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맞이 단상
단순히 인간이 만들어 놓은 숫자놀음이라고 생각했는데, 자연스레 2월이 가고 3월이 왔을 뿐이데 마음가짐이 달라집니다.
지구가 돌고 돌아 억만 번을 돌아도 겨울이 오면 그다음은 봄, 해마다 맞는 봄이지만 봄이라는 한 글자에 기분도 설렙니다.
차가운 바람이 불어도 그 바람이 드세지 않은 봄바람이라 좋고, 세찬 비가 내려도 그 비 역시 차갑지 않은 봄비라 반갑기만 합니다. 기온이 뚝 떨어져 반짝 추워져도 그래 봤자 꽃샘추위로 쿨하게 받아들입니다.
겨우내 얼어붙었던 황량한 대지에는 여기저기서 톡, 톡, 톡 콩알만 한 연두색 새싹들이 솟아오르기 시작합니다. 청개구리가 튀어나온다는 경칩이 지나자 양지바른 곳에서는 새싹들도 폴짝 뛰어오를 채비를 마쳤습니다. 이제 곧 이파리를 쭉 펴고 키도 무럭무럭 자라 대지를 푸르름으로 수놓을 일만 남았습니다.
봄은 가을과 기온이 비슷하고 활동하기 좋은 계절입니다. 가을은 곧이어 추운 겨울이 오기에 아쉽고 쓸쓸한 분위기인 반면 봄은 따스한 햇살에 힘입어 만물이 소생하는 시기라 즐겁고 행복한 이미지입니다. '봄, 봄, 봄 봄이 왔어요~' 봄노래를 부르며 기다리던 봄날을 맞이하는 신바람처럼 말이죠.
밝고 긍정적인 느낌의 봄, 그 느낌 그대로 봄은 젊음, 청춘(靑春)을 뜻합니다. '내 인생의 청춘은 어디 갔을까? 청춘을 돌려다오'라고 부르짖는 그 청춘의 글자 춘은 봄춘입니다.
흔히 '겨울이 가고 봄날이 왔다'라고 말합니다. 기나긴 고생이 끝나고 좋은 날이 시작할 때 쓰는 비유입니다. 역사적으로 오랜 고난을 이겨내고 맞이한 좋은 시절을 빗댈 때 '봄'이라고 표현합니다. 억압받은 통치하에 자유를 찾아 싸웠던 프라하의 봄, 중동 국가에선 아랍의 봄이라고 부릅니다. 우리나라 역사에도 민주화 운동하면 서울의 봄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밝음이 있으면 어둠이 있기 마련입니다. 밝고 긍정적인 이미지의 봄이지만 이면에는 계절성 우울증을 겪는 환자가 많아지는 시기입니다. 여기저기 아름다운 꽃들이 활짝 피지만 그만큼 꽃가루가 많이 날려 꽃가루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에게는 밖으로 나가기가 고역인 계절이기도 합니다.
낮과 밤의 기온 차이가 심하고 4계절 중 바람이 가장 센 계절이 봄입니다. 건조해서 먼지와 불청객 황사가 마구 날리고, 큰 일교차와 변덕스러운 날씨 탓에 감기도 유행합니다. 돌아서면 졸고 있는 춘곤증도 이름처럼 봄철에 흔히 생기는 현상입니다. 일조량이 가장 많아 자외선을 조심해야 하는 계절입니다.
'자, 이제부터 봄이다.'라며 좋아하지만 그럼 언제부터, 며칠부터 봄의 시작일까요?
하루의 최저 기온과 최고 기온 이 둘의 평균 기온을 모두 합한 값이 15도 이하인 마지막 날이 봄이 시작하는 날이라고 합니다. 복잡한 내용이라 어렵지만 대략 우리나라의 봄은 3월 14일쯤이라고 합니다. 지금 무렵이 봄의 시작입니다만 우리는 이미 봄, 미리 봄, 봄날을 누리고 있습니다.
오늘 날씨는 봄이라고 확신하듯 낮 기온이 10도 이상 올라갑니다.
아침저녁으로 드센 바람이 쌀쌀하게 불어도, 3월을 건너뛰고 4월의 한낮처럼 기온이 치솟아도 봄입니다. 서쪽 지방에 비가 내리고 동쪽 지방에는 눈이 내려도, 지리산에서 눈과 비가 섞여 내리고 있어도 봄은 봄입니다. 누가 뭐래도 3월은 봄이니까요.
우리는 경험적으로 봄맞이를 합니다. 집에서 장롱 열고 겨울 외투가 거슬리기 시작하면 봄이고요, 두꺼운 이불 빨래하는 다음날부터 봄입니다.
봄은 기다리는 사람에게 기다리던 기회가 오는 계절, 그러니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은 사람은 봄이 되어도 무엇이 주어지고 무엇이 돌아오는지 알 수 없습니다.
자연이 우리에게 따사로운 봄꽃을 보내기 전에 매서운 바람을 앞세워 꽃샘추위를 주는 이유는 인생에는 쉽게 얻어지는 것은 없고 고생 끝에 낙이 온다는 사실을 일깨우기 위함입니다.
사실 마음 놓는 날보다는 마음 졸이는 날이 많은 게 세상살이입니다. 마음이 부푼 날보다는 바람 빠진 풍선 같은 날이 더 많기도 하지만 오늘은 누가 뭐래도 봄의 어느 날, 꽃은 피어 환하고 새싹은 아장아장 자랍니다. 보기만 해도 기분이 무척 좋아지는 오늘, 움츠렸던 어깨를 쫙 펴고 우리는 인생의 봄날을 맞이합니다. 어느새 찾아온 봄날, 내 인생의 봄날은 어디쯤 왔는지 돌아보는 시간도 가져 봅니다.
봄의 시작 3월, 평온한 삶이 어떤 것인가를 봄으로부터 배웁니다.
그냥 아무 일 없이 고요하다고 평온함이 아니겠죠. 마음을 너그럽게 보다 현실적인 기대로 지금 상황을 더 잘 이해하면 평온은 멀리 있지 않습니다.
고단한 인생길에 오늘만큼은 사뿐히 즈려 밟고 가라고 사방 천지에 꽃길이 열리고 있습니다. 펼쳐진 꽃길을 따라 인생의 봄날도 잘 누려보고 싶습니다. 우리 생에 어김없이 찾아온 화사한 봄날, 그냥 지나치지는 말아야겠죠.
겨울이 아무리 혹독해도 봄에는 반드시 꽃이 피어납니다. 변하지 않는 자연의 이치처럼 내 인생 봄날에도 꽃이 활짝 피어나길 희망해 봅니다.
그나저나 올해 봄은 왔는데 봄비는 왜 소식이 없는 걸까요? 지금 봄비는 많이 내려도 충분히 좋을 텐데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