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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he 소리 Dec 28. 2023

시련이 기다리는 길목은 예고가 없다.

삶을 정리 정돈할 기회... 모든 걸 버려야 했다... page11

인생 가장 큰 시련 앞에 섰다.


하던 일을 정리하며

심적인 스트레스가 많을 때

갑자기 허리가 아파왔다.


이전에도

간간히 허리가 아파

병원을 찾아 물리치료를

받았던 경험이 있었지만

강도가 달랐다.


일에 대한 정리로 바쁘던 중이라

가까운 주변 마취통증의학과를 찾아

진료를 받고 3일 먹을 약을 타서 복용 후

시간을 내어 다시 방문을 했다.


예전 다니던 정형외과 병원에는

사람이 너무 많아

오랜 시간 기다려야 했기에

통증 치료 후에 방문할 생각으로

한번 더 약 처방을

받고자 들렀다.


이 선택이 잘못이었을까....?


담당의사는 약처방만을 원하던

나에게 간단한 시술로

통증이 나아질 수 있으니

주사치료를 하자고 권해왔다.


그날 중요한 모임에 시상자로

초대가 되어 아픈 허리가 많이

신경 쓰였던 차에 의사말에

어떤 시술인지 묻고 위험요소가

없는 단순주사라는 설명으로

잠시 생각한 끝에 시술을 결정했다.


허리에 잠깐동안의 주사로

시술을 마치고

집으로 가기 위해

엘리베이터를 탔다.

1층에 거의 도착할 때쯤

갑자기 어지럽더니

숨을 쉬기 힘든 쇼크가 왔고

정신을  잃을 듯 힘이 빠져 왔다.


죽음 앞에 섰다고 해야 할

살았어도 죽은 거와 같은

혼미한 상태 되었다.


그게 시작이었다.


쇼크로 인해 응급실이며 병원검사며

주사를 맞기 전 생활과 180도 다른

인생 최대의 시련이 다가온 것이다.


이후 원인불명의 수많은 부작용들이

나타났고 몸은 날로 쇠약해졌다.


허리가 아팠던 건 더 이상

문제가 아니었다.


잠을 잘 수도..

무엇을 먹을 수도.. 없었고

온갖 통증에 근육이 사라지면서

일어나 서 있기도 힘든 상태가 길어지며

알 수 없는 고통들로

괴로웠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힘든 것은

마음이었다.

평생 치열하게

워커홀릭이었다가

번아웃 왔고

한꺼번에 겹친 인생 악재에

내가 없으면 남겨질 아이들에 대한

책임을 다 하지 못한 회환 더해져

무너진 마음에 공황이 왔다.


매일이... 내리막이었고

숨 쉬기 힘든 하루하루였다.


각종 병원을 찾아 원인 찾아보

치료를 해보려 노력했지만

그조차 좋은 인연이 닿지 않았고

길을 잃은 채

발버둥 치는 시간이 이어졌다.



찾고 찾아 알게 된 물리치료 병원을

다니려고 새벽에 나선 길에

옆차선 차가 달려와

충돌하는 사고가 나던 날...

나는 더 이상의 동동거림을

멈추기로 결정했다.

뭘 해도 안 되는 때라는 직감이 들었다.

그때 나는 어느 시점

그 발버둥을 멈추었다.


하루하루 힘든 시간을 눈을 떠서

바라보는 것이 무척이나 고통스러웠다.

그렇게 칩거의 시간을 갖게 되면서

나는 스스로 현실의 세계, 사회로부터

모든 사회적 인간관계와 커리어로부터

자발적인 추방자가 되는 것을 선택하며

홀로 동떨어진 세계로 들어섰다.


지난 시간 동안의 나에게서..

치열하게 살아오며

쌓아 올린 모든 것들에서..

사람들에게서..

내가 원하고 꿈꾸던

모든 욕망과 희망들에게서..


나의 자의가 아닌

'시련'이라는 타의에 의해

그 모든 추구하던 것에서

떨어져 나왔다.


그때부터 겪게 되는

감정의 소용돌이는

지금껏 괜찮다고 의지로 눌러왔던

수많은 안 괜찮았던 감정들을

마주하게 만들었다.

눈떠 견디는 하루라는 시간이

공포로 다가왔다.


임없이 밀려드는 그 공포의 감정을

어느 순간 무심히 바라보았다.

우울함과 무기력함에 공포감까지

더해진 온전치 못한 나를...

그 감정들을 조금씩 무심히

바라보기 시작했다.


두려움에 잠식될 것 같은 공포의 정체는

죽음이.. 아니었다.

죽을 것 같은 시간 앞에 서서

내가 찾은 내 안의 대답은...

죽을 준비가 되지 못한 현실이었다.


살고자 만 치열하게 사느라..

죽을 것 같은 공포 앞에 서보니

사실은 아무것도 죽어도 되는 현실을

만들어 놓지 못했다는 그것이

나를 공포와 두려움에

떨게 했던 것임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전과 같지 않은

나의 현상태에 대한 인정을 하지 못하니

그 괴리감에 매일이 괴로움의 바다에

빠진 채 서서히 표류 중임도

자각하게 되었다.


그때 아직 성인이 되지 못한

두 아이들을 남겨두고

어미로서 내가 목표한 책임을

다하지 못한 것이

가장 마음을 아프게 했고

먹고 살만 해지는 좋은 상태에서

한꺼번에 찾아온 시련으로

그 낙오된 기분은 상상을 초월하는

고독함을 넘어선 우울감이었다.


