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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감의 기술 Dec 03. 2021

빈 수레가 요란하고,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

 남자와 여자가 영화를 함께 봅니다. 평소 영화에 관심이 많다며 아는 척하는 남자는 보는 내내 말이 많습니다.

 "저 장면을 왜 저렇게밖에 못 만들었지?"

 "CG가 좀 엉성하지 않아?"

 "주인공의 연기가 별론데."

 재미있게 영화를 보다 흥이 깨진 여자, 결국 한 마디 합니다.

 "그냥 혼자 생각하면 안 돼?" 


 어둠이 내리고 인적이 드문 시골길을 걷고 있습니다. 어디선가 개 한 마리가 짖기 시작합니다. 그러면 이 집 저 집 할 것 없이 모든 개들이 떼를 지어 짖어댑니다.

 개는 작고 겁이 많을수록 먼저 짖습니다. 가장 먼저 짖은 녀석은 누군가를 위협으로 느끼고 짖었을 텐데 따라 짖는 개들은 왜 짖는지, 누구에게 짖는지 모르고 무작정 짖습니다. 이미 길을 멀찍이 벗어났는데도 짖는 소리는 그치지 않습니다. 허공에 대고 짖는 건지, 저희들끼리 누가 목소리가 큰가 내기를 하는 건지 이유는 알 수 없습니다. 사방이 떠나갈 듯 짖지만 시작은 겁 많은 개 한 마리가 짖었을 뿐입니다.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눈살이 찌푸려질 때가 한두 번이 아닙니다.

 가령 어떤 사람은 그 위치가 그다지 대단한 자리가 아님에도 마치 대단한 자리인 마냥 허풍을 떨고요, 또 어떤 사람은 유명인을 잘 안다면서 마치 자기가 유명인인 것처럼 목에 힘을 주고 다닙니다.

 남의 흉을 보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뒷담화도 하다 보면 재미있고요, 비평을 하는 건 어렵지 않습니다. 잘한 사람이 뭘 빠뜨렸는지, 강하게 보이는 사람이 어떤 약점을 가지고 있는지 찾아내며 지적하는 것도 능수능란합니다. 스스로 자신을 돌아볼 생각은 하지 않으면서 말이죠. 


 ‘빈 수레가 요란하다'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물건이 몇 개밖에 없는 빈 수레가 덜컹덜컹 소리가 요란합니다. 머리에 든 지식이 많지 않아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이 더 아는 체하고 크게 떠든다고 빗댄 말입니다.

 '속이 빈 깡통이 소리만 요란하다',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라는 말과 일맥상통합니다. 속이 빈 깡통을 보고, 소문난 잔치에 기대를 잔뜩 했다가 실망한 적도 더러 있었을 테고요. 일상에서 비슷한 사례를 종종 마주치곤 합니다. 


 군대를 갔다 온 남자라면 빠지지 않는 레퍼토리, "내가 군대에 있을 때는 말이야~"로 시작한 이야기는 죽을 뻔한 고비를 한두 번 넘긴 건 기본, 일당백을 거뜬히 이겨낸 영웅담으로 둔갑합니다.

 아재 뻘인 상사는 "라떼는 말이야," "내가 왕년에는~"을 늘어놓습니다. 위기에 처한 회사를 구해낸 것만 해도 여러 번, 자신이 없었다면 회사도 사라졌을 거라며 대단한 존재라고 허세를 떱니다.

 '자신이 누구다', '나는 어떤 사람이다'. 굳이 알고 싶지 않은데 자기 자랑하기 바쁩니다. 별 볼일 없어 보이는 줄도 모른 채 말을 하면 할수록 점점 부풀려지고 나중에는 큰소리 뻥뻥 칩니다. 자신이 없으면 큰일 날 거라는 호언장담을 하면서요.


 한두 번도 아니고 틈만 나는 되풀이되는 레퍼토리, 허풍이 잔뜩 들어간 말이 지겹고 시끄럽게 느껴집니다. 그러다 그러다 호언장담했던 그때가 오면 큰소리는 고사하고 딴소리나 핑계만 늘어놓기 일쑤입니다.  




 "침묵을 지키면 바보도 현자로 보이고, 입을 다물면 우매한 사람도 식견 있어 보인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말이란 낄 때 끼고 빠질 때 빠질 줄 알아야 합니다.

 살다 보면 이상한 게 참 많습니다. 모르면 모른다고 하면 그만입니다. 가만히만 있어도 내가 모른다는 걸 알지 못할 거고요. 흔히 입 다물고 있으면 중간은 간다고 했지 않습니까? 하지만 조금 안다고 말을 하려고 애쓰고 다른 사람을 말을 가로막으면서까지 더 많은 말을 쏟아내려고 안달을 합니다. 그래 봤자 말 몇 마디에 무지가 드러날 텐데 말이죠. 


 사람 심리라는 게 지식이 좀 늘어나거나 할 줄 아는 능력이 생기거나 작은 일이라도 해냈을 때는 인정받고 싶고, 자신을 뽐내고 싶어 하기 마련입니다. 자신을 어필하고 드러내야 존재감을 알아주는 세상이라고 합니다. 물론 말이 많다고 무조건 나쁘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라고 했습니다. 벼가 익을수록 고개를 숙이는 것처럼 지식이 많고 인격이 높은 사람일수록 자신을 드러내기보다는 고개를 숙이며 겸손해진다는 속담입니다. 자신을 말로서 지나치게 포장하다 보면 오히려 치부를 드러내는 꼴이 될 수도 있으니 신중하게 행동하라는 의미도 담겨 있습니다. 


 현명한 사람이 되려거든 사리에 맞게 묻고, 조심스레 듣고, 침착하게 대답하라고 합니다. 더 할 말이 없으면 차라리 침묵하는 게 낫다고 합니다. 누구나 따를만한 훌륭한 인품일수록 자신을 과시하면서 교만을 부리기보다는 오히려 더욱 겸손하고 먼저 배려하는 모습으로 믿음과 감동을 주니까요. 

 맹렬하게 짖는 개는 물지 않는다고 하죠. 덩치가 크고 무서운 개는 짖지 않고 무심합니다. 겁에 질린 작은 개가 요란하게 짖어댑니다. 겁먹은 걸 감추려고, 주인에게 얼른 나 좀 살려달라고 더 크게 짖는 거니까요.  




 아는 게 나왔다 싶으면 우리는 평가를 참 많이 합니다. 문제는 좋은 말이 몇 개 없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진짜로 뭘 좀 아는 사람들은 재미있는 거, 맛있는 거, 신나는 거, 신기하고 새로운 걸 잘 즐기고 있는 사람을 위해서 해박하지 않은 척, 예민하지 않은 척하며 나서지 않습니다.

 이런 배려를 잘하기만 해도 괜찮은 사람으로 인정받을 수 있을 텐데 말이죠. 


 빈 수레가 요란하고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입니다.

 정말 속이 꽉 찬 사람은 결코 남 앞에서 자랑하거나 허세를 부리지 않습니다. 그런 사람이야말로 굳이 자신을 드러내지 않아도 어느 자리에서나 빛이 나는 법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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