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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국주 Mar 11. 2024

셋째를 가지지 않는 이유는…

단순히 육아가 빡세서가 아니다.

막냉이가 눈을 다쳤다.


경위는 이러하다.

아이들이 다니는 체육관에 풀업 밴드라는 것이 있다. 말 그대로 풀업(턱걸이)을 도와주는 밴드인데, 풀업을 못 하는 사람한테 무턱대고 하라고 하면 화를 내니 철봉에 이 밴드라도 걸고 해 봐라… 뭐 그런 취지의 물건이다. 근데 이게 말이 고무밴드지 나름 성인 체중을 버티는 물건인지라 매우 두껍고 짱짱하다. 그런 두껍고 짱짱한 밴드 중 하나가 그만 세월에 (놈들의 난동에…) 풍화되어 끊어져버렸다. 그걸 그냥 얌전히 둘 리 없는 초딩 놈들은 그 끊어진 밴드로 줄다리기(?)를 시작했고 밴드의 힘을 이기지 못 한 아이가 그걸 손에서 놓아버렸다. 그렇게 튕겨져서 나온 밴드가 하필이면 막냉이의 눈을 가격했다… 뭐 그런 이야기다.


누굴 탓하겠는가.

그냥 두면 갓 풀어놓은 망아지새끼들마냥 방방 뛰면서 이리 부딪치고 저리 자빠지고 여기저기 부러지고 사고를 쳐대는 씨발라먹을 놈들을 제대로 지켜보지 못한 내 잘못이지.


막냉이 녀석은 눈이 아프고 뿌옇게 보인다며 울고불고 난리가 났다. 보니까 흰자위 부분이 상당히 충혈이 되어있었다. 하… 당연히 아프겠지! 성인 체중을 버티는 강력한 고무밴드로 귀싸다구를 맞았는데!! 통증과 충혈이야 그렇다 치고 시야가 뿌옇다니 그대로 두면 안 될 것 같았다.


바로 병원으로 달려갔다.

그 도중에 아이의 시력은 돌아왔다. 다행이었다. 시력 검사 역시 정상으로 나왔다. 그래, 시력만 정상이면 됐지. 라고 생각하며 한시름 놓았다. 한동안 통증은 어쩔 수 없을 것이다. 다소 가벼워진 마음으로 진료를 받았다. 그런데 의사 선생님께서 한숨을 푹 쉬며 말씀하시길…


“도대체 애를 어떻게 돌보면 이 지경으로 만들어요? 체육관에서 그랬다고요? 그 체육관이 어디길래 애들 관리를 이따위로 하죠? 일단 각막에 상처가 많고요. 근데 그건 뭐… 문제가 안 돼요. 약 바르면 낫습니다. 진짜 문제는 전방 출혈이에요. 안구에 갑작스러운 충격을 받아서 출혈이 생겼고 그래서 안압이 높아졌습니다. 하… 지금은 대학병원에서 받아주지도 않는데… 일단 내일 다시 오시고요. 그때도 안압이 안 내려가면 조치를 취해야 해요. 일단 CT 찍어보고 수술하게 될 수도 있어요. 이거 때문에 실명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CT, 수술, 실명… 진료받는 5분 동안 온갖 무서운 단어들은 모조리 들었다. 아이는 수술이라는 말에 울기 시작했고, 나는 실명이라는 단어에 겁을 먹어버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선을 다해 괜찮은 척 말했다.


“괜찮아. 막냉아… 수술하게 될 일은 없을 거야. 겁먹지 마. 겁먹을 필요 없어.”


뭐… 겁은 나만 먹으면 되는 거 아니겠는가. 상황이 어떻더라도 아이가 겁먹어서 좋을 건 없으니까…

의사샘이 말씀하셨다.


“아이는 당분간 못 움직이게 하고 누워만 있게 하세요.“


이런 젠장…

어떻게 하면 저 천지분간 못 하고 날뛰는 열 살짜리 남자아이를 못 움직이게 할까…? 포박이라도 해야 하나…라고 생각했건만… 어라? 그 날밤 녀석은 꽤나 얌전했다. 아니, 그냥 얌전했다는 말로는 부족하다. 녀석은 강박적으로 누워만 있었다. 하기사… 그 의사어르신… 어지간히 협박을 하셨어야지. 그렇게 하염없이 누워만 있던 아이는 그 상태 그대로 쌕쌕 잠이 들었다.


와… 그 협박 효과 좋네…

그런데 그 협박은 정말 단순히 아이의 지랄 방지용 협박이었던 것일까? 불안한 마음에 검색질을 시작했다. 전방 출혈, 사고로 인한 실명, 안압, 수술… 도대체 CT는 왜 찍는다는 것인지… 아하? 안와골절이란 것도 있구나. 내 능력이 닿는 한도까지 검색할 수 것은 다 검색했다. 연계되어 나오는 영상도 싹 다 시청했다. 덕분에 유투버 한솔님까지 영접했다. 아하… 눈이 안 보여도 이렇게 긍정적일 수 있구나?! 그런데 그건 이 분의 영혼(?)이 밝아서가 아닐까? 나는 불가능하지 않을까? 생각의 끝이 극단까지 왔다리 갔다리 했다. 물론 검색질만 한 것은 아니다. 아줌마들 친목 단챗방도 이용했다.


