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깡통 속에 담겨있던 아버지의 꿈

자식놈일 땐 미처 알지 못했던 아버지 이야기 #49

by 글짓는 사진장이


돌아가신 우리 아버지에겐 보물처럼 아끼는 약 깡통이 수백 개쯤 있었다.

지병 치료를 위해 꽤 오랜 기간 복용하셨던 위장약을 담았었던 깡통들이었다.

그 안에는 각종 자전거 부품들이 종류별로 빼곡히 들어차 있었다.

여기저기서 구한 폐자전거들을 분해해 쓸만한 부품들만 추려 모은 것들이었다.


어린 시절, 우리 아버지는 자전거 기술자를 꿈 꾸셨었다.

6.25전쟁만 벌어지지 않았다면 아마 그 꿈을 이루셨을 거다.

하지만 시대는 열여덟 어린 청년을 전쟁터로 내몰았고, 그곳에서 아버지는 한쪽 팔을 잃으셨다.

국민학교 4학년을 중퇴한 채 자전거 기술자 되는 일에 진력해 온 아버지의 꿈도 함께 사라졌다.


그 뒤 작은 구멍가게도 해보고 월급쟁이 노릇도 하며 가족들을 위해 열심히 사셨지만,

아버지는 끝내 어린 시절 꾸었던 자전거 기술자의 꿈을 버리실 수는 없었던 모양이다.

어느날부터인가 여기저기서 버려진 자전거들을 주워 오시더니만

불편한 몸을 무릅쓰고 그 안에서 쓸만한 부품들을 분리해 따로 모으기 시작했다.


볼트류는 볼트류대로, 베어링은 베어링대로 각 부품 종류와 크기별로 분류해

집안 여기저기 굴러다니는 당신의 빈 약 깡통들에 나눠서 보관하기 시작했다.

아마도 기회가 주어지면 꿈에도 그리던 자전거포를 열어 요긴하게 쓸 요량이셨을 거다.

그렇게 수십 년에 걸쳐 다락방 한 쪽을 꽉 채울만큼 많은 부품들을 모으셨었다.



그러나 아버지는 소망하던 자전거 기술자의 꿈을 끝내 이루지 못한채 돌아가시고 말았다.

망가지고 버려진 자전거들 속에서 하나둘 쓸만한 부품들을 되살려 내면서

어쩌면 아버지는 망가지고 잊혀진 어린 시절 꿈을 되살리려 애쓰셨는지도 모르겠다.

전쟁만 아니었다면, 아버지라는 굴레만 아니었다면 결코 놓지 않았을 그 꿈을 향해

불편하신 몸을 무릅쓰고 마지막 투혼을 불사르셨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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