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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감의 기술 Dec 29. 2020

위로 공감, 진정한 위로란?

친구가 운동하다 다리뼈가 부러졌습니다. 깁스를 한 채 목발을 짚고 힘겨운 발걸음을 합니다.

옆에 나란히 걷던 한 친구가

"아프겠다. 조심 좀 하지." 라며 대수롭지 않게 한 마디 툭 내뱉습니다.

가만히 듣고 있던 또 다른 친구는 아무 말없이 가방을 들어줍니다.

"많이 아팠겠다. 한동안 움직이는 것도 힘들 텐데.." 녀석의 말이 가슴을 울립니다.

비슷비슷한 말인데 진심이 느껴지면 울컥하게 되죠.

이 녀석도 예전에 사고를 당해 골절된 적이 있었다며 안타까워합니다. 뼈가 부서진 고통이 장난 아니라는 사실, 이후 나을 때까지 불편하게 생활했던 때가 절로 생각난다고 합니다.  


아이가 고열에 시달리고 토하며 밤새 끙끙 앓았습니다.

아이 엄마는 어쩔 줄 몰라합니다. 조그마한 아이가 아파하는 걸 보며 마음이 찢어집니다. 옆에서 잠 한 숨 못 자고 아이가 신음할 때마다 엄마도 앓는 소리를 함께 내며 긴긴밤을 지새웠습니다.

아이 엄마의 사정을 들은 친구 둘이서 아이 엄마를 위로합니다.

"힘들었겠다. 아이는 좀 괜찮니?"

시집 안 간 친구의 말에 아이 엄마는 고개만 끄덕입니다.

아이를 키우는 친구는 살며시 손을 잡아줍니다. 아이가 아픈 것보다 엄마 마음이 더 아프다면서

"차라리 내가 아픈 게 낫지." 이 말 한마디에 아이 엄마는 눈물이 핑 돕니다.

아이가 아프다는 사실이 힘들 거라는 건 머리로는 알지만 직접 경험해 본 것과 해보지 않은 것은 하늘과 땅 차이입니다.


뜨거운 사랑을 합니다.

하루 아니 잠시라도 떨어지기 싫고 언제나 곁에 늘 함께 있고 싶습니다. 헤어지자마자 또 보고 싶고, 틈만 나면 뭘 하는지, 내 생각은 하는지, 혹시 힘들어하는 건 없는지 관심사는 오직 연인 뿐입니다. 그런 사랑이 깨졌습니다. 이유야 어쨌든 사랑이 떠나갔습니다.

영원불변할 거라 믿은 사랑이 산산이 부서지면 남는 건 상처뿐입니다. 사랑을 속삭이던 유행가 가사가 나의 러브스토리였는데 이별 뒤의 가사 역시 한 소절 한 소절이 가슴을 후벼 팝니다. 좋았을 때는 세상이 온통 사랑으로 채워진 것 같았는데 홀로 남은 세상은 잿빛 어둠뿐인 듯합니다.

아픈 사랑만큼이나 내 마음도 갈기갈기 찢어지고요, 헤어진 연인들의 사연이 구구절절 가슴에 와 닿습니다.


시험에 떨어졌습니다.

"그깟 시험이 뭐라고, 준비 열심히 해서 다음에 붙으면 되지."라는 위로를 듣지만 귀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낙심한 마음을 달랠 시간이 필요합니다.

취업이 뜻대로 되지 않습니다.

여러 군데 원서를 냈지만 불러 주는 곳이 없습니다. 취업문을 들아가려고 지금까지 달려왔는데 취직이 안 되니, 지원할 때마다 고배를 마시니 젊은 나이에 세상이 무너지는 것만 같습니다.

"걱정마라. 다 자기 밥그릇은 있다."라고 위로를 받지만 밥그릇을 찾을 때까지는 위로가 되지 않습니다.

시험이나 취업에 합격했다고 희희낙락하는 녀석은 말할 필요 없고 고개 숙인 나 앞에서 표정 관리하는 녀석도 피하게 됩니다. 어쭙잖은 위로 같지 않은 위로는 듣고 싶지 않습니다.

