쓸거잖아? 난 실기고 필기고 다 꽝인데. 나 암만 생각해도 바이올린 해서 엄마 성에 차는 대학 못 갈 것 같은데.”

“아직 시간 많이 남았잖아? 대학 입시 정도야 뭐 엄청난 재능이 필요한 것도 아니고, 일종의 파워테스트잖아? 누가 더 많이 연습했나 보는.”

“너 정말 재수 없는 말만 골라가면서 한다. 야, 그런데 이게 뭐하는 짓이야? 배고프다고 했더니 여기까지 걸어오게 만들질 않나, 실기 연습이나 시키질 않나?”

“아, 참 그렇지?”

정우가 자기 이마를 치며 일어났다.

정우가 두런두런 상을 차리는 동안 나경은 레코드판들을 뒤졌다. 페렝 프리차이가 지휘한 모차르트의 c단조 미사가 눈에 들어왔다. 턴 테이블 위에 얹자 묵직한 오케스트라의 전주, 그리고 장엄한 합창이 집안을 가득 채우며 안개처럼 맴돌았다. 그 사이를 뚫고 들려오는 마리아 슈타더의 영롱한 목소리가 마치 안개 사이를 비추는 햇살처럼 나경의 마음을 밝혔다. 조용히 눈을 감고 그 황홀경을 즐겼다.

“자. 밥 먹어!”

정우의 바리톤 목소리가 음악과 어울리며 들렸다.

“하하! 이렇게 어린 나이에 남자가 차린 아침 밥상 구경할 줄 정말 몰랐다네.”

나경이 음악을 반주 삼아 레시타티브처럼 말하며 식탁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사뿐사뿐 가벼운 발레 스텝이었다.

스피커에서는 여전히 장엄한 미사곡의 소리가 40여 평의 공간을 가득 메우며 굽이굽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

반찬 셋에 국 하나, 그야말로 전형적인 한국형 조식이었다.

“제법인데?”

시장한데 걷고 연주까지 해서 그런지 그야말로 꿀맛이었다.

“어차피 엄마가 다 해 놓고 간 거 데워서 뜨기만 하면 되는데 뭐.”

“그런가? 음, 근데 정우야, 너, 혹시 E독서실 다닐 생각 없니?”

나경이 입맛을 다시며 말했다.

“독서실? 거긴 왜?”

“나, 거기서 공부하거든. 어머! 공부라니. 저기, 공부 한다기 보다, 학교 끝나고, 레슨 없으면 주로 거기에 가방 풀어놓거든. 버클리실 14번. 거기가 내 자리야.”

“그런데?”

“그냥. 너랑 같이 공부하면 좋을 것 같아서. 모르는 거 있으면 너한테 물어보고, 또, 음악 공부도 너하고 있으면 도움 많이 받을 수 있을 것 같고.”

“좋아.”

“언제부터 올 거야?”

“원한다면 내일부터!”

“그럼 내일 나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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