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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국주 Jan 14. 2023

까짓 거 유도!! 해보지 뭐!!

어느 날 스승님께서 말씀하셨다.


 “다음 달부터 우리 체육관이 유도장으로 바뀝니다.”


ㅇㅇ. 나는 그렇게 유도를 시작했다.

나름 고민 많이 했다. 라고 하면 거짓말이다. 아무 생각 없었다. 그냥 우리 체육관이 유도를 한다니 나도 해야겠구나. 라고만 생각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생각할 줄 알았다.


 “어디로 갈 거야? “


그래서 체육관 친구가 이렇게 물었을 때 당황했다.


“어디로 가다니? 나 어디 안 가는데? “

“그럼?? 유도하게?”

“어…. ”

“왜?? “


왜냐니… 그야 당연히.


“우리 체육관이 유도장으로 바뀌니까? “


그 말을 들은 친구의 눈은 ‘아이고… 이 답답하고 미련한 인간아.’ 라고 말하고 있었다. 그리고 실제로 입으로도 그렇게 말했다.


“아이고… 이 븅신아. 넌 그럼 체육관이 복싱장으로 바뀌면 복싱하고, 레슬링장으로 바뀌면 레슬링 하려고 했냐?”


븅신이라니…

나의 진정한 번뇌는 그때부터 시작되었다.

왜냐하면 나는 진짜로 그러려고 했기 때문이다.


내 나이 불혹, 머리가 좋은 편은 아니지만 호구짓을 할 만큼은 아니라고 생각했건만! 지금 유도를 선택하면 나 진짜 호구가 되는 것인가. 잘하는 종목이 버젓이 있는데… (맨몸운동 잘하는 편) 그냥 그거나 더 집중할걸 그랬나. 머슬업만 성공하면 바로 상위 1프로 등극인데? 나 이거 잘못 생각하는건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이 마흔이 넘어서 새로운 곳에서 격투를 시작하려면 그 문턱이 높을 것이라 생각했다. 이렇게 멍석이 깔렸을 때 해보는 것도 좋겠다 싶었다. 그래, 이번 기회에 전국가대표한테 유도 한번 배워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생각해 보면 너무나도 좋은 기회 아닌가. 떠다 먹여주는 입문과 가르침 그리고 훗날 소중한 추억이 될 경험…


이고 나발이고 진짜 이유는,

우리 체육관을 떠나기 싫어서, 스승님이랑 울 체육관 친구들과 헤어지기 싫어서였다. 나에겐 사람이랑 정 떼는 것보다 운동 종목을 바꾸는 것이 더 쉬웠다.

어. 나는 그랬다.

그런데 머리가 희끗희끗해지는 이 나이에 고작 사람이랑 정 떼는 게 힘들다는 이유로 몸뚱이가 땅바닥에 패대기 쳐지는 격투를 배우겠다니… 내가 생각해도 남들에겐 씨알도 안 먹힐 이유였다. 하여 누가 물어보면 훨씬 있어 보이는 저 표면적인 이유를 댔다.


“야! 떠먹여 준다는데!! 이럴 때 아니면 언제 이런 거 해보냐?! 혹시 알아?? 의외로 잘해서 내 주종목 바뀔지?” (어, 해보니까 그럴 일 없음 ㅋㅋ)


그래, 까짓 거 유도! 해보지 뭐!!

어깨에 오십견이 오거나, 등에 담이 오거나, 아니면 처발리고 처발리다 영 눈물 나고 서러워서 못 해 먹겠으면 그때 그만둬도 될 일 아닌가.


그렇게 마음을 다잡고 며칠이 지났다.

체육관에서 운동을 하고 있는데 스승님께서 문 열고 들어오시는 분께 인사를 하셨다.


“00회원님, 체중이랑 키가 어떻게 되시죠?”


잠깐만요, 스승님?! 인사가 이상하잖아?!

아니나 다를까 그분이 몹시 화를 내셨다.


“아니, 왜 사람을 보자마자 체중을 묻고 그래요?!?“

“아… 도복을 맞추려면 사이즈가 필요해서요.“


그랬더니 그분의 화가 가라앉았…다?!


 “아하! 그런 거예요?? 난 또 나 살쪘다고 구박하는 줄 알았지. 키 000 체중 00 에요.”


응? 와… 저렇게 넘어간다고???

그러거나 말거나 스승님께서는 몹시 소중한 정보를 받아 챙겨서는 유유히 사라지셨고, 잠시 후 퍼뜩 정신을 차리신 그분이 나에게 물으셨다.


 “근데… 나 유도하냐?


그니까요. 그걸 왜… 나한테 물으십니까?

그분은 그렇게 유도를 시작하셨다. 나로서는 다소 위로가 되는 순간이었다. 어쨌든 저분에 비하면 나는 그래도 이유가 있는 편이니까.


훗날 그분은 우리 체육관의 에이스가 됩니다.

개.간.지
시작하게 된 계기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 과정이 즐거움으로 충만하다면 그걸로 충분합니다. 결과까지 좋다면야 더할 나위 없겠지만 이 에세이는 결말이 정해져 있지 않아요.

주야장천 처발리더라도 독자 여러분만 즐거우시다면 대충 해피엔딩으로 치고 계속해보겠습니다.


40대 전업주부의 유도일기 시작합니다.

재미있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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