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월급날이었다며 어깨를 들썩이며 좋아하던 후배가 있었습니다. 아주 잠시 동안 말이죠. 이것저것 이체하고 여기저기서 알아서 빼가고 남은 잔액은 몇 만 원뿐이라며 허탈감에 빠졌다고 합니다. '앞으로 한 달을 어찌 살아갈까' 하는 걱정으로 어깨는 벌써부터 처져 있습니다. 월급날만 되면 어김없이 교차하는 희비, 월급쟁이의 비애라면 비애이겠죠.
텅 빈 통장을 보며 꿀꿀한데 웬일로 부장님이 친히 커피를 건네주셨다고 합니다. 황송해야 하는데 불안함이 들었답니다. 또 뭔 잘못을 했는가 싶고, 무슨 일을 주시려나 싶어서요. 그래서 어떻게 했냐고 물으니까 어떡하긴, 공손하게 두 손으로 커피를 받으면서 활짝 웃었다고 그럽니다.
이렇듯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미소가 아닌 먹고살기 위해 억지로 짓는 미소, 그런 웃음을 가리켜 '자본주의 미소'라고 부릅니다.
기분 좋게 자연스럽게 웃어야 건강해진다고 하는데 살다 보면 웃는 게 웃는 게 아닌, 자본주의 미소를 지어야 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을 테죠.
진상 같은 고객이 다짜고짜 찾아와 얼토당토않은 요구를 할 때도 '고객님', 심한 욕설이 담긴 고함을 질러도 '고객님'. 말끝마다 고객님, 고객님을 부르면서 미소를 잃지 말아야 하고요,
눈꼴사나운 상사의 터무니없는 요구에도 '이건 제 일이 아닙니다'라는 담대함은 늘 입안에서만 맴돕니다. 할 수 있는 건 입꼬리를 귀에 걸고 입술을 꾹 다물고 있을 뿐입니다. 안 괜찮지만 마치 괜찮다는 표정처럼 보이게 말입니다.
즐거운 나의 집에서도 상황은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평소 무뚝뚝한 아이의 해맑은 미소를 보려면 용돈만큼 효과 만점인 방법도 없고요, 연로하신 부모님께 마음을 담은 선물도 좋지만 그보다는 현금이 부모님을 더 크게 활짝 웃게 만들기도 합니다. 효과는 그리 오래가지 않는 게 문제이긴 하지만요.
걱정하지 말고 행복하게 살자라고 다짐을 합니다만 진상 고객이 언제 들이닥칠지, 상사는 언제 어디서 나를 부를지, 언제쯤이면 월급 통장을 신경 쓰지 않아도 될지 걱정은 끊이질 않습니다.
처진 어깨, 무거운 발걸음으로 퇴근하는 길, 어디선가 귀에 익은 경쾌한 팝송이 들려옵니다. 제목이 '걱정하지 마, 기쁘게 살아야지'라는 뜻을 가진 'Don't worry, Be happy'였습니다.
근데 '돈 워리'라고 부르는 가사가 기분에 따라 다르게 들리기도 합니다. 걱정하지 말라고 돈트 워리인지, 아님 돈 걱정하라고 돈 워리인지 헷갈립니다. 걱정하지 말고 다 같이 행복하자는 노래인데 왜 여기에 돈이 들어갈까요? 물론 듣기 나름, 자기 상황에 따라 들리는 거겠죠.
이 일을 때려치우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이 들어도 꾹 참아야 하는 현실도, '아니면 아니다'라고 말 못 하는 이유도 먹고사는 문제가 걸려 있기 때문입니다. 미소도 자본주의 사회에 물들어 가고, 결혼도 돈과 자본으로 결부되어 조건이 우선시 되는 시대에 살고 있으니까요.
일을 그만두고 싶을 때, 일을 그만둘 수 있을 정도의 돈을 갖고 있다면 돈으로부터 독립이 가능하다고 그러는데 언제쯤이면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요? '돈'하면 걱정부터 앞서는 게 현실, 그만큼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가는 이상 돈 문제로부터 초월하기란 쉽지 않다는 의미이겠죠.
