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또 그리고 일장춘몽
매일 자면서 꾸었던 꿈 중에서 지금까지 생각나는 꿈은 얼마 정도 있는지 헤아려보신 적 있습니까?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 생생한 꿈들이 있습니다. 당연히 로또 가게로 단숨에 달려가게 한 꿈이었습니다.
꿈 하나
故 노무현 대통령께서 나에게 선물을 주셨다. 청와대 분위기가 나는데 가본 적이 없어 확실히는 모르겠다. 포장을 근사하게 한 네모난 모양의 물건이었다. 나한테 다가오시더니 손수 웃으시면서 주셨다. 받으면서 무얼까 궁금했다. 아무리 꿈이라지만 대통령 앞인데 예의는 갖춰야 될 것 같아 풀어보지 않았다. 꿈꾸는 내내 기분은 날아갈 것만 같았다.
깨고 나서도 기쁨은 가시지 않았다. 해몽을 보니 '부귀영화를 누린다'였다. 가슴이 뜨거워졌다. 이제 ‘고생 끝 행복 시작’을 외치고 싶었다. 한걸음에 달려가 로또를 샀다. 사는 순간부터 떨렸다. 가슴이 뻥 터질 것 같았다. 디데이 전에 천기를 누설하면 도로아미타불 될까 싶어 입에 지퍼를 채우고 묵언수행을 했다. 주체할 수 없는 기대감을 참아가며 1주일을 버텼다. 로또 1등.. 상금이 몇 십억?? 상상은 하늘을 날아올라 우주를 달리고 있었다.
결과는? 1등 당첨되어 몇 십억 받았다면 이 글을 쓸 리가 없겠지. 설마 대통령이 주신 선물이 텅텅 빈 박스였던 건 아니었을까?
꿈 둘
띠를 두 바퀴 돌리면 동갑인 어린 여배우가 나를 찾아왔다. 만나자마자 둘이서 훌러덩 다 벗고 뒹굴었다. 꿈이 영화보다 더 진했다. 꿈을 꾸면서도 너무나 황홀했다. 깨고 싶지 않은 건 당연, 정말이지 이대로 영원히 잠들기를 바랐다. 눈을 뜬 순간 그 진한 아쉬움은 옆에서 코를 고는 진짜 동갑 여편네를 보는 순간 긴 한숨으로 변했다.
해몽은 보나 마나였다. 사랑이 이루어진다, 귀인이 찾아온다, 좋은 해몽뿐이었다. 당첨 수기에 여자와 정사를 즐기는 꿈을 꾼 사람이 주택복권 4억 3천만 원에 당첨되었다는 내용이 눈에 확 들어왔다. 기뻤다. 더군다나 상대는 우리나라 톱 중의 톱배우 아닌가?
우선 마음을 정결하게 하고 늘 하던 대로 로또를 샀다. 평소보다 더 샀다. 기대는 점점 부풀었다. 1등만 되면 바가지 빡빡 긁어대는 마누라 앞에 로또를 '짜잔'하며 과시하리라. 그동안 당했던 모진 설움을 반드시 앙갚음하리라는 상상에 어깨춤이 절로 났다. 이런 꿈은 기쁘다 못해 늘 떨렸다.
만약 로또 대신 사랑이 이루어진다면? 지금 당장 만나는 사람도 없는데? 혹시 직장 내 최고 퀸카 20대 미모의 여직원이 나에게 반했다며 사랑 고백이라도 하는 건 아닐까? 꿈처럼 황홀함이 스멀스멀 몰려오는 순간 두 눈 시퍼런 살기 가득한 마누라의 얼굴이 오버랩되었다.
부풀어 오르는 기대가 현실이 되기를 바랐지만 세상은 여전히 나를 외면했다. 로또는 언제나 그랬듯이 ‘꽝’이었고 마누라는 변함없이 나를 빡빡 긁었다. 미모의 여직원도 한결같이 관심은커녕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
터질 듯이 부푼 기대는 여지없이 펑 터졌지만 바람 빠진 풍선이었다. 기대를 잔뜩 가졌으나, 간절히 염원했으나, 열렬히 기도했으나 그럼에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남은 건 허탈함뿐. 현실은 냉혹했다.
