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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짓는 사진장이 Mar 06. 2024

"남편, 출근할 때 내 좀 안아주고 가면 안 되나?"



"남편, 출근할 때 내 좀 안아주고 가면 안 되나? 아침이라 마이 바쁘나?"

간단한 안주를 차려놓고 술 한 잔 나누던 중 문득 아내가 농담기 머금은 말투로 내게 이렇게 물었다. "출근 전에 꼭 들기름 한 숟가락 챙겨 먹고, 따뜻한 물도 한 잔 마시고 가욧!" 하고 잔소리를 할 때마다 내가 "아침엔 1분 1초가 바빠서..."라고 변명하곤 하는 걸 빗대서 하는 얘기였다.


이에 나는 얼마간 머쓱해져서 "그게 아니라 곤하게 자고 있는 당신 깨지 말라고 조용조용히 출근 한거지" 하고 대답했다. 공부하는 딸 하나와 사회 초년생 뼝아리 딸 하나 뒷바라지 하느라 아침부터 새벽 1시 내외까지 발을 동동거리며 사는 아내 처지를 잘 아는 지라 새벽 일찍 출근하는 나는 아침 잠이라도 편하게 자라고 문 닫는 소리까지 조심해가며 조용히 출근길에 오르곤 해왔던 까닭이다.


그러자 아내는 조용히 웃으며 "그런 사람이 '나 다녀올게' 하고 꼬박꼬박 인사는 왜 하고 가욧?" 하고 다시 장난스레 물어왔다. 아침에 출근할 때마다 나는 안방문을 나서기 직전 들릴 듯 말듯 작은 목소리로 출근인사를 건네오고 있는데, 잠귀가 밝은 편인 아내는 비몽사몽 간에 잘 다녀오라고 마주 인사를 해오곤 하는 터였다.


하지만 이건 정말 억울한 트집이 아닐 수 없었다. 처음엔 '나의 출근을 적에게 알리지 마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모토로 단잠을 자고 있는 아내의 아침잠을 방해하지 않으려 숨소리까지 참아가며 안방문을 나서곤 했는데, 아내가 "그래도 우리 서방님 출근하는 기척이라도 느끼고 살아야죳!" 하고 강권하는 바람에 그 뒤부터 인사말을 건네기 시작했으니 말이다.


그런 억울해하는 내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내는 "왜? 아침이라 마이 바빠서 도저히 안 되겠나?" 하고 커다란 눈에 장난기를 가득 담아 깜박거리며 나를 쳐다봤다. 나이 50이 넘었지만 이럴 땐 꼭 10대 소녀 같은 구석이 있어서 뭔가 간절히 갖고 싶은 걸 막무가내 사달라고 아빠에게 떼쓰는 아이 같다는 느낌이 들곤 한다.


그 눈빛 공격에 결국 웃음이 터지고 만 나는 "그까잇 거 뭐 힘들겠나? 된다, 됏!" 하고 대답을 하고야 말았다. 혹자는 나이 40~50쯤 되면 부부는 더 이상 남녀 관계가 아니라 형제나 다름없다며 스킨십을 무슨 동성애쯤이나 되는 양 터부시하기도 하지만, 출근길에 아내 한 번 안아주고 가는 게 범죄는 아니지 않은가 싶었다.



그리고 오늘 아침, 출근 준비를 마친 뒤 여느날처럼 인사를 하고 나오려 잠자는 아내 쪽을 힐끗 바라보는데 문득 지난밤 술 한 잔 마시며 나누었던 예의 대화가 떠올랐다. 좀 쑥스럽단 생각이 살금 들긴 했지만, 그래서 나는 침대 머리맡으로 다가가 아내를 살며시 안아줬다. 잠에 취한 아내는 처음엔 '이 남편놈의 베이비가 왜 새벽부터 안 하던 짓은 하고 난리얏!' 하는 표정이었지만, 이내 지난밤 나누었던 대화를 떠올렸는지 나를 마주 안아오며 "너의 죄를 사하노라!" 하고 기도하 듯 중얼거렸다.


순간 '그동안 표도 잘 나지 않는 딸들 뒷바라지 하느라 많이 외롭고 힘들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나는 가슴이 울컥했다. 외롭고 힘든 직업이 바로 엄마라는 사실을 잘 알면서도 그동안 회사 일이 바쁘다는 핑계 뒤에 숨어 내가 너무 무심했구나 하는 반성도 들었다. 아닌 게 아니라 재판정에 설 일이 생기면 그동안 해온 내 행위는 십중팔구 '유죄' 판결을 받을 터였다.


그렇게 출근길에 올라 차를 타고 가는 내내 이런저런 상념들이 내 가슴 속을 헤집고 돌아다녔다. 나 정도면 나름 좋은 남편이랍시고 그동안 자위를 하며 살아왔는데, 아침 출근길 안방문을 나서는 작은 행동 하나만 해도 내 딴엔 배려라 생각한 게 아내에겐 외로움을 부추기는 행위에 불과했구나 하는 깨달음이 일었다. 나의 최선이라는 건 그래봐야 나의 최선일 뿐이었던 거다.


부부 관계라는 거, 사람과 사람 간의 관계라는 거 정말 쉽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사랑하는 나의 아내가 더 이상은 혼자 외롭고 힘들지 않도록 나의 최선이 아닌 상대방 입장에서의 최선을 생각하고 고민해봐야지 싶다. '사람이 외로워지는 건 사람 때문'이라던 어느 작가의 말 한 마디가 온 마음을 적시는 오늘이다.


#부부관계 #출근미션 #나의최선 #외로운아내 #글짓는사진장이 #사람이있는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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