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도서] 안 위베르스펠트의 관객의 학교 - 공연기호학
저자 안 위베르스펠트(Anne Ubersfeld)는 유럽 연극기호학파를 이끈 대표적 이론가로서 2010년 사망하기까지 13편의 단행본과 수많은 연구논문을 발표한 연극기호학의 대모이다. 그의 첫 저서 『연극기호학』은 1988년 번역되어 한국 연극학계에 연극기호학에 대한 상당한 관심을 불러일으켰다.『관객의 학교 - 공연기호학』은 철저히 공연에만 초점을 맞춘 책이다.
사물들은 사물들이지만, 이 사물들은 또한 연극-기호들이다. 그래서 무대 기호들은 세계에서 일어나는 어떤 이야기를 말하면서 동시에 이렇게 말한다. "우리들은 연극하고 있어." p.414
1장 무대와 텍스트
2장 연극 공간과 무대 디자이너
3장 연극 오브제
4장 배우의 작업
5장 연극의 시간
6장 연출가와 공연
7장 관객의 작업
8장 관객의 즐거움
기호학적 접근으로 관객을 설명하는 것이 흥미로웠기 때문에 이 책에서 나는 7장과 8장을 주의 깊게 읽었다.
위베르스펠트는 제7장 관객의 작업에서 관객은 무대 위에 오르진 않지만 핵심적인 등장인물이자 커뮤니케이션의 수신자라고 설명한다. 또한 원하는 부분을 다시 보기 위해 뒤로 돌릴 수도 지루하다고 앞으로 감을 수도 없는 공연의 흐름에서 관객은 사냥꾼의 날카로운 눈매를, 수공업자의 기억을, 고해 신부의 혜안을 정치인의 지성을 얻어야 한다고 말한다. 더 나아가 관객은 최종 의미를 완결하는 생산자라며 관객의 역할을 설명한다.
관객은 연극을 위하여 배워야 하는가? 혹은 연극을 통하여 배워야 하는가? 우리는 관객에게 가르친다고 잘난 척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관객에게 배우는 법을 배우게 하고, 이 배움의 길을 관객에게 보여주며, 할 수 있다면 시선과 청각의 경로인 관객의 여정을 작성하도록 할 것이다. p.433
개인적으로 이 부분을 읽으면서 공연의 모든 것은 기호이며 그것을 잘 해독하는 것이 좋은 관객이라고 설명하는 것이 굉장히 부담스러웠다. 사냥꾼처럼 날카롭게 무대의 가로와 세로를 누비고, 장인처럼 디테일을 기억하고 공연의 의미를 최종적으로 부여하고 그것을 심지어 다른 이들과 나눌 것을 강요받는다는 생각에 단순히 오늘 저녁 좋은 시간을 보내고자 공연을 보러 온 관객의 마음을 전혀 모르고 하는 소리 아닌가 싶었다. 또한 연출가는 수수께끼를 내는 스승이고 관객은 문제를 풀어야만 하는 학생처럼 수직적 위계질서에 놓은 것은 아닐까! 그러나 위베르스펠트는 브레히트처럼 비판적 관객, 성찰적 관객만을 강조하는 것이 옳지 않다고 한다. (관객을 바보 취급하는 것 같아서 찔렸나!!)
예술이 세상의 반영인지 아닌지를 자문하는 것은 헛된 일이다. 연극에서는 예술이 세상의 반영인지 아닌지를 만드는 것은 관객이며, 관객은 이를 자신의 고유한 경험에 돌려보낸다. --- 넓은 의미로 연극적 공연의 정치적 해독은 기초적이고 순간적인 해독 앞에서가 아니라, 우리가 기호들을 해독하고 나서야 제자리를 찾을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이다. 브레히트는 이 문제에서 스승이다. 공연은 연극 텍스트의 외연적 의미를 뒤집을 수 있다는 것을 우리 모두는 안다. 어떻게?
1. 지시 작용을 바꾸며.
2. 관객이 지시 작용을 선택하도록 강요당하기에 의미가 수정되는 기호들의 체계를 구성하면서, 공연의 의미에 대한, 이러한 연극적 행위의 이데올로기에 대한 질문들에 대답할 수 있도록 연출가나 관객에게 심문하는 것은 바로 지시 작용의 작업이다. p.460
결국 공연을 해석하고 의미를 만드는 것은 오롯이 관객의 몫이라는 것이다. 또한 여러 학자들은 연극기호학에 반론을 제기했다. 공연은 배우-관객, 소품-대사 등 모두 관계 맺고 있기 때문에 분열된 기호로 분석하는 것에 한계가 있다고 지적한다. 특히 공연을 즐기는 사람이라면 모두 공감할 테지만, 무대 위엔 생명력 넘치는 에너지가 가득하다. 공연이 시작하기 전 빈 무대는 가능성의 에너지로 가득 찬다. 객석은 기대하는 마음으로 가능성의 에너지를 만끽한다. 이어서 배우의 감정과 이야기로 무대는 물든다. 공연이 끝난 뒤엔 마치 꿈에서 깨어난 듯한 여운이 맴돈다. 이것 또한 에너지다. 텅 빈 무대는 다시 고요를 되찾지만, 그 공간엔 여전히 이야기의 잔향이 맴돌고 있다. 관객들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면서도, 마음속 어딘가엔 그 순간을 붙잡아 두고 싶어 한다. 그렇게 공연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 된다.
개인적으로 관객을 가르치는 대상으로 바라본다는 점에서 의견이 맞지 않지만, 공연을 분석해서 오브제의 활용, 연출의 다양한 형식으로 관극 경험을 치밀하게 설계하려 했다는 점에서는 어쩌면 관객을 아꼈기에 나온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공연예술을 학문적으로 바라보고 싶은 분들께 추천하는 전공서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