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으로 뉴스를 읽습니다. 흥미로운 기사는 자세히 읽고 관심 없는 분야는 눈으로 대충 훑고 지나갑니다.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듯이 기사를 읽다 자세히 들여다보는 게 있습니다. 길지도 않아 몇 초면 충분합니다. 오늘의 운세입니다.
12 간지 동물이 차례대로, 각 띠별에 맞는 출생 연도 순서로 운세를 주욱 나열했습니다.
쥐띠, 소띠 나와 관계없는 띠는 그냥 지나가고 한참을 지나면 내가 꼭 봐야 할 띠가 나옵니다.
오늘 나와 있는 나의 띠와 출생 연도의 운세는 '가정이 편안해지니 밖에서의 일도 잘 풀리는 것 같다'입니다. 맨 밑에 덤으로 % 도 나와 있네요. 운세 지수 88%, 금전 90, 건강 85, 애정 90.
이 운세를 보며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이 정도 운세면 나쁘지 않습니다. 가정의 편안이 만사의 기본 아니겠습니까? 덕분에 일도 잘 풀린다니. 금전 운도 90%. 애정도 90%. 나쁘지 않은 게 아니라 아주아주 좋습니다.
빙그레 미소 짓다 순간 멍 때립니다. 잠깐, 어제 사소한 말다툼이 일어나 서로 토라져버렸던 현실을 떠올립니다. 어쩌면 지금이 폭풍 전야 일지 모르고, 언제 어디서 어떻게 터질지 모를 일측 즉발의 위기 상황이니 가정이 편안해진다는 운세를 믿고 싶습니다. 하긴 이러다 며칠 안돼 아무렇지도 않을 터이니 틀린 말도 아닐 거고요.
그보다는 밖에서의 일이 잘 풀린다고 하니 일하러 나가야 할 것 같습니다. 근데 오늘은 휴일이라 직장은 굳게 닫혀 있는데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하루 막노동이라도 해야 하나 싶고, 어느 누구라도 만나야 되는 건 아닌지 고민하게 합니다.
물론 몇 분 뒤면 까마득하게 잊어버리겠지만 오늘의 운세, 보는 순간은 여러 생각을 하게 합니다.
며칠 전의 오늘의 운세는 '쉽게 오지 않는 기회가 오고 있다'였습니다. 날짜는 잊었지만 내용은 잊을 수가 없습니다. 쉽게 오지 않는 기회라. 말만 들어도 얼마나 가슴 뛰게 합니까? 아침 출근부터 하루 종일 어디서 기회가 오는지 경건한 마음으로 예의 주시하며 기다렸습니다. 직장 상사에게 보고할 때도 더 예의를 갖췄고요. 거래처 직원을 만나도 성심성의껏, 모르는 사람이 말을 걸어오면 혹시나 싶어 더 친절하게 대했습니다. 부정 탈까 봐 평소보다 언행도 조심하고요.
근데 뭐가 기회인지 알 수가 있어야죠? 준비가 안됐다고 하면 할 말은 없지만 쉽지 않은 기회, 놓치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속절없이 하루는 저물고 평소와 별반 차이 없는 날이었죠. 밤늦게 잠자리에 들 때까지 머리에서 '쉽지 않은 기회, 기회, 기회'만 맴돌다 결국 '그럼 그렇지, 에이' 욕만 튀어나오더군요.
승진을 앞두고 긴장을 하고 있는 친구와 우연히 운세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오늘의 운세를 본 친구가 고개를 갸웃거립니다. 오늘의 운세는 '용호상박'이라며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다네요. 승진을 다투는 동료와 본인이 용과 호랑이를 의미하는 건가 싶다나요. '나는 용인가? 호랑이인가? 승자는 누구인가?' 그러자 넉살 좋은 친구가 한 마디를 건넵니다.
"용호상박? 네가 용인지 호랑이인지 고민하냐? 재수 없으면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지는 새우일지도 몰라. 신경 꺼." 예민한 터라 기분 나쁠 수도 있지만 되려 마음이 편해졌다며 깔깔 웃었습니다.
그러고 보면 운세가 참 많습니다. 오늘의 운세, 띠별 운세, 별자리 운세에다 1달에 한 번은 이달의 운세, 연말연시가 되면 올해의 운세, 토정비결까지 말입니다. 게다가 오늘의 운세 밑에 애정운, 건강운, 금전운이 붙어 나옵니다. 어느 운세 사이트는 직장운에 연애운도 있고요. 행운과 불행만 있는 줄 알았는데 운의 종류도 참 많습니다.
어디 운이라는 게 이것뿐이겠습니까? 여행 가면 여행운, 직장 대신 학교 가면 학교운, 부모운, 형제운, 친구운도 있을 거고요. 어쩌면 운이라는 것도 사람들이 갖다 붙이기 나름 아닌가 싶습니다.
하루 24시간, 자는 시간 빼면 고작 열 몇 시간인데 어떻게 일일이 운을 알 수 있겠어요?
기분 좋은 내용이면 기분 좋게 하루를 시작하고, 신경 거슬리는 내용이면 하루를 조심하고 겸손하게 시작하면 그뿐인 것 같아요. 운세 하나하나에 일희일비할 필요 없이 말입니다.
중요한 사실 하나, 보고 나면 까마득히 잊어버리잖아요, 오늘을 살면서 어제의 운세 기억한 적 있었나요? 내일이 되면 오늘이 된 운세를 보느라 정신이 팔려있을 거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