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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감의 기술 Mar 04. 2022

혼자 하는 일은 기억하지만 같이 하는 일은 추억이 된다

갈등이 없다면 성장도 없습니다.

 평소 스타일이 전혀 다른 친구 셋이서 여행길에 올랐습니다. 여행을 가면 성격이 딱 나온다고 하죠.

 한 친구는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관광지부터 동네 맛집까지 미리 다 찾아보고 철저하게 계획을 세워 움직이는 성격인 반면 또 다른 친구는 발길이 닿는 대로 즉흥적으로 돌아다니는 걸 좋아합니다. 마지막 친구는 여행 내내 숙소에 머물러 격하게 아무것도 안 하고 싶어 합니다.

 척 봐도 의견 충돌은 피할 수 없고 갈등은 불 보듯 뻔합니다. 


 "여행을 왔으면 하나라도 더 보고 가야지, 안 그래?"라며 꼭두새벽부터 여행 코스를 독려하는 녀석,

 "여행도 인생 같은 거야, 어찌 계획대로 되겠어? 마음 가는 대로 다니는 게 여행의 참맛이지"라며 어디로 튈지 모를 녀석.

 "여기까지 와서도 발발거리며 돌아다니고 싶어? 그냥 푹 쉬자."라며 나무늘보가 되려는 녀석.

 서로 다른 가치관을 가진 이 세 친구는 무사히 여행을 마칠 수 있을까요? 근데 여러분은 이 중 어떤 스타일이십니까?  




 왼쪽으로 덩굴을 감으며 올라가는 칡과 반대로 오른쪽으로 덩굴을 감으며 올라가는 등나무가 서로 얽혀 있습니다. 넝쿨 식물인 칡과 등나무는 둘 다 자르기도 힘들고 뿌리까지 뽑기도 쉽지 않을 만큼 질기다고 합니다. 얽히고설켜 아주 풀기 어려운 모습을 칡과 등나무로 비유해 한자로 칡 갈(葛)과 등나무 등(藤), 갈등이라고 표현합니다. 개인이나 집단 사이에서 서로 간의 의견 충돌이나 마찰에 비유하여 나온 말입니다. 


 부모 자식, 부부나 형제 사이에도 갈등이 있습니다. 특히 고부갈등은 드라마의 단골 소재일 만큼 흔한 갈등입니다.

 몇십 년째 이어온 남북 갈등 그리고 지역갈등은 우리나라의 아픈 역사입니다. 산업화가 된 이후 지금까지 노사갈등, 중소기업과 대기업 사이의 기업 갈등, 윗사람과 아랫사람의 상하 갈등, 이웃 간에는 이웃 갈등이 있습니다. 저출산, 고령화가 되면서 세대갈등은 심각한 사회문제로 부각되고 있으며 빈부갈등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한때 냉전으로 대표된 동서갈등처럼 영토, 역사, 정치 문제로 국가 간의 갈등은 유사 이래로 끊이지 않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지구 상에는 전쟁이 벌어지고 있으니까요.

 혼자서 다양한 선택을 놓고 고민하는 내적 갈등이 있으니 갈등은 인류가 존재하는 한 사라지지 않습니다. 갈등이 없는 곳은 없습니다. 사회를 이루는 기본단위인 가정부터 국가, 세계까지 그리고 내 마음에도 갈등은 늘 도사리고 있습니다. 


 갈등이 지나치면 혐오, 위화감, 증오를 넘어 헐뜯고 싸웁니다. 나라끼리는 테러나 전쟁도 불사할 만큼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합니다. 조직의 존폐를 위협할 수 있어 갈등은 하등의 도움이 안 되는, 개인이나 집단 내에서 반드시 없애야 한다고 인식합니다. 갈등의 소지는 미리 찾아내어 제거해야만 문제가 생기지 않고 조직은 안정된다고 믿습니다. 어떤 경우에도 좋을 리 없다며 갈등은 만악의 근원이라고 치부합니다. 혼자 겪는 내적 갈등도 부정적이라고 생각하니까요.