꿈 셋
그 후 몇 년이 지난 어느 날 기막힌 꿈이 찾아왔다. 불과 몇 달 전이었다. 중국의 최고 일인자, 살아있는 권력의 화신인 시진핑 주석이 내 집 안으로 들어오셨다. 방에 들어와 아랫목에 앉더니 누우셨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인지. 누추한 곳에 친히 오시다니. 놀라움을 주체할 수 없었다. 방은 춥지 않은지 살폈다. 꿈인 줄 알면서도 바짝 긴장하긴 처음이었다. 시 주석께서 내 방에 떡 하니 누우시다니. 꿈꾸는 내내 긴장감을 놓을 수 없었다.
우리나라 대통령도 아닌 세계 G2의 권력자가 나온 꿈인데 이게 어디 보통 꿈이겠는가? 해몽을 찾아볼 필요도 없었다. 지금껏 로또가 안된 건 국력의 차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나라가 선진국이라고 떠들어도 한국 대통령은 세계에서 알아주지도 않으니까, 국력이 한참 모자라니까 결과가 늘 꽝이었나 보다.
이번만큼은 로또 1등이라 확신을 했다.
로또를 구입하기 전 시진핑 주석에 관한 내용을 알아보았다. 생년월일은 기본, 몇 살 때 당원이 되었는지, 몇 차 회의 때 서기가 되었는지 그리고 대통령과 관련된 로또 숫자들도 찾았다. 조합을 위해 고심에 고심을 거듭했다. 그리고 마지막 1장은 행여 모를 운명을 위해 자동으로 발급받았다.
운명의 로또 추첨일, 당첨 번호를 보고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아니 이럴 수가?? 단순히 꽝이라면 이리 놀라지도 않았으리라. 1등 번호와 내 번호는 똑같은 위치에 있었다. 다만 방향이 정반대였다. 당첨번호 중에 42,43,44 연결된 번호가 있었다. 내가 선택한 번호는 2,3,4였다. 1등 번호와 내 번호를 적어 반으로 접으면 겹쳤다. 데칼코마니였다. 정말이지, 운명의 장난인가? 신의 실수인가? 아님 사람 놀리는 건가? 대체 어찌 이런 일이 있을까. 꿈은 단지 꿈일 뿐이란 말인가! 너무나 아까운 꿈이라 아쉽다는 말로 다 표현할 수가 없었다. 혹시 운명의 장난으로 다음 주 로또로 미루어진 아닐까 하는 얼토당토않은 상상도 했다.
아까워서, 아까워도 너무 아까워서 머리를 쥐어짜고 가슴을 팍팍 쳐본 것도 살아생전 처음이었다.
꿈 넷 흉몽
전쟁터에서 죽어라 도망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탱크가 지나가고 사방에서 총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여기저기 비명 소리가 들렀다. 꿈인 줄 알면서도 죽을까 싶어 벌벌 떨었다. 도망쳐도 제자리에서 맴돌았다. 얼른 깨고 싶었지만 이 꿈은 참 오래도 꾼 것 같다. 겨우 꿈에서 깼다. 사나운 꿈자리로 뒤숭숭했다. 흉몽인 건 두말하면 잔소리다. 꿈해몽에는 자신이 죽는 꿈은 길몽이란다. 어차피 꿈인데 장렬하게 죽을 것이지, 뭘 살아보겠다고 비겁하게 도망쳐 죽지도 않고 깬 나 자신에게 더 화가 났다.
전쟁터에서 도망 다니는 꿈. 해몽을 보나 마나 흉몽, 좋은 말은 있을 리 만무했다. 내 신상에 문제가 생길까 하는 걱정이 앞선다. 요즘 일도 잘 풀리지 않던데 더 꼬이는 건 아닌지 염려되었다. 걱정거리가 있어 스트레스를 엄청 받고 있을 때였다. 이 문제가 잘못되어 인생의 큰 어려움이 될지 모른다는 예시처럼 느껴졌다. 이런 생각이 드는 순간 머리가 쭈뼛쭈뼛 서며 가슴이 쿵쾅 뛰며 불안에 휩싸였다. 안절부절, 걱정과 초조가 끊이지 않았다.
