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웰빙, 힐링, 소확행 그다음은?

by 공감의 기술

온라인이든 오프라인이든 서점에서 새로 출간된 책들의 제목만 봐도 트렌드나 분위기를 알 수 있습니다.

지난 몇 년 동안은 힐링이 대세였습니다. TV 방송은 힐링이라는 제목을 단 프로그램으로 도배하다시피 했습니다. 힐링에 열광하며 마치 삶의 목표인 양 너도나도 힐링만 쫓아다녔습니다. 그러던 힐링이 점차 목소리를 낮추더니 욜로, 소확행이 그 뒤를 이었습니다.




힐링 이전에는 어떤 말이 트렌드였는지 찾아보니까 이 말이었습니다. 웰빙이었죠.

웰빙은 육체적, 정신적 건강의 조화를 이루어 행복하고 아름다운 삶을 추구하는 문화를 일컫는 말입니다. 물질적 풍요에 비해 정신 건강은 가볍게 여기는 현대 산업 사회의 병폐를 인식하고 정신 건강에도 관심을 갖자는 의미였습니다. 2000년대 초반 대한민국은 IMF 위기를 벗어나며 이를 자축하듯 웰빙 바람이 불었습니다. 웰빙족이라고 불릴 만큼 웰빙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엄청 늘어났습니다.


2010년 대에 들어 웰빙은 힐링으로 대처됩니다.

힐링, ‘치유’를 뜻하죠. 힐링은 일시적인 기분을 좋게 하는 것으로 일상생활에서 받게 되는 스트레스를 치료하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힐링 힐링 하니까 세상 모든 행동이 힐링이 되어버렸습니다. 힐링 여행, 힐링 캠프라며 명상이나 휴식까지 무분별하게 '힐링’으로 대처되는 현상이 일어났습니다. 삶이 힘들고 고통받는 이들에게 힐링을 갖다 붙여 이겨내야 할 정신 승리나 아파서 쉬어야 하는 현실도피처럼 사용되어 비판받기도 했습니다.


본래 힐링이란 정신 승리나 현실 도피가 아니라 고통스럽고 힘들게 하는 삶의 개선과 정상적인 일상생활 복귀를 도와주는 의미입니다.

이름만 갖다 붙인 힐링 마케팅이 재미도 없고 도움도 안 되는 미봉책인 경우가 대부분이라 욕도 많이 먹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힐링이 아니라 희망 고문이라는 비판도 있었고요. 청년의 아픔을 듣기 좋은 말로 은근슬쩍 덮어버린다는 비난도 받았습니다.


힐링이라는 유행이 끝나자 욜로, 소확행이 등장했습니다.

욜로. You Only Live Once, YOLO. 인생은 한 번 뿐이니 후회 없이 이 순간을 즐기며 살자는 의미로 현재 자신의 행복을 가장 중시하여 소비하는 태도를 말합니다. 미래 또는 남을 위해 희생하지 않고 현재의 행복을 위해 소비하는 라이프스타일입니다.


소확행도 마찬가지입니다. 주택 구입, 취업, 결혼 같은 크지만 성취가 불확실한 행복을 쫓아가기보다는, 일상의 작지만 성취하기 쉬운 소소한 행복을 추구하는 태도가 젊은 층에 관심을 끌었고요, 서울대 소비 트렌드 분석센터의 2018년 대한민국 소비 트렌드로 선정되기도 했습니다.

원래 소확행이란 말은 일본의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에세이 <랑겔한스섬의 오후>에 나온 말로, 갓 구운 빵을 손으로 찢어 먹을 때, 서랍 안에 반듯하게 정리되어 있는 속옷을 볼 때 느끼는 행복과 같이 바쁜 일상에서 느끼는 작은 즐거움을 뜻하는 말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유행한 욜로와 소확행은 팍팍한 삶의 무게가 그대로 반영된 듯합니다. 사는 게 버겁고 꿈도 희망도 비전도 없다며 푸념합니다. 내 힘으로 달성하기 불가능해 보이는 목표는 제쳐놓고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누린다는 태도입니다. 사정을 들여다보면 행복하다기보다는 오히려 힘겨운 현실 앞에 어찌할 수 없는 자포자기 같은 느낌이 들어 안타까움과 씁쓸함이 듭니다.




작년 2020년의 트렌드를 나열한 내용이 있었습니다.

작년 2020년에 발표된 올해의 여행지는 구글 지도라고 합니다. 올해의 장소는 줌 ZOOM이고요, 올해의 향기는 손소독제, 올해의 패션은 KF-94입니다. 올해의 음악은 뭐였는지 아십니까? BTS라 기대했는데 긴급재난문자 경고음이라고 합니다.

2020년을 이렇게 무시무시하게 정리해놨던데요. 읽기만 해도 체념이 절로 듭니다. 이 기분처럼 작년 2020년의 트렌드는 다름 아닌 '체념'이라고 합니다.


작년에는 체념해야 할 것들이 너무 많았습니다. 여행과 모임은 물론이었고요, 얼어붙은 경제 상황은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민족의 대이동마저 체념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코로나, 확진자, 자가격리, 거리 두기, 마스크, 긴급재난문자, 랜선. 작년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들어야 했던 슬픈 단어들만 우리 사회에 남은 듯합니다.


그렇다고 체념만 하고 있지 않았습니다.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상황에서도 새로운 시도를 하며 많은 것들을 체험 했습니다. 하늘길은 막혔지만 홈캉스, 차박 같은 캠핑에 진심이었고요, 사회적 거리두기로 집에만 있어도 언택트 공연에 열광했습니다. 재택근무로 바뀌고 학교를 못 가더라도 새로운 방식의 업무와 수업이 생겼고 적응해 나갔습니다.


2020년은 많은 걸 체념했지만 그 와중에도 새롭게 시도하고 그래도 친해질 수 있었던 체험들을 더 많이 기억하는 2021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다시는 이런 슬픈 단어를 체험 안 했으면 좋겠습니다만 만약에 훗날 오늘과 비슷한 역병이 창궐하더라도 우리는 미리 터득한 체험으로 잘 이겨낼 거라는 긍정적인 생각도 가져봅니다.




체념할 수밖에 없었던 한 해였지만 다시 평범한 일상의 소중함을 체험하는 날이 곧 오리라 믿습니다.

이제 막 접종하기 시작한 백신으로 전세를 뒤집고 있으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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