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종 직전, 의사의 권유로 아버지께 마지막 인사를 드리고 있을 때였다. 의식을 잃은채 가쁜 숨만 몰아쉬시던 아버지 왼쪽 눈에서 문득 눈물 한 방울이 또르륵 굴러 떨어졌다. "다음 생에선 부디 등 떠밀려 국가유공자 따위로는 태어나지 마시라"는 내 인사말이 끝날 무렵이었다. 아마도 그 한 마디가 찰나 간에 아버지의 팔십 몇 년 인생을 격렬히 관통한게 아니었나 싶다.
우리 아버지는 국가유공자셨다. 6.25전쟁이 터지던 해, 푸르디 푸른 열여덟 어린 나이로 등 떠밀려 전쟁터에 뛰어들었다. 소학교 4학년을 중퇴한 채 몇 년째 의정부 부근 자전거포에서 기술을 배우던 중 인민군이 들이닥쳤고,징병차 끌려가 마을 학교에 갇혀있다가 요행히 탈출해 그 길로 국군에 입대했다. 만일 인민군에 잡혔다간 바로 총살형감이었으니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리고 무슨 고지 전투엔가 참가해 격렬한 전투를 치루던 중 오른쪽 팔에 총을 맞고 쓰러지셨다고 했다. 나중에 깨어보니 아버지와 다른 동료 한 명을 제외한 전 부대원이 전사해 주변은 온통 핏구덩이였다. 아마도 총상을 입은채 핏구덩이 위에 기절해 있으니 죽은 걸로 오인한 채 적군이 그냥 지나가버린 모양이었다.
변변한 야전병원 하나 없었던 열악한 당시 전쟁 상황 때문에 아버지는 총상을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방치되다시피 했다. 그래서 총상을 입은 오른쪽 팔은 제대로 된 치료 한번 받지 못한 채 뒤틀린 그대로 굳어버렸고, 자전거 기술을 배워 근사한 자전거포 하나 차리겠다던 아버지의 꿈과 삶도 뒤틀려버렸다.
한창 꿈을 꿔야 할 젊은 나이에 한쪽 팔을 잃어버린 아버지는 절망했고, 세상을 향해 원망과 분노를 터뜨렸다. 당시 '상이용사'라 불리웠던 비슷한 처지의 동료들과 함께 어울려 다니며 날마다 술을 퍼마셨고, 조금이라도 심기를 거슬리는 일이 있으면 술상을 뒤엎는 등 주폭질을 일삼았다.
우리 아버지는 국가유공자셨다. 어린 시절, 나는 그 사실이 너무 싫었다. 집안의 권유로 어찌어찌 어머니와 결혼을 하고 4남매나 되는 자식을 낳으며 좀 안정을 찾긴 했지만, 아버지 가슴 속에는 여전히 분노가 활활 타올랐고, 살얼음판을 걷는 듯한 위태로운 평화가 이어졌다. 그런 아버지 덕분에 나를 비롯한 우리 가족들은 평범하고 안온한 삶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삶을 살아야만 했다.
그래서였을 거다. 어린 시절 나는 아버지와 함께 다니는걸 싫어했고, 아버지와의 대화 역시 즐겨하지 않았다. 우리 형제들이 자라면서 살림살이가 더 빠듯해진 탓에 그 좋아하던 술과 담배마저 끊은채 아버지는 180도 바뀌셨지만, 다정다감 따위와는 거리가 먼 우리 집 남자들의 성격 때문인지 다른 무엇 때문인지 여전히 이렇다 할 대화는 나누지 못했다.
그러다가 몇 년 전 아무런 마음의 준비도 없이 갑작스레 아버지의 임종을 맞게 됐다. 시간이 얼마 안남았으니 작별인사를 드리라는 의사의 권유를 받고서야 나는 비로소 때 늦은 후회를 했다. 작별인사를 드리는 그 짧은 순간 아버지 뺨 위로 또르륵 굴러떨어지는 눈물 한 방울을 보며 나는 이제 영영 이별이구나 하는 생각에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짧다면 짦고 길다면 긴 50년 세월을 아버지와 자식이라는 남다른 관계로 살아왔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부자는 참 말도 몇 마디 못 나눠 봤구나', '나는 아버지에 대해 아는 게 정말 없구나' 하는 회한이 밀려왔다. 그때 그 아버지에게 죄스러웠던 마음이 일련의 '아버지 이야기'들을 쓰게 만드는 원동력이 됐다.
어제 오늘 사이 언론에 오르내리는 <文대통령, 국가유공자 '수소•전기차' 26대로 국빈급 의전> 소식을 접하며 나는 몇 년 전 돌아가신 아버지를 다시 한번 떠올렸다. 현충일이나 6.25기념일이라고 국가보훈처에서 무슨 행사라도 열어주면 뭐가 그리 반가우신지 열 일 제쳐놓고 달려가곤 하던 아버지가 그리워졌다. 아마 살아 생전에 대통령이 국가유공자들에게 국빈급 의전을 했다는 소식을 들으셨다면 정말 좋아하셨을 거란 생각이 들어서다.
국가유공자가 나라를 위해 희생하고 헌신한 공로를 인정 받고, 국가유공자다운 예우를 받는 세상을 아버지는 꿈꾸셨다. 그걸 몰라주고 대우해주지 않는 세상을 사느라 힘들어 하셨고, 피끓던 젊은 시절에는 특히 그 원망감에 참 많이 방황하고 힘들어 하셨다. 부디 늦게나마, 하늘나라에서나마 조금씩 변해가고 있는 세상을 내려다보며 그 상처 받은 마음을 위로 받으셨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