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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면 드실래요?

by 공감의 기술


반세기 전만 해도 간첩을 신고하면 집 한 채를 샀고요, 간첩선을 신고하면 팔자를 고쳤습니다. 그 당시 간첩을 신고해서 잡으면 포상금이 어마어마했으니까요.
반공만이 나라가 살길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시절, 북한 간첩을 잡아 심문할 때의 일화입니다. 특수 훈련을 받은 간첩은 어떤 협박과 모진 고문에도 입 한번 벙긋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침투 목적이 무엇이냐는 질문에는 큰소리로 ”공화국 만세!”를 외쳤고 며칠 동안 한숨도 재우지 않아도 눈빛 하나 변하지 않았죠.
며칠 굶주린 후에 김이 모락모락 나는 라면에 계란을 풀어 간첩 앞에 갖다 놓은 뒤 혼자 내버려 둡니다.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오지 않을 것 같던 간첩은 점점 눈빛이 흔들리면서 라면 맛과 냄새에 굴복하고 맙니다. 뜨거운 라면을 후후 불어가며 공화국을 버리고 술술 불었다고 하죠.

‘우리 공화국은 이런 것도 못 만드냐’라고 하면서요.



라면이 우리나라에 들어온 이유는 짐작하시겠지만 국민들의 배고픔을 타개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라면은 일본에서 처음 개발되어 '라멘'이라 불렸습니다. 삼양식품 회장이 정부의 도움을 받아 일본에서 기술을 배우고 기계를 들여와 만들었습니다. 당시 전쟁 후 나라는 폐허가 되었고 정치는 혼란스러웠습니다. 먹을 것이 없어 국민들은 굶주림에 늘 시달려야만 했죠. 나라는 가난하고 인구는 늘어나니 빈곤에 영양실조로 허덕였습니다. 자원이라고는 사람밖에 없어 전 세계에서 가장 못 사는 나라 중 하나였습니다.
정부는 배고픔을 해결하는 방법으로 라면을 장려하였습니다. 처음엔 생소했던 국민들이 라면의 맛에 빠졌습니다. 굶주림을 이겨내는데 큰 역할을 했고요.
시대가 발전하고 먹거리도 풍부해졌지만 라면은 여전히 전 국민이 좋아하는 식품입니다. 지금도 다양한 제품으로 출시되어 사람들의 입맛을 즐겁게 해주고 있으니까요.

어릴 때 양냄비에 끓인 라면을 먹고 있으면 보는 어른들마다 이 말씀을 하셨죠.
“밥을 먹어야지, 라면으로 되겠냐?”
쌀밥에 보리를 섞어야 했고 나물 반찬이 전부였습니다. 고기는 구경하기 힘들었고요. 그마저도 넉넉하게 밥을 먹을 형편이 아니었죠. 라면에 밥 한 공기 말아먹는 것으로 한 끼는 거뜬했습니다.
부모님이 외출 중이어도 라면 하나로 끼니를 해결할 수 있었고, 야밤에 출출하면 온 식구가 야참으로 라면을 끓였습니다. 한 입이라도 더 먹기 위해 처절한 몸싸움도 마다하지 않았죠.
점심으로 뭘 먹을까 고민하다 마땅히 떠오르게 없으면 라면을 찾았습니다.
호주머니 사정이 여의치 않아도 라면만은 구애받지 않았습니다. 돈이 없어 빈곤의 최저점에서 버틸 때도 2-3일 끼니를 거르지 않게 해 준 음식은 라면뿐이었습니다.
술안주와 저녁을 한꺼번에 저렴하게 해결해 준 메뉴로 라면만 한 음식은 없습니다. 친구 자취방에서 라면을 몇 개 끓여 소주잔을 부딪치며 긴 밤을 지새우기도 했습니다.

주말에 아내는 외출하고 아이와 라면을 먹습니다. 이 녀석 식성이 보통이 아닙니다. 아이와 마지막 남은 한 젓가락을 놓고 서로 먹으려고 다툽니다. 아빠가 더 많이 먹었다며 원망의 눈초리를 보냅니다. '이 녀석이.. 지금까지 먹여주고 재워주고 키워준 게 얼만데…'
회식에 고기를 먹고 소주를 마셔 배가 부릅니다. ' 밥 먹을래?' 물으면 땡기지 않아 고개를 가로젓습니다. 그러나 '라면 먹을까?' 하고 물으면 가로젓던 고개가 절로 끄덕여지며 ‘콜’을 외칩니다.
전날 과음으로 다음날 아침 숙취에 시달릴 때, 콩나물 해장국이니 북엇국이니 여러 해장 음식이 있어도 많은 사람들은 라면의 얼큰함으로 숙취를 날려 보냅니다.
빠르게 바뀌는 시대에 뒤처지지 않으려 라면도 다양하게 진화합니다. 라면을 볶아 먹고, 짜장라면과 섞여 먹고, 입에 불이 나도록 맵게 먹으면서요.
예나 지금이나 다를 바 없는 라면과 함께 살아온 추억입니다.




