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남기고 간 마지막 선물

자식놈일 땐 미처 알지 못했던 아버지 이야기 #23

by 글짓는 사진장이


여덟 어린 나이로 6.25 전쟁에 참전해 생사가 오가는 숱한 전투를 치루고

마지막엔 소속 부대원 대부분이 전사하는 와중에 총상을 입고 기절해 가까스로 살아남은 아버지는

당신 자신에 대해 은연중 불사조 같은 생명력을 가진 사람이라는 자만심 같은걸 갖고 있었다.


그 자만심이 지나쳐 쓰러져 누울 정도가 아닌 이상 절대 병원 신세를 지지 않으려 하셨고,

결국 그런 습관이 췌장암 발병 사실을 너무 늦게 발견하게 만드는 비극을 잉태했다.

집사람과 함께 안부 인사차 본가를 방문했던 길에 배가 아프다며 누워만 계시는 아버지를 보게 됐고

심상치 않은 느낌에 인근 병원으로 모시고 간 결과 췌장암 말기라는 진단이 나왔으니 말이다.


담당 전문의 상담과 인터넷 검색 등을 통해 나중에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췌장암이라는 녀석은 엄청난 고통을 수반하는 병이라고 했다.

인간의 의지로 참아보려 노력해봐야 도저히 참아지지 않는 고통이라 했는데,

아버지는 그걸 무슨 배앓이 정도나 되는 양 방구석에서 혼자 끙끙 앓고 계셨던 거다.


한편으론 기가 막히고 다른 한편으론 화가 났지만 일단 벌어진 상황이었고

췌장암 말기라는 최악의 상황 속에서나마 남은 가족들이 할 수 있는 일부터 해야 했다.

그 중 가장 시급히 결정해야 했던건 단 일할의 가능성이라도 더 높이기 위해

부모님 댁이 있는 충주에서 서울 큰 병원으로 아버지를 모시는 거였다.


하지만 서울 큰 병원이라고 해서 췌장암 말기 환자를 어떻게 할 도리는 없었다.

결국 담당 전문의와의 상담, 가족 회의를 거쳐 우리는 연명치료를 포기하기로 결정했고,

한 달이 될지 몇 달이 될지 모르는 남은 시간 동안이나마 호스피스 치료를 통해

아버지가 편안하게 여생을 사실 수 있도록 하자는데 의견을 모았다.


우리 집이 있는 전주에서 아버지가 계신 서울 병원을 오가는 숨가쁜 마라톤이 시작된 것도 이때부터였다.

회사에서 일을 하다 말고 아버지가 위독하시다는 연락을 받고 달려가는 일이 며칠 간격으로 반복됐고,

어떤 때는 위험한 고비는 넘겼다는 담당 의사 말을 듣고 한숨 돌리며 전주 집까지 거진 다 왔다가

다시 위독해지셨다는 다급한 전화를 받고는 하룻새 왕복 1천킬로미터를 오가는 상황도 벌어졌다.


그렇게 전주와 서울을 오가며 정신없이 바쁜 시간을 보내던 어느날,

계속 의식이 없으시던 아버지는 잠시 흐릿하게나마 정신을 차리셨다.

그리고 반가운 마음에 서로 앞을 다퉈 "제가 누군지 알아보시겠어요?" 하고 묻는 가족들을 바라보며

평생 아버지 속을 무척이나 썩이던 형을 향해서는 "나쁜놈",

부모랍시고 평소 해준게 너무 없어 미안하다 한하시던 나를 향해서는 "우리 막내",

그런 나를 남편으로 삼아준 고마운 며느리를 향해서는 "예쁜 며느리"라 말씀하신 뒤 다시 의식을 잃으셨다.


그 일고 있고 난 얼마 후 아버지는 어머니와 형, 우리 부부의 작별인사를 뒤로 한채 조용히 눈을 감으셨다.

바쁜 직장 일과 재수생 딸 뒷바라지 등과 병행하느라 그 어느 때보다 힘든 시간들을 보냈던 터라

아버지를 떠나보낸 슬픔은 컸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죄스럽게도 한 고비를 넘긴 느낌이었다.


그렇게 얼마간의 시간을 흘려 보낸 뒤 집 가까운 절에 아버지 위패를 모시면서 나는 다시 아버지의 죽음과 마주섰다.

평소 "돌아가신 다음에 비싼 수의 입히고 어쩌고 하는 건 자기위안을 위한 자위행위에 불과하다" 말해오던 내가, 불교신도도 아닌 내가 절에다가 아버지 위패를 모신다는 건 한 편의 블랙코미디란 생각도 없지 않았지만

너무 서운하게 보내 드렸다는 생각이 내 등을 떠밀었고,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었다.


위패를 모신 뒤 잠시 아버지에 대한 이런저런 상념에 잠겨 있는데, 문득 뭔가 내 정수리를 꿰뚫고 들어오는 느낌이었다.

서울 큰 병원으로 아버지를 모신 뒤 정신없이 전주와 서울을 오가던 두 달여의 시간을 그동안은 힘들다고만 생각해 왔었는데, 사실은 그게 아버지가 내게 남겨주고 간 마지막 선물이 아니었을까 하는게 그것이었다.

그 덕분에 평생 아무 것도 해드린 것 없는 아버지에게 뭔가 조금은 해드렸다는 위안을 받고 살아 있구나,

평생 보살핌만 받고 살아왔는데 덕분에 짧은 시간이나마 나도 아버지를 보살펴 드릴 수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뒤늦게 들었다.


어쩌면 아버지는 당신이 돌아가신 뒤 나와 남은 가족들이 행여 너무 자책하거나 아파하지 말라고 그렇게 또 베풀고 가신 건 아닐까...

뒷발질인지 헛발질인진 몰라도 오늘도 문득 아버지가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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