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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감의 기술 Dec 27. 2021

사랑은 바다, 감동은 물결. '나 감동 먹었어!'

 우리가 생존하려면 매일 해야 하는 게 있습니다. 숨을 쉬고, 잠을 자고 그리고 먹어야 합니다. 

 살기 위해 먹습니다. 때론 먹기 위해 살기도 하고요.

 너무나도 슬퍼서 숨쉬기조차 힘들 때가 있습니다. 살고 싶지 않다는 생각까지 듭니다. 그런데 그 순간 배에선 꼬르륵꼬르륵 눈치 없이 울어댑니다. 씹는 것도 귀찮고 손가락 하나 까닥할 힘이 없는데도 숟가락을 들고 입으로 넣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도 배가 고파 먹고 있는 나 자신이 이해가 되지 않지만 하는 수 없습니다. 살기 위해 먹어야 한다는 인체의 신비입니다. 


 입으로 아니더라도 살아가다 보면 먹는 게 참 많습니다.

 낯선 사람을 보고, 낯선 환경에 서면 겁을 먹습니다. 혹시나 모를 위험을 조심하는 거겠죠.

 할 일이 많거나 일이 힘에 부칠 때면 우리는 애를 먹습니다. 얼른 끝내고 싶지만 애만 먹다가 애를 태우기도 합니다.

 공부를 해도 성적이 나빠서, 일을 처리했는데 실적이 떨어지면 욕을 먹습니다. 하도 욕을 많이 먹어 배가 터질 지경이지만 다이어트에는 그리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어디 먹는 게 그뿐인가요?

 열심히 외웠는데 까먹는 건 허다하고요. 중요한 약속을 잊어 먹어 낭패를 보기도 합니다.

 아이를 키우는 건지 돈 먹는 하마를 키우는 건지 헷갈릴 때도 있습니다.

 이번만큼은 간절히 원했건만 진급에서 또 떨어졌습니다. 흔히들 물먹었다고 하죠.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고 마음의 상처를 받으면 눈물도 먹습니다. 눈물은 먹다 못해 삼켜버립니다. 


 잘 살기 위해서는 밥을 잘 먹어야 합니다. 좋은 음식도 먹어줘야 튼튼하고 건강하게 살아갑니다. 아울러 잘 살기 위해 먹어야 하는 것들이 또 있습니다.

 애를 먹고 욕을 먹지만 그래도 마음을 단단히 먹습니다. '다시 해보자'하는 용기로 힘을 내면서요.

계획이 뜻대로 되지 않고, 장애물이 나타나 내 앞길을 가로막을 때는 '성공하기 전에는 그것이 항상 불가능하게 보이기 마련이다'라는 명언을 떠올리며 힘들어도 버텨냅니다. 이를 악물고 꿈을 먹으면서 말이죠. 


 1974년 7월 남아프리카에서 벌어진 권투 경기에서 상대방을 이겨 챔피언이 된 우리나라 선수가 있었습니다. 이역만리에서 벌어진 이 경기를 생중계할 만큼 인기가 엄청 많았습니다. 승리의 감격에 겨운 선수는 경기 직후 전화로 어머니에게 이렇게 외쳤습니다.

 "엄마, 나 챔피언 먹었어!"라고요.

 챔피언 먹었다는 그 말은 우리나라를 열광의 도가니로 빠뜨렸고, 아직도 회자되는 유명한 장면입니다. 그러고 보면 챔피언도 먹는 거였습니다. 


 챔피언을 먹은 지도 벌써 반세기가 다 되어갈 만큼 세월이 많이도 흘렀습니다. 세월의 흐름 따라 우리는 나이를 먹었습니다.

 그동안 찬밥 더운밥 가리지 않고 많이도 먹었습니다. 그렇게 먹는 동안 인생의 단맛 쓴맛은 물론 짠맛, 매운맛도 맛보았습니다. 나이 안 먹으려고 떡국을 마다하고 버텨봤지만 시간은 에누리 없이 나이를 먹게 했습니다. 나이를 먹고 어른이 되었지만 아직도 모르는 게 태반인 인생은 정말 어렵기만 합니다. 나이를 먹을수록 나이를 먹는다는 게 점점 두려워질 때도 있습니다. 


