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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없던, 2부 예식의 특별한 구성

우리가 만든 무대, 하객과 함께 채워갈 식순

by amy moong


우리가 상상한 2부는 1부와는 완전히 다른 결을 지닌 예식이었다.

전통을 약간 빌려왔던 1부와 달리, 2부는 처음부터 끝까지 오롯이 우리 머릿속에서 탄생한, 둘만의 특별한 식순으로 채워졌다.



— 우리 방식으로 새로 쓴, 두 번째 예식



같은 방식 속 작은 변주를 곁들인 입장

2부 입장에 대해서도 여러 아이디어를 떠올려보았지만, 결과적으로는 1부와 같은 방식으로 정리되었다. 화동이 앞서 입장하고, 신랑과 신부는 각기 다른 방향에서 차례로 등장해 중앙에서 마주하는 흐름으로 말이다.


화동 또한 1부에서는 꽃잎, 2부에서는 비눗방울을 상상했지만, 테무에서 구입한 버블건의 성능이 기대보다 미흡해 꽃잎으로 통일하기로 했다.


단, 입장곡은 달랐다. 2부에는 감미로운 로맨틱함이 배어 있는 [Stephen Sanchez - Until I Found You]를 택했다.


우리를 닮은 오프닝

2부의 흐름 속에서 가장 고민했던 건 1부와 달리 어떤 특별함을 담아낼 것인가였다. 그중 하나로 계획했던 게 바로 우리의 듀엣 공연이었고, 배우자의 피아노 취미를 바탕으로 함께 노래 부르는 장면을 떠올렸다.


곡은 처음에는 배우자가 예전부터 점찍어두었던 알라딘 OST를 부르려 했지만 너무 높은 음역대로 포기, 결국 Radiohead의 ‘No surprises’를 택했다. ‘현대인의 반복적이고 무의미한 삶에서 벗어나 어떠한 자극도 없는 조용한 삶을 바란다’는 의미를 담은 이 곡이 시골로 삶의 방향을 옮긴 우리의 삶과 묘하게 겹쳐졌다.


원래는 여러 악기와 함께 연주하는 합주곡이지만, 이날만큼은 배우자의 피아노연주가 돋보이도록 기타 한 대만 함께 연주하며 절제된 감정을 전해 보기로 했다.


신랑신부, 하객의 목소리로 엮은 서사

우리는 계속 기존의 정형화된 형식에서 벗어난 결혼식을 원했다. 이 순서도 그런 생각에서 탄생한 것이다. 사회자의 목소리로만 가득한 일반 예식이 아닌, 신랑신부 그리고 하객의 목소리가 함께 공명하는, 모두가 주인공인 예식을 꿈꾸며 말이다.


그래서 하객들을 향한 신랑의 인사말을 시작으로 서로에게 써 내려간 편지를 직접 낭독하고, 하객 한 분 한 분을 우리가 직접 소개하는 시간도 만들었다. 누가 누구인지 궁금했던 과거의 경험을 떠올리며, 소중한 시간을 내어준 그들에 대한 고마운 마음을 담아 이번엔 우리가 소개자가 되어보기로 했다.


사실 처음엔 우리의 연애 이야기, 결혼 준비 과정 등을 담은 토크쇼와 하객들이 직접 묻고 우리가 답하는 Q&A 순서도 구상했었지만, 아쉽게도 한정된 시간 안에 담아내기엔 조금 벅차 결국 제외하게 되었다.


가을을 담은 무대, 축복으로 이어진 선율

처음 생각했던 2부의 중심은 ‘공연’이었다. 음악을 즐기는 우리이기에 늘 꿈꿔왔던 순서가 배우자 주변 재주꾼들의 도움으로 더 풍성해질 수 있었다.


첫 시작은 바이올린을 전공한 배우자 누나의 바이올린 연주와 그와 어우러진 조카의 노래. 1부와는 다르게 가을과 어울리는 곡,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를 택했다.

다음으로 배우자 친구의 편지 낭독과 배우자 외삼촌의 축가, 그리고 배우자의 피아노 연주로 마무리하는 장면을 그려봤다. 배우자는 두 곡을 준비하기로 했고 예식 한 달 전부터 매일 피아노를 연습했다.


시골마을 밴드가 전하는 축하무대

축하공연에 이어 초대공연은 배우자가 취미로 함께하고 있는 지역 음악 밴드가 무대를 맡기로 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밝은 분위기의 곡들 3~4곡을 연주하며 자리를 더욱 따뜻하게 채워주길 바랐다.


마지막 피날레를 위한 숨 고르기

초대공연까지 끝난 후 마지막 클로징공연을 위한 5분 간의 휴식시간을 넣었다. 무대 정리와 의상 교체를 위한 시간이었다.


기억에 남을 피날레, 살사

결혼식의 마지막은 조금은 특별하게 마무리하고 싶었다.

1부와 달리 마지막 행진순서가 빠진 대신, 쿠바 여행에서 영감을 받은 ‘살사’ 공연으로 피날레를 준비하게 되었다. 갑작스레 결정했지만, 오히려 그 즉흥성 자체가 이 결혼식의 성격과 잘 맞아떨어지는 듯 했다.


도우미와 함께 완성한 클로징

모든 걸 직접 준비한 예식인 만큼 곳곳에서 도움을 주신 분들이 참 많았다. 그래서 그분들의 이름을 직접 호명하며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었다. 그분들이 조금의 뿌듯함이라도 느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말이다.


고민 끝에 떠오른 아이디어는 ‘웨딩쇼‘라는 타이틀과 어울리게, ‘뮤지컬 클로징’처럼 음악에 맞춰 도우미분들을 힘차게 소개하고 끝내는 것! 1부 예식의 입장곡이었던 Barry White의 ‘Love theme’에 맞춰, 무대 위에서 그들의 이름이 울려 퍼진다면 정말 임팩트 있겠다는 기분좋은 상상을 했다.


마지막까지 추억을 담아내다

마지막 사진촬영은 1부와 마찬가지로 동일한 지인께 부탁드렸다.

사실 개인적으로는 하객의 입장에서 예식이 끝난 후 사진 찍기까지 기다리던 시간이 꽤나 지루했던 기억이 있어서, 예식 중간에 사진촬영 순서를 끼워 넣어 보려고도 했지만, 흐름상 자연스럽지 않아 결국엔 마지막 순서로 정리했다.




순서 하나, 음악 한 곡, 무대 위 동선까지 — 작은 요소 하나도 직접 구상해 엮어낸 2부 식순은, 우리가 상상 속에서 그려왔던 결혼식의 모습이 그대로 현실이 된 순간이었다.


무대 위와 아래, 신랑신부와 하객의 경계가 사라진 그 시간들 속에서, 우리는 모두가 주인공이 되는 결혼식의 참된 즐거움을 온전히 누릴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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