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주식(主食)은 쌀과 밀, 이를 조리한 밥과 빵입니다. 우리는 주로 간식으로 즐겨먹는 빵은 그 종류도 다양합니다.
입맛을 사로잡기 위해 겉에는 크림이나 초코를 바르고, 속에는 온갖 재료를 넣기도 합니다. 이것저것 많이 붙여 보기만 해도 배가 부른 빵도 있습니다. 갈수록 다채롭게 출시되는 빵은 이름을 외우기도 어렵습니다.
그중에 특이하게 생긴 빵이 있습니다.
이 빵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배를 운항하면서 먹기 편하도록 운전대 키에 꽂을 수 있게 가운데 구멍을 뚫었다고 알려진 이 빵은 빼기의 대명사로 불리는 도넛입니다.
공부 열심히 하라고 합니다. 지식을 머릿속에 더 집어넣으려고 애를 씁니다. '아는 게 힘'이라고 했으니 하나라도 더 외워야 성적을 잘 받을 수 있으니까요.
친구들과 사이좋게 지내야 한다고 배웠습니다. 두루두루 친하게 지내라고 합니다. '남는 건 사람뿐이다'라고 하니 사람을 많이 만나고 친해져야 나를 도와줄 인맥을 만들 수 있을 테니까요.
건강이 최고입니다. 그래서 몸에 좋다는 음식을 가리지 않고 먹습니다. 몸에 좋다면 마다할 이유가 없습니다. 천하를 얻어도 건강을 잃으면 아무 소용없으니까요.
버킷 리스트를 작성해 보라고 합니다. 한 번뿐인 인생을 멋지게 살기 위해 하고 싶은 목록을 적고 꼭 하고 말겠다는 집념을 불태우라고 합니다. 가슴 뛰는 삶, 상상만 해도 흥분되지 않느냐고 하면서 말입니다.
우리가 살아온 모습이 이러지 않았나 싶습니다.
단어 하나라도 더 외워야 성적을 잘 받고, 문제 하나라도 더 맞혀야 경쟁에서 유리합니다.
계약 하나라도 더 따와야 승진이 가능하고, 물건 하나라도 더 팔아야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그러니 '하나만 더', '하나라도 더'라는 더하기에 혈안이 되어 살아왔습니다.
없어도 있는 척, 몰라도 아는 척, 못나도 잘난 척이라도 해야 무시당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딱히 필요 없는 물건이라도 일단 가지면 드는 뿌듯한 기분처럼 뭐라도 가져야, 뭐라도 있어야, 뭐라도 내세워야 인생을 헛살지 않았다고 여깁니다.
그래서일까요? 과학이 발달해 편리함이 많은 세상이지만 삶은 그리 즐겁지가 않습니다.
이것저것 산 물건의 즐거움은 포장을 뜯는 그 순간 그때뿐입니다. 성적을 잘 받아도, 기분 좋게 승진을 해도 여전히 불안합니다. 언제 이 자리를 뺏길지, 언제 다 잃어버릴지 몰라 신경이 곤두서 있으니까요. 삼시 세끼 먹고사는데 큰 지장이 없어도 마음은 그다지 편하지 않습니다.
간혹 이런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지금 나는 무엇 때문에 살고 있는 걸까? 사는 이유가 뭐지?'
사람들은 보통 버킷 리스트를 작성합니다. 이번 생에 꼭 하고 싶은 목록을 적습니다. 그런데 그런 건 일상이 별 탈 없을 때의 이야기입니다. 먹고 사느라 정신이 없고 하루하루 피 말리는 경쟁에서 살아남으려고 몸부림칠 때는 이 상황에서 반드시 이기던지 아님 얼른 벗어나는 게 내가 꼭 하고 싶은 버킷 리스트이니까요.
그러다 보면 가끔 내가 뭘 하고 있는지 모를 때가 있습니다. 내가 뭘 하고 싶은지도 모르겠고요. 이런 나 자신이 제대로 살고 있는지도 몰라 마음이 심란해집니다. 그럴 땐 하기 싫은 목록을 작성해 보는 게 도움이 됩니다.
