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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국주 Dec 11. 2023

아들! 피자를 먹으면 턱걸이를 잘 한데!?

라고 극T 성향의 아들에게 말했다.

“고르곤졸라를 먹으면 턱걸이가 늘어요.”


이게 무슨… 개뼉다구를 먹으면 글이 잘 써진다는 말 같은 소리인가?!? 피자를 먹으면 체중이 늘고 체중이 늘면 턱걸이가 줄어드는 것은 우리 집 막냉이도 아는 사실이건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 비이성적인 발언을 그냥 넘길 수 없었던 이유는 저 말을 한 사람이 머슬업 (턱걸이보다 상위 동작) 국내 1위!! 라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곧 근거고 나발이고 그저 이 기회를 틈타 고르곤졸라를 주기적으로 먹어대는 고르곤파가 우후죽순 생겨나기 시작했다. 이는 머슬업 1위라는 명성을 업은 설득력 때문이라기보다는 그저 고르곤졸라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좋은 핑곗거리를 얻어서 몹시 신났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곧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고르곤파 멤버들의 턱걸이가 비약적으로 늘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자 곧 고르곤졸라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까지 하나둘씩 고르곤파에 합세하기 시작했다. 그들의 이성은 아니라고 말하고 있었지만 눈앞에서 실제로 벌어지는 현실까지 부정하지는 못했다.


그리고… 곧 후발주자 친구들의 턱걸이 수행능력까지 늘어나기 시작했다.


이쯤 되니 나로서도 고르곤졸라와 턱걸이와의 인과관계를 마냥 부정할 수만은 없게 되었다. 그렇다고 꿀 말고는 내세울 것이 없는 고르곤졸라를 무턱대고 마구 막어댈 수도 없었다. 그것은 도저히 내 취향이 아니었다. 하여 적당히 타협해서 불고기 피자를 먹기로 했다.


그러나 불행히도… 아니, 당연하게도 내 턱걸이 실력은 전혀 미동이 없었다. 거기서 퇴보나 안 하면 다행인 상황이었다. 그러자 고르곤졸라의 가장 큰 수혜자… 고르곤파 수장이 말했다.


“언니, 그건 고르곤졸라가 아니잖아요.”


그렇다. 왜때문인지 반드시 고르곤졸라여야만 했다.


턱걸이와 고르곤졸라의 상관관계를 도저히 이해할 수도, 납득할 수도 없었던 나는 좋아하지도 않는 음식으로 칼로리… 아니, 희망을 채우자니 기가 찼다.


이게… 꿀호떡이랑 뭐가 다르단 말인가!!!!


그쯔음 고르곤파는 세력을 키워 하이에나마냥 고르곤만을 찾아 사냥하는 고르곤단을 결성하기에 이르렀다. 그들은 턱걸이 맹훈련이 끝나고 나면 약속이나 한 듯 고르곤을 찾아 헤매었고 두당 1판을 처리하는 막강한 기량을 발휘했다. 피자집 사장님은 12월 한파에 반팔을 입고 울퉁불퉁한 팔뚝으로 고르곤들을 판째로 뜯어먹는 우리를 신기함과 존경이 뒤섞인 눈빛으로 훔쳐보았다. 대세를 거스를 수 없었던 나 역시 어느새 그중 하나가 되어있었다. 하지만 그들의 막강한 기량을 따라갈 수 없었던 나약한 나는 늘 제일 먼저 포기 선언을 했고 그때마다 ‘다이어트하지 말라.‘ 는 말을 들었다. 고르곤을 그렇게 뜯어먹고도 다이어트 금지 명령을 들으니 참으로 혼란스러웠지만 집단이 집단인지라 대충 이해하기로 했다.


그리고 그 광기의 고르곤단은 날마다 늘어나는 자신들의 체중을 몹시 의아해했다?! 자기들 빼고 다 아는 그 이유를 그들만 몰랐던 것이다. 하지만 정작 신기한 사실은 늘어나는 그들의 체중이 아니라!! 미친 체중 증량에도 불구하고 천정부지로 오르는 그들의 턱걸이 실력이었다.


이쯤 되니 진심으로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고르곤졸라… 진짜인가?‘


그러던 어느 날 장을 보다가 마트에서 고르곤졸라의 할인 행사를 발견했다. 나는 큰 아이에게 그간의 깊은 고심을 털어놓았다.


 “도통아… 고르곤졸라를 먹으면 턱걸이를 잘 한데.”


한참을 기다려도 답이 없길래 한번 더 찔러봤다.

 

“아무래도… 그거 사실인 거 같아.“


뼛속까지 공학도인 녀석에게는 사실상 결투 신청이나 다름없는 발언이었다. 하지만 녀석은 곧 13살을 목전에 두고 있었고, 눈앞에 있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너무 잘 알고 있었기에 신중하게 단어를 고르며 대답했다.


 “엄마… 이성적으로 생각해 보세요. 진짜로 피자가 턱걸이를 늘려준다고 생각해요?”


“그치만… 턱걸이를 엄청 잘하는 사람이 한 말인걸?“


 “엄마… 그 사람이 피자를 먹어서 턱걸이를 잘하는 건지 아니면 턱걸이를 잘하는 사람이 그냥 피자를 좋아하는 건지 이성적으로 판단하세요.”


 “그치만… 그걸 먹은 사람들은 다들 턱걸이가 많이 늘었는걸?“


 “엄마… 그 사람들이 맹훈련 때문에 턱걸이가 느는 건지 아니면 진짜로 피자 때문에 느는 건지 이성적으로 판단하세요.“


 “그치만… 그걸 안 먹은 나는 안 늘어나는데?“


 “하아… 엄마… 엄마가 지금 턱걸이가 비약적으로 늘어날 레벨은 아니란 걸 인정하세요. 엄마 나이도 있고…“


아니, 이런 이성적인 새끼가… 거기서 나이가 왜 나와?


“그치만.. 그렇게 이성적으로만 생각하기엔 너무 상황이… 고르곤졸라한테 유리하게…“


“엄마! 그럼 이건 어때요? 우리 아빠도 고르곤졸라는 좋아해요!!“


아하?!? 그렇구나?!?

그 말 한마디에 나의 이성이 돌아왔다.


그리고 나는 또 그렇게 놈에게 패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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