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출근 날 엘리베이터 거울

by 조직을 읽는 여자

마지막 출근 날이었다.
나는 평소보다 조금 일찍 집을 나섰다.
이유는 딱히 없었다.
그냥 조금 덜 늦고 싶었다.


회사 건물 1층.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
문이 열렸다. 아무도 없었다.
나는 혼자 탔다.
그리고 거울을 봤다.


엘리베이터 거울은 늘 그렇듯 솔직했다.
조명은 어둡고, 각도는 애매하고, 표정은 더 애매했다.
나는 넥타이를 한 번 고쳤다.
다시 봤다. 조금 나아졌다.
아니, 그대로였다.
문이 닫히고 올라가기 시작했다.


2층.
아무도 타지 않았다.
나는 다시 거울을 봤다.
이 얼굴로 오늘 퇴사를 하는 건가.


3층. 팀장이 탔다.
“어, 도윤 씨.”
“네.”
“오늘까지죠?”
“네.”
짧았다.
엘리베이터 안에서는 대화도 짧아진다.
팀장이 거울을 보며 말했다.
“아쉽네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요.”
둘 다 무슨 뜻인지는 말하지 않았다.


5층.
문이 열렸다.
박서연이 탔다.
“어, 오늘까지?.”
“네.”
서연은 자연스럽게 물었다.
“어디로 가?”
나는 잠깐 멈췄다.
그리고 말했다.
“아직 확정은 아니고요.”
서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잘 될 거야.”
그리고 거울을 보며 머리를 한 번 정리했다.
그 동작이 이상하게 익숙해 보였다.


7층.
문이 열렸다. 최민수가 탔다.
“선배.”
“응.”
민수는 거울을 한 번 보고
내 옆에 섰다.
그리고 말했다.
“오늘이네요.”
“응.”
엘리베이터 안.
네 명이 같은 방향을 보고 서 있었다.
정확히는 거울을 보고 있었다.


팀장이 말했다.
“밖에 나가면 더 힘들 수도 있어요.”
나는 웃었다.
“네, 각오하고 있습니다.”
서연이 덧붙였다.
“근데 또 금방 적응해.”
민수가 말했다.
“네.”
짧았다.


8층.
문이 열렸다.
팀장이 내렸다.
“고생했어요, 악수나 한 번 합시다.”
“감사했습니다.”
문이 닫혔다.


9층. 서연이 내렸다.
“연락해.”
“네.”
문이 닫혔다.


10층.
민수와 나만 남았다.
잠깐 조용했다.
엘리베이터는 계속 올라갔다.


민수가 거울을 보며 말했다.
“선배.”
“응.”
“표정이 좀 그렇네요.”
나는 웃었다.
“어떤데?”
민수는 잠깐 보더니 말했다.
“생각보다 별로 안 시원한 표정.”


나는 다시 거울을 봤다.
정말 그랬다. 나는 더 홀가분할 줄 알았다.
더 후련할 줄 알았다.
근데 그냥 평소 출근하는 얼굴이었다.


10층.
문이 열렸다.
우리는 내리지 않았다.
나는 버튼을 눌렀다.
다시 1층.


엘리베이터가 내려가기 시작했다.
민수가 물었다.
“후회 안 해요?”
나는 잠깐 생각했다.
그리고 말했다.
“아직은.”
민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된 거죠.”


1층.
문이 열렸다. 나는 내렸다.
그리고 다시 돌아봤다.
민수는 아직 안에 있었다.


버튼을 눌렀다. 그는 다시 올라갈 거다.
문이 닫히기 직전,
민수가 말했다.
“선배.”
“응?”
“거울은 가끔 틀려요.”
나는 웃었다.
“왜?”
문이 닫히면서 민수가 말했다.
“사람이 더 이상한 선택을 하거든요.”
엘리베이터 문이 닫혔다. 나는 혼자 남았다.
로비 유리문에 내 모습이 비쳤다.
엘리베이터 거울보다 조금 더 밝았다.
나는 문을 밀고 나갔다.
그리고 생각했다.
나는 나름 계산하고 나왔다.
이번엔 진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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