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팍팍하고 고달프기만 한 20대 아가씨가 장년의 아저씨들에게 하소연을 합니다.
"빨리 어른이 되고 싶어요. 그러면 사는 게 쉬워질 것 같아요."
그 말을 듣고 아저씨들은 서로 눈짓을 하며 당혹스러워합니다.
아가씨를 집에 바래다주고 돌아오는 길에 아저씨들이 쓴웃음을 지으며 그럽니다.
"아, 어른이 되어도 사는 게 쉬워지지는 않는데."
드라마 <나의 아저씨>에 나오는 장면입니다.
다 큰 어른들도 꼭 한 번씩 하는 유치한 대결이 있습니다. 하는 일에 따라, 사는 방식에 따라, 처해있는 환경이 다르니 서로 뻐기는 말로 유치함의 극치를 달립니다.
“그게 뭐가 힘들다고? 내가 하는 일이 제일 힘들지.”
“아냐, 네가 잘 몰라서 그렇지, 이 일이 더 힘들어!”
“다들 잘 알지도 못하면서 우기고 그래?”
어떻게든 이기고 인정받기 위해서 각자의 고충을 털어놓지만 결코 승부는 가려지지 않죠. 그런데요, 쉽게만 보이던 남의 일도 내가 해보면 알게 됩니다. 세상에 쉬운 일은 없다는 사실을요.
나이가 들수록 고달파지지 않나요?
삶의 숙제는 더 커지고 무게는 더 무거워지고 문제는 더 복잡하게 주어지니까 그걸 해결하기가 더 버거워집니다. 열심히 푼다고 풀었는데 정답이 없어요. 이게 맞는지, 아까 그게 맞는 건지 답을 찾느라 헤매기 일쑤입니다.
일이 될 듯 말 듯 , 인생을 알듯 말 듯, 사는 게 좋아질 듯 말 듯합니다. 조금만 더하면 나아질 것 같은 기대가 생깁니다. 그래서 구르고 또 구르고, 달리고 또 달립니다. 한참을 구르고 달렸는데 돌아보면 언제나 그 자리에서 안간힘을 쓰는 자신을 발견합니다. 어제도, 오늘도 삶은 늘 제자리에서 맴도는 것 같습니다. 그럼 힘이 축 빠지고 시름도 깊어지고 의욕도 꺾여버립니다.
그래도 어른이니까 다시 털고 일어나 내 몫을 감당하며 오늘을 살아갑니다.
어른이 되어도 참 어려운 일이 많습니다.
부모가 된다는 것도 어렵고, 사람과 사람을 대하는 것도 쉽지 않고, 사는 게 만만치 않다는 걸 자주 느낍니다.
살아온 날들이 적지 않은데도 아직도 모르는 게 너무 많습니다. 왜 사는지도 모르겠고요, 어떻게 살아야 할지도 모르기는 매한가지입니다.
무엇보다 내가 나를 모르겠습니다. 내가 나를 잘 안다고 하지만 내가 알고 있는 내가 진정한 나인지 모를 때가 더 많습니다. '나를 알아가는 과정이 인생'이라고 하는데 언제쯤이면 알게 될까요, 나를 제대로 알려면 어찌해야 될까요? 나를 알게 되면 정말 인생을 알게 될까요?
딱 맞아떨어지는 답은 없고 의문은 끝이 없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경험적으로 알게 됩니다.
잃어버리는 게 많아진다는 사실을요. 청춘도 그렇고요, 소중한 사람도 떠나보내고, 무한정 있을 것 같았던 시간도 마찬가지입니다. 눈앞에서 잃어가는 걸 보면 마음이 조급해집니다.
그러니까 그것을 하나라도 잃지 않으려고 아등바등하면서 살아가지 않나 싶습니다.
삶이라는 여정을 느긋하게 느끼고 자신을 차분히 다스리며 살아야 되는데 삶이라는 시간에 늘 쫓겨서 그러기가 쉽지 않습니다. 차라리 비우면 낫다고 하는데 그마저도 여의치 않습니다.
그렇다 한들 뾰족한 수가 있나요?
어른이 되어도 끊임없이 배우고 질문하고 공부하며 살아가는 수밖에요. 머리는 점점 굳어가고 몸은 갈수록 저질 체력이 되지만 그래도 괜찮다고 스스로 다독거리면서 말이죠.
지난날 반성도 하면서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충실히 하는 게,
설령 지금이 힘겨움의 한복판일지라도 받아들이고 마음을 비울 줄 아는 게,
살아가는 이 순간을 감사한 마음을 갖는 게 진짜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이 아닐까 싶습니다.
보기에는 만만한 것 같아도 알고 보면 다들 고충을 떠안고 각자의 일을 해내고 있는 우리네 인생입니다.
지금 옆에 누군가가 있다면 서로서로 그 수고를 인정해 주기로 하죠.
어른이 되어도 모르는 것 투성이인 세상에서 인정만 한 위로도 없을 테니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