우리나라 라면은 세계로 뻗어갑니다.
지구 상에 가장 큰 나라인 러시아에선 우리나라 컵라면인 '도시락'이 라면의 고유명사가 되었다고 합니다. '도시락 주세요'가 '컵라면 달라'는 뜻입니다.
스위스 융프라우 높은 산을 가파르게 오르는 열차를 타고 정상에 올라서도, 캐나다의 웅장한 나이아가라 폭포 앞에서도 우리나라 컵라면이 위풍도 당당하게 자리를 차지하여 전 세계인의 입맛을 사로잡고 있습니다.

몇 해 전 비정규직이었던 스무 살 청년이 서울 지하철 스크린도어 공사를 하다 아까운 목숨을 잃은 사고가 있었습니다. 청년이 남기고 간 유품들 중에 컵라면이 있었습니다. 시간에 쫓겨 제대로 식사할 틈도 없었던 청년에게 끼니를 해결해 줄 컵라면이었습니다. 운명이 야속한 지 그날이 청년의 생일이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안타까운 죽음을 슬퍼했고 비정규직의 열악한 대우에 공분했습니다. 이 세상에 가장 슬픈 컵라면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주말 부부로 평일에 혼자 사는 친구가 몸살이 크게 나서 먼저 퇴근했습니다. 저녁은 어쩌나 걱정이 되네요. 챙겨주는 사람도 없을 텐데. 죽이라도 사갈까 잠시 고민을 합니다. 친구가 사는 숙소에 갔습니다. 기운 없어 누워 있는 친구를 보며 먹고 싶은 거 없는지 물어봅니다. 친구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듭니다. 세상만사 모두 귀찮다는 표정입니다. 아무 말 없이 부엌으로 가서 라면을 끓입니다. 좀 더 얼큰하게, 더 따뜻하게. 라면을 친구 앞에 갖다 놓습니다. 같이 먹자고 조릅니다. 마지못해 친구는 일어납니다. 젓가락을 손에 쥐어줍니다. 입맛 없어하던 친구는 코를 훌쩍이며 라면을 천천히 한 젓가락 또 한 젓가락 먹습니다. 먹는 모습을 보자 그제서야 마음이 놓입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죽이라도 사 올 걸 그랬나?"
친구는 대답합니다.
"죽 먹을 입맛이 있으면 밥을 먹지…. 라면 맛있다."
"네 말이 맞네. 그렇네."
라면 한 그릇으로 우정을 뜨겁게 나눕니다



지금 이 시간 점심으로 라면을 먹을까, 어떻게 해서 먹을까 고민을 하는 이도 있을 거고요.
라면과 단짝인 떡볶이를 함께 먹으며 웃고 떠드는 친구들도 있을 거예요.
오늘 밤, ‘라면 먹고 갈래?’라고 묻는 커플도 있지 않을까요?
아마 대다수의 사람들은 저마다 라면에 얽힌 추억 하나쯤은 가지고 있을 거예요.

어제 과음으로 속이 쓰린 아침에 컵라면을 끓입니다. 뜨거운 물을 붓고 기다립니다. 5분도 채 걸리지 않는 간편함도 이 순간만큼은 길게 느껴집니다. 라면의 얼큰한 국물이 부글부글 쓰린 속을 풀어주려고 합니다.
이 장면을 아내가 본다면 그냥 지나칠 리 없습니다.
"속 다 버리게 아침부터 웬 라면이냐"라는 한 마디에 이어
"술 좀 작작 퍼마시지."가 뒤따라 올 테죠.
잔소리는 잠시지만 속풀이는 하루 종일 편안함을 줍니다.

연탄재만큼이나 따뜻하게 해 준 라면에게 이 구절을 바치며 마무리합니다.
라면 용기 함부로 뭉개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속 풀어준 사람이었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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