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과 가족, 하객의 손길로 채운 흐름
예식 세부 시간을 구체화하고 나니, 우리의 결혼식을 러닝타임 안에서 ‘어떻게 밀도 있게 채울 것인가’가 본격적인 과제가 되었다.
예식 세부시간 짜기
예식 식순 짜기 ***
예식장 꾸미기
우리가 구상한 큰 그림은 비교적 명확했다.
— 1부는 전형적인 일반 예식, 2부는 공연 위주의 캐주얼한 예식
두 개의 서로 다른 결을 지닌 시간 속에서, 마음속에서만 그려오던 모습들을 마침내 현실의 장면으로 옮겨내야 할 때였다.
1부는 어르신들을 모시고 진행하는 자리인 만큼, 예의와 격식을 갖춘 전형적인 예식의 틀을 따랐다. 하지만 무조건적으로 따라 하기보다는, 전통을 조금씩 조율하며 우리 다운 색깔을 입혀보기로 했다.
촛불 점화 대신 ‘장작’ 점화
1부 예식의 첫 순서로는 일반적으로 많은 예식에서 흔히 하는 촛불 점화 대신, 숙소의 자갈마당에 마련된 불멍 자리에서 혼주어머님 두 분이 장작에 직접 불을 피우는 장면을 넣었다. 한낮의 햇살 아래 조심스레 타오를 장작불이 그 순간만큼은 한층 더 따뜻하게 밝혀주리라 상상하며.
화동과 함께, 하나로 향한 두 방향
우리에겐 비슷한 또래의 여자 조카들이 있었기에, 그들을 화동으로 앞세우기로 했다. 작은 손에 쥔 꽃잎을 조심스럽게 흩뿌리며 걸어 들어오는 조카들의 발걸음 뒤로, 신랑과 신부가 각기 다른 방향에서 입장해 무대 중앙에서 만나는 모습을 상상했다.
동시에 흐르는 입장곡은 배우자가 오랫동안 마음속에 품고 있던 Berry white - Love theme으로 선곡했다.
맞절과 서약, 진솔하고 담백하게
무대 중앙에서 서로를 마주한 우리는 사회자의 안내에 따라 맞절을 하고, 이후 혼인서약을 낭독하기로 했다.
혼인서약서는 당시 트렌드에 따라 일부러 유머요소를 집어넣어 억지로 재미있게 쓰기 보다는, 결혼 이후의 삶과 역할에 대한 서로의 진심을 짧지만 담백하게 풀어내기로 했다.
작은 손으로 건네는 반지
처음엔 반지를 배우자가 직접 지니고 있거나 사회자가 전달하는 방식을 고려했지만, 생각 끝에 각자의 조카가 손에 들고 다가오는 모습이 훨씬 따뜻한 그림이 되리라 판단했다. 이렇게 우리 예식에서 조카들은 가장 귀한 조력자가 되었다.
하객의 목소리, 축복이 머문 말들
우리는 이 예식에 우리와 사회자의 목소리로만 채워지기를 바라지 않았다. 그래서 하객들도 함께 하는 결혼식을 상상하며 예천에 계신 배우자의 지인 두 분께, 짧은 축하 인사를 부탁드렸다.
성혼선언문은 낭독이 어려운 양가 아버지 대신, 배우자의 친구가 사회자로서 또렷하고 깔끔하게 낭독하기로 했다.
한 사람 한 사람, 마음을 담은 소개
사실 어느 결혼식에서도 본 적 없는, 하객 소개 시간을 넣었다. 소규모 예식의 이점은 바로 ‘모든 하객과 눈을 맞출 수 있는 거리감‘— 이 아닐까. 그래서 우리는 소중한 시간을 내어준 하객 한 분 한 분을 소개하며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싶었다.
1부는 어르신들이 많고 배우자 측 지인이 대부분이기에 사회자가 대표로 소개하는 방향으로 생각했다.
가족이 선물한 공연
어르신들을 모신 자리이기에 젊은 사람이 부르는 이름 모를 화려한 축가 대신, 배우자 누나의 바이올린 연주와 조카의 동요 공연으로 축하의 무대를 꾸미고자 했다.
행진, 한 바퀴 돌며 건네는 인사
평소엔 ‘행진’이라는 것에 큰 의미부여를 한 적이 없었지만, 예식을 마무리 짓는 상징적인 장면이 필요했다.
좁은 공간과 버진로드가 따로 없는 구조 속에서 어떻게 행진할지가 다소 난감했지만, 오히려 그 구조를 살려 하객 한 분 한 분과 눈을 맞추며 하객들이 앉아있는 자리를 한 바퀴 도는 행진을 택했다.
그 뒤로 흐르는 곡은 라라랜드 OST인 Another day of sun으로 선곡했다. 자유롭고도 낭만적인 리듬이 그 장면과 아름답게 겹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사진도 우리 방식대로
사진촬영은 아는 지인께 부탁드렸고, 논을 배경으로 한 단체사진을 계획했다. 아무래도 단차가 없어서 전원이 한 컷에 들어갈지는 미지수였지만, 그건 그때 상황에 맞춰 유연하게 대응하기로 했다.
우리는 일반 예식처럼 가족부터 촬영하는 순서를 따르지 않고, 먼저 하객들의 사진을 찍은 뒤 가족은 나중에 여유롭게 촬영하기로 했다. 대부분의 손님들이 이미 식사를 마치고 오신 터라, 사진을 찍은 후 곧장 편히 귀가하실 수 있도록 배려한 결정이었다. 가족은 어차피 더 길게 머물다 갈 예정이었으니까 말이다.
예식 후 잠시 숨 고르기
1부 사진촬영까지 마치고 나면(14:00 예상), 2부 예식 전까지(15:30) 약 1시간 반의 휴식시간을 가지며, 2부 하객들을 위한 다과와 도시락, 음료, 안내문 배치, 공연 리허설 등을 준비하며 다음 무대를 위한 조율의 시간을 갖기로 했다.
돌아보면, 1부의 모든 순간은 단순한 절차를 넘어 우리의 마음과 이야기를 담아낸 장면이었다.
격식과 자유로움이 함께 어우러진 그 시간 속에서, 우리는 하객들과 더 가까이 호흡하며 ‘우리다운 결혼식’의 첫 장을 열어갈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