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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국주 Jan 01. 2024

누가 그래? 육아가 전쟁이라고???

“엄마!! 쩌기 전투기!!!”


뭐? 전투기?? 에어쇼 연습하나??

아직 에어쇼할 때가 아닐 텐데?? 아니나 다를까 하늘 위로 생소한 모양의 비행기가 한대 떴다. 아니, 다섯 대가 떴다. 아니 스무 대가 떴다?? 어?? 비행기가 왜 이렇게까지 많이 뜬거지? 라고 생각한 순간 집안의 모든 핸드폰에서 재난 알람이 울리기 시작했다.


경기 북부 지역에 경계경보 발령. 국민 여러분께서는 대피할 준비를 하시고, 어린이와 노약자가 먼저 대피할 수 있도록 해주시기 바랍니다.


어… 어?? 오발령이겠지? 저번에도 이런 비슷한 문자를 받은 적이 있으니까… 라고 생각하던 찰나 가오리 모양으로 비행하던 전투기들의 엉덩이에서 일렬로 폭탄이 떨어졌다! 어??? 재난 영화와도 같은 이 비현실적인 장면에 눈동자가 얼어붙어 멍하니 하늘만 올려다보고 있는데 방에 있던 신랑이 뛰쳐나와 도통이를 들쳐메면서 말했다.


“국주야!! 막냉이 손 꼭 잡고 뛰어!!“


본능적으로 백팩에 캔과 과자를 쓸어 담았다. 그리고 막냉이 손을 그러잡고 뛰쳐나갔다. 대문을 나서보니 이미 철근만 겨우 남아있는 건물들이 여럿 보였다. 그리고 몇 발자국 못 가서 동네 입구가 막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국적을 알 수 없는 제복을 입은 군인들이 길목마다 막고 있었다. 확실한 건 그들이 우리나라 국군은 아니라는 것이었다. 지들끼리 뭐라고 씨부리긴 하는데 어느 나라 말인지도 알 수 없었다.


그때 문득 떠오른 생각 하나…


‘우리가 늬들이 누군지는 알 수 없어도 늬들이 미국이

누군지는 알겠지? 이러는 걸로 봐서 미국이랑 그다지 친하진 않은 것 같지만 그래도 미국이 무섭기는 할 거 아냐? 그러니까 미국으로 바로 안 가고 우리나라 와서 이 지랄하는 거 아냐?? 그지?‘


“여보야… 그… 여보야 2년 전에 미국 회사에서 일했던 사원증 있죠? 그거 꺼내봐요… 저 사람들에게 우리 미국 회사에서 일한다고 말해봐요.”


하… 진짜 비굴하다. 비굴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아이들을 데리고 일단 여기를 벗어나야 했다. 그는 군인들에게 사원증을 보여주면서 말했다.


“I work for an American company.”


잠시 정적…

등에 땀이 한 줄기… 두 줄기… 흘러내리고 막냉이 손을 쥐고 있는 내 손바닥이 녹은 버터를 바른 듯 미끈해졌다. 그들은 그의 사원증을 보며 뭔가 이야기를 나누더니 그것을 직급이 더 높아 보이는 이에게 보여줬다. 그러자 그 직급이 높아 보이는 이가 고개를 까딱했고 우리는 그 고갯짓으로 쉽게 풀려나는 듯 보였다. 그렇게 막냉이 손을 잡고 나가려는데 미끄덩하며 아이의 손을 놓쳐버렸다. ‘아… 이런… 무슨 손바닥에 땀이 이리…’ 라고 중얼거리며 아이를 확인했는데… 어?? 넌 누구지? 나는 모르는 아이의 손을 쥐고 있었다. 어? 어??? 그럼 우리 막냉이는? 내 새끼는 어딨는거야?? 나는 미친년처럼 고개를 휘저으며 막냉이를 찾았다. 절대로 아이 없이는 갈 수 없었다.


“막냉아… 막냉아… 어딨어?? 너 어딨어?“


그때 내 목소리를 들은 막냉이가 자전거 거치대 뒤 화단에서 사슴처럼 튀어나와 반대 방향으로 도망갔다. 그것을 본 군인들은 막냉이에게 총구를 겨누었고 나는 혼신의 힘을 다해 뛰쳐나가서 아이를 잡고 감싸 안았다.


“… 우린 미국 회사에서 일해요…”


이 말만 반복했다. 이 말만 반복할 수밖에 없었다.

더럽고 비굴하고 비참해도 어쩔 수 없었다. 이 ‘American’이라는 단어는 우리에게 생명줄이었다. 살기 위해 아니, 내 새끼를 살리기 위해… 사이비 종교에 미쳐버린 불쌍한 신도들이 그러하듯 저 말만 미친 듯이 중얼거렸다. 그때 신랑이 나에게 다가와 말했다.


“여보야… 난 잠깐 군부대 좀 다녀와야 할 거 같아.”

“왜?“

“내가 미국회사에서 개발 일 한 거 때문에…. 뭘 좀 도와달래.“


뭐? 도와? 누굴 도와? 쟤네를? 적군을? 쟤네가 누군 줄 알고?? 그리고 뭘 시킬 줄 알고?


