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이 뜻대로 되지 않는 거라고 하지만
실제도 마음먹은 일이 제대로 되는 게 없다.
실망하고 실의에 빠진 나에게
영혼도 없는 위로는 얼마 남지 않은 의욕을 꺾어버린다.
‘죽을 만큼 해봤어?’
오히려 대충 사는 사람처럼, 노력 없이 요행만 바라는 사람으로 취급당하면
다시 일어설 전의마저 상실한다.
애당초 인생이 기쁘고 좋은 일보다는 괴롭고 슬픈 일이 더 많다고 하지만
기쁨은 아주 잠시, 즐거움도 찰나의 순간일 뿐,
인생 전반을 뒤덮은 버거움이 어깨를 무겁게 짓누른다.
하루하루 살얼음 판의 연속이요, 지겨움과 단조로움의 끝판이다.
지겨움도 단조로움도 먹고살기 급급한 몸부림이라면 사는 게 무슨 재미가 있을까?
이런 나를 안쓰럽다고 해야 하나? 그럼에도 어제도 오늘도 근근이 버티는 내가 대견하다고 해야 하나?
시키는 대로 가르치는 대로 공부만 열심히 하면 되던 시절이 좋았다. 그때는 왜 그리 어른들 말은 듣지 않고 내 고집만 피웠을까? 세상이 뭔지도 모르면서 “내 인생은 나의 것”이라고 외쳤을까?
본디 인생은 어려운 거라고 하지만 어려워도 너무 어렵다.
'착하게 살아라', '나쁜 짓 하지 마라', '최선을 다해라', '남의 눈에 피눈물 나게 하지 마라'.
이렇게만 하면 잘 살 줄 알았다.
막상 인생을 책임지는 나이가 되니 세상은 배운 대로 되는 곳이 아니었다.
죽도록 노력한다고 성공한다는 보장도 없고
남에게 피해 주지 않고 착하게 산다고 다 잘 되지도 않았다.
내 눈에 피눈물이 쏟아져도 어디 하소연할 곳도 없더라.
사람이 모두 내 마음 같지 않다고 하지만
드넓은 하늘 아래 받는 스트레스는 A에서 Z까지 사람과 사람 때문임을.
진심 어린 조언인지, 깎아내리기 위한 의도적인 비난인지
마음이 통하는 공감인지, 뒤통수를 치기 위한 악어의 눈물인지
열길 물속은 알아도 한길 사람 속은 도무지 모르겠다.
선의는 악의로 둔갑하고 정성껏 베푼 호의는 만만한 호구로 여기니
어떨 때는 사람이 무섭기까지 하다.
온 세상이 밝고 기쁘고 환한 소식이 가득해도 시원찮을 판에
마주하는 건 피 튀기는 경쟁, 뒤처질까 걱정, 앞날을 모르는 불안, 먹고살기 빠듯한 문제, 싸우고 다투고 밟고 밟히는 약육강식. 무엇 하나 속 시원한 소식이 없다.
하나의 문이 닫히면 또 다른 문이 열린다지만
문제 하나 해결하면 숨을 돌리기 전에 다른 문제가 일어나고 어떤 때는 연달아 터지기도 한다.
화가 오면 복이 되고, 지금의 고난이 행복의 디딤돌이 된다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다 지나고 난 뒤의 일이다.
고난 속에 허우적거리는 지금도 벅찬데 시련까지 덮치면 대체 어쩌라는 건지,
우주를 품은 하늘은 속이 밴댕이 소갈딱지인가? 원래 이리도 무심한 걸까?
인생이 뜻대로 되지 않고, 괴롭고 슬픈 일을 연달아 얻어맞아
주저앉고 싶을 때.
살아도 사는 게 아닌, 재미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세파에
지칠 대로 지쳤을 때.
'인생은 뭐 그런 거야'라는 위로는 무책임하게 들린다.
인생이 그런 거라면 애당초 왜 태어나게 해서 이리 개고생만 시키는지
모든 피조물을 사랑한다는 조물주의 저의가 의심스러워진다.
'사는 건 고해의 바다야, 넘어지면 다시 일어서면 되는 거야'라고 격려한다.
넘어지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으며, 일어서고 싶지 않은 사람은 누가 있으랴.
일어서려고 발버둥만 치다 좋은 시절 허송한 허탈함이 인생을 씁쓸하게 한다.
인생은 끝까지 살아봐야 하는 거라고, 아직 끝나지 않았으니 기운 내라고 독려한다.
인생을 끝까지 살았던 사람들 중에 발버둥에서 벗어난 사람은 얼마나 있을까?
끝날 때까지 끝난 건 아니라지만 끝날 때 정말 만족스러운 인생은 얼마나 될까?
얼마를 더 살아야 세상을 알까?
얼마를 더 겪어야 사람을 알까?
얼마나 더 견뎌야 인생을 알까?
삶이 지치고 찌든 지금
뭐라고 해야 위로가 되고 힘을 낼 수 있을까?
차라리...
아플 때는 더 아파라고, 죽을 만큼 더 아파보라고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는 꼬일 대로 꼬여 몽땅 얽히고설키라고
되는 일이 없으면 되던 일마저도 엉망진창이 되라는 악담이 나을지도 모르겠다.
상황이 나락이면 의욕은 고사하고 숨 쉬는 것조차 힘든 게 당연하니까.
나는 왜 이 모양 이 꼴로 살아야 하는지, 운명이 장난치는 이유가 무엇이냐며
원망하고 한탄해도 이해가 될 테니까.
죽었다 깨어나도, 이번 생의 이유를 모른 채 살아간다.
설령 죽어 저승에서 인생의 정답을 찾고
행여 다음 생이 주어진 들
그 정답은 까마득히 잊은 채 태어나고 살아가겠지.
그러니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는 인생의 의미와 정답은 이제 내려놓자.
그럼에도 살아가는 이유가 있어야 한다면,
너무나 뻔한 말이지만
‘영원한 것은 절대 없다’고 하지 않았나.
더는 내려가기 싫고 더 이상 비참해지고 싶지 않으면
기를 쓰고 한 걸음씩이라도 올라가고
언제까지인지 모르는 기약 없는 시련을 이를 악물고 버티는 수밖에.
버티다 보면 운명의 장난이 신의 한 수가 될 수도 있으니 말이다.
더 이상 내려갈 때도 없고, 더 이상 잃을 것도 없고
더 이상 이보다 비참해질 수도 없다면
이제 나아지는 일만 남은 것 아닌가?
그럼 올라갈 일만 있는 것 아닌가?
아등바등 애쓰며 버티다 보면,
바닥에서 올라가려 몸부림치다 보면,
언젠가 내 인생에도 ‘쨍’하고 해가 뜰 거라고
언젠가 나에게도 사랑이 이루어질 거라고
언젠가 내 삶에도 성공도, 행복도 찾아올 거라고
그런 날이 오리라 믿고 사는 게 인생 아니겠어?
삶이 너무나 지칠 때
너무나도 뻔한 말인데, 이보다 더 위로되는 말은 아직까지 못 찾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