돈, 명예, 건강, 관계에서 비롯되는 수많은 걱정을 사서도 하는 우리, 이유를 따져보면 먼 옛날 옛적 사냥하고 채집하던 시절부터 그랬다고 합니다. 생존을 위해서는 걱정은 필수, 유비무환이라고 하듯이 항상 조심하고 경계해야 살아남을 수 있었으니까요. 그러니 '걱정도 팔자'라는 말처럼 우리는 걱정 DNA를 가지고 태어났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지금의 만족보다 위험을 감지하고 불만은 토로하느라 필요 이상 에너지를 쏟게 되면 행복을 느끼는 감정이 둔해집니다. 일어나지도 않을 일에 근심 걱정만 하다 에너지를 다 소모해서 한 일도 없이 지쳐버린 그런 경험들이 다들 있지 않습니까?
"잘 사는 게 뭘까? 어떻게 사는 게 잘 사는 걸까?"
이런 질문에 누군가 이렇게 대답합니다.
"근근이 사는 게 잘 사는 거야."라고요.
차고 넘쳐 아쉬울 것도 부족한 것도 없으면 소중함도 간절함도 모릅니다. 떵떵거리면서 있는 대로 펑펑 쓰면 세상이 우스워 보이고 자기가 엄청 잘난 줄 안다는 게 그 이유였습니다. 한때 잘 나가던 사람이 힘든 일이 닥치면 과거에 매몰되어 헤어 나오지 못하는 모습처럼 말입니다.
근근이 산다는 건 사소한 것 하나하나가 소중합니다. 흔히들 근근이 먹고산다 할 때에 근근이는 '겨우겨우'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물론 어렵게 간신히 턱걸이하듯 살아라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뭐든지 허투루 대하지 않고, 흘러 버리지 않고 아끼면서 귀하게, 겸손하게, 감사하며 살자는 의미입니다.
소중한 줄 알아야 감사함도 아는 거니까요. 꼭 갖고 싶었던 물건을 아르바이트를 해서 손에 쥐었을 때의 기쁨은 마치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 듭니다. 그 순간이 감사의 순간이자 행복의 시간입니다.
반세기 전만 해도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가장 못 살았던 나라였습니다. 모두가 굶주렸던 그때를 극복했고 숱하게 찾아왔던 위기 때마다 휘청거리기도 했지만 슬기롭게 이겨내며 오늘날 세계가 부러워할 만큼 잘 사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그러고 보면 살아가는 데 속수무책은 없습니다. 얻는 게 있으면 잃기 마련, 바꿔 말하면 잃는 게 있으면 한두 개는 얻는 법이니까요.
걱정을 타고났다고 하지만 우리에게는 본래 행복을 느낄 수 있는 힘도 있다고 합니다. 그 힘은 웃고 좋아하고 설레고 기쁘고 환호하는 감정입니다. 이런 감정은 저절로 생기는 게 아니라 되도록 많이 느끼고 표현해야만 튼튼하게 길러집니다. 안 그러면 행복을 느끼는 힘이 점점 감퇴하게 된다고 하니까 지금 행복에 충실해야겠죠.
아는 지인 중에 강아지 두 마리를 키우는 사람이 있습니다. 하도 쓰잘데기 없는 걱정이 많아서 걱정 좀 안 하고 싶다고, 그런 걱정 할 시간에 행복하게 살고 싶어서 강아지 이름을 이렇게 지었다고 합니다.
한 마리는 돈 워리, 다른 한 마리는 비 해피.
맨날 '돈 워리, 가지 마', '비 해피, 꼼짝 말고 거기 있어' 이러고 산다네요. 그럴 때마다 걱정거리는 날아가고 행복한 기분이 든다며 환한 웃음을 지어 보입니다. 자본주의 미소에서 벗어난 순간일 테죠.
오늘도 지인은 주야장천 외치고 있을 거예요. 이렇게 말이죠.
"Don't worry, Be happy!"
크게 힘차게 따라 외쳐 볼까요?
P.S
오랜만에 글을 올렸습니다.
오른 손가락 두 군데 골절상을 입은 지 3주 정도 지났습니다. 아직은 손가락 깁스 중이라 여전히 왼손으로 생활을 하고 오른손은 거들뿐입니다. 2주 정도는 깁스를 더 하고 있으라고 합니다. 2주 뒤에 다시 뵙게 된다면 댓글창도 활짝 열어 놓겠습니다.
걱정해 주신 여러 작가님께 감사하다는 말씀드리고 싶었습니다. 아울러 다음 주가 설날인 만큼 설날 인사도 드리고 싶었고요.
염려해 주시고 격려해 주신 작가님들께 다시 한번 감사드리고요, 올 한 해를 맞이하는 모든 분들께 새해 인사드립니다.
Don't worry, Be happy!!
새해 복 많이 많이 받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