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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감의 기술 Feb 18. 2022

치사하게 사는 것만큼 치사한 것도 없습니다.

 순리대로 살고 싶어 하는 한 남자가 자조 섞인 목소리로 이런 질문을 던집니다.

 "인생, 왜 이리 치사할까?"

 그러자 그 남자와 한동네에서 자란, 인생이 기구한 여자가 이렇게 대답합니다.

 "사랑하지 않으니까 치사한 거지. 치사한 새끼들 천지야"

 안쓰러운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긴 드라마 <나의 아저씨>의 한 장면입니다.  




 식당이 제 집인 마냥 어깨 힘주고 으스대며 떠드는 사람들,

 조용한 커피숍에 여러 명이 몰려와 몇 잔의 커피로 온종일 민폐 끼치는 사람들,

 고객상담 센터에 전화를 걸어 다짜고짜 욕설부터 내뱉는 사람들,

 지위를 이용해서 이른바 갑질을 하는 사람들.

 누군가를 무시하거나 속이면서 자신의 이득만 찾는 사람들입니다. 이런다고 인정받지도, 그런다고 품격이 올라가지도 않는데 부끄러움은커녕 당연한 권리처럼 행사합니다.

 이런 모습을 볼 때면 드는 생각은

 '세상에 치사한 인간이 참 많구나' 


 힘들어하길래 시간 내어 도와줬는데 내가 힘든 상황에 빠지면 얼렁뚱땅 핑계를 대며 나 몰라라 하는 녀석을 볼 때나, 이번엔 크게 한 턱 내겠다고 큰 소리 뻥뻥 친 녀석이 쏜 음식이 달랑 짜장면 한 그릇일 때 치사한 생각이 듭니다.

 아끼는 물건을 빌려 가 놓고 감감무소식인 녀석에게 돌려 달라고 하니 '친구끼리 쩨쩨하게 왜 이러느냐?'라며 오히려 내가 치사한 인간이 되곤 합니다.

 마지막 남은 라면 면발을 내가 먹었다고 '아빠, 치사하게 혼자 다 먹었느냐?'라며 씩씩거리는 아들을 보며 나도 그런 인간인가 싶습니다. 


 세계가 부러워하는 유명 관광지를 가진 나라들, 도심 거리에 있는 화장실을 사용하려니 이용료를 내라고 합니다. 급한 상황인지라 화장실을 가지 않을 수 없어 돈을 내지만 치사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습니다. 각국에서 모여든 관광객들로 엄청난 외화를 벌어들이면서 말이죠.

 비가 올 때는 시원하게 내렸으면 좋겠습니다. 눈이 내릴 때면 펑펑 왔으면 좋겠고요. 올 거면 시원하게 펑펑 오고 말 거면 말고 그래야지, 눈이 오는 건지 비가 내리는 건지 이도 저도 아닌 게 치사합니다. 그런 날은 하늘도 쩨쩨하게 느껴지곤 합니다. 




 준다고 해놓고선 주지 않거나, 줬다가 뺏거나, 어제 한 말이 오늘 다르고, 상황이 바뀌었다고 안면을 싹 바꾸는 사람을 보면 치사하기 그지없습니다. 

 '행동이나 말 따위가 쩨쩨하고 남부끄럽다'라는 뜻을 가진 단어 치사하다. '치사하게 살지 말라'라고 훈계를 하고 치사하게 살지 않겠다고 다짐을 합니다만 치사하게 살지 않는다는 건 어떻게 사는 것일까요? 이 물음에 대답은 어렵지 않습니다. 


 힘들다고 일부러 내색하거나 엄살 피우지 않기,

 사람들 마음을 다치지 않게 배려하기,

 하늘이 두 쪽 나는 한이 있어도 친구와의 약속은 꼭 지키기,

 여유가 있을 때는 아낌없이 베풀기, 약자에게 얻어먹지 않기, 얻어먹고 난 다음에 입 싹 닦지 않기.

 치사하게 사는 것만큼 치사한 것도 없습니다.  


 치사한 마음을 먹거나 치사한 말을 내뱉고 치사한 행동을 하는 사람을 보면서 <나의 아저씨>의 대사를 다시 떠올려 봅니다.

 "사랑하지 않으니까 치사한 거지."

 눈살 찌푸리게 하는 민폐, 분노를 유발하는 갑질, 입에 담지 못할 욕설, 남의 물건을 제 것처럼 마구 쓰는 뻔뻔함도 사랑까지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타인을 존중하는 마음이 있다면 할 수 없는 말과 행동입니다.

 타인을 배려하는 마음을 가질수록 치사할 일도 줄어듭니다. 그런 마음가짐이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을 쩨쩨하고 부끄럽지 않게 만듭니다. 




 '인간은 왜 존재할까?'라는 물음부터 '삶의 의미는 무엇인가?' 하는 의문까지 아직도 알아내지 못한 화두입니다. 이런 질문에 물리학자들은 대답은 이렇습니다.

 거창하게 우주의 법칙이나 목적이 있어서가 아니라 어쩌다 보니 이 시대에 이 공간에 우연히 존재하게 되었을 뿐이라고요. 삶의 의미도, 가치도 그렇습니다. 애당초 그런 건 없습니다. 단지 인간이 의미를 부여한 거라고 그럽니다. 어쩌다 보니 지금 여기에서 살아가는 거라는 뜻입니다. 


 우연히 빈손으로 와서 허구한 날 빈칸을 메우려고 허우적거리다가 결국엔 빈 몸으로 가는 게 삶입니다. 그것도 딱 한 번뿐, 게다가 언제 빈 몸이 될지 아무도 모르는 인생. 그러니 쩨쩨하게 굴지 말고 부끄럽지 않게 살아야겠죠. 치사하게 사는 것만큼 치사한 것도 없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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