 요즘 먹는 게 많이 없다 싶었는데도 다이어트가 안 되는 이유를 오늘에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평소에 이렇게 많이 먹고 있었으니 말입니다.  




 나이를 먹는 건 자연의 이치, 어쩔 수 없겠지만 이왕이면 나이와 함께 많이 먹고 싶은 게 있습니다.

 우정이나 모성애 같은 걸 보거나 들으면 드는 감정 같은 겁니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스스로를 희생하는 사람들이 끊임없이 등장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깊이 느껴 마음이 움직임'이라고 하는 '감동'입니다.

 드라마나 영화에는 곳곳에 이런 감동적인 요소들이 있어 감동을 유도합니다. 이게 너무 억지스러우면 억지 감동이 될 수 있습니다. 감동을 주기 위해서는 탄탄한 논리가 있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일상에서 감동을 먹으면 살맛이 납니다. 억지로 쥐어짜지 않은 자연스러운 감동은 살아갈 힘이 됩니다.

기쁨과 슬픔이 합쳐진 감정인 감동은 슬픈 영화를 보면 눈물 흘리는 것처럼 인간적이니까요.

 아이의 고사리 같은 손으로 쓴 편지, 애정이 담긴 따뜻한 말 한마디, 뜻밖의 지인이 준 선물, 가족의 애틋한 사랑, 연말연시 이웃의 훈훈한 인정처럼 일상에서 감동을 먹을 일은 그리 거창하지 않아도 무궁무진합니다. 


 "아이고, 할 일 없이 나이만 먹고 뭐 제대로 해놓은 일도 없고. 이젠 힘도 없고 하다못해 먹고 싶은 것도 없구나."

 이렇게 혼자 신세한탄을 하는 아빠를 보던 딸이 목소리를 올려 한마디 합니다.

 "없긴 왜 없어? 아빠가 엄마와 함께 평생에 걸쳐 완성한 작품이 많잖아요. 아빠 작품은 엄마와 함께 만든 우리들. 그리고 없으면 나는 뭔데?"

 딸의 핀잔 섞인 위로에 아빠는 감동을 먹습니다. 사람이 사람으로 완성되는 일, 그보다 더한 감동은 없을 거니까요. 


 '나 감동 먹었어!'. "넌 감동이었어!'

 예전에는 이런 말을 자주 쓰기도 했고 주변에서 꽤 들리기도 했는데 언제부터인가 뜸해지지 않았나 싶습니다. 요즘 사는 게 힘들고 팍팍해서 그런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사랑이 바다라면 감동은 물결이라고 하는데 바다마저 메말라버린 걸까요?  



 먹어도 살찔 걱정은 전혀 필요 없습니다. 먹어도 먹어도 더 먹고 싶고요. 돌아서면 또 먹고 싶습니다.

같이 먹어도 아깝지 않고, 함께 나누면 배가 되어 돌아옵니다. 많으면 많을수록, 나누면 나눌수록 세상은 아름다워집니다.

 눈물은 찔끔찔끔, 심장은 두근두근, 마음이 심쿵 심쿵 해지는 그런 감동의 물결, 그 느낌 아시죠? 모두가 감동을 많이 먹는 일상이면 더할 나위 없을 텐데 말이죠. 


 겁을 먹고 욕을 먹고 돈을 먹고 물을 먹고 살아왔습니다.

 약속을 잊어먹고 기억은 까먹었지만 꿈을 먹고 또 마음을 단단히 먹으며 버텨왔습니다.

 고생 끝에 낙이 온다는 말처럼 숱한 세월의 흔적들이 고스란히 감동의 물결로 되돌아왔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져봅니다. 오늘은 어떤 감동을 주고받아 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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