꿈꾼 그날부터 하루하루 ‘조심해야지’ 하며 보냈다. 며칠 동안 불안해하며 조마조마했던 것 같은데.. 그 이후 어떻게 됐는지 가물가물하다. 그리고 아직까지 살아 있고 인생의 어려움도 별 탈 없이 넘어갔다. 그럼 뭐였지?
어느 날은 경찰에 조사를 받으러 간 꿈을 꾸었다. 내용은 학교 다닐 때 시험이 어쩌고 저쩌고 물어온 것 같았다. 말도 안 되는 꿈인지 깨고 나서도 정확히 기억나지 않았다. 무시하려고 했다. 그러나 경찰에서 조사받는 꿈이라는 사실이 찜찜했다. 안 좋은 해몽이다. 일이 잘 풀리지 않는다는 둥 하는 일이 막힌다는 둥. 결론은 몸조심하라는 거였다.
꿈꾼 그 날은 하루 종일 찝찝해서 평소보다 신경이 더 쓰였다. 보지 않아도 될 눈치도 봤다. 평소 같았으면 별생각 없이 내뱉는 말도 최대한 친절하게, 상대방 기분 상하게 하지 않으려고 조심했다. 아마 이러려고 했을 것 같은데 실은 하루 이틀 지나면서 언제 그 꿈을 꾸었는지 잊어버렸다.
꿈은 꿈일까요?
타이타닉호가 침몰하는 꿈을 꾼 후 배를 타지 않아 살았다는 일화가 있습니다. 꿈속에서 다가올 위험을 미리 알려줘 피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꿈은 앞날을 예시해주는 거라고 믿게 되죠.
그러나 꿈은 그저 꿈일 뿐입니다.
평소 마음 상태와 그날 있었던 사건, 평소 신경 쓰는 일이 서로 뒤섞여서 뇌에 각인됩니다. 아울러 뇌에서 분비되는 신경전달물질이 작용을 하여 꿈이 만들어진다고 합니다. 꿈이 생성하는 과정은 무의식에서 일어나는데 너무나 잔인하고 난해해서 의식 세계에서 받아들이기 힘든 내용이라고 합니다. 뇌에서 가공 과정을 통해 우리 의식이 받아들일 수 있는 꿈으로 순화되어 나타납니다.
기억할 수 있는 꿈은 우리가 꾼 꿈의 극히 일부분이라고 하죠. 기억나지 않는 대부분의 꿈들 가운에는 우주선을 타고 달나라를 가고, 돈벼락을 맞는 꿈도 있지 않았을까요? 음. 어쩌면 대역죄인이 되어 능지처참을 당했을지도 모르고요.
그러니 꿈 하나에 너무 좋아하지도 실망하지도 그렇다고 두려워할 필요도 없습니다.
좋은 꿈 꾸면 기분 좋게 하루를 시작하며 감사하고,
흉몽을 꿨다면 오늘, 며칠 동안은 겸손하게 사는 계기로 삼으면 그리 나쁠 것도 없지 않을까 싶어요.
그럼에도 언제나 좋은 꿈, 소위 대박 나는 꿈을 꾸기를 소원합니다. 혹시나 하는 기대가 놀라운 현실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도 간절합니다. 짧지만 부푼 기대를 갖는 것도 살맛 나게 합니다. 다만 실망은 조금만 하는 걸로.
그나저나 아무리 꿈은 꿈이라지만 대통령이 직접 선물을 주고, 여자 연예인과 영화보다 진한 사랑을 나누고, 중국 권력자가 나와 함께 동고동락을 한 꿈. 꿈해몽상 이보다 좋을 수 없는 길몽인데 어찌 로또 1등이 단 한 번도 안될 수 있을까요? 혹시 내 옆의 동반자가 여배우와 시진핑으로 변해 꿈속에 찾아온 건 아니었을까요?
꿈은 그저 꿈일 뿐인가 봅니다. 에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