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날으는돌고래 Sep 23. 2022

K는 돌고래를 만났을까

일간 날돌이, 네 번째 이야기

1002호. 서하가 간이용 샤워기를 밀며 병실에 들어섰다. 통창 너머로 싱그러운 산책로가 내려다보였다. K가 먼저 서하를 발견했다.


“왔어요?”


K를 본 서하의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다. 일주일 사이에 K의 머리가 바짝 잘려 있었다.


“머리카락이 갑자기 막 빠져서 그냥 짧게 잘랐어요.”

“네. 그래도 시원하게 한 번 감겨 드릴게요.”


고작 2주 차라서 그런지 서하의 놀란 마음이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1년이 지나고, 2년이 지나면 익숙해질까.


서하가 거품이 나지 않는 샴푸를 덜어 샤워 의자에 앉은 K의 머리를 감겨주었다. 또래가 없는 호스피스 병동에서 동갑내기를 만나 반가웠는지 K가 계속 조잘거렸다.


“오후에는 바다를 보러 갈 거예요.”


수건으로 머리를 탈탈 털어내는 모습이 영락없는 스물 셋이었다.


K는 며칠 동안 간호사를 조르고 졸라 어렵게 외출 기회를 얻었다. 혼자서는 외출이 위험하기 때문에 동행해 줄 전문 보호사를 찾는 데 시간이 걸린 모양이었다.


“바다에서 돌고래를 연구하고 싶어서 해양생물학과에 들어갔는데, 3년 동안 미생물 이름만 외웠다니까요. 스트레스 받아서 병에 걸린 것 같아요.”


그런데도 K는 바다가 보고 싶다고 했다. 언젠가 돌고래를 보러 갈 거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서하도 그 말은 할 수 없었다.


“잘 다녀와요. 오늘 마침 날씨도 좋네!”

“다녀와서 다음 주에 또 얘기해 줄게요.”

“그래요. 기대할게요.”


옆 침대가 비어있는 것을 보고 서하가 K에게 물었다.


“날돌이 님 어디 가셨어요?”

“아, 오랜만에 아들이 와서 잠시 나가셨어요.”

“네. 상태 괜찮으시죠?”

“그럼요. 그 할머니가 이 병동의 불사조잖아요. 벌써 1년이 넘었대요. 보통 이 병동은 들어오면 길어야 3개월인데.”

“불사조요?”


서하가 웃음을 터뜨렸다.


“네. 아마 하고 싶은 말 다 하고 살아서 그런가 봐요. 아까 아들도 온갖 면박을 당하며 나갔어요.”


서하는 문득 궁금해졌다. 30대부터 속앓이 안 하고 살았다면, 그랬다면 날돌이 님은 병을 피할 수 있었을까.


“할머니 보고 싶었는데, 오늘은 시간이 다 되어서 가봐야 해요. 안부 전해주세요. 바다 잘 다녀오고요.”



일주일 후 (호스피스 3주 차)


서하가 간이식 샤워기를 끌고 병실에 들어섰다. 제일 먼저 K가 있는 곳을 봤지만, 지난주의 활기찬 K는 없었다. K는 의식이 없는 상태로 누워 힘겹게 호흡을 이어가고 있었다.


“지난주에 바닷가에서 문제가 있었대.”

“…”

“갑자기 의식을 잃고 실려 들어왔어. 그 후로 계속 저 상태야.”

“아…”


서하가 K의 팔과 다리를 주물렀다. 할 수 있는 게 그것뿐이었다. 1시간이 지났다. 조금만 더 하면 일어나지 않을까 싶은 마음에 멈출 수가 없었다. 날돌이가 그런 서하를 말렸다.


“그런다고 일어나지는 게 아니야. 나는 여기서 많은 사람들을 봤잖아.”


서하가 K를 바라봤다. 창백한 얼굴이 얄궂은 표정을 머금고 있었다. K는 지금 돌고래를 만나고 있을까.


“산책 좀 시켜줄 수 있어?”

“네.”


서하는 날돌이의 휠체어를 밀고 산책로에 들어섰다. 약품 냄새에서 벗어나니 공기가 더 신선하게 느껴졌다.


