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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감의 기술 Feb 04. 2021

행복한 시지푸스를 상상하며

 오늘도 있는 힘껏 돌을 굴려 올립니다. 자신보다 더 큰 바위를 산꼭대기까지 올려야 하니 잠시라도 한눈팔 수 없습니다. 힘이 부치거나 한 발이라도 잘못 디디면 무거운 바위는 사정없이 아래로 굴러 떨어집니다. 자칫 바위에 깔릴지도 모르니 게으름도 피울 수 없습니다.


 뻘뻘 땀을 흘리며 꼭대기에 바위를 올리자마자 바위는 무섭게 아래로 떨어집니다. 굴려가는 바위를 보며 한숨이 나옵니다. '뼈 빠지게 올리면 뭐 하나, 어차피 떨어질 텐데.' 하루에도 수십 번 넘게 하는 생각이지만 하는 수없이 지친 발걸음을 끌며 아래로 내려갑니다. 다시 힘을 모아 바위를 굴리기 시작합니다.

 신을 속였다는 죄로 어제도 굴렸고, 오늘도 굴리고 내일도 바위를 굴려야 하는 시지푸스입니다.


 흔히들 시지푸스를 절망적인 상황에서 희망도 없는 일을 반복하는 인간이라고 합니다. 아무리 애를 써도 똑같은 결과인 줄 알면서도 그 일을 그만둘 수 없습니다. 희망이 없는 노동, 부조리한 노동을 반복해야 하는 시지푸스의 운명은 가혹해 보입니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노동에 시달리는 시지푸스가 마치 인간의 운명처럼 느껴집니다.

 이 세상 모든 생명에게 먹고사는 문제만큼 중요한 게 있을까요? 먹고사는 일 앞에서는 우리 모두는 시지푸스일 수밖에 없습니다.

 돌을 굴려 올리는 시지푸스와 살기 위해 애쓰는 우리와 다를 바 없어 보입니다.


 아침이 오면 돈을 벌려 밖으로 나가고 저녁이 되면 돌아옵니다. 내일 해가 뜨면 똑같은 일을 반복합니다. 어제도 했던 일, 오늘도 하고 있는 일, 내일도 해야 할 일이지만 그렇다고 나아진다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굴리고 또 굴려도 언제 끝날지도 모를 노동에 한숨 쉬는 시지푸스처럼 해도 해도 변함이 없는 일상에 한숨이 절로 나옵니다.  


 힘들어하는 인간을 보며 알베르 카뮈는 이렇게 말합니다.

 '행복한 시지푸스를 상상하며 마음속에 그려보라'라고 말입니다.

 절망적인 상황에서 희망도 없는 일만 되풀이하는 인간이 행복하다니, 게다가 그런 시지푸스를 마음속에 그려보라니 이게 무슨 말인가 싶습니다.


 카뮈는 시지푸스의 돌을 굴리고 또 굴리는 모습이 바로 인간의 운명이요, 인간의 욕망과 세상의 비합리가 충돌하는 부조리라고 말합니다.

 이 상황에서 시지푸스와 인간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두 가지라고 합니다.

 시지푸스처럼 산 정상까지 올린 돌이 굴러 떨어지는 걸 알면서도 계속할 것인가, 아니면 극단적인 선택을 해서 운명에서 벗어날 것인가.

 카뮈는 극단적인 선택은 비겁한 도피 행위라고 일축합니다. 이유는 극단적인 선택은 부조리한 삶을 인정하고 삶에 패배자가 되는 것이니까요. 그럼 희망도 없는 절망적인 운명을 받아들이라는 말일까요?  




 끊임없이 바위를 굴리는 시지푸스는 절망적인 인간입니다. 산꼭대기까지 힘겹게 밀어 올린 바위는 여지없이 아래로 굴러내려 갑니다. 산 정상에는 시지푸스 홀로 남았습니다.

 가야 할 길은 정해져 있습니다. 아래로 내려가는 길입니다. 하지만 내려오는 이 시간은 노동이 없습니다.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고요. 휴식을 하면서 재충전을 하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굴러 올리는 노동이 절망의 시간이었다면 천천히 내려오는 동안 희망을 꿈꿀 수 있습니다. 온전한 자신만의 행복의 순간일지도 모릅니다.  


 카뮈는 이렇게 말합니다.

'굴러 떨어진 바위를 향해 다시 내려오는 그 순간이야말로 시지푸스가 자신과의 운명을 이기는 승리의 순간이다'라고 말입니다.

언제 형벌이 끝날지는 알 수 없지만 그렇다고 영원한 것은 없다고 하지 않습니까? 삶은 어찌 될지 모르니까요.  


 지금 살아가는 운명이 일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일에 치이고 스트레스만 잔뜩 받습니다. 하루도 빠짐없이 매일 돌을 굴려 올리지만 그렇다고 죽을 맛이 나는 날만 있지는 않습니다.

어떤 날은 월급을 받아 가족들과 외식도 하고요, 소중한 사람에게 선물도 합니다.

어떤 날은 노래를 흥얼거리며 즐겁게 굴려 올리기도 하고요.

오늘 굴려 올리는 이 돌이 돈으로 바뀌면 얼마나 좋을까 기분 좋은 상상도 하면서 말입니다.


 먹고사는 일이 다 그렇지 않습니까? 먹으려고 돈 버는 거고 돈 벌어서 먹으려고 합니다.

 돌을 굴리고 굴리는 일이 힘들다고 푸념을 늘어놓지만 이 일이 얼마나 소중한지 모르지 않습니다.

 어떤 이는 돌을 굴리고 싶어도 굴리지 못하는 이도 있고

 어떤 이는 굴리다가 다쳐 아파하는 이도 있습니다.

 요즘처럼 어려운 때에는 굴리고 싶어 애타게 자리를 구하고 순서가 오기만을 하염없이 기다리는 사람도 많습니다.  




 산꼭대기에서 시지푸스가 천천히 내려옵니다. 터벅터벅 힘없는 발걸음이지만 상쾌하게 불어오는 바람에 휘파람을 붑니다. 따스하게 내리쬐는 햇볕을 만끽합니다.

 신을 속였다는 죄로 형벌을 받지만 이 형벌도 언젠가는 끝이 있을 생각에 희망을 버리지 않습니다.

 오를 때는 벗어날 수 없는 노동의 절망감과 기약 없는 기다림이지만

 내려올 때는 여유를 누리며, 혼자 만의 시간을 갖습니다. 그 시간이 행복한 순간이자 희망의 기다림이기도 합니다.


 시지푸스는 절망이지만 동시에 희망이기도 합니다.

 우리의 삶도 절망과 희망이 공존합니다. 그러니 절망에만 빠져 바로 옆에 있는 희망을 포기하지 말아야겠습니다.

 삶이 힘들 때 행복한 시지푸스를 상상하며 마음속에 그려봅니다.





사진출처 : 네이버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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