시험에 낙방해 본 선배, 취업 실패를 먼저 겪은 친구와 아픈 경험을 나눌 때 조금이나마 쓰라린 마음이 진정되곤 합니다.  


경기가 어려운 데다가 코로나 바이러스의 기승으로 손님이 뚝 끊긴 자영업자, 수출 길이 막히고 소비가 줄어 공장 가동이 힘들어진 사업자들이 사업 위기에 몰립니다. 이윤은커녕 직원들에게 지급할 월급이 모자라 사방팔방으로 뛰어다니며 하루하루 피 말리는 나날을 보냅니다. 월급을 깎아도, 직원을 내보내도 도무지 살아날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말로만 듣던 '부도'가 현실로 닥쳐옵니다.

"골이 깊어야 산이 높다", "무지개를 보려면 비바람을 견뎌야 한다"라는 위로와 "힘내세요" 격려를 받습니다. 위로와 격려는 고맙지만 당장 발등 불부터 끄야 하기에 머리에 남지 않습니다.

어려운 시절을 한두 번 보낸 것도 아닌데 아슬아슬한 고비도 여러 번 넘겼는데 겪을 때마다 느끼는 건 사는 게 쉽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무슨 연유이든지 간에 지금 아프고 힘든 이의 한숨소리를 듣습니다. 쓰라린 상처로 얼룩진 애달픈 사연을 들으며 '다행이다. 내가 안 당해서'라며 속으로 안도합니다. 그리고 흔해빠진 위로의 말을 꺼내려하죠. 어떻게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어색한 표정으로 말입니다. 자칫 위로 같지 않은 위로가 되어 더 힘들게 할지도 모릅니다.

겪어보지 않았는데 어떻게 고통을 온전하게 알고 마음에서 우러나는 위로를 할 수 있겠어요?

차라리 별말하지 말고 가만히 들어주던지, 술이라도 한잔하게 되면 잔만 부딪히고 묵묵히 그냥 있어주세요. 그 친구는 아무 말도 귀에 들어오지 않을 거예요. 지금 이 순간이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간이니까요.  


사랑이 깨져본 사람이 실연의 아픔을 압니다.

아파본 사람이 아파하는 심정을 백분 이해하고요.

실패를 겪은 사람이 실패 속에 몸부림치는 친구의 처절한 고통을 내일처럼 아파합니다.

공감 어린 위로는 힘든 이의 눈물을 흘리게 하고 마음을 진정시킵니다.

진심이 담긴 위로 한 마디는 누군가에게 용기가 되어 다시 일어서게 합니다.

진심이 통하고 마음을 어루만지면 어떤 이에게는 삶의 희망이 만들어집니다.


'인생은 마라톤이다'라며 길게 보라고 하지 않던가요?

이 순간을 힘들게 보내는 이들, 아파 몸부림치는 사람들. 지금은 위로를 받지만 언젠가 아픔을 이겨낸 내공으로 누군가를 위로해 줄 날이 올 거예요.

역경을 만나지 못한 사람은 절대 자신의 능력을 알 수 없듯이 역경을 당해봤기에 십분 이해되고, 겪어봤기에 백분 공감이 되어 진심 어린 위로를 건넬 수 있습니다.

공감 어린 진정한 위로는 처절하게 당해본 만큼, 뼈저리게 겪어본 만큼 할 수 있는 게 아닐까 싶어요.


수많은 위로의 메시지 중 유독 가슴 깊이 새겨진 문구가 있을 거예요.

지난날 겪었던 아픔이 불현듯 떠오를 때가 있습니다. 메시지 한 구절구절마다 위로를 받고 용기를 얻으며 고군분투했던 삶의 흔적이 고스란히 되살아납니다. '그때 어떻게 견뎠을까?' 싶지만요, 힘겨운 시간을 버티고 이겨냈기에 오늘은 아픔을 추억하는 여유도 생깁니다.

그러니 무슨 이유이든 지금 인생의 고해(苦海)를 지나가는 이들 모두 용기를 잃지 마시기를.

지금  뼈아픈 경험이 훗날 누군가에게 희망과 용기의 메신저가 될 수 있으니 꼭 이겨내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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