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반도주하듯 몰래 우리집에서 도망친 아버지

자식놈일 땐 미처 알지 못했던 아버지 이야기

by 글짓는 사진장이


20여년 전 일이다. 직장 관계로 30여년 간의 서울살이를 정리하고 전주로 내려온지 몇 년 안 됐을 때였는데, 주말 아침부터 우리집에선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다. 하루 전날, 전주살이 후 처음으로 우리집을 찾아주신 부모님이 온다 간다 말씀도 없이 행방이 묘연해졌기 때문이다.


처음엔 그저 새벽 일찍 동네 산책이라도 나가신 줄만 알았다. 원래 나이가 들면 아침잠이 없어지는 법이고, 우리 부모님은 일 없이도 동네 산책을 즐기시는 편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침밥 먹을 때가 넘도록 부모님은 돌아오시지 않았다. 그제서야 아내와 나는 뭔가 좀 이상하다는 생각과 함께 혹시 무슨 사고라도 생긴 건 아닐까 하는 걱정이 들기 시작했다.


그래서 다급히 아버지 휴대폰으로 전화를 걸었던 건데, 천만 뜻밖에도 아버지는 이제 막 고속버스에 올라타셨노라 대답했다. 당신들 집으로 돌아가시는 길이라는 예기치 못한 대답과 함께였다. 도대체가 영문을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분명히 그날 우리 가족과 함께 여행을 가기로 해놓고는 온다 간다 말씀도 없이 갑자기 댁으로 돌아가는 버스 안이라니 이게 무슨 일인가 싶었다.


더군다나 아버지는 며칠 뒤로 다가온 당신 생신 때 아들 며느리가 어린 손녀들 데리고 먼 길 오려면 이만저만 고생이 아닐 거라며 "시간 여유 많은 우리가 걸음 하는 편이 낫겠다 싶어 너네 사는 거 구경도 할겸 왔다"고 하셨던 분이다. 그만큼 아들 내외와 손녀를 끔찍히도 아끼고 배려해주는 분이 갑자기 야반도주하듯 새벽 일찍 몰래 떠나셨으니 아내와 내 입장에선 그저 당혹스럽기만 했다.


혹시 대접이 소홀했거나 섭섭하게 해드린 게 있었나 걱정했는데 그건 아니었다. 알고 보니 오히려 대접이 너무 과했던 게 문제였다. 모처럼 먼 길 오셨으니 맛난 거 많이 드시라고 전날 저녁 전주시내 한 이름난 한정식집으로 모시고 갔던 게 그만 사달이 난 거였다. 쉴 새 없이 계속 나오는 음식 접시들에 한 번, 1인당 4~5만원씩이나 하는 메뉴판에 두 번 놀라시는 눈치더니 급기야 아버지는 “집에서 간단하게 먹음 되지, 뭐할려고 이렇게 비싼 집에서 밥을 먹냐?”고 몇번이나 걱정을 하셨었다.


다음날부터 2박3일 간 우리 가족과 함께 여행을 떠나기로 계획했던 것 때문에 더 그러셨던 모양이다. '이 철없는 아들 며느리가 밥 한 끼에 이렇게 펑펑 돈을 쓸 정도면 같이 여행까지 갔다가는 집 기둥뿌리 뽑아 먹겠다'는 생각이 드셨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두 분이 함께 밤새 고민을 하신 듯했고, 결론은 모양새는 좀 빠지더라도 아들 며느리 깨기 전에 새벽 일찍 도망가자 뜻을 모으셨던 거다.


야반도주하다 딱 걸린 사람 같은 음성으로 전화기 저 편에서 아버지는 연신 “미안하다!”는 한 마디를 자꾸만 되풀이 하셨다. "고맙다!"고도 하셨다. 집안 형편이 어려워 결혼할 때 변변한 방 한 칸 얻어주지 못하고, 머나 먼 타향에서 맨땅에 헤딩하며 사는 걸 도와주지도 못 했는데, 집도 장만하고 손녀들까지 낳아 잘 살아줘서 미안하고 고맙다고 하셨다.


그 순간 내 가슴 한 가운데서 뭔가 울컥 하는 덩어리 하나가 치밀어 올랐다. 동시에 내 입에서는 "매일 그렇게 먹고 쓰는 것도 아니고 어쩌다 한번 그러는 걸 갖고 웬 돈 타령이이세요?" 하는 볼멘 목소리가 튀어 나왔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 전화기를 내팽개쳐 버리고, 그 길로 차를 몰고 고속버스 앞을 막아서거나 부모님 댁으로 달려가 다시 모셔 오고 싶었다.


하지만 그러지 않기로 했다. 그렇게 해본들 이미 마음 편하고 즐거운 여행은 되기 힘들겠다 싶어서다. 더하여 나 또한 자식을 키우는 아버지 입장이 되고 보니 아버지 마음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기도 했다. 이럴 땐 그냥 떠나시게 두는 게 아버지를 위하는 길이라 생각했다. 아쉬움이 크긴 했지만, <떠나고 싶은 자 떠나게 하고/ 잠들고 싶은 자 잠들게 하고/ 그리고도 남는 시간은 침묵할 것>이라는 어느 시인의 말마따나 때론 백 마디 말보다 침묵이 더 필요한 시간도 있는 법이었다.


나의 최선이 다른 누군가에게도 마찬가지로 최선이 될 순 없다는 사실을 값 비싼 수업료를 내고 배운 걸로 만족하기로 했다. 내 입장에선 생신을 앞둔 아버지께 평소 안 드셔본 풀코스 한정식을 사드리는게 최선이었을 수도 있겠지만, 아버지나 어머니 입장에선 아들 며느리 가계에 주름살을 만들 수 있는 그런 과례(過禮)는 오히려 비례(非禮)요, 불효였을 수 있다는 걸 인정하기로 했다. 그래야만 다음엔 같은 잘못과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을 수 있을테니 말이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내 짧은 생각과 욕심으로 망쳐버린 안타까운 아버지의 생신잔치였다. 그래서 많이 죄송스러웠고, 많이 아쉬웠다. 한 가지 위안이라면 덕분에 그 다음부터는 나의 최선이 아닌 아버지 어머니 입장에서의 최선을 먼저 생각할 수 있게 됐으니 다른 한편으론 다행스러운 일이기도 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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