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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감의 기술 Jul 15. 2022

남 탓은 상대를 원망하고, 내탓은 자신을 돌아보게 한다

 하루에도 수십 번 넘게 오가던 사무실, 어느 날 딴생각에 빠져 걷다가 테이블 모서리에 다리를 쾅하고 부딪혔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스트레스 만땅이었는데 얼얼한 통증이 짜증을 몰고 옵니다.

 "아이고, 아야" 비명과 함께 아픈 다리를 부여잡고는 괜스레 탓을 합니다.

 "아니, 이걸 꼭 여기 다 둬야 했나? 누구야? 이거 여기에 갖다 놓은 사람이! 그리고 테이블 모서리가 왜 이렇게 뾰족해? 이거 어디서 만든 거야?" 


 "너 때문에 정말 힘들어 죽겠어"

 "정치가 이 모양이니 먹고살기 힘들지"

 "전생에 나라를 팔아먹었나, 왜 이리되는 일이 없어?"

 매 순간 선택을 하는 우리, 하지만 결과가 좋지 않으면 남 탓부터 합니다.


 남들보다 머리가 나쁜 건 부모 탓, 지지고 볶는 가정은 부부 탓, 공부 안 하고 말 안 듣는 건 자식 탓. 

 어디 그뿐인가요?

 먹고살기 팍팍할 때는 나라 탓, 외모가 이 모양 이 꼴인 건 조상을 탓합니다. 되는 일이 하나도 없고 하는 일마다 꼬일 때면 팔자 탓으로 돌리곤 합니다.  




 '내 탓이냐, 남 탓이냐.'

 시험을 망친 아이, 이 상황에서 아이가 마주하는 두 가지 갈림길입니다.

 시험을 망친 이유가 내 탓이라면 깊이 반성을 하고 꼼꼼히 계획을 세워 다음 시험에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만회를 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포기해야 할 게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신나게 게임하고 친구들과 재미있게 노는 시간을 포기하는 건 당연지사, 먹고 자는 시간까지 아껴가며 오로지 책과 씨름을 해야 합니다. 공부할 게 너무 많아 '이걸 해낼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고 '한다고 될까?' 자신감도 떨어집니다. 힘든 길을 들어서는 거니까요.

 반면 시험을 망친 이유를 남 탓을 하면 일단은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머리 나쁜 유전자를 물려준 부모를 탓하고, 수업을 설렁설렁한 선생님을 탓하고 남들처럼 뒷바라지가 부족한 집안을 탓하면 나는 잘못한 게 없습니다. 내가 개선할 여지는 없으니까요.

 사람 마음이 힘들고 어려운 길을 가기보다는 쉽고 편한 길을 가고 싶어 합니다. 남 탓하는 것만큼 쉬운 길은 없습니다만 그럴수록 자기 발전도 없습니다. 게다가 주의해야 합니다. 아이가 자라는 동안 남 탓을 하는 심리도 고스란히 자라니까요. 


 마음에 들지 않는 내 처지를 마주하거나, 절대 겪고 싶지 않은 상황에 빠질 때가 있습니다. 뭐 하나 제대로 되는 일이 없어 마음이 심란합니다. 그럴 때면 괜히 남 탓하고 뒤집어 씌우려고 합니다. 갖가지 변명거리와 구차한 핑계를 만들어 내면서 말이죠. 이런 걸 '책임 전가'라고 합니다.

 다른 사람에게 책임을 돌리는 남 탓, 남 탓을 하며 떠넘기는 행동은 일상에서 흔하게 나타납니다. 대부분의 갈등은 여기서 비롯된다고 합니다. 남을 탓하는 이면에는 스스로 그 책임을 다하지 않으려는 심리가 있습니다. 남 탓을 하는 게 책임지지 않은 편안함이 있으니까요. 


 허구한 날 남 탓을 하는 사람을 보며 공자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현명한 사람은 모든 것을 자신의 내부에서 찾고, 어리석은 사람은 모든 것을 타인들 속에서 찾는다."  




 진부한 표현이지만 남 탓을 하고 환경을 탓한 들 변하는 건 없습니다. 그렇다고 무조건 내 탓으로만 돌리는 자세는 나를 괴롭게 할 뿐입니다. 니 탓, 내 탓을 하느라 소모되는 그 에너지를 내가 원하는 상황으로 변화시키려고 쓸 때 성장은 이루어집니다.

 내 탓으로 받아들인다는 건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냉정함과 보다 나은 방향으로 바꾸려는 용기가 있어야 합니다. 이렇게 책임지는 자세가 자신을 진정하게 성장시키는 길이라고 하죠. 분란만 일으키는 남 탓만 하기보다는 내 탓으로 받아들여 개선할 때 우리는 성장했음을 느낀다는 의미입니다. 


 잘되면 내 탓으로, 잘못되면 남 탓으로 돌리기에 급급한 사람을 보며 <낭만 닥터 김사부>의 김사부가 뼈 있는 일침을 가합니다.

 “니가 시스템을 탓하고 세상 탓하고 그런 세상을 만든 꼰대들을 탓하는 거 다 좋아, 좋은데. 그렇게 남 탓해봐야 세상 바뀌는 거 아무것도 없어. 그래 봤자 그 사람들 니 이름 석자 기억하지 못할걸?

정말 이기고 싶으면, 필요한 사람이 되면 돼. 남 탓 그만하고 니 실력으로 니가 바뀌지 않으면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 알겠냐?”

 그리곤 이 한마디를 덧붙입니다.

 "팔자 탓, 재수 탓하면서 그런다고 누가 동정이나 해줄 것 같아? 그렇게 알아서 포기해 주는 사람은 세상도 별로 관심 없어."  




 부모 탓, 친구 탓, 자식 탓, 조상 탓, 팔자 탓, 재수 탓.

 남 탓을 하며 책임을 회피하려고 하지만 그런다고 이해하고 받아줄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툭하면 탓만 하는 사람들이 대개는 인성은 별로, 능력은 없는 사람으로 악평을 듣기 십상이니까요.  


 장애물은 승자에게는 도전이 되지만, 패자에게는 변명이 된다고 합니다. 구차한 변명을 늘어놓으며 남 탓을 하는 원망이나 비겁함 대신 내 탓을 하며 자신을 냉정하게 돌아보는 의연함은 패자가 아닌 승자의 모습입니다.

 남 탓을 하면 상대를 원망하게 되지만 내 탓으로 받아들이면 자신을 돌아보게 하여 성장할 기회가 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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