좋은 관계를 많이 맺으라고 하지만 그렇다고 싫은 사람이랑 밥 먹고 술 마시는 건 썩 내키지 않습니다. 불편한 자리에 끼는 것 역시 마찬가지이고요. 내 기분과는 상관없이 리액션을 날리고 분위기를 맞춰주는 행동도 하루 이틀이지 지나치면 고역입니다.
몸에 좋다는 음식을 가리지 않고 먹고 나서 불어난 살덩어리에 놀랍니다. 그럴 바엔 몸에 좋지 않은 음식부터 멀리하고, 한 숟가락이라도 덜먹는 게 후회를 줄입니다. 물론 건강에도 더 좋습니다.
공부도 그렇지 않나요? 하나라도 새롭게 얻은 지식도 필요하지만 기껏 공부해서 아는 내용을 까먹지 않는 게 더 중요합니다.
하고 싶은 리스트를 적는 게 아니라 안 해도 될 리스트를 적는 것처럼 일상에서 더하기 말고 빼기를 해봅니다.
이 길이 최선이라고 애써보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도 있기 마련입니다. 그럼 차선을 생각하면서 살아보는 것도 괜찮습니다. 인생을 살다 보면 최선이 최악이 되기도 하고 차선이 우선이 되는 경우도 종종 있으니까요.
더 많이 갖고 더 많이 사고 더 많이 하는, 뭐든지 더 더 더 하는 마음도 비워봅니다. 과식, 질투, 과소비, 남과의 비교, 지난날의 후회, 사람들에 대한 지나친 기대 등등. 이런 걸 덜어내고 줄이고 추려냅니다.
과식을 안 하니 살과의 전쟁은 피하게 될 거고요, 질투나 남들과 비교를 버리면 괜한 마음고생을 사서 할 이유도 사라집니다. 사람들에 대한 기대를 접으니까 실망할 일도 없습니다. 과소비를 줄이면 먹고사는 형편도 나아질 거고요.
이것만으로도 삶이 차츰차츰 천천히 행복해지는 것 같지 않으십니까?
삶이란 어쩌면 제로섬 게임 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산이 높으면 골이 깊듯이 하나를 얻으면 다른 하나를 잃기도 합니다. 성공을 향해 앞만 보고 최선을 다해 달렸습니다. 바라는 대로 성공의 기쁨은 얻었지만 등한시한 가정의 서먹서먹함과 소홀히 한 건강의 적신호도 함께 받아들이기도 합니다.
뭔가를 늘이면 뭔가는 줄어듭니다. 불필요한 물건을 사 모으면 집안의 숨 쉬는 공간이 줄어듭니다. 애정 어린 잔소리도 지나치면 마음의 문을 닫아버립니다. 그러니 충동구매나 잔소리를 줄이면 집안은 넓어지고 마음도 넉넉해집니다. 욕심을 버리면 여유가 생기듯이 줄어든 만큼 그에 비해 좋은 게 늘어납니다.
나쁜 사람은 최대한 멀리하자. 맞지 않는 사람은 적당히 거리를 두자. 관계도 빼기가 필요합니다.
일에도 우선순위를 정하고 중요한 일부터 해치우는 빼기의 기술이 필요합니다.
운동을 할 때는 힘 빼기, 다이어트는 살 빼기, 정신 건강에는 걱정 근심 빼기 그러고 보면 행복은 더하기보다는 빼기가 필수적인 요소입니다. 그래서 사는 건 빼기의 미학이라고 하는가 봅니다.
최선만 고집하지 말고 안되면 차선, 지나친 욕심도 기대도 버리는 게 행복에 가까워지는 방법이라고 하니까요.
밀가루 반죽을 뜻하는 도우(dough)와 견과류를 뜻하는 넛(nuts)의 합성어인 도넛. 가운데 구멍이 뻥 뚫려 허전하게 보입니다.
하지만 세계 대공황 시절, 도넛은 사설 구호소에서 실업자들에게 베푸는 구호품으로 널리 이용되었습니다. 밀가루 반죽을 튀기면 그만인 간단한 조리법으로 배고픔을 해결해 준 고마운 빵이었습니다.
구멍 뚫린 도넛이 오늘따라 또 다른 의미로 다가옵니다. 안에 든 건 별로 없지만 도넛이 주는 빼기의 미학을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라도 더하고만 싶을 때 도넛을 떠올리면 집착을 버리고 여유를 찾을 수 있을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