“싫어. 가지 마. 아니, 나도 같이 가.”

“여보야… 넌 애들을 생각해야지. 친정에 내려가있어.”


지금 무슨 수로 친정을 간단 말인가. 저 군인들은 도처에 깔려있고 주유소는 다 터졌고 차들은 뒤집어져있고 도로는 전부 깨져있건만… 하지만 그의 말은… 그저 아이들을 데리고 도망가라. 이 뜻이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우리 아이들을 살려달라. 이 말이었다. 목구멍에서 춤추는 칼날들이 올라오는 말들을 죄다 찢어버렸다. 나는 아무 말 없이 양손에 아이들 손을 잡고 뒤돌아서 걸었다. 인사도 없이… 어쩌면 이것이 그와의 마지막일지도 모르는데…


“엄마… 아빠는?”

“응… 아빠는 일 좀 하고 온데.”

“언제?”

“금방…“


거짓말이었다. 나도 모른다. 진짜로 올 수 있을지조차…

그렇게 걷고 또 걸었다. 눈에 띄지 않도록 길이 아닌 곳으로 걸었다. 숨어서 걸을 수 있는 곳만 골라 다녔다. 여기저기 터진 자동차의 부품들이 널려있었고, 아주 가끔… 찢긴 사람 신체의 일부들도 보였다. 아이들이 그걸 봤으면 필시 난리가 났을텐데 조용한 걸 보니 못 본 듯했다. 아니면 길거리에 찢긴 사람의 사지보다 자신들이 붙잡혀서 저렇게 될 수 있다는 공포가 더 컸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그가 아까 쥐어준 미국 사원증을 다시 더듬어보았다. 지금은 이것이 금보다 귀했다. 그렇게 걷고 걷고 걷다 발이 부르틀 때쯤 문이 다 찌그러진 허름한 가건물을 발견했다.


“엄마… 너무 힘들어.”

“배고파…”

“우리 저기 들어가자.”


그거 가택침입인데…

지금은 그런 걸 따질 때가 아니었다. 꼴을 보아하니 주인도 없어보였다. 아니, 어제까진 있었어도 지금은 없을 것이다. 지금 우리 집처럼… 반드시 그래야만 했다.


나는 슬쩍 문을 열고 안을 살펴보았다. 역시 아무도 없었다. 아이들을 안에 집어넣고 우그러진 문을 억지로 닫아서 자물쇠를 걸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싱크대 딸린 방 한 칸에 화장실 하나… 화장실은 구식인 계단 식이었다. 화장실에서 나는 구린내가 방안을 안개처럼 덮었다. 그리고 밥솥에는 하루 정도 지난 누런 쌀밥 조금과 참치캔 여러 개… 그리고 쌀통에 쌀 조금… 이게 어디냐. 이 정도면 여기 며칠 있어도 될 것 같았다.


배를 채우고 휴식을 취한 아이들이 집안을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조용히 하라고 하기엔 간헐적으로 들리는 비행기 소리와 폭탄 소리가 더 컸기에 그냥 뒀다. 그때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어이… 성님… 저 선규여… 성님 근데 벌써 왔슈? 거서 푹 쉬고 낼 오신담서?“


순간 우리 셋은 얼어붙었다. 어쩌지…?

얼른 주위를 둘러보았다. 오래된 장식장, 위에 티비.. 옆에 가족사진… 할머니랑 할아버지 사진… 아하! 할머니가 계시구나. 그때 철컹철컹 문을 열려고 시도하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황급히 목소리를 한껏 깔고 말했다.


 “예… 저만 먼저 왔어유…“


10초의 정적…


“… 어… 저…. 근디 누구시래유?“


하… 할머니 계신 거 아니었어? 씨바… x됐다.

에라 모르겠다. 도대체 이 성님은 어디서 푹 쉬다가 내일 오신다 했을까…?? 상상력을 발휘해 보자. 아까 본 이 동네 풍경들… 간판들… 아!! 간판?!?


“선규씨… 벌써 그리 깜빡깜빡 하시면 어쩐데요!! 저 그때 그 장미다방…”


“아… 아?? 아!! 아우… 알았슈… 그럼 나는 가유…“


아니, 뭐?? 진짜?? 젤 멀쩡해 보이는 간판 이름을 댔을 뿐인데…? 나는 어르신들이 자기 자신의 기억력을 믿지 못하는 점과 그래서 사람을 기억 못 했을 때 느끼는 미안한 감정을 조금 이용했다. 실로 도박이었는데… 이것이 통할 줄이야. 그나저나 선규씨는 지금 전시 상황인데 대체 뭘 아셨다는 건지… 어째서 당신들만 평화로운 건지…?


방금 선규씨와의 대화를 곱씹어보았다.

선규씨 말대로라면 여기 사시는 성님은 어디선가 푹 쉬고 내일 올 것이다. 만약 살아있다면 말이겠지만 이곳 상황 보아하니 성님은 살아있을 확률이 컸다. 그렇다면 우리는 내일이 오기 전에 여기를 나가야 한다. 그 말인즉슨 내 아이들을 다시 저 불바다 속으로 몰아넣어야 한다는 뜻이었다.


