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거나 대신 취향저격

by 공감의 기술

고된 일상의 하프 타임인 점심시간, 삼삼오오 모여 오늘은 뭘 먹을지를 고민합니다. 메뉴를 물어보면 꼭 이렇게 대답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아무거나"


하루가 끝나고 오랜만에 술 한잔하러 갑니다. 어딜 가나 술은 똑같습니다. 그러니 안주로 뭘 먹을까 고를 때 가장 많이 나오는 대답은

"아무거나"


더 이상 생각하기 싫을 때가 있습니다. 분위기를 보니 주장을 더 펼치는 게 부담스럽기도 하고요. 간혹 의견도 없고 의욕이 없을 때도 이런 대답을 선택합니다.

"아무거나"

심지어는 모두가 아무거나 괜찮다고 해서 진짜 뭘 골라야 할지 더 고민되기도 합니다.


예전 한 온라인 게시판에 '누구나 먹고 싶은 메뉴'가 담긴 사진이 화제가 된 적이 있었습니다. 여러 메뉴들이 쭉 적혀있고 마지막 줄에 이런 메뉴가 눈길을 끌었습니다.

'아무거나(그날에 따라)'

그날그날 주인의 마음에 따라 메뉴의 종류와 가격이 정해진다는 이야기인데 보는 이들에게 웃음을 짓게 합니다. 한편으로는 메뉴를 정하지 못하는 우리들의 마음을 그대로 보여주는 사진이 아닌가 싶습니다.




특별히 정해지지 않았기에 그 어떤 거라도 괜찮다는 뜻을 가진 '아무거나'.

언제부터인가 '아무거나'라는 말이 일상에 널리 쓰이고 있습니다. 근데 무슨 이유로 '아무거나'가 가장 부담 없이 언제 어디서나 쓸 수 있는 말이 되었을까요?

바쁜 세상에 굳이 따로 고를 필요 없이 대세를 따르는 태도일 수 있고, 고르기 귀찮아 아무거나라고 떠넘기는 대답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상사와 함께하는 자리나 연인과 데이트를 할 때의 '아무거나'라는 의미는 내 취향보다는 상대방을 위한 배려로 건네는 말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상대방의 의향을 존중한다며 '아무거나'를 남발한다면 자칫 예의에 어긋날 수도 있습니다.

상사가 밥 사준다며 뭘 먹을 건지 묻습니다. 감개무량하여 예의를 차려 '아무거나 잘 먹습니다'라고 대답을 하면 상사는 식당도 정해야 하는 부담까지 떠안는 상황이 됩니다.

데이트를 하다 밥을 먹으러 갑니다. 메뉴를 묻길래 '아무거나'라고 했더니 연인은 자신이 좋아하는 식당으로 갔습니다. 하필이면 내가 싫어하는 메뉴였습니다. 당연히 얼굴이 좋을 리 없어 오해를 사기 십상이고 까닥하면 분위기도 망칩니다.


'아무거나'는 종종 ‘아니다’와 함께 쓰이는 대단하거나 특별한 어떤 것이라는 뜻이 숨어 있습니다.

무엇인가를 정해야 상황에서 상대방, 특히 상사가 이 말을 썼을 때는 상황이 난처하게 돌변할 수 있는 놀라운 스킬이기도 합니다.

아무거나 괜찮다고 하시길래 정작 아무거나 가져오면 왜 그걸 가져왔느냐고 지적하듯이 말입니다.


‘아무거나’라는 대답에는 상대방을 배려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물론 윗사람의 취향을 거스르지 않으려는 눈치도 있고요, 때로는 고르기 귀찮음도 있습니다만 정작 '나 자신'이 없습니다.

어쩌면 일상에서 나 스스로를 '아무거나'처럼 대하고 있지 않습니까?

부모나 자녀에게는 멋진 옷을 선물하면서도 나 자신은 아무거나 걸치고 다닙니다.

친구나 연인에게는 근사한 식사를 대접하는 반면 나는 아무거나 먹으며 한 끼를 때웁니다.

물건을 하나 사더라도 아무거나 사고, 노래는 아무거나 들리는 대로 듣고, 영화도 아무거나 보자는 대로 보며 아무렇게나 시간을 보낼 때가 적지 않습니다.

그러면서 인생이 만족스럽지 않다며 불만을 토로하곤 합니다. 나 자신이 스스로를 '아무거나'로 대하는 이런 태도가 인생을 더 재미없게 하고 있지는 않을까요?




혼자 사는 세상이 아니기에 가끔은 아무거나 마인드도 필요하지만 그게 반복되면 내 취향도 생각도 사라집니다. 즐길 수 있는 거리들이 자꾸만 줄어드니 사는 게 재미도 없어집니다.

이 세상에서 하나뿐인 나, 인생도 단 한 번 뿐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나를 챙겨 주는 씀씀이가 필요합니다. 그러려면 적당히 대충 아무거나에 나를 두지 말고 내가 좋아하는 취향을 즐기게끔 스스로에게 관심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스스로가 뭘 좋아하는지도 몰라서 '아무거나'로 퉁 치지 말고요, 소소한 거라도 내가 좋아하는 취향을 저격하는 노력부터 했으면 합니다.

식사 메뉴도 깐깐하게 골라보고, 일도 고심해서 처리합니다. 진짜로 듣고 싶은 노래를 골라서 들어보고 옷도 물건도 내 취향을 저격할 수 있는 걸 사고요.

아무거나 마인드 대신 취향 저격. 생각만 해도 삶이 즐거워지지 않습니까? 인생 만족도가 꽤 올라갈 것 같은데 말이죠.


이제부터는 적당히 대충처럼 '아무거나'로 하지 마시고 내 마음에 꼭 드는 걸로 콕 집어 고르는 취향 저격으로 살아갔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다 보면 밋밋한 일상에 재미를, 평범한 인생에 행복을 채울 수 있을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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