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국주 Dec 25. 2023

올해 크리스마스 선물은 산타 말고 아빠가 주세요.

“산타가 없는 거랑 우리가 선물을 못 받는 거랑 무슨 상관이에요? 어차피 선물은 아빠가 주시잖아요.“


그렇다. 녀석들은 더 이상 산타를 믿지 않는다.

현재 녀석들이 9살, 12살이니 어찌 보면 그것이 당연하겠지만 사실 놈들은 아주 진작부터 믿지 않았다.


대략 3년 전이었다.


“엄마! 산타는 17층까지 어떻게 올라오죠?”

“어… 흠… 벽 타고?? 일종의 클… 라이밍이랄까?“

“말도 안 돼요. 산타 할아버지가 우리 집만 가는 것도 아니고!! 이 많은 집을 전부 벽 타고 다닌다고요? 힘짱인 엄마도 창문으로 출퇴근은 아마도 불가능하지 않을까요?“


아마도 불가능한 게 아니라 그냥 불가능하다. 이것들아.


“아… 산타에겐… 루돌프가 있잖아.“

“엄마!! 그게 제일 문제예요!! 코가 빨갛단 이유로 왕따 당하는 친구를 가스라이팅해서 썰매 셔틀을 시키는 거잖아요!!! 그거(?) 되게 나쁜 할아버지 아니에요?“


??!!!???? …… 와??? 듣고 보니 그렇네…??

산타 이 노인네 나쁜 노인네네… 하…


“게다가 엄마는 남자라도 울고 싶을 땐 울어도 된다면서요!! 근데 산타 할아버지는 울면 선물도 안 준데요!! 선물로 협박해서 애들을 말 잘 듣게 만들려는 수작이에요. 그것도 가스라이팅이라고요.“


그래… 우리가 그분이랑 가스라이팅… 아니, 교육관이 많이 다르구나. 인정!!! 그런데 늬들… 그거 알아? 산타가 없으면 선물도 없단다. 때론 진실을 알아도 모른 척해야 챙길 것을 챙길 수 있는 거야. 그것이 인생이란다.


사실 이쯤 되면 놈들에게 산타의 진실을 알려줘도 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딱 하나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었으니…. 놈들이 학교에 가서 떠벌릴까 봐 그것이 무서웠다. 놈들이라면 분명 앞뒤 다 짤라먹고 이렇게 말할 것이 뻔했다.


“얘들아!! 우리 엄마가 그러는데 산타는 없데! 게다가 그 새끼 가스라이팅 쩌는 완전 나쁜 개새끼래!!“


와하?! 생각만 해도 오금이 저리고 소름이 돋는다.

전국의 수백만 부모님들은 아이들의 동심을 지키기 위해 ‘선물 몰래 사기, 좁은 집 어딘가에 선물 꽁꽁 숨겨두기, 아이들이 잠들기 까지기 다렸다가 머리맡에 선물 두기’ 등등… 매해 크리스마스 때마다 손에 땀을 쥐는 미션 임파서블을 찍는다. 그런 부모님들의 공공의 적이 되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당시 나는 ‘착한’ 산타의 존재를 필사적으로 우길 수밖에 없었고 표면적으로는 내가 이긴 듯 보였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녀석들은 그냥… 산타를 믿는 척하는 쪽이 지들한테 이득이 된다고 판단했던 것 뿐이었다.



그랬던 녀석들이 올해 입장을 바꾸었다.


“아빠! 올해는 산타 대신 아빠가 선물 쥬세요.“

”… 왜지? 그 할배의 업무를 왜 나한테 떠넘기는 거지?“

“저 사실은 산타 없는 거 알아요.“


어허… 지금까지처럼 그냥 산타를 믿는 척하면 계속 선물을 받을 수 있건만… 왜때문인지 녀석은 산밍아웃을 함으로써 자신의 선물을 스스로 포기하는 듯 보였다?!? 도대체 왜지??


신랑이 말했다.


“산타가 없으면 선물도 없어. 지금까지 없는 것을 믿었다면 미신이나 마찬가지고.“


“그건 미신이 아니라 그냥 문화예요.”


아하… 녀석은 선물을 포기한 것이 아니었다. 굳이 산밍아웃까지 한 특별한 이유가 있었다?!


“산타는 코카콜라가 만든 이미지 형상일 뿐이야. 그저 상술에 불과하다고.“


“제가 선물로 코카콜라를 달라는 것도 아닌데 상술이랑이랑 무슨 상관인가요?“


오… 이유는 몰라도 승패는 알 수 있었다. 나는 부모의 권위를 지키기 위해 그를 말려야 했다.


“여보, 도통이랑 그만 싸워요.“

“여보야… 내가 거의 다 이겼는데 왜 말리는 거야?”


아니에요. 여보… 당신이 거의 다 졌어요. 그러니까 뭔진 몰라도 그냥 놈이 원하는 걸 넘겨주고 여기서 멈추세요.


그러거나 말거나 그는 이 결투를 진행시켰다.


“그래. 이것이 문화라고 치자!! 하지만 아이가 울면 선물을 안 주고, 착한 아이에게만 선물을 주는… 이게 문화라면!! 집안 사정상 선물을 받지 못하는 아이들은 그 원인이 자신에게 있다고 생각할 수 있고!!! 아니면 자기 선물이 친구보다 안 좋을 경우 자기가 나빠서 그런 거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이렇게 책임을 아이에게 전가하는 이런 무책임한 문화는 사라져야 하는 거 아닐까?“


“아빠가 그랬잖아요. 자본주의가 공산주의를 이긴 이유는 자본주의가 완벽해서가 아니라 그저 지속적인 수정이 가능해서 라고!! (진짜로 지네 아빠한테 배움) 그렇다면 수정해야 할 부분이 있다면 수정하면 되는 일이잖아요! 굳이 없앨 필요까진 없다고요. 그리고 전 그렇게 거창한 것을 원하지도 않고, 설사 친구가 나보다 더 큰 걸 받았다고 해도 자책같은 거 안 해요. 아빠가 주시는거니까요. 굳이 아빠가 안 주시겠다면 그건 속상하겠죠.“


거 봐요… 내가 뭐랬어요. 니가 진다고 했잖아요.


“… 어…… 그래서 넌 뭐가 받고 싶은데? “

로벅스요.”


그렇다. 놈이 산밍아웃까지 해가면서 아빠에게 직접 선물을 요구한 그 이유!! 그것은 놈이 원하는 선물이 산타가 줄 수 없는 선물이기 때문이었다. 즉 현물이 아닌 무엇… 바로 데이터, 사이버 머니, 다시 말해 놈은 게임 속의 현금을 원했던 것이었다. 이것을 산타에게 달라고 하자니 지가 생각해도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하여 녀석은 올해 산밍아웃이라는 도박을 했고 당당하게 이겼다. 그리고 우리는 또 졌다.


내 신랑은 어젯밤 캐롤을 들으며 아들들에게 로벅스를 결제해 줬다. 이제 더 이상 임파서블을 찍지 않아도 됨에 감사하며… 쓰디쓴 1패와 함께…


사랑합니다. 우리의 영원한 산타님.

근데 너희들 그거 알아??

사실… 너네 아빠는 산타가 맞아…


<우리 아빠는 위대한 해적> 이라는 동화책이 있어요. 이 책을 아이들에게 읽어주다가 너무 펑펑 울어서 끝까지 못 읽어줬던 기억이 있습니다. 지금도 그 책을 읽으면 웁니다. 하하…

이 세상 어느 영웅이 우리 아빠들보다 더 위대할까요.
이전 03화 오해하지 마세요!! 우리 엄마 연약해요!!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