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고사니즘, 왜 사냐건 웃지요.

by 공감의 기술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할까?'라는 철학적인 질문부터

인생을 살아가며 '자신의 꿈은 무엇인지', '하고 싶은 건 무엇인지'처럼 이루고 싶은 소원도,

직업을 고를 때 성장 가능성은 있는지, 안정성은 괜찮은지, 돈은 얼마나 벌 수 있는지 같은 현실적인 고민까지.

이 모든 게 '먹고사니즘'에 관한 이야기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밥벌이할 곳은 있는지, 지금 밥벌이는 괜찮은지, 밥줄은 끊기지나 않을지.

어쩌면 지금까지 인류가 가장 많이, 오랫동안 고민했던 주제가 아닌가 싶습니다.

아프니까 청춘이라는 젊은이들은 물론 위아래로 낀 기성세대와 노후준비가 제대로 안된 노년층까지 생존을 위해 피할 수 없는 먹고사니즘의 문제입니다.




세상에 찌들고 세파에 이리저리 시달려도 제대로 기 한번 펴지 못했습니다.

이놈의 인간관계는 어찌 이리도 변화무쌍한 지 한시도 긴장을 놓을 수 없습니다. 밥줄이 걸린 회사에서 질책을 당하고 때론 동료와 다투기도 합니다. 아이가 자랄수록 여기저기 돈 들어갈 곳이 늘어나 허리가 휘고, 나이는 들수록 앞으로 먹고 살 일이 더 막막하게 느껴지기만 합니다.


믿고 의지했던 선배가 어느 날 안면을 싹 바꿔 뒤통수를 치고

싹싹하고 예의 발라 듬직했던 후배는 뒤에서는 호시탐탐 나를 밟고 올라설 기회만 노립니다.

법 없이도 살 수 있다는 사람은 돈 없이는 못 산다며 돈 앞에서는 등을 돌리고

달면 먹고 쓰면 뱉으면 그나마 다행, 단맛 쓴맛 다 빨아먹고 버리는 일도 비일비재합니다.


내키지 않아도 밥그릇에 매인 이상 불편한 자리에서 장단을 맞추어야 합니다.

잠시도 앉아 있기 싫지만 그런 내색은 금물, 오히려 오버액션을 날리며 분위기를 띄우기도 합니다.

어디 조용한 곳에, 아무도 나를 괴롭히지 않는 곳에 며칠만이라도 푹 쉬고 싶지만 현실은 어림없습니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 자기 계발도 하며 내일을 준비하라고 하지만 오늘도 야근에 잡일에 허덕입니다.

내 삶에 충실하려면 감정에 솔직해지라고 합니다. 무조건 참지만 말고 감정을 표현하라고 하는데 그러기가 어디 쉽습니까?

억지로 마지못해 하는 건 제쳐 버려야 되는데 그 또한 말처럼 어디 쉬워야 말이죠.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라고 합니다. 마음 같아서는 영화의 한 장면처럼 사직서를 휙 던져버리고 포부도 당당하게 내 발도 걸어 나오고 싶지만, 눈앞에 딸린 식구들이 아른거리는 순간 오늘도 꾹 참습니다. 안 그래도 일자리 구하기 힘든 요즘인데 말입니다.

이게 다 먹고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나 봅니다. 절로 나는 한숨을 푹~ 내쉬면 이런 생각이 듭니다.

'내가 무엇 때문에 살고 있지? 왜 살지?'


그 순간 다급하게 상사가 나를 호출합니다. 며칠 동안 애써 마무리해서 방금 올린 기획안을 본 상사가 이게 뭐냐며 야단을 칩니다. 그리곤 마지막엔 내 생각을 어떻게 읽었는지 이런 멘트를 날립니다.

"대체 넌 왜 사냐?"




일진 사나운 날을 겨우 넘기며 친구들과 모여 저녁을 먹습니다. 각자 오늘 있었던 일, 요즘 힘든 일을 안주 삼아 술잔도 돌립니다. 동료도 까고 상사도 뒷담화를 하면서 분위기가 달아오릅니다.

그러다 한 친구의 얼마 전 억울하게 당한 이야기를 듣다가 너도나도 한 마디씩 합니다.

"에이, 그 사람 왜 그런다니?"

"그 인간 그럴 줄 몰랐다. 어찌 그럴 수 있어" 하며 분을 냅니다.

그러자 옆에 있던 또 다른 친구의 뼈 있는 말 한마디에 다들 조용해집니다.

"그게 다 먹고살려고 그러는 거지."


먹고살려고 그런다는 말을 들으면 치솟던 분노는 더 이상 올라가지 않습니다. 요동치던 울화도 살며시 가라앉습니다.

죽고 사는 일이 아니라면, 천일 공노 할 사건이 아니라면 웬만하면 먹고사니즘 앞에서 우리는 잘잘못을 잘 따지지 않습니다.

먹고사는 일이 그리 만만치가 않다는 걸 너무나 잘 아니까요.


먹고사니즘, 이 밥벌이 때문에 할 말도 다 못 하고, 남들이 "예"라고 할 때 나는 더 크게 "예"라고 대답합니다만 현실적으로 가장 중요한 가치 중에 하나이기도 합니다.

곳간에 인심 난다고 먹고살 만해야 가정의 평화도 오고요, 여행 갈 계획도 세우고, 하고 싶은 꿈도 꾸어볼 수 있으니까요. 그러니 우리가 암암리에 먹고사니즘을 이해하며 사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젓가락질 서툴게 해서 식탁은 물론 바닥이란 바닥은 모두 엉망으로 만들어 엄마 속을 뒤집어 놓는 아이,

군것질거리를 먹고는 학원 늦었다며 아무 데나 쓰레기를 내던지고 나가 분노 게이지를 올리는 아이.

얘들도 먹고살겠다고 나름 애쓰는 중입니다. 제 몸보다 더 큰 가방을 메고 뛰어가는 모습을 보면 괜히 안쓰러워집니다.

그러니 먹고살려고 기 한번 제대로 못 펴고 사는 어른들은 두말하면 잔소리입니다.




어느 시인이 그랬던가요?

'왜 사냐건 웃지요'라고요.


먹고사니즘, 이른바 밥그릇니즘은 우리를 옴짝달싹 못하게 하는 힘이 있어서요, 오늘도 어정쩡하게 웃어 버립니다.

왜 사느냐고 묻는다면 딱히 떠오르는 생각이 없습니다. 생각이 있어도 구구절절 늘어놓는 게 구차하게 보이기도 하고요. 그럴 때면 그냥 웃고 넘깁니다.

'왜 사냐건 웃지요'처럼 말이죠.


먹고, 살고. 이 둘 사이를 하루 종일 왔다 갔다 하는 먹고사니즘,

웃다 보면 이 둘 사이에 다른 좋은 일도 생기지 않을까요? 그런 기대도 하면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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