“아직 한창인데 안 됐지. 신도 참 센스가 없어. 나를 데려갈 것이지.”


사는 것도 죽는 것도 마음대로 되는 일이 아닌가 보다.


“나는 여기서 1년이나 살고 있잖아. 가끔 보면 내가 간병인보다 더 정정한 것 같을 때도 있어. 간병인 보기 민망할 정도라니까. 그동안 병원비가 얼마나 들었을 거야. 아들 돈만 축내는 거지.”

“에이, 그런 생각 마세요.”


하지만 곧 쾌차하실 거라는 말은 할 수 없었다. K에게 돌고래를 보러 갈 수 있을 거라고 말하지 못한 것처럼. 초록으로 우거진 산책로를 걸으며 서하는 K를 떠올렸다. 같은 해에 태어나 이토록 다른 서로의 삶을.


날돌이를 데려다주고 병실을 빠져나올 때까지 K는 일어나지 않았다.



일주일 후 (호스피스 4주 차)


버스 정류장에 내린 서하의 발걸음이 빨라졌다. 자원봉사센터에 들러 간이용 샤워기를 챙겨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10층이 100층 같았다. 1002호 앞에 선 서하는 쉽사리 문을 열지 못했다.


‘K는 깨어났을까? 오늘은 바다 이야기를 들을 수 있겠지?’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다. K 침대 옆 커튼이 활짝 젖혀져 있고, 침대는 아무도 쓴 적이 없는 것처럼 정돈되어 있었다. 간이용 샤워기를 문 옆에 세워둔 채 서하가 멈춰 섰다. 발을 뗄 수가 없었다.


“이리 와봐요.”


날돌이가 기다렸다는 듯 서하를 불렀다.


“바다에 간다고 신나서 나갔지. 나가기 전에 이걸 주고 갔어. 혹시 자기가 먼저 죽게 되면 전해주라고 하더라. 곧 떠날 걸 알아서 그렇게 바다에 가겠다고 난리를 피웠나 봐.”


날돌이가 서하에게 작은 휴지 뭉치를 건넸다. 서하가 조심히 휴지를 풀었다. 연회색의 돌멩이었다. 돌고래 꼬리 모양의 돌멩이.


“친구들은 다 서울에 있고 얼마나 심심했겠어. 학생이 오는 날을 기다리더라고. 여기 병원 장례식장이라던데. 끝나고 한 번 가보던가. 아마 내일까지일 거야.”


‘이걸 받아도 되는 건가.’


한 사람의 꿈을 덜컥 받아버린 것 같아서 서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머리 감겨 드릴게요.”


침대 옆 선반에 돌멩이를 조심히 올려놓고 문 앞에 둔 간이용 샤워기를 가져왔다. 날돌이가 샤워 의자에 앉았다. 서하가 거품이 나지 않는 샴푸를 적당히 덜어 날돌이의 머리를 감겨주었다.


“시원하세요?”

“응. 시원해. 손이 야무지네.”

“감사합니다.”

“다음 주에 또 와요.”


말은 알겠다고 했지만 서하는 자신이 없었다. 현기증이 나고 속이 울렁거렸다. 병동을 나서기 전, 1층 구석에 있는 벤치에 잠시 앉았다. 교육장 앞에 있는 벤치였다. 안에서는 호스피스 봉사자 교육이 한창이었다.


“죽음을 피하게 해줄 수는 없지만, 같이 비를 맞고 걸어주는 거예요.”


세미나실에서 강사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서하도 들었던 강의였다.


K는 서하가 만난 첫 환자였다. 정붙이기 무섭게 떠난다는 경고를 듣긴 했지만, 이런 상황을 이렇게 바로 마주하게 될 줄은 몰랐다. ’나는 K와 함께 비를 맞았을까?’ 혼자만 냅다 우산을 썼던 것 같아 움찔했다. 서하가 주머니에 있는 돌고래 꼬리 돌멩이를 꽉 쥐었다. 그러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장례식장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K와 마지막 인사를 하고 싶었다.



[일간 날돌이]

인스타그램 @dolphinintheair 에 매일 500자 내외의 글을 연재 중입니다. / 수요일 OFF

완성된 이야기를 브런치에 아카이빙합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초록복어와 오백호 씨의 거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