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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짓는 사진장이 Mar 14. 2024

평균 80 어머니표 청포묵밥 맛집 <잘나가는...>

그 좋은 손맛 썩히기 아까워 나선 무주 다섯 어머니들 팝업스토어



맛집을 소개할 때 내가 종종 곁들이는 말이 있다. '세상에 백이면 백 모두 만족시키는 맛집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게 그것이다. 내 입에는 아주 매우 많이 솔직하게 에누리없는 <존맛> 맛집이지만, 백인백색 천인천미라 다른 누군가의 입에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얘기다.


특히 매운맛, 신맛, 짠맛 등 맛이 강한 양념 류를 베이스로 사용하는 음식들이 그러한데, 세상사 모든 일에는 예외가 있는 법이라 열에 여덟 아홉쯤 되는 사람들 입맛을 두루 만족시킬 수 있는 맛도 분명 있다. 우리가 흔히 얘기하는 '어머니 손맛'이 깃든 음식들이 바로 그러하다.


무주 <잘 나가는 언니들>은 한 마디로 말해 농축된 어머니 손맛을 맛볼 수 있는 맛집이다. 평균 60년 넘는 어머니 경력을 가진 다섯 할머니 '할벤저스'가 뭉쳐 그동안 갈고 닦은 내공을 꾹꾹 눌러 담은 밥상을 선보이는 곳이어서다.




그래봐야 식당 아니냐구? 식당은 식당이지만 일반적인 식당은 아니다. 식당의 형태를 띄고 있긴 하되 장사가 주된 목적은 아닌 데다가, 밥값을 받긴 받되 재료비와 품값, 들인 정성을 따져보면 사실상 공짜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식당 건물이 위치한 무주군 설천시장 인근 구산마을에 사시는 올해 연세 여든여덟인 오필연, 서종숙, 안재종 어머니를 필두로 막내뻘인 배광자(83세), 정미재(나이 미상) 어머니 등 다섯이 의기투합해 마을회관에서 해먹던 맛난 간식들을 다른 사람들과 한 번 나눠 먹어보자 나선 게 바로 <잘 나가는 언니들>의 출발점이었다.


도시 여자로 살다가 구산마을 앞 은구암 풍경에 반해 17년 전 귀농했다는 정미재 대표가 네 언니들을 살살 꼬득인 결과다. 평소 마을회관에서 언니들이 해주는 청포묵이며 부침개, 손수 담은 막걸리 등을 얻어먹다가 그 맛에 반한 정 대표는 "언니들, 우리 식당 한번 해봅시닷!" 하고 팔을 걷어부치고 나섰다. 언니들 손맛이 마을 한편에서 덧없이 썪어가는 게 아깝단 생각이 들어서였다.




하지만 고령인 언니들 체력을 감안했을 때 상설식당은 무리다 싶어 설천 오일장이 열리는 끝자리 2일과 7일 장날에만 문을 여는 팝업스토어를 선택했다. 그렇게 <잘 나가는 언니들>은 평균 60년 넘는 어머니 경력을 가진 다섯 할머니들 '할벤저스' 손맛을 무기 삼아 지난 1월부터 식당 문을 열었다.


한 가지 재밌는 건 이곳 <잘 나가는 언니들> 모든 메뉴 가격이 무조건 5천원씩이라는 것. 청포묵을 재료로 한 묵밥 1인분도 5천원이요, 재료가 훨씬 많이 들어가는 청포묵이라든가 모둠전도 5천원이다. 심지어 할벤저스 어머니들이 손수 농사지은 좋은 재료로 직접 담은 맛난 막걸리는 무려 공짜 제공 되시겠다.


값이 싼 만큼 음식 퀄리티가 좀 떨어지는 거 아니냐구? 천만의 말씀 만만의 콩떡이다. 이 식당에서 사용하는 주요 재료는 직접 농사지은 국산 재료만 사용하는 데다가, 주메뉴인 청포묵무침은 올망대와 뽕잎, 아로니아, 미나리, 부추 등 몸에 좋다는 좋은 재료들만 사용하고, 모둠전은 먹는 이들 건강을 생각해 밀가루 대신 녹두와 쌀가루, 콩가루 등만 사용해 직접 부쳐내신다.





이 좋은 재료들을 활용해 다섯 어머니 합계 300년쯤 되는 내공으로 음식을 만들어 내니 맛이면 맛, 건강이면 건강 모두 만족시키는 어머니표 <존맛> 음식들이 탄생할 수밖에 없는 거다. 게다가 이분들 모두 팔십 넘은 나이에 일할 곳이 생겼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신바람나게 음식들을 만들고 있으니 그 또한 음식이 맛없기도 힘든 이유이다.



덕분에 욕심껏 이것저것 다 시켜 먹어봐야 두 사람이 배 터지게 먹고도 2만원 남짓 밖엔 안돼 그 돈만 달랑 내고 나오기가 아주 매우 많이 죄송스러울 지경인데, 어머니들은 "잘 나가는 언니들 덕분에 이웃동네 할매들이 다들 부러워 죽을라 그려. 옛날 농사일 하던 거 생각하면 이 정도는 일도 아녀"라며 오히려 멀리까지 와줘서 고맙다고 얼굴에서 웃음이 떠나질 않으신다.


그 모습이 보기 좋아 아내와 나는 일반식당에서 흔히 하는 "많이 파세요", "대박나세요" 하는 인사치레용 인사 대신 "다음에 또 올테니까 건강하게 오래오래 식당문 열어주세요" 하는 진정성 담은 인사를 드리고 돌아섰다. 어머니들이 건강하셔야 5일에 한번씩이나마 어머니표 <존맛> 청포묵밥과 묵무침, 모둠전, 막걸리를 얻어먹을 수 있을 테니까.



무주 <잘 나가는 언니들>은 설천시장 장날인 끝자리 2, 7일 설천초등학교 정문 맞은편 임대 건물에서 문을 연다. 상설식당이 아니라 영업시간은 다소 유동적인데, 대략 점심식사 시간 무렵 방문하면 맛난 묵밥을 비롯한 어머니표 밥상을 맛볼 수 있다. 25인 이상 단체손님의 경우 정미재 대표(공일공 팔공공팔 0397)와 통화하면 예약도 가능하다니 관심있는 분들은 참조하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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