너무나 열심히 그 길을

달려온 나에게 일어난 일을

쉽사리 인정하고 받아들일 수 없는

마음에는 여기저기 구멍이 난 듯

공허함과 허무감이 밀려들었다.


마이너스로 시작해 제로베이스에

이르러 치열하고 열심히 살아

드디어 로열층 아파트에서 삶을

재건 중이었는데

어느 날 예고도 없이 폭파된

충격이라 표현하면 될듯하다.



그때 1년 정도의 시간은 참담했다.


정말이지.. 외로웠고

고독했고.. 서글펐다.

매일이 두려웠고,

아득했고,

아이들을 바라볼 때면

가슴이 타들어가듯 아프고

서러웠다.


거친 풍랑이 덮친 시간_이미지 The 소리


온갖 슬픈 감정이 가슴을 가득 채운채

시간이 흐르는 동안..

어디에도 기대일 때가 없었다.


이제 막 고등학교 3학년이던 아들은

어느 한 밤 나를 부르더니

눈물을 뚝뚝 흘리며...

내 손을 잡고 말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는데.. 나.. 진짜 너무 마음이 아파요..

우리 엄마... 아직은 아닌데.. 내가 좀 더

능력이 있었을 때여야 하는데.....

미안해요..어무니..

어떻게 어무니를 구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그리고는.. 어릴 때부터

남자는 울지 않는다며

눈물이라곤 보이지 않던

아들은 굵은 눈물을 떨구며

내 손을 잡고 한참을 고개 숙인 채 흐느꼈다.


가슴이 메어져 왔다.

살아오면서 아이들 앞에서

부정적인 말이나

나약한 소리를

하지 않았던 나였다.

그러나 아들의 손을 잡고

그 어떤 희망의 말도 해주지 못한 채


"미안하다.. 아들..

엄마가... 미안해..

더 든든히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해"


그랬다.

정말 아이들을

멋지게 독립시켜

날아가게 해주고팠던

나는...

그걸 해줄 수 없어졌다는 좌절감에

마음이 무너졌고

아픈 몸에 마음까 아파진 스스로를

어디서부터 일으켜야 할지를

알 수가 없었다.


그런 아픈 엄마를 지켜보는

나의 아들.. 딸이

얼마나 마음이 힘들고 아플까를

생각하더 괴로워지는

악순환이 반복되었다.


정말 상태가 안 좋을 때는

고등학교 수학여행을 앞둔 딸아이를

그 3박 4일 후에

다시 볼 수 없을 거 같은

정도로 극도로 안 좋은 상태가 되어

응급실을 찾기도 했는데

검사를 받아도 뚜렷한 원인은

찾을 수 없다로 나오곤 했다.


그때 대학병원 의사가 했던 말 중에

시술받은 주사의 쇼크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지만 그로 인한

부작용이 여러 모습으로 나타날 수

있음을 언급하며 아마도

혼자 많이 힘든

시간이 올 수 있을 것이라

말해 주었다.


이후 참 많은 병적증상을 겪었고

힘든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어느 때는 이명이 시작되어

잘한다는 이비인후과를 찾아

할 수 있는 검사를 다 해봐도

원인불명으로.. 약처방과

익숙해질 것을 안내받기도 했다.


머리가 아파

잠을 잘 수가 없어

불면증에 시달리는 시간들도 이어졌다.


그렇게 수많은 다른 증상들이

일어났다 사라졌다를 반복했고

혼자만의 고통으로 견디어 갔다.


살면서

일찌감치 사람에 데고

돈에 대이고

혼자 두 아이 키우는 동안

고군분투하며 다져져

어지간한 어렵고 힘든 일

끄덕도 없었던 나였다.


수많은 난제들을 넘어서

드디어 만난 인생일로 성공도 맛보고

꿈꾸던 왕국의 모습이

거의 갖추져 갈 즈음

맞이한 시련의 웅덩이는...

지금껏 헤쳐 나온 어떤 것 보다도

그 깊이가 달랐다.


포기라는 이름은

배추 셀 때 외엔 써 본 적이 없던

나에게도

헤어 나올 수 없을 것 같은 무게로

포기를 선언하게

만들었다.


말로 다 할 수 없는

괴로운 시간이 이어지면서

나는 나를 포기했다.

외부에서 도와주겠다는 어떤 누구의

도움도 거부하며

내가 했던 말은...


"나는 나를 포기했어... 더 이상은

감당하지 않을래...

그러니 너도 나를 포기해.."

였다.



이미지.글_The 소리



모든 걸.. 내려놓기 시작했다.

정확히 말하면

내려놓을 수밖에 없어졌다고

느꼈고 하나하나 정리정돈을 해나갔다.


앞만 보고 살아오던 내가

이때 비로소 멈추어

현실을 살기 시작한 것이다.


타의에 의해서...

삶이 주는 시련을 통한 기회에 의해서...


그렇게 시련은 삶의 어느 길목에서

예고 없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다시 한번 나를 구해내야 했다.


그.. 좌절의 웅덩이에서

스스로를 끄집어 올려야 했다.


할 수 있는 게 딱 하나 있었다.


모든 것을 버리는 것.


가벼워져야 나올 수 있으니

지금껏 가진 아상을..

가졌다 생각한 모든 것에서

몸도 마음도 물질도 집착도

온전히 마주하여

쓰레기 버리듯

전부를 버리고

비워야 했다.


태어나 처음 맞이하는

지독히 고독한

기존의 틀에서 깨어나는

깨달음의 시간이 왔다.


내 안에 갇힌 나를

나조차 포기한 나를

다시 일으킬 비움의 시간.. 말이다.



이미지.글_The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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