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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국주 Jan 22. 2024

등근육 만들어오면 차 뽑아줄게!

“턱걸이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뭐예요?”


이런 질문을 자주 받는다.

체육 경력 無인 40대 가정주부, 아들 둘 엄마…

턱걸이랑은 영 안 어울리는 스펙이다. 그러니 도대체 저 인간이 왜 저렇게 저거(?)에 집착을 해대는 건지… 아니, 애초에 시작 자체를 왜 한 건지… 궁금할 법도 하다. 그 썰을 풀어본다.


나에겐 명확하고도 숭고한 계기가 있었다.


때는 2021년 여름쯤이었다.

난생처음으로 근력 운동이란 것을 시작하고 몇 달 후 팔굽혀펴기를 성공했다. 몹시 기뻐서 신랑한테 자랑을 했건만… 그가 말하길….


“우와!! 우리 여보야 대단한데? 근데.. 푸쉬업은 쉽지 않나? 풀업이 어렵지… 특히 여자들한테는 그게 진짜 어렵다던데… 아무나 못 한다고 들었어.”


그때 내가 했던 대답은…


“어… 그렇구나… 근데 풀업이 뭐야요?


였다. 그렇다. 당시 나는 풀업이 뭔지도 몰랐다. 정확히 말하면 풀업이 턱걸이라는 사실을 몰랐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턱걸이에 대해서도 잘 몰랐다. 그래서…


“그까짓 거 철봉 잡고 턱까지 땡기기만 하면 되는 거 아니에요? 그게 뭐가 어려워요? 내일부터 며칠만 연습해 보면 금방 될 거 같은데?“


어디서 많이 들어본 말 아닌가?

금연에 실패하는 사람들의 전형적인 레파토리.


그까짓 거 담배만 안 피면 되는 거 아냐? 그게 어려워? 난 마음만 먹으면 내일이라도 당장 끊을 수 있어.”


쯧. 뭐든 우습게 보면 실패한다.

그 미션이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더더욱 그렇다. 무엇이든 성공 확률을 조금이라도 올리려면 그것에 대해 무지해서도, 그것을 우습게 봐서도 안 된다. 그런데 당시 나는 무식했고 용감했으며 그래서 희망도 없었다.

그러자 그가…


“좋아! 울 여보야, 턱걸이 성공하면 차 한 대 뽑아줄게. 뭐든 니가 원하는 걸로.“


….?!? 뚫린 입이라고 이런 말을 싸질러버렸다!?


“와… 여보야?? 어… 흠… 당신… 지금 그대가 무슨 말을 싸고… 아니, 하고 있는지 알고는 있어요?“


(씹힘…)


“울 여보야 등근육 만들어서 블랙 민소매 입고 썬글라스 끼고 숏컷헤어 왁스로 넘겨서 한 손에 빠따(?) 들고 차에서 딱 내리면 개멋지겠다. 그지?“


??? 왓… 뭐가 이렇게 디테일한 거죠? 미래의 나는 왜 숏컷이고… 왜 민소매며… 무엇보다… 미래의 내 손에는 왜 해머… 아니, 빠따가 들려 있는 거지요?? 미래의 나는 도대체 어떤 일을 하는 건가요? “


“그… 여보야… 미래의 나의 직업이 뭔데요??”


(씹힘)


“지금 그 핑크색 차로는 그런 거(?) 못 하잖아.”


다른 색으로도 그런 거(?) 하고 싶지 않아요. 그치만…


“하… 그래요. 해볼게요.”


그가 턱걸이에 대한 보상을 이렇게까지 크게 건 첫 번째 이유는… 일단 그의 이상형이 근육질 여성이기 때문이었다. 하여 40평생을 몸에 붙은 근육이라곤 괄약근밖에 없는 몸뚱이로 살아온 와이프를 움직이게 만들려면 최소 이 정도는 내걸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리고 두 번째 이유는… ‘아마도 못 할 것이다.‘ 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아마 이 이유가 가장 크지 않았을까… 아무리 그래도 등근육… 아니, 턱걸이에 자동차라니… 그 보상이 커도 너무 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도전장을 받아들인 이유는 사실 차 때문만은 아니었다. 어차피 지 돈이 내 돈 아닌가. 차를 싸질러봤자 그 뒷감당 역시 내가 해야 한다.


내가 턱걸이를 시작한 진짜 이유는…

당시 그가 암투병 중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그가 나에게 바란 유일한 것이 그것이었기 때문이었다. 만약 그가 나에게 태권도를 시켰다면 나는 지금 태권도 유단자가 되어있을 것이고, 꽃꽂이를 시켰다면 플로리스트가 되어 있을 것이다. 살림을 잘하길 원했다면 여전히 지금까지도 집 밖으로 안 나갔을 것이고, 돈을 벌길 원했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일자리를 구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는 나에게 등근육을 원했다. 그래서 턱걸이를 시작했다.


까짓 거… 안 해줄 이유가 없었다.


그리고 반년 후…

턱걸이로 만든 등근육

하… 시작한 이유 따위 개나 줘버렸다. 보상이고 나발이고… 턱걸이 개수를 하나라도 더 늘릴 수만 있다면 나는 내차의 운전석 문짝이라도 떼 줄 수 있었다. 그깟 고철덩어리…


손가락 걸리면 땡긴다.

때와 장소를 가리지 못하고 철봉만 보면 환장을 하게 되었다. 아니, 뭐 딱히 철봉이 아니라도 손가락만 걸쳐지면 그걸로 충분했다. 손가락 건다. 땡긴다. 그 이상은 필요하지 않았다.



근육을 잃을 바엔 사람을 잃겠다.

“언니, 오늘 시간 돼?”

“어. 안돼. 운동해야 돼. “

“오늘 하루쯤 빠져도 되잖아.”

“어. 안돼.”

“그럼 우린 언제 만나?”

“우리 체육관으로 올래? 같이 운동하자.”

“……“


근육을 얻고 사람을 잃었다. 마음을 쓰는 것보다 근육을 쓰는 것이 편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심지어는 신랑과 함께하는 시간보다도 철봉을 만나는 시간이 더 많아졌다.



철봉 재질 손바닥

“엄마… 앞으로는 로션 안 발라줘도 돼요. 이제 우리 스스로 바를게요.”


아이들이 손바닥이 까끌하다며 내 손길을 거부한다. 그리고 갑자기 존댓말을 쓰기 시작했다. 뭐 할 수 없이 공손해진 느낌이지만 어쨌든 상당히 공손해졌다.



그리고 나는 결국 보상을 받았다.

그는 그 미친 약속을 지킬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2023 Lod of the bar ep.1 여성 풀업 부분 1위

2023년 상반기 대회, 여성 풀업 종목 금메달.



2023 신흥무관학교 전국무예대축전 중량부분 1위

중반기 대회, 중량 풀업&딥스 종목 금메달.



2023 시정홍보 쇼츠 동영상 공모전 우수상

그리고 하반기에 풀업 하는 영상으로 시장님께 상을 받았으며, 마지막으로 생활스포츠지도사 자격증까지 취득했으니까…


뭐 보상을 받을 때 살짝 삥 뜯는 느낌이긴 했지만, 어쨌든 자타공인 나의 확실한 승리였다.


그리고 이 모든 일의 원흉인 그가 말했다.


“아… 또라이랑은 함부로 내기하는 거 아니구나…”


초딩 아들을 골반 위에 얹고 턱걸이 하는 엄마…

와… 여보야… 지고지순한 와이프한테 또라이라니요.

이거(?) 당신이 만든 거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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