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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차중 Sep 27. 2023

시간 여행으로 들어서는 문, 서도역

남원

최명희의 소설 『혼불』의 배경이 된 마을 입구 서도역에 왔다. 1932년에 지어진 서도역은 2002년 이곳을 지나던 전라선이 다른 곳으로 이전되어 "구 서도역"이라는 이름으로 남겨졌다. 버려진 역사는 목조건물로 고쳐졌고 기왓장을 올려 옛 모습으로 다시 단장된 상태이다.

새로운 선로 곁에는 새로운 서도역이 지어졌다. 옮겨서 지은 역이건 방치되어 남겨진 역이건, 이제 기차는 어느 곳에도 서지 않는다.

요즘 서도역은 사람들에게는 사진 촬영의 명소가 되었다. 한적한 시골의 정취에 덧댄 철도역의 풍경을 모두 담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봄이면 어떻고 겨울이면 어떤가? 서도역은 어느 계절이나 시골의 풍경에 겹친 추억을 간직한 곳이다. 드라마를 촬영한 곳으로 유명세를 타기도 했다지만 시간이 멈춘 듯한 간이역, 그런 그윽함을 찾아 사람들은 이곳으로 다가선다. 

공란의 열차시간표가 걸려있고 투명한 유리창으로 드는 햇살이 그림자를 그린다. 기차를 타기 위해 개찰구를 나서다가 손 흔드는 가족을 뒤돌아보며 기차에 오르던 사람들, 이제는 찾아오지 않는 그들을 기다리는 서도역은 가슴앓이다. 오가는 기차가 없는 서도역은 애달프다.

철길로 나아가 철로 한쪽에 올라 기차가 되어 본다. 선로에 귀를 대어 기차가 오는 진동을 느껴보고 놀았던 어린 시절, 아는 사람 한 명 타지 않은 기차를 향해 손을 흔들면, 가끔 창밖을 보는 민낯의 승객이 웃으며 손을 흔들어 주기도 하였다. 누나는 수줍어서 헛웃음을 지으며 얼굴을 가렸다. 그러다 보면 해는 기울어 갔고 새들은 산속으로 흘러 들어갔다. 우리도 긴 그림자를 늘어뜨리며 동네로 흘러 들어갔다. 그런 때가 있었다. 

봄이 되면 서도역 앞 비틀어진 고목은 벚꽃을 틔우고, 여름에는 강렬할 햇빛처럼 매미가 울어댄다. 노랑이 물드는 가을, 기찻길 옆 향나무의 싱그런 향기와 나부끼는 볏잎의 소리에 추억을 헤아린다. 서도역 시간표 공란에 발차 시각을 그려본다. 벤치에 앉아 멍하니 철로를 바라본다. 굽은 몸을 곧게 펴며 서도역에 들어설 기차를 기다린다. 나는 기차가 지나는 그 시절에 있다. 


https://youtu.be/HI1Lktqm-ho


서도역과 벚나무
서도역 기찻길
서도역사와 선로
서도역에서 본 창밖의 풍경
서도역사 뒤 꽃밭
소풍을 즐기는 아이
멈춘 신호등과 운행이 정지된 기찻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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