씌벌… 아줌마 단톡방 괜히 이용했다.

내 새끼 걱정에 남의 새끼 걱정까지 얹어버렸다. 하… 누군진 몰라도 그 집은 또 얼마나 지옥 같을까… 그렇게 검색질과 단톡질로 5시간을 홀라당 흘려보냈다. 그렇게 내린 결론은 병원에서 전문의료진에게 진찰을 받아봐야 정확히 안다는 것이었다. 와c… 이런 당연한 것을… 그냥 잠이나 잘걸…


그렇게 핸드폰과 결별하고 누웠는데… 눕는다고 잠이 올리가 있나. 눈만 꿈뻑꿈뻑 한두 시간 더… 결국 베개를 들고 아이가 자고 있는 방으로 갔다. 아이는 핑크색 토끼 인형을 안고 오늘 있었던 일은 지 혼자 깨끗하게 잊은 채 쌔근쌔근 자고 있었다. 그래, 너라도 잘 자서 다행이다. 나는 아이의 품 안에 있는 토끼 인형을 빼서 냅다 던져버리고 그 자리로 들어갔다. 그렇게 아이를 품에 안고 선잠이 들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병원…


“출혈은 멎었고 안압도 정상으로 돌아왔습니다. 다행이네요. 각막에 상처만 치료하면 될 거 같아요.”


아… 진짜 다행이다.

역시 별일 아니었다. 별일 아닐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었으면서 이렇게 매번 호들갑이나 떨고… 나도 참… 핫핫핫.


이라고 쿨한 척해봤자 나는 알고 있다.

앞으로 40년은 더 이럴 것이라는 사실을…


얘들도 엄마때문에 고생하는 건 매한가지

솔직히 말하면 너무 무서웠다.


현재 대한민국의 출산율은 국가 경제에 타격이 있을 정도로 저조하다고 한다. 향후 30년은 국력이 하락할 것이라는 것 역시 정해져 있다고도 한다. 출산을 꺼리는 이유… ‘아이를 키우기 힘든 사회적 환경 or 개인적 상황.’ 또는 ‘그냥 원하지 않아서.’ 등등 그 이유는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하지만 내가 셋째를 갖지 않는 이유는… 아니, 둘째에서 멈춘 이유는 사회적인 이유도 아니고 단순히 육아가 빡세서도 아니다. 이미 아들만 둘이라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지랄 맞아서는 더더욱 아니다. 나는 여태껏 더 지랄 맞은 딸들도 많이 봐왔다. 우선 나부터가 아주 지랄 맞은 딸이었다.


나는 사실 아이를 셋은 가질 생각이었다.

그냥 사랑스러운 아이들이 많으면 다복다복 더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낳고 보니 이 놈이 너무 소중했다. 아니, 내 아이가 소중한 건 당연한 건데… 이게 내 예상을 훌쩍 넘어서는 감정이었다. 없을 땐 막연하게 상상만 해서 잘 몰랐다. 그런데 막상 생기고 나니 그 소중함이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서버리는 것이었다. 하여 세상 무서울 거 없던 나란 인간이 겁이 많아졌다. 세상이 하염없이 무서워졌다. 그러다 아이가 두 명이 되니 두 배가 더 무서워졌다. 두 놈이 각각 다른 이유로 번갈아가며 사고를 쳐댔다. 아니, 딱히 놈들이 직접 사고를 안 치더라도 이 놈은 이래서, 저 놈은 저래서 심장이 쫄깃해지는 순간이 다채롭고도 지속적으로 찾아왔다. 지금도 이럴진대 셋이 되면… 하… 생각하고 싶지도 않다.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셋째의 소중함은 그냥 모르는 편이 나을 것 같았다.


그날 아침에 내 소중한 사고뭉치들에게 말했다.


“엄마가 사실은 어제 너무 무서워서 잠을 못 잤어.“


그랬더니 막냉이가 말하길…


“잘만 주무시던데요? 내 토끼까지 팽대기치고…”

“팽대기가 아니라 패대기… 아니, 아니야. 엄마 너무 걱정돼서 밥도 못 먹고 체중도 1kg나 줄었어.“ (사실임)


그랬더니 옆에서 듣던 도통이 말하길…


“엄마… 밥은 안 먹어도 운동은 하시던데요?“

”…??? 그야… 밥은 안 넘어가도 운동은 어케든 되니까.“

“하… 그래요 엄마… 그 빠졌다는 1kg는 지방일 거예요. 엄마는 어차피 근손실만 없으면 되는 거잖아요.”


이 새끼 방금 한숨 쉰 거 맞지?

어쩐지 그 사고뭉치라는 이미지… 일방이 아니라 쌍방인 듯 하지만…


그래…  나는 역시 너희 둘이면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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