 하지만 성격과 가치관이 다른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라면 갈등은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내 뱃속에서 태어난 아이와도 갈등이 생기는 마당에 타인과의 갈등이 없을 수 없습니다. 하물며 사회와 국가는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갈등이라는 싹을 싹둑 잘라낼 수 있을까요?  




 갈등이 집단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한 한 연구에서 의외의 결과가 등장했습니다.

 별다른 갈등이 없어 보이는 집단은 조화롭고 평온하고 협동적이기는 하지만 반면에 정적이고 무감동하며 변화를 싫어한다는 결과였습니다. 갈등이 없다는 건 무관심, 창의력 결핍, 우유부단, 업무 불감증의 또 다른 단면일 수도 있다는 의미입니다.

 반면 통제 가능한 수준의 갈등은 관점과 가치관의 차이를 이해하고 서로 다른 구성원에게 새로운 관점을 생각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에 긍정적인 효과를 낼 수 있다고 말합니다.


 부정적으로만 여겼던 갈등이 재조명되고 있습니다. 갈등을 해결하는 과정을 통해 새로운 아이디어가 나오고 집단 소속감을 촉진시키며 혁신적이면서 생동감 있는 조직 문화를 만들 수 있으니까요.

 인류가 이만큼 발전한 이유도 서로 다른 생각을 받아들여 보완하며 문제를 해결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갈등이 없었다면 성과도 발전도 없었다고 말합니다. 물론 갈등으로 인해 파국으로 치닫는 일이 없어야겠지만요. 


 한평생을 서로가 뒤엉키며 살아가는 갈등의 식물, 칡과 등나무.

 하나는 왼쪽으로, 또 하나는 오른쪽으로만 돌려고 서로 엉키지만 알고 보면 이 둘은 혼자서는 서지 못하고 서로를 의지해야 일어설 수 있는 넝쿨식물입니다. 상대를 짓누르기도 하지만 자연은 이 둘에게 각자 제 몫을 다하며 서로 공존하며 살아가도록 아량을 베풉니다. 사람도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는 존재, 그러기에 칡과 등나무가 보여주는 갈등을 보며 같이 살아가는 지혜를 배워봅니다. 


 드러내지 않는다고 사라지지 않는 갈등, 오히려 사려 깊게 다룬다면 갈등은 주위 사람들을 더 가깝게 만들 수 있습니다.

 갈등 상황이 발생했을 때는 나 자신뿐만 아니라 상대방의 만족을 위해 노력하라고 합니다. 때때로 자신을 희생해서라도 부딪히라고 합니다. 개인적인 이익에만 초점 맞추지 말고 다른 사람이 원하는 것을 가질 수 있도록 도우려고 할 때 훨씬 더 많은 걸 얻을 수 있을 테니까요.  




 나와 다른 누군가와 여행한다는 건 그 사람을 알아가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계획을 철저하게 세우고 여행하는 사람도, 마음이 가는 대로 떠나는 사람도, 한 곳에 머무르기를 원하는 사람도 저마다 취향이 다를 뿐, 어느 여행이 옳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혼자 하는 일은 기억하지만 같이 하는 일은 추억이 된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생각해 보지 않았던 방식을 받아들여 함께 살아가면 지금까지 느끼지 못했던 큰 즐거움을 얻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러려면 나 자신보다는 상대방의 만족도 고려해야겠죠? 갈등이 스르르 해결되게 말입니다. 


 대부분의 갈등은 문제 그 자체가 아닌,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에서 비롯된다고 합니다.

 피할 수 없는 갈등은 존재하기 마련, 그 갈등을 상생의 지혜로 풀어낸다면 건설적인 방향으로 나아가는 디딤돌이 됩니다. 비 온 뒤에 땅이 굳는다는 속담처럼 말이죠. 


 갈등을 피하려고 하지 말고 괜찮은 갈등으로 만드는 베짱이 있다면 모든 게 추억으로 남지 않을까요? 혼자 하는 일이든, 같이 하는 일이든 기억보다는 추억이 더 값진 시간일 테니까요.

 혹시 지금 갈등을 겪고 있다면 어떤 추억으로 만들어 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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