아니면… 그게 아니라면…

아이들을 위해서 이 집을 차지하는 방법도 있었다. 물론 도덕적이지도 않고 심지어는 법에도 어긋나겠지만… 지금은 전시 상황이 아닌가? 법 같은 건 필요 없고 사람의 목숨이 떨어지는 것이 가을철 낙엽 떨어지는 것보다 더 쉬운 때이다. 그저 폭탄 맞아 죽은 것처럼 꾸며서 사지를 잘라서 길에 뿌리면 될 것이다. 아까 본 그 시체처럼… 설마 내가 노인네 한 명 못 이기겠는가?


아니면… 살인이 힘들면… 여기서 또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을 것이다. 이 노인네와 함께 살아갈 수 있는 방법… 뭐… 가능하지 않을까? 지금은 전시 상황인데…


그렇다. 나는 점점 괴물이 되어가고 있었다.

아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는데… 전쟁이 터지고 괴물이 되기까지 24시간이 채 걸리지 않았다. 나는 아이들을 위해서라는 명분으로 아이들 앞에서 살인을… 또는 부정한 짓을 저지를 생각을 서슴없이 하고 있었다. 전시 상황 돌입한 지 반나절 만에 나는 괴물이 되어버렸다. 시간이 더 흐르면 이보다 더한 짓들도 할 것이다. 그러고도 내 아이들을 지키지 못할 확률이 컸다. 그렇게 되면 내 인간성이 조금이라도 남아있을까? 아니, 어쩌면… 이 전쟁이 계속된다면 나는 어쩌면… 나를 위해 아이들까지 포기할지도 모른다. 그 무엇도 장담할 수 없다.


그래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은 아니다.

사람이기를 포기하기에 반나절은 너무 빠르다. 조금만 더… 적어도 오늘 하루만이라도 인간으로 살아보자.


날이 밝자마자 아이들 손을 잡고 그 집을 나왔다.

냄새나고 안락한 보금자리를 뒤로하고… 저 멀리 동쪽 하늘에 퍼지는 새빨간 빛은 이제 막 떠오르는 태양의 흔적일까 아니면 이제 막 떨어지는 폭탄의 잔상일까…


그때 또다시 경보음이 울렸다.


아니, 알람이 울렸다.

나는 벌떡 일어났다. 어??? 아이들의 아침을 챙길 시간을 알리는 모닝 알람이었다. 침대 위에 멍하니 앉아서 상황 파악을 했다. 그것이 꿈이었다는 사실을 알 때까지 약 10분 정도 걸린 것 같다. 그렇다. 꿈이었다. 꿈인지 알고 나서도 긴장이 풀리지 않았다. 사지는 오그라들어 있었으며 숨은 빨랐고 손바닥은 땀으로 미끈거렸다.


약 8년 전… 진심으로 육아가 전쟁같다고 생각했던 시절 ㅋㅋ

고작 반나절의 전시 상황… 참으로 x같는 꿈이었다.

그리고 그날 아이들을 늦게 깨우고 말았다.


“엄마… 왜 이렇게 늦게 깨웠어요? 지각하겠어요.”

“미안… 엄마가 악몽을 좀 꿔서…”

“뭔진 몰라도 개꿈이에요. 신경 쓰지 말아요.“

“아냐… 그래도 혹시 모르니 오늘 하루 조심해.”

“…… 무슨 꿈꿨는데요?”

“전쟁 나는 꿈??”

“어제 자기 전에 무슨 책 읽었는데요?”


아… 난 그냥 <너무 시끄러운 고독>을 읽었을 뿐인데…? 아하…?!?


“엄마… 자기 전에 이상한(?) 책 읽지 말아요.“


그래… 그래서 내가 전쟁 나는 꿈을 꾼 거구나. 그것도 40년대식의 전쟁꿈을… 전시 작가들의 책 좀 작작 봐야겠다… (근데 전시 작가들의 작품이 잼난건 어쩔 수 없다.) 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집을 나서려고 문을 열던 도통이가 갑자기 뒤돌아서서 말했다.


“엄마… 이렇게 학교 지각이나 걱정하는 삶이 얼마나 편안한 삶인지 이제 알겠어요? 이제 육아가 전쟁이란 말은 넣어두세요.“


아?? 뭐지? 꿈은 내가 꿨는데 왜 깨달음은 니가 얻은 거지? 그리고 나 요즘 쟤한테 왜 자꾸 꾸지람 듣는 기분인거지?


누가 그랬어? 육아가 전쟁이라고??


ㅇㅇ. 내가 그랬음… 그것도 브런치 북 제목으로…
이번 회차에서 제가 제일 싫어하는 ‘아 쉬펄 꿈이었네.’ 결말을 시전 하긴 했지만, 오랜만에 에세이가 아닌 픽션을 쓰는 기분이라 재미있었어요.

그리고 실제로 저런 꿈을 꿨습니다.

꿈이긴 하지만 실제로 겪은 내용이라 픽션이라고 해야 할지 에세이라고 해야 할지 애매하네요.
어쨌든 재미있으니 종종 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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