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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중년의 Expat Oct 24. 2021

인생의 조난신호

2019년 봄 스리랑카. 엄마가 아프다는 전화를 받았다. 비행기표를 예약했다. 출발 전날 스리랑카 부활절 테러가 터졌다. 일주일 전 집을 방문했던 일본 친구가 두 아이를 남기고 떠났다. 공항 접근도 힘든 한주가 지나 한국행 비행기를 탔다. 엄마도 떠났다. 남은 아버지 옆에서 나까지 흔들려선 안된다는 마음으로 가능한 평정심을 유지했다. 일 년을 거의 울지 않았다. 대신 어떻게 죽음을 대면해야 할지 오래도록 생각했다. 2년이 지난 추석 아침, 제사 대신 추석 파티를 준비하며 엄마와 조우했다. 마음껏 울었다. 슬프지는 않았다. 엄마는 밝았던 에너지를 따라 다른 차원의 세상을 여행하고 있으리라!


2021년 여름 몰도바. 12년간 메고 다닌 짐, 박사를 마쳤다. 논문을 시작하던 무렵 시작된 코로나 속에서 한국에서 스리랑카로, 미국으로, 몰도바로 여러 대륙을 여행했다. 스리랑카에 통행금지가 해제된 잠깐 동안 설문조사를 마쳤다. 코로나로 어렵게 논문을 썼지만, 덕분에 외국에서 줌으로 논문 발표를 마쳤다. 다음 산은 저널 투고라고 했다. 그런데 하고 싶지 않았다. 쉬고 싶었다. 방전!


부활절 그 봄부터 3년, 높은 파도를 타며 돌아보지 않았다. 몰려오는 파도에 열심히 올라탔다. 다 놓고 마음을 바라보자, '논문 끝내고'라고 둑처럼 막아두었던 모든 감정과 피로함이 몰려왔다. 논문과 코로나로 단절된 인간관계는 최악의 저점을 찍고 있었다. 그동안 아빠와 시간을 보낸 딸의 등하교를 시키며 함께 시간을 보냈다. 동유럽 지역에서 필요한 틱 예방접종을 맞고 나서 생긴 알레르기가 한 달쯤 나를 괴롭혔다. 의사는 정확히 모르겠다며, 안티 히스타민을 권했다. 인터넷을 찾아보니 추위 알레르기 증상이었다.


글쓰기 여행


모든 병은 삶이 보내는 조난신호다.

지난 몇 년 트로피컬 기후에 살면서,

꾸준히 운동하지 않았고, 와인도 많이 마셨다.

논문 때문에 늦게 잠들었고,

높은 강도의 스트레스를 받았다.

게다가 오십이 넘었다.

의사가 권한 약 대신,

코로나 이후 유일하게 안전한 운동이 된 걷기를 시작했다.


산책하며 내 마음을 보, 글을 쓰고 싶었다. 

게으름과 삶에 밀려 한 번도 정리 못한 여행,

기억이 멀어지기 전에 한 번쯤 정리하자!

논문을 끝내고 미련 없이 떠났던 책상 앞에 두 달만에 앉 과거로 여행을 시작했다.


여행에서 무엇을 얻었? 뭐가 아쉬웠?

 준비하고 떠지?  가지고 돌아지? 

여행, 인생, 책을 통해 파편처럼 얻어온 성찰들.

30년간의 여행이 모두 재료가 되었다.


글을 쓰는 순기능은 머리속에 중심없이 돌던 것들을 명확하게 본다는 거다.


아보니 여행은 각각 다른 인생을 살았던 한 편의 영화였다. 자유, 돈, 행복, 사랑, 인생의 의미도 좀 선명해졌다. 그때 그 여행에서의 감정, 다짐, 선택으로 이 순간, 불분명한 경계의 자리에 서 있는 내 모습도 보였다.


글 쓰는 하루하루가 내게는 여행이었다.

20대로, 30대로, 40대로, 나의 마음속으로 부지런히 여행을 떠났다.


시작할 때는 여행 얘기를 하려 했는데

마치고 보니 삶과 여행이 뒤섞여 있었다.

글을 시작할 때는 과거로 떠났지만,

글을 마친 곳은 마음속 어느 한 공간이었다.


삶의 모든 항해에서 용기와 영감을 주었던

내 안의 그녀가 어느 순간 선명하게 나타났다.

글을 쓸 용기를 준 나의 소중한 자아,

긍정으로 모든 여행을 이끌었던 나의 소중한 내면가만히 안아주었다.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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