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정보다 때론 '적당히'

by 공감의 기술

몸이 부서져라 일에 파묻혀 저러다 곧 쓰러질 같아 보일 때

며칠 밤을 새워가며 공부하느라 몸이 상하는 게 한눈에 보일 때

고민과 걱정으로 입맛을 잃고 심신이 피폐해져 가는 게 보일 때

이런 말을 해주고 싶습니다.

"적당히 해, 그러다 병 난다."


직장 상사가 조언이랍시고 쓴소리가 끝이 없을 때

철없는 아이에게 오늘도 잔소리를 어김없이 해대고 있을 때

조언을 얻으려 온 친구한테 어느덧 훈화 말씀을 늘어놓게 될 때도

이런 말을 해주고 싶습니다.

"적당히 좀 해. 너무 그러면 너 나중에 후회한다."


요리 프로그램에서 세프가 요리 비법을 알려줍니다. 레시피를 한참 설명하면서 양념을 넣습니다. '적당히 넣으세요'라고 하면서요. 그 적당히 넣으라는 말을 듣는 순간 난감합니다. '적당히'라는 기준은 사람마다 다 다르니까요.




'적당히 해라'. 얼핏 들으면 무책임해 보입니다.

사람과의 관계에서는 성심성의껏 대하라고, 일이 주어지면 혼신의 힘을 다해야 한다고 배웠으니까요.

한 번뿐인 인생이니 후회하지 않게 열정을 가지라고 합니다. 무슨 일을 하든 간절함을 가지고 매사에 최선을 다하라고 합니다. 틀린 말이 아니라서 그렇게 살지 못하는 나 자신이 부끄럽고 많이 부족하게 느껴집니다.


얼마 전 가수 양희은 씨가 방송에서 이런 멘트를 했습니다.

"열정이 없어서 51년을 불렸어, 열정이 있었으면 오랫동안 못했어"라고 말입니다.

듣는 순간 가슴이 '쿵'하고 울렸습니다.


열정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는 말은 하루 24시간, 일 년 365일을 쉼 없이 정열적으로 움직여야 인생을 허비하지 않고 잘 사는 거라고 생각했으니까요. 하지만 사람은 기계가 아닙니다.

매사를 열정적으로 살 수는 없습니다. 간절함과 절박함으로 일을 해야 성공한다고 하지만 그렇다고 사는 내내 간절함과 절박함으로 살아야 한다면 힘들어서 어찌 버텨내겠습니까?

달리기를 아무리 좋아해도, 노래 없이 못 산다고 해도 매일 쉬지 않고 달리고 부를 수는 없습니다. 그러다가는 지쳐 쓰러지고 맙니다.

달리기가 삶의 활력이 될 때, 생활이 노래가 될 때 오랫동안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중국 고전 예기(禮記)에는 이런 문구가 있습니다.

'다른 사람이 호의를 남김없이 베풀기를 바라지 말고, 충성을 남김없이 바치기를 바라지 말라. 그렇게 함으로써 사귐을 온전하게 유지한다.'

정치에서 자주 언급되었고 세상사 인간관계에서 빠지지 않는 사자성어가 있습니다. 일이 있을 때는 실컷 부려먹다가 일이 끝나면 돌보지 않고 헌신짝처럼 버린다는 뜻인 토사구팽(兎死狗烹). 토사구팽이 되지 않으려면 호의도, 충성도 적당히 해야 한다는 엄숙한 충고처럼 들립니다.

그래서 너무 가깝지도 않게 그렇다고 너무 멀지도 않은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는 게 대인관계를 오래 이어갈 수 있는 처세라고 하는가 봅니다.


놀 땐 놀고, 공부할 땐 공부만 하라는 선생님의 말씀처럼 최선을 다할 때는 한눈팔지 않고 몰입해야 하고요, 쉴 때는 만사 다 제쳐놓고 충전의 시간을 가져야 그다음 일을 해나갈 수 있는 건 자명한 사실입니다.

일의 우선순위를 정해서 집중해야 할 때는 집중해서 처리하고, 중요하지 않은 일은 적당히 처리하는 요령이 지치지 않고 꾸준히 해내는 비결입니다.

그러기에 적당히 할 수 있는 일은 적당히 처리하는 것도 요령이요, 능력이기도 합니다.


적당히 하면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다고 합니다만 삶에서는 '적당히'가 필요할 때가 많습니다.

'적당히'라는 뜻이 '엇비슷하게 요령이 있게'라고 하죠. 엇비슷하게 요령 있게 제대로 하는 '적당히'도 노력해야 가능하지 않나 싶습니다.


걱정이 과하면 수렁에 빠지고 하루하루가 힘듭니다. 걱정도 적당히 해야 마음이 상하지 않습니다.

컵에 물을 가득 담으면 넘치고 말듯이 모든 불행은 스스로 만족함을 모르는 데서 비롯되기에 매사에 적당히 채우고 적당히 좀 비우라고 합니다.

음식도 적당히 먹어야 살과의 전쟁을 이길 수 있고요, 술도 적당히 마셔야 가정의 평화가 깨지지 않습니다. 수영이나 골프 같은 운동을 배울 때도 빠짐없이 듣는 말, '적당히 힘 좀 빼세요' 아닌가요?


적당히 힘을 뺄 곳은 빼고, 적당히 만족하는 방법을 배우고 안다면 인생을 보다 즐겁게 보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만 이 '적당히'가 적당히 넣는 양념처럼 쉽지가 않습니다.




활기찬 일상과 원활한 대인관계를 위해 가끔은 적당히 했으면 정말로 고마울 소중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툭하면 잔소리하는 남편, 걸핏하면 바가지 긁는 아내, 여차하면 라떼는 말이야 하며 쓴소리로 일장연설을 하시는 상사님들. 제발 적당히 좀 하시면 대단히 감사할 것 같고요, 분위기도 훨씬 좋아질 텐데 말입니다.


내가 '적당히'라는 끈을 놓고 쓸데없이 질주하게 될 때 옆에서 적당히 브레이크를 밟아주는 존재가 있다는 건 참 고마운 일입니다만 근데 그 적당히를 안다는 게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인 것 같습니다.

그러니 옆에서 그 적당히 하는 기분을 잘 지적해 주는 사람이 있다면 삶이 나아지지 않을까 싶습니다. 할 때는 하고 쉴 땐 쉬는 적절한 페이스를 조절할 수 있을 테니까요. 그런 사람 옆에 있다면 든든하지 않겠습니까? 있다면 무지 행운인데 말이죠.


내 주변에 그런 사람 있는지 찬찬히 찾아봐야겠습니다. 스스로도 '적당히' 하는 연습과 노력을 같이 하면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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